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누군가는 말했죠. 이다 작가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면,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세계가 당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를 통해 글과 그림으로 증명합니다. 정겨운 붉은 벽돌 빌라들, 자기 만족 겸 타인의 눈요기를 위한 이타적 화단, 온갖 저주 문구를 넣은 경고장과 차를 못 대게 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끌려 나온 주차 방지용 입간판 등 항상 지나쳤지만 눈여겨보지 못했던 도시의 재미가 보입니다. 본보기를 본 이상 나만의 ‘도시관찰일기’ 쓰기 대열에 끼지 않긴 어렵습니다. 먼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볼까요?
도시,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고향인 포항에서 서울로 상경한 이후 삶을 살아온 동네들에 대한 소개로 책이 시작됩니다. 관찰하는 습관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온 거라 서울에서 벌써 20년을 살았네요. 그러니까 고등학생 때까지는 관찰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남자친구, 연예인만 눈에 들어와서 풍경을 볼 새가 없었던 거죠. 고향에서 살 때 가족과 차를 타고 다니면 엄마가 자꾸 멋있다고 밖을 보라는 거예요. 맨날 보는 게 뭐가 멋있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다 스무 살 무렵 로모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 풍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사진으로 찍으면 의외로 너무 예쁘게 남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길 드로잉’, 2015년 『이다의 작게 걷기』라는 책을 내는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관찰이 정착된 듯해요.
그리고 여행 가면 그 나라에 이민을 생각할 만큼 과몰입하고 좋아하거든요.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돈도 떨어지고 자주 여행을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거예요. 그때 지금 사는 곳을 여행하듯 바라보기로 결심했어요. 낯설게 보기를 시작하면서 지루한 일상이 더 재미있어졌어요.
전작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는 말 그대로 동식물을 관찰했어요. 사람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른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자연을 관찰할 때가 더 쉽고 흥미롭고 아름다워요. 자연에 있을 때는 딱히 “저건 왜 그럴까?” 아니면 “진짜 싫다”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되거든요. 근데 도시에 있으면 길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나 위험하게 스쳐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 등등 스트레스 받는 게 너무 많아요. 자연을 관찰할 때는 그것 자체가 힐링이 돼요.
다양한 도시 풍경 중에서도 작가님의 관찰지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붉은 벽돌 빌라, 차를 못 세우게 하기 위한 목적만을 지닌 수제 주차금지 입간판 같은 낡은 구석이에요. 오래된 것이나 정제되지 않은 삶을 더 면밀히 보는 개인적인 성향이 녹아 있는 것이겠죠.
오늘 인터뷰하는 이 강남 지역도 예전에는 저에게 관찰할 게 없는 재미없는 동네였어요. 관찰자의 눈을 적용하고 오랜만에 와보니 또 달라져 있더군요. 그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점점 덧붙여져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오래된 걸 좋아하나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시간의 흔적이 쌓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적지에 현장 학습을 가 기와 조각을 주워 모으던 어린이가 대학교 때 7080에 빠져 남들 다 아이돌 음악 들을 때 신중현 밴드랑 송골매를 듣고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된 거죠.(웃음)
도시 관찰에 필요한 여러 준비물 중 하나가 언제 있을지 모를 채집을 위한 지퍼백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전리품은 무엇인가요?
가구부터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수도 없이 주웠지만 지퍼백에 들어갈만한 작고 소중한 것들 중에서는 공룡 모양의 스티커가 있는데요. 빌딩숲 사이 허허 벌판 같은 광장을 가로질러가는데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뒤에 흙먼지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어딘가 붙어있던 게 떨어진 건데 장소와 물건의 이질감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가장 좋아하던 건데 결국 잃어버렸지만요. 이렇게 모은 작은 물건들을 모아 청사진으로 만들었어요. 8월부터 합정 부근 ‘땡스북스’에서 하는 전시회에 오시면 볼 수 있답니다.
관찰의 발견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도움이 되었던 대목이 초면이지만 맛있는 식당을 고르는 관찰력이었어요. 아주머니 여럿이 웃는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을 경우 성공이라는 법칙에 공감했거든요. 인생에 도움이 되는 관찰력, 더 없을까요?
이상한 사람을 잘 발견하는 것. 어딜 가든 주변을 두루 보는데 감각이 굉장히 빨리 와요. 일단 요즘 세상에 휴대폰을 안 보고 있으면 이상한 거거든요. 관찰을 잘하면 실질적으로 삶에서의 위협도 약간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촉이 생겨요.(웃음)
아직 해보지 못했지만 흥미를 돋우는 관찰이 있을 텐데요.
한국의 건축 역사를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단순히 관찰만으로 되는 영역은 아니지만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시대에 따라 어떤 외장재를 썼고 양식이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게 재미있거든요. 부산에 내려갔을 때 기후 때문에 서울과 달리 샷시가 없는 집들이 있다는 거에 놀랐죠. 이런 차이도 눈으로 더 많이 확인하고 싶어요.
천변이나 시장 같은 책 속의 관찰 루트는 다분히 일상적이지만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오래된 문구점을 구경하는 것이나 모르는 먼 동네에 가는 것은 이벤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색다른 장소를 하나 더 추천해 주세요.
을지로 4가에서 종로 3가까지 이어진 지하상가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지하도예요. 2분의 1 정도는 상가가 있고 나머지는 상가가 없는 지역인데 커피가 1,500원인 다방도 있고 레코드 가게와 시계방도 있어요. 문을 닫아 아무것도 없는 지대가 나오다 또 지하철역이 나오면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마치 한편의 로드 무비 속을 스스로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하라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장점이죠.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담배 연기나 주차, 도난에 대한 경고문을 마주할 때 인류애 상실도 느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도시의 사랑스러운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나 빡쳤어. 진짜 못 참겠어”라는 감정을 경고문이나 주차 금지 팻말을 통해 표출하거든요. 대문은 닫혀 있지만 사람들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요. 하지만 이런 불쾌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지나가는 타인이 보고 잠깐이라도 즐거워할 수 있도록 꾸며 놓은 화단을 보면 어떻게든 삶을 더 좋게 꾸려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존재를 느끼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뒤에는 사람이 있구나,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보인다는 점에서 도시는 참 흥미로운 곳인 것 같아요.
대도시의 관찰법
관찰을 하면서 사찰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님만의 기준점이 인상 깊었어요.
자연을 관찰할 때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누군가의 사생활을 침해하진 않거든요. 도시에서는 조금만 선을 넘으면 사찰이 돼요. 그리고 누군가의 사정을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정말 ‘관찰’이기 때문에 나의 기준이나 객관성을 들어 옳고 그름을 논하려고 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길 때도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도로명 주소나 번호판, 남의 얼굴이 바로 포함돼요. 항상 조심해야죠.
“이 모든 관찰은 나를 위해서다.” 띠지에 적힌 문구처럼 산책과 관찰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잘 살기 위한 노력?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삭막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조금이나마 좋은 점을 발견하다 보니 눈이 뜨였달까요. 제가 사는 동네가 참 삭막하거든요. 길에 서서 사람들이 침을 뱉는 모습을 보다가도 90년대 만들어진 촌스러운 통닭집 캐릭터를 보면 또 마음이 좋아지고. 한마디로 도시에서 생존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독자들에게는 이 관찰 일지가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요.
누구나 관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자연관찰일기나 도시관찰일기 워크샵을 진행하는데 참여자 열이면 열 모두 다 다른 걸 발견해요. 30분 정도 이론을 알려드리고 30분 동안 실제로 밖으로 나가 관찰을 하거든요. 저도 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섬세한 부분을 보는 사람, 한 가지만 깊게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잘한 여러 개를 보는 사람처럼 각양각색이예요.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관찰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도시 관찰 마이스터로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도시 관찰 방법과 준비물을 간략하게 알려주세요.
책을 사시면 16페이지에 있는 QR 코드를 통해 관찰 일기용 양식을 다운받을 수 있어요.(웃음)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흥미로운 걸 발견했을 때 사진을 찍은 다음 수정 기능으로 들어가 뭐가 재미있었는지 글씨를 써놓는 거예요. 나중에 봤을 때 내가 이걸 왜 찍었는지 알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관찰을 남겨봐도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호기심 변태, 미시사학자라고 표현하죠. 책을 다 읽고 나면 납득이 가는 동시에 MBTI가 궁금해지더라고요.
ENFP이고 완벽하게 ENFP적인 책입니다.(웃음)
사계절은 관찰에 훌륭한 콘트라스트를 줍니다. 8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도시의 풍경은 뭐가 있을까요.
8월은 굉장히 덥고 관찰하기엔 너무 힘든 계절이지만 그래도 하늘이 참 예뻐요. 대단한 뭉게구름과 미치도록 내리쬐는 햇살 아래 풍경도 아름답고요. 그 뜨거운 햇빛도 저녁이 되면 조명을 비추는 것처럼 바뀌고 도시는 마치 영화처럼 바뀌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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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출판사 | 반비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출판사 | 현암사

박의령
여러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

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