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 “우리가 몰랐던 인류 지식 절반의 이야기”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비슷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와 장소에 있었다는 걸 말하고 있으니까요.
글ㆍ사진 최진영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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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가게 주인 채사장이 새 상품을 내놨다. 밀리언셀러가 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 )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5년여 만에 나온 새 책의 이름은 『지대넓얕 제로』 . 왜 3권이 아닌 ‘제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대넓얕 제로』『지대넓얕』 의 내용을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선(先)지식이기 때문이다. 『지대넓얕』 이 자아와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의 구조에서 고대 이후의 역사, 경제, 정치 철학, 과학 등을 이야기했다면 『지대넓얕 제로』 는 인류 지식의 역사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우주의 탄생부터 고대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솜씨 좋은 지식 가게 주인 채사장이 알기 쉽게 손질한 우주, 생명, 베가,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아와 세계를 하나로 보는 ‘일원론’을 만날 수 있다.

 

현대인은 인류 사상의 역사가 파편적인 정보의 무더기일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놀라운 정합성과 일관성으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철학, 종교, 사상 속에서는 찾아낼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거대 사상의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끝에 닿았을 때 당신은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이 흥미롭게도 하나의 주제, 하나의 담론, 하나의 질문에 끈질기게 매달리고 탐구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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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

 

주변 사람과 같이 읽고 이야기 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낯설지만 흥미롭더라고요.


실제로 『지대넓얕』 으로 독서토론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혼자 읽기 보다 같이 읽고 이야기 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대넓얕』 의 후속작인데 3권이 아니라 ‘제로’예요. 어떻게 지어졌나요?


‘제로’라는 이름을 붙일지 말지 고민했어요.  『지대넓얕 제로』 부터 읽는 분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아예 다른 책으로 낼지, 『지대넓얕』  시리즈의 연장이되 1, 2권과 구별할지 고민하다가 출판사 대표님의 의견을 따라서 제로로 결정했죠.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일원론 이야기인데 언제부터 생각한 건가요?


『열한 계단』 을 쓸 때 즈음 생각한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정리할 때가 오겠구나’라고요. 『지대넓얕』 을 읽으셨거나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들었던 분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일관된 흐름이 있다는 걸 아시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채사장이 지금까지 책을 써왔구나’ 하시더라고요.

 

이번 책으로 『지대넓얕』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일관된 흐름’을 설명한다면요?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생각, 자아와 세계의 관계 의식에 대한 문제죠. 『지대넓얕』 이 나왔을 때 많은 분이 역사, 경제 등을 다룬 1권에 집중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쓰고 싶었던 건 2권의 열 번째 주제 ‘신비’였어요. 『열한 계단』 을 쓰면서 ‘신비’의 비중을 늘렸고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분량으로 ‘신비’를 이야기했죠.

 

일원론의 세계에 눈을 뜨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다를까요? 비유한다면요?


자각몽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자각몽을 꾸면 그 꿈속에서 날아다니기도 하고 장풍도 쏘고 하잖아요. ‘이거 꿈이었어?’, ‘다 가짜네’ 하지 않고요. 현실에서 무엇인가 일원론을 깨닫는 것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갑자기 현실을 초월하거나 ‘죽어야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만약 이 삶이 임시이고 부처가 말씀한 것처럼 공(空)한 것이라면 그때부터 집착하는 마음이 수그러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아, 내가 모든 걸 쥐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구나’ 하고요.
 
체험으로 일원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체험이 있었던 건가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요. 명상하거나 기도를 통해서 거대한 무언가를 깨달으신 분들이 있죠. 저는 아니에요. 이성적으로 일원론에 접근한 사람이죠.

 

이성에서 출발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지 않아요. 보통의 현대인이기 때문에 더 쉬운 것 같아요. 한국인의 교육 수준이 높잖아요. 머리가 큰 사람들이죠. 저도 그렇거든요. 어떤 체험을 하고 무언가를 깨달은 분들이 말씀하신 건 저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분들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일원론에 접근하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 사람은 그런 체험을 했구나’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나요?


무수히 많죠. 주기적으로 명상을 하거나 관상기도 하는 분들은 책을 읽고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신 거죠. 그분들이 말씀하는 깨달음의 공통분모를 이성적으로 풀어낸 게  『지대넓얕 제로』 고요. 스님들이 하는 선문답이나 하이데거가 쓴 책을 읽으면 ‘무슨 말이야?’ 싶고 읽히지 않거든요. 그런데 의식이 만들어 내는 내면세계, 즉 일원론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고 읽으면 읽혀요. 전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알고 보면 인류 지식의 절반 이상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더 잘 아는 분들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리뷰를 자주 찾아보시나요?


서점 리뷰도 보고 인터넷에서 후기를 검색해 보기도 하죠.

 

최근에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다면요?


제 책을 꾸준히 읽으신 분이 쓴 것 같았는데요. ‘버스 비용을 주고서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는 댓글이었어요. 기뻤어요. 잘 읽어주셨구나 싶어서요.

 

‘채사장은 팟캐스트계의 비틀스다’라는 댓글도 봤어요. 팬들의 표현력이 훌륭하더라고요. (웃음)


보통은 비틀스보다 더 위 단계로 비유를… (웃음) 농담이고요. 여러 방식으로 좋아해 주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불편하게 한 리뷰는 없었나요?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몰라도  『지대넓얕 제로』 에 대해서는 아직 없는데 아쉽기도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대넓얕 제로』 이 한국 사회에서는 낯선 내용이잖아요. 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모든 인류를 놓고 본다면 전체의 절반 정도는 일원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 이 사실을 모르죠.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쟁점이니까 저보다 더 잘 아는 분들이 등장해서 논쟁이 되면서 이야기가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성장한 한국인이니까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롤로그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질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원래 질문이 많은 사람이셨나요?


누구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니까 학교나 가정에서 못하게 했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질문을 잃어버린 것뿐이지 누구나 질문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유사한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잖아요. 그 차이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제 경우에는 공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책을 본 게 고3 때였고 공부도 그때부터 시작했거든요. 어차피 공부를 못하니까 선생님도 부모님도 저한테 기대를 안 했어요. 돌이켜 보면 그게 행운이었죠. 근의 공식이나 미적분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은 세계에 대해 혼자 상상할 수 있었거든요.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서 『지대넓얕』 을 썼다고 했는데 지금은 독자가 있잖아요. 책을 쓸 때의 느낌이나 방식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일단 글쓰기가 곤욕스럽고 두려워지긴 했죠. 『지대넓얕』 을 정말 쉽게 썼거든요. 왜냐면 아무도 안 읽을 줄 알고 …. (웃음)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약할 때였어요. 그때는 쓰는 게 즐거웠는데 1권 이후부터는 글 쓰는 게 조금 어려워졌죠.

 

‘쉬운 설명’과 ‘구조화’가 장점이자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 비결이 있다면요?


비결은 아니고요. 항상 구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흔히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는 단어나 문장을 따라가면서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첫 번째 문장이 ‘A는 B, C, D다’라면 그 문장 뒤에 B, C, D에 관한 설명이 뒤따른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본인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전체 구조를 생각하면서 읽는 거죠. 뒤따르는 문장을 앞에서 보여준 구조와 다르게 쓰면 독자들은 ‘뭐야? B, C, D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왜 E가 나왔어?’라고 생각하죠. 작가가 구조를 명확히 알고 써야 독자들에게 내용이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내용을 어려워하는 독자분들에게 팁을 주신다면요?


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읽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그에 대해 의문도 제기하고 피드백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진리가 텍스트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말하는 자한테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대요.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진리를 잉태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주변 사람이랑 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읽는 걸 추천해요.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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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를 출간하면서 “잔이 비었다”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텅텅 비었죠. 다시 또 잔을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잔을 채운다는 건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경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실 ‘잔을 채운다’는 이야기는 니체의 말이에요. 니체가 잔이 가득 찼으면 그걸 몰락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잔을 비우는 거죠. 그리고 자기 내면 안에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걸 ‘잔이 채워지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말씀하신 대로 책이나 영화, 연극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본질은 ‘고독한 시간’이에요.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요. 현대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죠. 너무 바쁘고 재미있는 게 많아서요. 그래서  『지대넓얕 제로』  마지막 부분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눈을 감고, TV를 끄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어요. 누구에게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장기적 목표’라고 하신 걸 봤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군대 전역하면서 ‘다신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럼,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이런 건 아니고요. 행복이나 불행같이 격정적인 마음에 시달리는 게 피로하게 느껴져요. 무수히 많은 삶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얕』 의 ‘신비’ 부분에서도 이런 내용을 썼는데요. 일원론의 관점에서 어떤 특별한 조건 아래에서 우리의 의식이 발현되는 거라면, 그러니까 과거나 미래나 물질적으로 특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내 의식이 다시 발현되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다시 이 세상에서 눈떠서 그걸 거쳐 간다는 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유물론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피로감이 들기도 하고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무리할 수는 있는 건가요?


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이게 베다의 세계관인데요.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지만, 베다에서는 윤회를 이야기해요. 업, 윤회, 해탈이 핵심 내용인데 불교도이면서도 이걸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좋은 곳에서 금수저로 다시 태어나는 게 좋은 거라고요. 그런 내용은 아니고요. 베다도 그렇고 베다가 기반인 불교도 그렇고 윤회를 피로하다고 봐요. 삶이 영원히 반복되니까요. 더 윤회하지 않고 끊어지는 걸 해탈이라고 생각하고요. 기독교 문화권이 지배적인 현재의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인류의 절반 정도는 우리가 계속 윤회하는 걸 피로하게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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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걸 찾고 있다면

 

JTBC <양식의 양식> 출연을 망설였다고 들었어요. 막상 하니까 어떠세요?


좋은 점이 더 많아요. 같이 출연하는 분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여행도 하고, 방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고요. 아쉬운 건 독자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데 그와는 상관없는 걸 해서 아쉽죠.


기대와 상관없는 게 어떤 건가요?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다시 하기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고, 제 책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양식의 양식>에서도 관련 정보를 쉽게 전달할 거라고 기대하신 것 같아요. ‘채사장이 굳이 TV에 나왔으면 그런 게 있겠구나’라고요. 그런데 매체의 형식이라는 게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알았어요. 호흡이 긴 지식을 전달하기에 TV 프로그램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작가 채사장’으로서의 모습보다 ‘인간 채성호’의 모습이 부각될 수 있다는 부담은 없으세요?


모든 게 ‘기브 앤 테이크’인 것 같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생기죠. <양식의 양식> 출연을 결정하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잃을 걸 예상하고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가능하면 드러나지 않게 살고 싶은데 그걸 지키려고 하면 또 많은 걸 잃겠죠. 더 많은 분하고 일원론이나 고대의 지식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를 잃을 수도 있고요. 조율이 중요한 것 같아요. 

 

팟캐스트 <지대넓얕>이 다시 시작되기를 원하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혹시 팟캐스트 대신 유튜브를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생각은 하고 있어요.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굉장히 빠르게 올드 매체가 됐잖아요. 그래서 ‘어떤 매체가 적절할 것인가’하는 매체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유튜브를 생각한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인류의 지식 절반에 관한 이야기니까 인간이라면 읽어야 하는 내용 같아요. 한편으로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신의 세계관이 진짜라고 믿으면서 정원을 가꾸듯이 자기 세계관을 잘 가꾸면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가족,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머물 수 있다면 평생 무신론자이든, 기독교인이든, 불교도이든 괜찮죠. 그런데 불만이 있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요.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든요. 비슷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와 장소에 있었다는 걸 이 책이 설명하고 있으니까 도움이 될 겁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채사장 저 | 웨일북 |
나와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개인의 관점과 세계관을 형성해주며, 일상에서 파생되는 지식들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번 책 [제로] 편은 당신이 진정한 지적 대화를 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접해야 하는 가장 근본 지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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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