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강릉 주문진이 반가운 이유
도서출판 가지에서 출간하는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시리즈는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들의 풍경과 맛과 멋, 사람과 공간에 깃들어 있는 서사를 밝혀주는 책입니다. 그 지역에서 자랐거나 일정 기간 살아본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기록한 ‘본격 지역문화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 도서출판 가지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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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주문진등대. ⓒsutterstock

 

 

갯내 푸른 바다 마을, 주문진항

 

주문진은 강릉시 최북단에 위치한 소읍이다. 고구려 때 지산현이라 불렸고 신라 때 명주에 속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연곡면에 속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신리면으로 불리다가 1937년 주문진면으로 바뀌었다. 3년 후에는 읍으로 승격해 명주군의 수부도시가 되었다. 그 후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해 지금에 이르렀다.

 

주문진 인구는 2만 명이 채 안 된다. 뒤에 ‘진’자가 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읍내는 갯내가 날 정도로 바다와 가깝다. 그래서인지 강릉에 있는 읍면동 중에서도 제 빛깔이 매우 뚜렷한, 매력적인 곳이다.

 

강릉은 바다와 연접한 도시여서 항구가 많다. 주문진항에서부터 해안선 아래로 영진항, 사천항, 강릉항, 심곡항, 금진항, 옥계항 등이 이어진다. 그중 주문진항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항구이자 강릉에서 가장 큰 항구다. 주문진항은 1917년 부산-원산 간을 운행하는 기선의 중간 기항지가 되면서 여객선과 화물선이 입항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지는 않지만 250척에 가까운 어선이 여전히 입출항하고 있다.

 

항구에는 두 개의 방파제가 있는데 그중 동방파제의 길이가 1000미터에 가깝다. 방파제 옆으로 설치된 테트라포트 여기저기서 물고기의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동방파제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 앞까지 걸어가 항구 쪽을 바라보면, 길게 뻗어 벌린 동방파제의 거대한 팔이 서방파제와 손을 맞잡을 듯 항구를 포근히 감싸 안은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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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주문진방사제.

 

 

서방파제 옆 영진 방향으로는 해안의 모래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돌제 여섯 개가 나란하다. 이른바 주문진방사제다. 그중 한 곳이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주인공 지은탁이 김신을 처음 만난 장소가 이곳으로 그 장면을 재현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주문진항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민들이 승선할 배의 출항을 기다리는 정거장이다. 한때는 도시 전체가 흥청거릴 만큼 활황인 적도 있었다.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만선의 꿈을 실은 어선들이 이곳에 묘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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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마을 주문진의 전경.

 

 

항구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동트기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덩달아 수산시장도 분주해진다. 수산물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그 둘을 매개하는 중간상인까지 한 공간에 모여들어 생산, 유통, 소비가 즉석에서 이루어진다. 유통 거리가 짧다는 매력 때문인지, 주문진항은 연일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다. 반나절만 이곳에 머물며 관찰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산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항구 옆 어민수산시장에는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배들이 막 부려놓은 생선들이 맨바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거대한 자연과 대거리해 얻은, 어민들의 숭고한 노동의 산물이다. 정박한 배 위로는 전리품의 잔여물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선회하는 갈매기 떼가 성가시다.

 

주문진에서는 전통적으로 꽁치, 오징어, 청어, 양미리, 명태 조업이 성행했으나 지금은 해수 온도가 높아져 대표 어종이라고 내세우기도 겸연쩍어졌다. 명태는 거의 잡히지 않고 오징어나 양미리 어획량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항구는 여전히 분주하다. 자망을 터는 사람과 통발 고르는 사람,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 등 생선 냄새처럼 비릿한 삶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항구 옆 수산시장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더 싱싱한 상품을 고르느라 발품을 파는 소비자와 흥정한 활어를 손질하는 판매자의 손길까지 그 어느 곳도 정체된 구석이 없다. 모든 것이 어판장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만큼 다이내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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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생선구이.

 

 

주문진수산시장 입구에는 고래 조형물이 있다. 연오랑이 갑자기 나타난 바위(또는 물고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고 세오녀 역시 그 바위를 타고 건너가 왕비가 되었다는  『삼국유사』  의 기록에 착안해 만든 설치물이다. 바위만큼 큰 물고기가 고래일 것이라는 추정과 예전에 주문진에서 포획되었다던 고래의 귀환을 염원하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주문진의 풍어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담은 시장의 상징인 셈이다.

 

주문진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해양문화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터줏대감 같은 등대가 있다. 1918년 3월 20일 강원도에 맨 먼저 세워진 등대다. 19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점등했다는 인천항 입구의 팔미도등대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초기 등대 건물에 해당한다. 벽돌로 쌓아 만들어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뛰어난 주문진등대는 긴 세월 어민들의 길라잡이 노릇을 해왔음에도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갈하다.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있어서인지 청명한 날에는 쪽빛 바다와 대비를 이뤄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오래전 주문진에서는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 대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날이나 안개가 자욱이 낀 날에는 영락없이 에어 사이렌이 울렸다. 보리골(주문진에 있는 옛 마을 이름)을 돌아다닌다는 나환자가 근심스럽게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불빛 한 점 없는 칠흑의 시골길을 걷는 것처럼 암울하고도 을씨년스런 소리였다. 출항한 배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인데도 마치 누군가를 멀리 떠나 보내는 듯했다.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은 그 소리가 진짜 이 등대에서 나왔을까 하는 점이다. 이렇게 말쑥하게 생긴 등대가 왜 그런 음울한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등대에서는 주문진항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미로처럼 엉킨 좁을 마을길을 따라 주문진 서낭당에 이르면 그 뒤편에 주문진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면 어판장과 그 밑으로 정박한 배들이 어깨를 맞댄 채 콧노래 부르듯 온몸을 살짝살짝 들썩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등대에서 해안도로를 끼고 북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소돌항을 만나게 된다. 작은 마을 항구다. 그 가장자리로 활어를 먹을 수 있는 상가촌이 형성되어 있다. 방파제가 팔을 길게 뻗어 바다를 차단한 뒤편으로는 아들바위공원이 있다. 일반적인 기자석(祈子石, 아들 낳기 위해 비는 바위)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 기암괴석이 방문객을 마중한다. 지금으로부터 1억5000만 년 전 쥐라기시대 때 발생한 지각변동으로 인해 바다에서 솟아오른 것이라 한다. 반석이 넓게 펼쳐져 있고 바닷물이 깊지 않아 접근하기도 좋다.

 

아들바위 위쪽이 소돌해변이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피서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모래사장 옆으로 펼쳐진 울창한 소나무 숲은 천연 파라솔이 되어준다. 잠깐! 이곳에서 물놀이를 할 때는 부디 트위스트를 춰보길 당부한다. 조금 길게, 혹은 조금 짧게. 모래 속에 서식하는 ‘째복’이라 부르는 민들조개를 잡는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정호희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26년간 유물을 다루며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담당했고, 지금은 강릉시청 문화예술과로 자리를 옮겨 문화재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혼자 궁싯궁싯거리는 시간을 좋아하고 일 내 내내 매화, 수수꽃다리, 인동초, 산국 향기를 탐하러 쏘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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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가지

<세계를 읽다> 시리즈는 장소보다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세계문화 안내서다. 그곳에서 직접 살아보며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기쁨과 위험을 몸소 겪었던 저자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지인의 생활문화, 관습과 예법들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