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저 | 래빗홀
치졸하고 우스꽝스러운 세계의 모순을 들추면서도 서로를 보살피며 서툰 사랑을 배워가는, 사랑을 잃는 순간에는 멈추어 애도하고 기억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폐허의 오늘로부터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가는 꾸준한 노력을 담은 정보라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가 『너의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개정 출간되었다.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작가의 말) 기억하고 애도할 것이 끊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어내는 소설로,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필립 K. 딕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에 참석한 정보라 작가는 각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수록작 「그녀를 만나다」의 마지막 대목을 직접 낭독하며 울림을 주었다.
김소연 저 | 마음산책
‘감’에서 시작해 ‘힝’에 이르기까지 310개의 한 글자 단어를 섬세한 시인의 언어로 정의한 사전 형식의 책이다. ‘갑’에 관해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게 갑이지!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지만 ‘그게 을이지!’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16쪽) 읽다 보면 시인의 사전이 다른 언어로 어떻게 옮겨졌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2022년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도 함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두 작품 모두 번역본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일 것이다.
강민영 저 | 한겨레출판사
“판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 여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여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했을까? 데이트폭력, 스토킹, 불법촬영, 로맨스 스캠 등 현실 세계의 문제에 시선을 정확히 맞추고 정면으로 돌파해 나간다. 작년 출간 이후 9개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출판 준비에 돌입해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답해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일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김금숙 글그림 | 창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그린 만화로, 35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알렸다. 『풀』은 ‘위안부’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운동가이자 인권 운동가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낸다. “『풀』을 사랑해 준 수많은 독자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풀』에 공감하고 나보다 더 깊이 나의 의도를 이해했다.” (작가의 말) 한국전쟁 이산가족, 조선 최초 여성 볼셰비키의 삶, 발달장애 청년 등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로 시대의 보편성을 전하는 김금숙 작가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김혜순 저/이피 그림 | 문학동네
시와 산문, 두 장르에 발 걸친 ‘시산문’ 179편이 수록되었다. 『날개 환상통』, 『피어라 돼지』 등과 함께 다국어로 번역되어 열렬하게 읽히고 있다. 김혜순 시인이 2014년부터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으로, 연재 당시 독자들이 짐작할 수 없도록 본명 대신 ‘쪼다’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름과 장르를 모두 벗어나 낯선 땅에 도착하려는 시인의 시도가, ‘애록(AEROK)’이라는 나라에 사는 마녀-여성-시인 ‘않아’를 통해 분출된다. ‘않아’가 타국의 “않아”들을 만나 나눴을 대화가 궁금하다.
이희주 저 | 문학동네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의 모양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 이희주의 두 번째 장편 소설. 한 아이돌을 각자의 방식으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흑화’한 네 여자의 납치극을 따라가는 범죄 소설로, 파멸로 이끄는 광기와 욕망의 폭력적인 사랑을 섬뜩하고 유려하게 표현한다. 영미권 대형 출판 그룹과 판권 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화제가 되었다. K-pop 음악에 몸을 내맡겼던 사람들과 함께 『성소년』을 읽고 난 뒤, 우린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이수지 글그림 | 비룡소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모티프를 얻은, 생명력 넘치는 여름 그림책. 콜라주, 크레용, 선과 점, 담채, 아크릴 물감 등 이수지 작가의 다양한 기법을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다. 나이와 언어의 장벽을 성큼 넘어버리는 생생한 그림책의 매력을 느껴 보자. 이 책은 2022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되었고, 같은 해 이수지 작가는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이슬아 저 | 이야기장수
『가녀장의 시대』가 여러 나라에서 러브 콜을 받는 이유를 복잡하게 분석할 수도 있지만 한 마디로 심플하게 답할 수도 있다. 그만큼 많고 많은 가녀장들이 오랫동안 가녀장의 이야기를 기다려왔다고 말이다. 아주 뒤늦게 문이 활짝 열린 가녀장의 시대에, 맵고 달고 짠 낮잠 출판사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언어로 옮겨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김혜진 | 민음사
퀴어 소설이면서 모녀 서사이고, 여성 노동과 여성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 집에 시간 강사로 일하는 딸이 동성 연인과 함께 들어와 살게 된다. 딸과 딸의 연인은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를 위해 시위하고, 엄마는 병원에서 자신이 돌보는 여성 노인 환자에게 마음을 쓰면서 펼쳐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대만, 중국, 유럽 등에 널리 소개된 『딸에 대하여』는 2024년 가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국내외 관객과 새롭게 만났다.
윤이나 저 | 세미콜론
‘첫째, 라면을 끓이기 전’부터 ‘열두째, 계속 라면을 먹으려면’까지 라면을 끓이는 과정으로 구성된 음식 에세이. 윤이나 작가의 30년 라면 인생의 주요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장 맛있고 간편하게 먹일 수 있는 1인분의 라면 끓이는 법을 안내한다. 대한민국 1인 가구 여성의 맵고 짠 인생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2023년 대만에서 『나의 라면 타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2024년 영미권에서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라면, 여성, 1인 가구 이야기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어떻게 모두의 이야기로 읽히는지 주목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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