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으면 사방팔방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앉아서 흥분을 나누는 편이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좋은 소설을 놓치며 사는 걸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가능해지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는 좋은 소설이 누락되지 않는 ‘소설 안전망’이 구축됐으면 좋겠다. 독자 복지 차원에서.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편집자이자 시인인 서효인과 편집자이자 평론가인 박혜진이 함께 쓴 독서 일기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에서 박혜진 평론가는 좋은 소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을 “‘소설 안전망’이 구축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표현했는데요. 참 재미있는 아이디어죠? 매 년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요. 어떤 책은 독자의 눈길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잖아요. 이건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아쉬운 일입니다. 우리 삶의 지평을 넓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들을 독자 복지 차원에서 누가 좀 잘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 아마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공감할 거예요. 오늘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책을 만들고, 책을 읽고, 책을 쓰는, 그야말로 책으로 사는 두 분 서효인 시인과 박혜진 평론가를 모시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책 덕후 세 명이 모이는 셈이에요.(웃음)
<인터뷰 - 서효인 시인, 박혜진 평론가 편>
오은 : 먼저 ‘deep & slow’ 질문을 드린 후에 하나씩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효인, 박혜진 두 분에게 드리는 ‘deep & slow’는 이것입니다. "편집자로서의 내가 독자로서의 나보다 좋을 때는?" 두 분이 함께 쓰신 독서 읽기죠. ‘읽어본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를 쓸 때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 정체성으로 썼다는 말씀을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그래서 준비한 질문이고요.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서효인, 박혜진 : 네.
오은 : 그럼 이제, 두 분 소개를 해드릴게요. 소개를 들으시면 과연 두 분 대단한 독서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실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먼저 서효인 시인의 소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 시인. 건전한 시민을 꿈꾸는,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어렸을 때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지금 읽는 책보다 초등학생 때 읽은 책이 몇 배는 많다. 위인 전집, 세계 명작 고전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제일 좋아했던 것은 어머니 책장에 꽂혀 있던 별별 책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부를 했고, 자연스레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무서워서 대학 졸업 학기에는 80만원을 내고 9급 공무원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백팩에 후지쓰 노트북을 갖고 다니며 게릴라처럼 여기저기서 글을 썼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서효인. 2010년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 를 출간했고, 1년 뒤에는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집 『백년 동안의 세계대전』 을 펴냈다. 24시간 동안 시만 생각하고 글만 썼던 그때, 첫 시집이 나오고 나서 1년은 한 계절에 15편 정도를, 정말 미친 듯이 썼다.
열심히 쓰는 시인인 동시에 일도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생활인이고 싶었다. 서효인이 눈 밝은 편집자라는 것은 투고함에서 『82년생 김지영』 을 발견해 신뢰하는 동료 박혜진 편집자에게 건넨 일화로 세상에 알려진 사실. 아이도 키우고, 세금도 제일 많이 내고, 4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고, 건전한 시민으로 매일 출퇴근 하는 생활이 기쁘다고 생각한다. 책 읽을 시간이 점점 줄어 집과 회사를 왕복하는 데 드는 약 세 시간의 시간은 독서에 할애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 공간은 타인의 대화와 배경음악이 있는 카페다. 홍대 용다방, 비플러스, 합정 카페 마로, 가로수길 포엠, 파주운정 한빛마을 6단지 앞 이디야 등을 전전했다.
가요와 야구를, 그리고 드라마를 책만큼이나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흘러 넘쳐 야구 칼럼도 쓰고, 책도 내고, 얼마 전부터는 <채널예스>에 <서효인의 가요대잔치>라는 칼럼 연재도 시작했다. 음악과 유머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열쇠라고 생각한다. 이 둘 모두 잘하고 싶다. 거의 실패하고, 그러나 늘 시도한다.”
박혜진 : 우와. 이 정도면 ‘서효인 약전’ 아닌가요?
오은 : 박혜진 평론가 소개를 이어 한 후에 이야기 나눠볼게요.(웃음) “편집자. 문학평론가. 어느 때에도 책으로 길을 찾는 지독한 독서가. 일과 취미가 일치하는 삶을 원해 편집자가 되었다. 읽기 전과 후에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에 혹해 세계 고전을 읽기 시작했고, 세계문학전집이 좋아서 민음사에 들어갔다. 입사 시험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을 좋아한다고 적었는데 왜 좋아하는지, 이유는 제대로 대지 못한 흑역사가 있다.
2015년에는 평론 '없는 얼굴로 돌아보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의 삶도 시작했고, 서효인 편집자에게 건네 받은 『82년생 김지영』 원고를 보자마자 잘 쓰인 소설이라 판단해 당장 원고를 들고 조남주 작가를 만난 이른바 ‘출판계 미다스의 손’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제목 역시 그의 작품.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이라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러다 탈진했을 때 복용하는 책은 『플러쉬』 , 마음을 잃어버릴 때마다 꺼내는 건 『한낮의 우울』 . 명절 연휴의 번잡스러움을 가라앉힐 때는 동화책을 읽는다. 발로 썼다 해도 사서 읽을 작가는 빌 브라이슨, 소설의 이야기성을 말할 때는 이탈로 칼비노, 문학의 지도이자 나침반으로 삼는 책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를 인상 깊게 읽고 몸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지난 겨울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사방팔방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흥분을 나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읽어봐야 까먹는다’는 생각에 늘 조바심이 난다. 사노 요코처럼 배짱 있는 할머니가 꿈이다. 도시를 동경한다. 9년 차 직장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아침잠이 많다. 추위에 약해 겨울에는 패딩을 두 개씩 입고 다닌다. 길티플레져는 싫은 사람 팔로우 하기, 그리고 자기계발서 읽기. 2019년에는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서효인 : 아니, 박혜진 평론가는 책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는 가요 좋아하고, 야구 좋아하고, 돈 벌고 세금 내는 이야기예요.(웃음)
오은 : 박혜진 평론가는 서효인 시인에 대해 몰랐던 내용이 있나요?
박혜진 :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했다는 건 정말 금시초문이에요. 그런데 처음 알았지만 놀라진 않았어요. 서효인 시인이 3시간 가량 출퇴근을 하는데 지각을 안 하세요. 그 정도 근면성실함이면 9급 공무원 준비도 하셨겠다 싶네요.
서효인 :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너무 갈팡질팡 길을 못 찾은 나머지 어머니한테 80만원을 부탁했어요. 이거면 공무원을 할 수 있다고요. 한여름이었는데요. 고시원을 두 달 끊고, 교재를 사고, 학원을 등록했는데 고시원에 에어컨이 나오니까 시원하잖아요. 그래서 두 달 동안 고시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어머니께 죄송하게 생각하고요. 결국 시험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오은 : 어머니 책장에 있던 별별 책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요.
서효인 : 정확한 제목이 기억은 안 나는데 ‘살면서 배워야 할 건 유치원 때 다 배웠다’는 식의 책이 있었어요. 그걸 읽으면서 ‘나도 다 배운 것 같은데?’(웃음) 생각했었죠. 지금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어머니 책장의 책은 역시 『토지』 였던 것 같고요. 그걸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읽었는데요. 그때 읽은 게 지금 많은 영향을, 좋은 쪽으로는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오은 : 최근 <채널예스>에 <서효인의 가요대잔치> 칼럼 연재를 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신가요? 반응이 오나요?
서효인 :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어요. 나는 매일 가요 들으니까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까 너무 어렵더라고요.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오은 : 박혜진 평론가는 ‘출판계 미다스의 손’, 실제로 많이 듣는 이야기인가요? 『82년생 김지영』 을 이후에 박혜진 평론가의 손을 통해서 많은 양질의 책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그럴 텐데 이런 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박혜진 : 다행스럽게도 제가 좋아한다고 회사에 얘기를 하고,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던 작가들이 호평을 받고, 때론 사회에 영향력도 미친 것은 굉장히 행운이죠. 그러면서도, 책 만드는 일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사실은 팀이 같이 작업한 것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고요. 어쨌든 좋은 성과가 있어서 일하는 원동력도 되고, 기분이 좋아요. 미다스의 손이라는 얘기는, 밖에서 하시기도 하지만 부끄럽죠.(웃음)
서효인 : 왜 저한테는 이런 질문을 안 해주시죠?(웃음) 저와 작업하신 작가 분들도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아요.(웃음)
오은 : 저는 ‘마이너스의 손’이기 때문에요.(웃음) 박혜진 평론가는 그런데 책을 읽어봐야 늘 까먹는다는 생각을 한다고요? 어쩌면 그 생각 때문에 독서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박혜진 : 정말 기억력이 좋지 못해요. 읽고 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요. 심지어 소설은 시간이 좀 지나면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대체로 다 잊어서 다시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거든요. 어떤 때는 뭐 하는 건가, 읽어봐야 잊어버릴 텐데 대체 내게 읽기라는 행위가 뭐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내게 남겠지, 하면서 지나갔는데요. 이런 생각이 독서일기에 영향을 주긴 했어요. 읽고, 기록을 남기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죠. 그런데도 책이 나와서 보니까 또 너무 새로워요.(웃음)
오은 :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볼게요. 두 분이 직접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를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서효인 : 편집자 둘의 독서 일기고요. 작업 일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꼭 책을 좋아하는 사람, 다독가나 애독가만 이 책을 보실 게 아니라 직장인 분들도 보시면 좋겠어요.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회사 동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다른 사람은 회사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혜진 : 책 표지에 ‘매일 한 권의 책을 만지는 사람들이 매일 한 권의 책을 기록하는 이야기’라고 나와 있어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아마 이 책을 읽으실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요. 이 책은 책이 ‘일’인 사람들의 일기이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실 수 있을 거예요. 책을 만들 때 벌어지는 일, 만들고 난 뒤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일 등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드릴 것 같습니다.
오은 : 이 책이 ‘읽어본다’ 시리즈 여섯 번째잖아요. 원래 6번, 7번이 같이 나와야 했던 거거든요. 서효인, 박혜진 그리고 김민정, 오은이었는데요. 저희는 또 과업을 달성하지 못했어요.(웃음) 써보니까 매일 쓰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두 분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마감을 하셨어요?
박혜진 : 저는 첫 책이고,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꾸준히 썼던 경험도 없어서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글 한 편이 짧은 분량이잖아요. 원고지 4매 정도 분량이라 빨리, 쉽게 쓸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써보니까 이 짧은 분량 안에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요. 서효인 시인이 정말 무서운 선생님처럼(웃음) 저를 이끌어주셨죠.
서효인 : 일을 같이 하니까 서로의 성격을 알잖아요. 박혜진 평론가는 항상 걱정하는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 미리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때에 맞춰 조금 요령을 부리는 사람, 그때 그때의 재치와 잔머리로 일을 해결해나가는 사람이죠. 이런 둘이 쿵짝쿵짝 일을 하니까 당연히 이 책을 쓸 때도 박혜진 평론가가 열심히 쓰면 나는 뒤에서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혜진 평론가의 그 성격 때문에 원고가 못 나가더라고요. 완결을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으로 못 나가고 계속 붙들려 있는 거예요.(웃음)
오은 : 책 출간 된 후에 서로의 글을 봤을 텐데요. 어떠셨어요? 서효인 시인과 박혜진 평론가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박혜진 : 쓰면서도 몇 번 각자 원고를 교환해서 보기도 했어요. 어떤 방식, 어떤 톤으로 써가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랬는데요. 저는 서효인 시인의 산문을 되게 좋아해요. 유연하죠. 생활에 밀착되어 있고, 유머러스하고요. 그런 것들이 어김없이 발휘된 글이었어요.
서효인 : 제 글은 박혜진 평론가의 글을 읽기 위한 진입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잖아요. 책에 대한 좀 더 통찰력 있는 이야기, 문학에 대한 고민은 박혜진 평론가의 글에 더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저는 생활밀착형 글이기 때문에 삶에 대한 공감 지점은 있겠지만 책 제목에 걸맞은,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박혜진 평론가의 글에 더 많다고 생각해요.
오은 : 저는 왼편에 있는 서효인 시인의 글에 마음이 울리고, 오른편에 있는 박혜진 평론가의 글에 머리가 두드려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머리와 가슴을 함께 두드리는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박혜진 : 와, 추천사로 써주세요.(웃음)
서효인 : 너무 좋은 칭찬이네요.
오은 : 두 분이 읽으신 책 목록에 두 분의 책 취향도 반영이 된 것 같아요. 서효인 시인은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 그림책이 많았어요. 저희 <옹기종기>가 방송된 다음날에는 <어떤,책임>이라고 책 소개 코너가 방송되는데요. 그림책 반응이 좋아서 서효인 시인이 소개한 그림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서효인 시인은 그림책을 좋아하시나요?
서효인 : 그림책 사실 잘 몰랐어요. 별로 관심이 없었고요. 소설, 역사책 좋아했는데요. 독서일기를 날마다 써야 하잖아요.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그게 아깝기도 했고요(웃음). 또 그림책을 읽은 후 글을 쓰면 되게 다채로워져요. 어떤 그림책은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감동 받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오은 : 한편 박혜진 평론가는 고전 일기가 많았어요. 아마 다른 팟캐스트에서 고전을 읽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요.
박혜진 : 그 영향이 커요. 한 달에 두 권을 읽으니까요. 책을 결정하기 위해 다른 책도 읽으니까 한 달에 어쨌든 서너 권 이상의 고전을 보죠. 게다가 계속 평론을 써야 하니까 문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남았던 작품들은 좋은 글감이 돼서 계속 읽고, 쓰고 있었어요.
오은 : 서로의 독서일기에 영향 받아서 구매까지 하게 된 책이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서효인 : 피에르 르메트르가 그렇고요.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은 아주 아프게 읽었던 작품이에요.
박혜진 : 저는 『나는 지하철입니다』 . 읽고 너무 좋아서 아예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계속해서 그 표지를 쳐다보고 있어요. 또 잡지를 서효인 시인이 저보다 많이 봐요. <릿터>나 <크릿터> 작업을 주도적으로 하시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뉴필로소퍼 창간호>는 소개를 받아서 사서 봤었죠.
오은 :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혜진 : 이 소설이 투고가 됐을 때 서효인 시인이 밝은 눈으로 보고 호평을 해줬기 때문에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 소설이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 같거든요. 함께 판단하고, 작업해서 책이 나온 과정도 저한테는 의미가 있어요. 사실 그 전까지 책은 혼자 만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경험을 하게 된 작업이기도 했고요. 책 자체로 본다면 내가 독자보다 훨씬 닫힌 방식으로 소설을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 계기였어요. 책이 나올 때 확신도 있었지만 불안하기도 했거든요. 이 형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 우려도 있었는데 새로움, 혹은 다른 것에 대해 독자들이 훨씬 열려있는 방식으로 평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효인 : 저는 조심스러운 게 어쨌든 책임편집은 박혜진 평론가가 한 책이에요. 편집자로서는 박혜진 평론가의 공이 거의 대부분이죠. 저는 우연찮게 본 것뿐이고요. 제가 그때 명절증후군에 휩싸여 있을 때여서요.(웃음)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우리의 좋은 운이 저희 팀, 회사, 혹은 출판계, 그리고 책을 읽은 독자에게까지도 퍼져 나갔던 것 같아요. 그 점이 좋아요. 우리에게 어느 정도 패배주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 이 책이 바깥으로 퍼져 나가고 우리 사회에 하나의 의제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상당히 감개무량했어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데 조그마한 추동력을 이 책으로 보탠 것 같아서요. 보람 있는 작업이었어요.
오은 : 마지막으로 ‘deep & slow’, "편집자로서의 내가 독자로서의 나보다 좋을 때는?"에 대한 두 분의 답을 들어볼게요.
박혜진 : 예전에 이성복 선생님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요. 선생님께서 문예지에 쓰고 있는 글을 보고 너무 좋아서 책을 내고 싶다고 보낸 건데요. 이미 책은 다른 곳에서 내기로 했다고 완곡한 거절의 답장을 주셨더라고요. 그때 출판여부와 상관없이 너무 좋았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런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원고를 읽고,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볼 수 있고, 내가 생각한 것도 얘기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좋죠. 독자일 때는 제한된 경우에만 작가와 얘기할 수 있지만 편집자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경험을 할 때 저는 편집자로서의 제가 독자로서의 저보다 좋아요.
서효인 :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모든 순간이.(웃음) 진짜 그런 생각이 요즘 들어요. 이제는 독자로서의 읽기가 거의 어렵게 된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모든 독서에 다 투영이 되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편집자로 살고 싶고, 독자로서의 나로 굳이 돌아가려고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을 쓰면서 독자로 돌아갔던 순간이면 다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편집자로서 책 읽으면서 편집자로서 좋은 책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독자로서는, 어떤 순간에 섬광처럼 지나가는 정도면 족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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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