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뭐길래]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출판사를 좋아합니다 – 고수리 편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나 오래된 책에서 좋은 글을 발견했을 땐, 반가움을 넘어서 울고 싶어집니다. 그때는 책장을 덮고 말 그대로 잠시 책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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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KBS <인간극장> 방송작가였던 고수리 작가는 두 권의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를 썼다. 고수리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람’과 ‘삶’. 매일 아침 일간지 사회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했고, 다큐드라마 <인간극장>을 통해 그 특별한 이야기들을 알렸다. 글쓰기 경험을 살려, 지금은 창비학당에서 <고유한 에세이>를 가르치고 <고유글방>을 운영하며 글쓰기 안내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에세이는 사람과 삶을 담는 가장 생생하고 진솔한 글”이기에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는 고수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임희정 작가의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입니다. 최근에 좋게 읽었던 책은 서한영교 작가의 『두 번째 페미니스트』 , 봄날의책 한국 산문선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입니다. 

 

어떤 계기로 선택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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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는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한 편의 글로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임희정 아나운서의 책인데요. 당시 그 글이 깊은 울림을 주어서 작가의 첫 책을 기다렸어요. 글 속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는 물음에)기준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도 잘못됐지만, 그 기대치에 맞춰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나의 마침표도 잘못됐다."(18쪽) 이 문장에서 쿵 하고 멈춰 섰어요. 그 물음 앞에서 머뭇거렸던 작가는 자신만의 마침표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어요. 부모의 삶과 노동을 기록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읽고 있습니다.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작가의 말투와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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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는 눈이 멀어가는 애인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돌봄을 도맡는 '남성 아내'가 된 서한영교 시인의 기록입니다. 페미니즘과는 조금 먼 것처럼 느껴졌던 남성 페미니스트, 출산, 육아, 가사노동, 생활이라는 화두들이 흥미로워서 펼친 책이었는데요. 그야말로 반전의 책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인의 기록을 읽으며 '돌봄'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시간을 경험해 보았기에 자주 뭉클해져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요. 일상과 생명과 삶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여럿이 함께인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살피며 꾸려나가야 하는지.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강렬하고 딱딱할 것 같은 표지와 제목 때문에 쉽게 손길이 가지 않는다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겉보기와 달리 정말 따뜻한 책입니다. 프롤로그라도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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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는 봄날의책에서 엮은 한국 산문선입니다. 2013년에 출간된 좀 오래된 책인데요, 저는 올해 이 책을 읽었어요. 읽고서 너무 좋아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추천했던 올해의 책이기도 합니다. 책에는 '노동의 풍경과 삶의 향기를 담은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요. 생생한 삶의 현장과 인생의 희로애락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겨있습니다. 방송작가 시절 매일 찾아 헤매던 글들이 이 책에 다 담겨 있는 것만 같았죠. 올해 초에 읽었다가 최근에 또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에 대한 선의를 품은 글들. 결국은 사람을 따뜻하게 껴안는 글들. 저는 앞으로도 이런 글들을 발견하고, 또 쓰고 싶어요. 글 쓰는 저에겐 지침서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문학을 주로 읽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 아니면 표지와 제목, 만듦새 같은 책의 아름다움에 끌려 책을 골랐던 것 같아요. 그러나 에세이를 많이 읽는 지금은 겉보다 속을 봅니다. 프롤로그나 에필로그, 작가의 말은 꼭 읽어보려 노력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울림이 있다면 그 책은 대체로 저에게 좋은 책이더라고요. 특히 작은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내는 작가라면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책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유행을 따르는 디자인과 제목으로 책이 만들어지거나, 마케팅에서도 주목받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 이유로 좋은 글이 묻히는 경우는 너무나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는 대형서점에 가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매대보다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살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은 책방들의 큐레이션이나 책 관련 팟캐스트, 특히 '책읽아웃 - 어떤,책임' 코너를 관심 있게 지켜보기도 하고요. 믿고 읽는 출판사도 몇 군데 있습니다. 마음산책, 수오서재, 봄날의책, 남해의봄날, 어떤책, 위고, 제철소 등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출판사들의 책들을 좋아합니다.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읽다가 멈춰 서게 만드는 책. 읽기를 멈추고 잠시 덮을 수밖에 없는 책.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나 오래된 책에서 좋은 글을 발견했을 땐, 반가움을 넘어서 울고 싶어집니다. 가슴께부터 찌르르 하다가 온몸이 저릿해진달까요. 그때는 책장을 덮고 말 그대로 잠시 책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저는 너무 행복해요.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교실의 시』 에서 유진목 시인의 '내 엄마의 죽음'을 읽었을 때, 『뜻밖의 좋은 일』 에서 정혜윤 피디가 송경동 시인에게 쓴 편지를 읽었을 때,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에서 박정애 작가의 '내 유년의 강, 명포를 추억하며'를 읽었을 때, 오정희 작가의 『내 마음의 무늬』 에서 '낙엽을 태우며'를 읽었을 때. 그 순간들을 저는 선명히 기억합니다.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나의 두 사람』 을 쓴 김달님 작가의 신간을 가장 기다렸어요. 얼마 전에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가 출간되어 아껴 읽고 있습니다. 『할망은 희망』 을 쓴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어 정신지 작가의 책, 안미옥 시인의 시집, 그리고 모든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귀퉁이를 접고 밑줄 그으며 읽는 정혜윤 PD의 책을 기다립니다.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김달님 저 | 어떤책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보호자로. 누구에게나 자기 차례가 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떤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고도, 뒤늦게 후회하지 않고도 작별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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