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내가 쓴 책도 쓰다듬어주지 못했는데,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를 읽고는 표지를 쓰담쓰담 해줬다. 저자의 마음, 출판사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서 한 장 한 장 오래 읽었다. 1936년에 지어진, 작은 한옥 수선기를 담은 이 책은 ‘혜화1117’에서 펴낸 네 번째 작업물. 이현화 대표가 직접 쓰고 직접 홍보하고 직접 팔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집 한 채가 불러일으킨 변화 앞에 선 나의 응전(應戰)의 기록이다.” 어찌 이리 심오한 표현을 썼을까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는 오래 푹 고아 만든 사골국 한 그릇을 흔적 없이 비운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저자이자 편집자, 마케터, 출판사 대표로 바쁘게 살고 있는 이현화 씨를 만났다.
채널예스 '북관리사무소'의 16번째 주인공이다. 글 좀 쓰는 출판인들이 주인공인 코너인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쁘고 뿌듯하고 민망하고 어색하다. 소감이 하나가 아니다. 아무나 초대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편집자로 이 글을 쓰고 있다면 조금 달랐을까? 내가 막상 저자라는 타이틀로 세상 앞에 나서려니, 초대된 것이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영 어색하고 조심스럽다.
서문부터 좋았다. 아니 책 제목부터 좋았다. 완결의 의미가 아니라서 의미가 있었고. 혹시 다른 제목도 염두에 두었나?
이 집의 주소지를 그대로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00가길 00.’ 어땠을 거 같나? 주변에 의견을 구하니 나는 진지했는데 다들 농담하지 말라고 그러더니 진심인 걸 알고는 정색하고 말려서 포기했다. ‘82년 된 작은 한옥 한 채를 고쳐 지었습니다’도 후보였고, ‘작은 한옥 수선기’도 후보였다. 책 제목이 정해진 뒤에도 내내 주소로 가는 게 멋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나저나 글을 정말 잘 쓰더라. 글의 리듬을 아는 저자라고 생각했다. 혹시 이 같은 리뷰를 들어 보았나? 마음껏 자랑해도 좋다.
정말 자랑해도 좋은가?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이 책을 읽은 분께 들은 여러 리뷰 중 가장 귀에 꽂힌 표현은 ‘격조’와 ‘우아함’이었다. 문장과 글을 쓰는 태도에서 ‘힘 주지 않은 격조’,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것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로 기분은 정말 좋았다. 내색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좋았다.
하하, 원래 자랑은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위의 리뷰에 동의한다. 자연스러운 우아함이라니. 정답이다!
하하, 고맙다.
분야로 보면 인문서다. 그런데 재밌는 게 글을 쓴 저자 이름보다 사진 작가의 이름이 먼저 쓰여 있다. 이것은 분명 사진집이 아닌데. 이유가 있을까?
이 질문을 해줘서 정말 고맙다.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오면서 이미지 배치 방식에 늘 생각이 많았다. 보통의 책에서 이미지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조적 장치로 활용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미지를 중심에 놓고 이번에는 텍스트가 캡션처럼 이미지를 설명하는 보조적 장치로 활용이 된다. 또한 집을 짓는 과정을 담은 책에서 이미지는 대부분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된다. 완공 후 하루 또는 이틀 정도 프로 사진가를 섭외해서 촬영을 하거나 사진에 취미를 가진 집주인 또는 시공자 또는 건축가가 틈틈이 촬영을 한다. 그런 이미지들이 책에 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역시 이미지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보조적 장치로 활용이 된다.
아, 보조적 장치!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가 주종이 아닌 대등한 관계로 구현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이야기와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만나 1 1=2가 아닌 3, 4, 5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 속 사진들을 보면서도 많이 감탄했다. 그냥 쓱 한번 보고 지나칠 사진은 아니구나 싶었다.
책에 실린 사진은 100%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단순히 사진이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기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선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와 10여 년 전에 저자와 편집자로 만나 친구가 된 황우섭 작가는 집을 철거하기 전부터 이사 후까지 모든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한 권의 책을 독자적으로 구성한 셈이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글이 중심이고 이미지가 보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내가 저자인 것처럼 그도 저자다. 그래서 다른 책들의 사진과는 역할이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이 책을 편집할 때도 그 부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런 의미로 사진작가 이름을 앞에 넣었는데, 역시 각 인터넷 서점마다 저자 정보 등록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 부분을 직접 독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줘서 다시 한 번 정말 고맙다.
표지 사진을 두고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표지는 거의 처음부터 확정했다. 이름을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한 중견 화가께서 사진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신 뒤 이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고, 사진작가는 물론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했다. 물론 단아한 이미지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옥은 집의 크기와 관계없이 목구조로 이루어진다. 그 나무의 물성을 극대화한 사진이라는 점, 공사장 가림막 천막이라는 이질적인 소재가 갖는 파격성, 파란색의 원색이 갖는 현대적인 느낌의 조합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어서 결정했다.
ⓒ 황우섭
실제로 저자가 살 집을 지으면서, 본인이 대표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썼다. 책이 나온 이후의 감회가 궁금하다.
책이 나오기 전 글도 내가 쓰고 책도 내가 만들고 있자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기분이었다. 책이 나온 뒤 아직 특별한 감회를 느낄 여력이 없었다. 보도자료도 내가 쓰고, 모 신문에는 리뷰도 내가 썼다. 영업도 내가 하고 홍보도 내가 하고 또 간혹 인터뷰도 내가 한다.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이제는 바람까지 잡는 것 같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하고 있다.
그런데 불을 참 잘 끄는 것 같다. (웃음)
하하하.
책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궁금하다.
원고를 보고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힘들었다. 책을 만들면서 이 원고를 다 본 사람은 딱 두 사람이다. 남편과 사진작가. 이 두 사람은 내가 새로운 원고를 보여줄 때마다 무조건 다 좋다고만 했다. 열심히 봐준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정말 불안했다.
뿌듯했던 일화는?
책 나오기 직전 전통 건축 분야의 권위자이신 김동욱(경기대 명예교수) 선생님과 건축가 황두진 선생님께 추천사를 부탁 드리기 위해 조판된 파일을 보내드린 뒤에는 정말 잠이 안 왔다. ‘이런 수준의 원고로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느냐’고 선생님들께 답장을 받는 꿈까지 꿨다. 두 분 선생님께 과분한 추천사를 받았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두 분의 반응을 믿고 세상에 내보낼 용기를 얻은 셈이다.
나 역시 추천사를 무척 잘 읽었다. “어떤 집을 지을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고민한 흔적의 기록”이라는 표현도 좋았고, 그래서 책 제목을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로 정했구나 싶기도 했고.
역시 예리하다.
사적인 질문이다. 원래 글 쓰는 일을 좋아했나? 편집자만 하기엔 글발이 아깝다.
글을 잘 쓴다고 해줘서 정말 고맙다.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글 쓰면서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타고난 소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도 글 옆에서 살고 싶어서 편집자가 되었다.
편집자는 책이 나오고 보도자료를 쓸 때가 가장 괴롭다고 들었다. 물론 나 역시, 녹취를 풀고 정리할 때가 가장 괴로운데, 보도자료를 쓰는 일이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 이 책의 보도자료를 쓸 때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려달라.
신입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다. 신입일 때는 너무 초보자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려웠고, 이제는 연차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렵다. 보도자료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글도 아니고, 내 글이지만 저작권도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 해당 책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만 알고 있는 것을 정보로 가공하되 처음 대하는 이로 하여금 진면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선을 잘 지키기가 어렵다. 이 책 보도자료를 쓸 때는 ‘나는 저자가 아니다, 나는 편집자다’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쓴 글로 만든 책을 내 손으로 훌륭하다고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편집자로 일하다 출판사 대표가 됐고 이제 저자가 됐다. 개인의 삶도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훗!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책에도 썼지만 나는 50살 이후에는 책방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 한 채를 만나서 얼떨결에 출판사 대표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책 표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나는 삶에 대해 기대치가 별로 높지 않다. 그래서 매사에 어지간하면 특별히 불만이 없다. 책 만드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정말 잘하고 싶었고 더 잘하지 못해 늘 안달이었다. 그런데 출판사를 시작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 생각만 하고 산다.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셈이다. 이게 웬 복이냐 싶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잘 못 만들면 무슨 망신인가 싶은 생각에 겁도 난다.
출판사 이름 ‘혜화1117’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
주소에서 숫자를 가져왔다. 출판사 시작하게 된 것이 집과의 인연 때문이라 출판사 이름을 주소지에서 가져왔다.
앗! 그리고 '혜화1117'에서 펴내는 책은 모두 마지막 장에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을 기록하지 않나? 전적으로 편집자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번 책에 실린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어떻게 떠오른 아이디어인가?
처음부터 눈썰미 있게 봐준 프랑소와 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혜화1117의 책 뒤에 이걸 넣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가 이걸 볼까 생각했다. 세상에 사연 없이 탄생하는 건 없다. 당연히 책도 그렇다. 세상에 한 번 나온 걸로 끝인 존재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크거나 작거나 역사는 쌓인다. 어차피 책이라는 매체가 기록을 위해 탄생한 ‘문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책 그 자체의 역사도 문자를 통해 기록을 남겨두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탄생에 기여한 편집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책과의 관계가 매우 애매해지니 이걸 넣기가 어렵다. 다니던 회사에 두고 나온 책들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말하자면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은 혜화1117의 책들은 끝까지 내가 품고 있을 수 있다는 확신과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 기쁨의 소산이다.
앞으로 또 다른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우선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을지 그것이 우선은 관심사다.
후배 편집자 혹은 동료 편집자, 혹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이것도 역시 글쎄다. 내가 뭐라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한 가지. 예전에 후배 편집자들이 좀더 안정적인 일을 찾아보겠다면서 사표를 가지고 오면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이 일에 한 번 푹 빠져서 제대로 맛을 본 다음에 다른 길을 찾아봐도 늦지 않는다고. 앞으로의 전망, 여러가지로 불안한 상황을 둘러싼 고민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다. 책 앞날개에 쓴 것처럼 1994년부터 이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할수록 더 재미있다. 이왕 책을 만들고 계신다면 부디 그 재미를 맛보시길 바란다.
앞으로 혜화1117에서 만들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분야를 나열하기보다 ‘행복한 편집자가 만드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답하고 싶다. 물론 모든 책은 편집자가 만든다. 하지만 편집자가 행복하려면 기획이 좋아야 하고, 원고도 재미있어야 하고, 잘 만들어 독자들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아울러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이 좋아해줘야 한다. 뻔한 말 같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일하고 싶고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책을 각별히 사랑하는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한옥을 지어주신 분들 중 40년 이상 일해오신 장인들이 계셨다. 그분들 눈에 20년 남짓 경력이란 ‘연장도 들 줄 모르는 애송이’였다. 혜화1117의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그분들 기준으로 보자면 아직 애송이다. 연장을 제대로 다룰 줄 알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그러자면 독자 여러분이 계셔주셔야 한다. 어디 가지 마시고, 수많은 편집자들이 애송이를 벗어날 때까지 <채널예스>에서 소개하는 좋은 책을 많이 읽어주시고, 또 사주시고, 가까운 분들께 선물도 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혜화1117의 이번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가 그런 용도로는 아주 딱이라는 말씀을 덧붙인다. 내가 할 일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바람까지 잡는 것이니 마지막 문장은 각별히 양해 부탁 드린다.
아차차! 가장 중요한 질문을 안 했다. 북관리사무소는 책에 관한 뒷이야기를 먼저 나눈 뒤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킨 후, 책 내용을 막판에 공개한다. 끝으로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를 3줄 카피로 정리한다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은 한옥 한 채를 수선하는 과정을 통해 눈에 보이는 공간과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삶이 맞물리고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책.
이 책의 가장 유효한 독자층은 누구일까?
언젠가 꼭 한 번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분들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더해 한옥에 관심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욕심으로는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도 봐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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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이현화 저/황우섭 사진 | 혜화1117
하나의 공간이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공간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변화 폭의 깊이와 넓이를 매우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
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