신촌 미네르바 대표와 이인우 저자(오른쪽)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연원이 중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카페나 서점, 장인의 가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과거에 지어졌으나 여전히 원래의 용도에 맞게 그 쓰임을 다하는 가게들은 골목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며 언제 찾아와도 변함없는 추억의 장면을 선사한다. 이러한 명소는 지역을 활성화하는 기업이자 살아 있는 문화재로 기능하며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으로부터 한결같이 사랑을 받는다.
인구 천만의 서울에도 반세기 이상 연륜을 쌓아온 가게들이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런던이나 도쿄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지만, 역사적 아픔과 급속한 산업화의 격랑을 숨 가쁘게 겪은 우리에게는 그 어떤 퍼브(선술집)나 노포(老鋪) 못지않은 소중한 ‘문화재’이다.
『서울 백년 가게』 를 집필하면서, 가장 크게 깨진 고정관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래된 가게’ 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오래된 가게 하면, 의례 최고 수백년 역사를 지녔다는 일본의 노포(老鋪)를 떠올리고 비교를 하곤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나라 상점ㆍ기업들의 짧은 역사를 한탄하고 아쉬워하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는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라는 생각을 이 책을 쓰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최소 1백년 이상 먼저 자본주의를 해온 유럽과 일본을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상업 역사와 전통을 이제부터 쌓아가고 있는 후발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선정한 것이 아닌데도 이 책 『서울 백년 가게』 에 소개한 24곳의 가게 중 20곳이 1950년대 전쟁복구 과정, 또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고도성장기에 문을 연 가게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 길면 긴대로 자랑할 거리가 많겠지만, 그것이 부럽다고 억지로 과거를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대로 ‘오래됨’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가꾸고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2013년 서울시가 오래된 가게를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상인을 지원하는 ‘백년가게’를 선정하고, 2019년 올해 들어서는 『서울 백년 가게』 라는 제목의 책이 여러분을 찾아가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요구 속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부터는 노포라는 일본식 표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알기 쉽고 정감 넘치는 ‘백년가게’가 “오래도 되고, 미래도 기대되는 가게”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래 역사를 이어가는 가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확실한 공통점은 창업자, 또는 계승자들이 자기 가게에 가지고 있는 한결같은 열정과 성실함입니다. 무슨 업종이든 주인이 그 가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가장 열심이며, 가장 애정이 깊은 사람인 가게가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공이 반드시 가게의 장수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오래된 가게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시대 흐름이나 소비패턴의 변화가 가게에 어떻게 작용했느냐, 좋은 동반자나 조력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같은 조건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가게가 임대일 경우 건물주의 호의와 문화의식 수준, 도시의 재개발이나 재건축 상황의 변화 등이 자신들도 모르게 가게가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조력자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가게든 오래된 가게에는 좋은 동반자와 계승자, 좋은 직원, 좋은 거래처, 좋은 건물주 등이 위기마다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운”의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장사의 영역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취재하면서 가장 감동받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대부분이 감동적인 가게였지만, 특히 한 곳을 꼽으라면 책에 15번째로 소개된 중랑구 망우동의 동부고려제과를 들고 싶습니다. 주인장의 자기 빵 가게에 대한 높은 긍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원래 취재하고 싶은 빵집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빵집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였는지 필자의 취재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도심의 유명 빵집 대신 동네빵집으로 취재방향을 바꿨고, 그 결과가 동부고려제과였습니다.
동부고려제과는 서울 동쪽 끝인 중랑구 망우역 근처에서 45년째 문을 열고 있는 10평 남짓한 작은 빵집입니다. 1990년대 큰형이 하던 가게를 물려받은 주인 부부를 비롯해 박사과정의 딸, 건축과를 나와 제빵을 배우기 시작한 아들 등 온 가족이 가게 운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주인 아저씨에게 빵집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팁을 부탁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 생각만 하면 빵 장사 못해요. 내가 왜 빵장사를 하는가, 라는 소신, 빵 장사한테는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도심의 성공한 큰 빵집도 아닌 작은 동네빵집 주인에게서 이런 자부심 가득한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무척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 가게는 독자 분들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면(1,2곳)?
서울시는 2013년부터 서울에 존재하는 가게들 중 오래되고 의미 있는 가게를 가려 뽑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문화적으로 보호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민생활과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138곳이 지정돼 있는데, 『서울 백년 가게』 에는 그 중 17곳이 소개돼 있습니다. 서울시가 엄선한 만큼 시장님이 추천한 곳이나 다름없으니, 제가 따로 추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들고 직접 한번 가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지 않은 곳 중에서 이 책에 소개된 가게 중에는 명동 회현지하상가의 음반ㆍ고서점 ‘클림트’와 게스트하우스ㆍ북카페ㆍ갤러리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보안여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클림트’는 음악과 LP를 사랑하고 인문학, 예술 분야 중고서적에 관심있는 독자님들께 ‘강추’합니다. ‘보안1942’는 한 공간 속에 “구경하고(See), 묵어가고(Sleep), 먹고(Eat), 읽고(Read), 걷는(Walk)” 5가지 콘셉트를 집어넣은 이색적인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서촌 나들이를 할 때 들러서 전시회도 보고 커피도 한 잔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혹시, 기자님께서 가게를 여신다면 어떤 것을 소개(또는 판매)하고 싶나요?
저는 장사하는 재주가 빵점이라 한번도 가게를 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채널예스> 인터뷰 기회를 통해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필자는 비교적 옛날 사람이어서인지 아직도 동양고전이나 붓글씨, 전각 같은 것에 흥미가 많고, 스토리텔링 형식로 동양고전 『논어』 를 소개한 책(<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지혜를 담은 동양고전, 특히,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로 된 양서를 두루 갖춘 ‘한중일 3국 고전 전문서점’을 상상해 봅니다. (돈은 별로 안되겠지요? 제 생각에도 금방 문을 닫을 것 같습니다만, 참고로 일본 도쿄에는 이런 서점들이 즐비한 진보쵸라는 헌책방 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더 좋을까요?
『서울 백년 가게』 는 일종의 미시사(微視史)입니다. 도시의 작은 가게들의 일상을 통해 서울이란 대도시의 산업과 풍속, 생활의 변천상을 읽어내려는 인류학적인 에세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맛집이나 멋집 방문기는 아닌 셈입니다. 따라서 보다 인문학적인 관심에서 출발해 대상을 보고자 하는, 일상을 단지 소비행위가 아니라 문화의 측면에서 이해하고자는 하는 분들이 이 책의 진정한 독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독서의 측면에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적극 권합니다. 가게를 오랫동안 경영하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생각하는 주인님. 무엇인가 자기만의 가게를 창업하고 싶은 분, 특히 젊은이들. 미래의 성공한 가게 주인이 될 청소년, 학생들. 그런 성실한 상인을 양성하고자 애쓰는 교육자님. 착하고 좋은 가게가 오래 가도록 응원하고 싶은 특별한 손님. 문화ㆍ산업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 상공인단체에서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시는 분. 책 한권 들고 도시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살아있는 역사의 체취를 맡으려는 진정한 여행가들.
이 책을 관심있게 읽으실 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책에 서문에도 썼듯이,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숨은 듯 드러난 듯 다양한 백년가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오래되고 의미 있는 가게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가게를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이 거듭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좋은 가게, 착한 가게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다양한 업종의 백년가게도 그만큼 많이 우리 곁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주인이든, 손님이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서울을 더욱 서울답게, 우리나라를 더욱 우리나라답게 하는 문화의식을 한층 더 높여나갈 수 있는 길을 함께 이야기하고 모색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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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백년 가게이인우 저 | 꼼지락
각 가게 주인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성공 비결, 장사 철학, 경영 노하우를 들려주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애환 서린 생활과 풍속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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