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가 어떤 분야를 선택하든 그 앞에는 예전처럼 큰 바다가 펼쳐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의 우리가 거대한 범선을 타고 블루오션을 찾아 대항해를 떠났다고 한다면, 새로운 세상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지형을 예상하고 탐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 앞에 놓인 지형은 광활한 바다보다는 안개가 자욱한 산골짜기에 가까울 거예요.
복잡계 과학자 존 밀러는 복잡한 세상 속의 우리를 안개가 자욱해 전방 1-2미터만 시야가 확보되는 산속에 남겨진 등반가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밀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요.
그는 두 가지 전략을 이야기하는데요. 우선 그가 ‘뻔한 탐색’ 전략이라고 표현한 방법이 있습니다. 뻔한 탐색을 선택한 등반가는 일단 주변을 둘러본 뒤 오르막길을 선택합니다. 새로운 지역이 나타나면 다시 오르막길을 선택하며 계속 가다, 주변이 모두 같은 높이가 되면 이번에는 무작위로 길을 선택합니다. 이 전략을 계속 적용하다 보면 등반가는 언젠가 모든 방향이 내리막인 어떤 지점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이때 등반가는 자신이 봉우리에 올랐다고 세상에 알리는 거죠.
문제는 이 전략으로 작은 봉우리에서 도착하면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선택지 중 성공에 이를 것이 더 확실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옆을 돌아보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열심히 달렸지요. 이 과정에서 뻔한 탐색 전략은 꽤 잘 통했어요. 우리를 둘러싼 지형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마치 맑은 날씨에 원뿔 모양의 산에 오르는 것처럼 성실하게 오르막길을 계속 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문제는 이제 날씨는 흐리고, 지형도 더 이상 원뿔 모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이 작은 봉우리와 큰 봉우리로 이뤄져 기복이 심한 히말라야나 로키산맥처럼 변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오르막길을 택하는 뻔한 전략을 사용해 계속 가다 보면 등반가 대부분은 산 중턱의 작은 봉우리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운 좋게 그곳에 나무 열매가 있기만을 바랄 밖에요.
밀러는 또 다른 방법으로 ‘오류를 포함하는 확률적 언덕 오르기’라는 전략을 제안합니다. 이 전략은 간단히 말해 이런 거예요. 앞서 말한 뻔한 탐색 전략처럼 일단 대부분은 오르막길로 가는 표준적인 알고리즘을 택해요. 다만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끔 일종의 오류를 넣는 거죠. 예를 들면 ‘주변의 기온이 너무 높아지거나 너무 낮아지지 않는다면 가끔은 무작위로 내리막길을 선택하라’라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렇게 탐색 과정에 의도적으로 오류를 넣으면 비로소 등반가는 기복이 심한 지형에서도 작은 봉우리에서 빠져나와 큰 봉우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리막길의 선택이 결국에는 등반가가 작은 봉우리에서 빠져나와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거죠. 과학자들은 실제로 이런 방법을 응용해 에이즈 치료제와 같은 복잡한 병을 치료하는 혼합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과도 통하는 이야기에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는 어떻게든 일단 큰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무조건 바다에 도착하던 시대와는 작별하게 될 거예요. 이전 시대에는 이른바 ‘금수저’로 태어나 무슨 짓을 해서든 큰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도 많았지요.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어떤 직장에 속해 있든, 어떤 스타트업에서 일하든 또는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든 간에 이제 모두 히말라야를 오르는 한 명 한 명의 등반가와 같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나 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산을 올라야 해요. 어느 회사에 또는 어느 팀에 속한다고 해서 무조건 봉우리에 오른다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회사나 팀이 없다고 해서 봉우리에 오르지 못하리란 법도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눈앞의 작은 성공만을 보고 나아가다 보면 작은 봉우리에 발이 묶인 등반가의 처지가 되기에 십상이라는 점이에요. 용기를 내어 때로는 돌아가는 길도 선택하면서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산을 올라야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느 길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과 길이 아니더라도 돌아 나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할 거예요.
이전 세상의 우리는 각자의 처지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비교하고 경쟁하는 데 익숙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안개 자욱한 산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르는 동료 등반가들에 가까울 거예요. 그러니 이제 서로에게 조금은 여유로워지면 어떨까요?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산을 올라봅시다. 가끔은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이름 모를 풀꽃의 향기도 느끼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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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손승현 저 | 더난출판사
읽기 쉽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동시에 무수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간간이 등장하는 삽화와 배경음악은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경영서를 끝까지 읽게 하는 당의정 구실을 톡톡히 한다.
손승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로스쿨을 마친 뒤 제3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현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TMT(Technology, Media and Telecom) 팀에서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구글, 우버, 넷플릭스, 애플,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IT 기업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