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단춤 작가의 작업실 - 『감정 사전』
인생을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 감정을 바라보기 시작한, 단춤 작가의 『감정 사전』 작업 이야기.
글 : 이참슬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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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가 있다면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추상적이지만,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감 있는 녀석이죠. 그런데도 놓치거나 뭉뚱그리고 흘려 보내는 감정이 더 많을 것입니다. 단춤 작가는 남의 감정을 신경 쓰느라 정작 놓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더 다정히 바라보기로 한 것이죠. 감정들에 이름표를 달아주기 시작하면서 지친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감정을 바라보며 인생은 리셋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단춤 작가의 『감정 사전』 집필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감정 사전』 작업 후기

감정을 세세히 펼쳐두고 지켜봤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여느 때보다도 안정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씩 글을 다시 읽어볼 때면 서투르게 사랑을 고백한 사람의 문장처럼 엉성한 투박함도 느껴져 너무도 부끄러워졌지만, 독자 분들께서 그어주신 밑줄과 필사한 문장들을 보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작게라도 울림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또 미워 보이지 않더라고요. 뱉어낸 진심이 거칠고 탁하더라도 계속 잘 굴려가며 각진 부분을 둥글게 쓰다듬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굴린 마음들 앞에서 가뿐한 숨을 쉬고 있는 듯해요. 

 

여운이 오래 남는 사전 속 감정은 무엇인가요? 

여운이 오래 남는 감정을 꼽는다면 ‘살아가다’인 것 같아요. 『감정 사전』을 관통하는 기둥 같은 감정이기도 하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곱씹는 감정이기에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기력하게 지내온 날들도, 벅차게 행복했던 날들도 결국 흘러가기에 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일은 어찌 보면 기특하고 아름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살아가려 노력하는 하루가 삶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애써 그 작은 사실을 믿어보려 해요. 밥은 잘 먹었는지, 별일 없이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의 안부와 하루를 물으며 계속 살아가길 바라듯이 말이죠. 

 

『감정 사전』은 ‘내가 되어가는 용기를 담은 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내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이 가끔은 두려울 때가 있고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온전한 의지를 해본 적이 있는지 의심하는 날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어떤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는 순간들도 있지요. 어쩌면 ‘나’도 온전한 타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늘 대화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마음속에 숨어있는 나를 향해 계속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는 것처럼요.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우정과 믿음이 주는 편안함이 있듯이 감정을 마주하다 보면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내가 되어가는 모습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선명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 참 쉽지 않죠. 다만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용기를 낸 여러분께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 기쁜 모험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애정하는 카페의 커피 한 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에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동 중 하나는 가볍게 짐을 꾸려 동네 카페를 가는 것입니다. 저희 동네에는 작은 폭을 가진 성북천이 흐르고 있고 양쪽으로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좋아하는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데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서 기분에 따라 그날의 카페를 선택하곤 해요. 원하는 자리에 앉아 짐을 풀다 보면 정성스럽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받습니다. 그저 커피 한 잔이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곳에서의 시간은 작업하느라 긴장한 생각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기분이 들어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무겁지 않게 느껴지곤 합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저희 집에 방이 2개가 있는데 그중 큰 방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짐이 별로 없는 채로 지내다가 책상이 2개에서 3개가 되고 1개였던 서랍장이 벽 한쪽을 다 채우는 등 재료와 재고가 북적이는 작업실이 되었네요.

 

다만 작업이 너무 북적이고 계속 딴짓을 하고 싶어지다 보니 책 작업을 할 땐 동네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작업을 하는 루틴을 갖기도 했어요. 오전에 만나 2시간 정도 집중해서 글을 쓰고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루틴이었는데요, 친구와 함께한 덕분에 각 감정 이야기의 물고를 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글의 초반부를 잡게 되면 집으로 돌아와 다음을 연결시키는 등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초안 작업을 할 땐 전반적인 글의 흐름 파악을 위해 공책에 수기로 적어보는 습관을 들였어요. 그러다보니 공책과 연필이 필수였는데요. 제 첫 『감정 사전』을 위한 노트는 포인트오브뷰의 금박이 둘러진 노트였습니다. 처음 구매하던 때 이 노트에는 귀한 것을 적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요, 유유히와 함께 하는 첫 책이기도하고 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곳이다 보니 소중한 노트에 적고 싶어져서 자연스럽게 뗄 수 없는 작업 물건이 되었습니다.

 

마감 후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한참 마감을 치를 때가 3월 4월 언저리였는데요. 그때만의 따뜻하고 선선한 날씨가 느껴질 때면 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친구들을 만나 마음껏 수다 떨고 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물론 마감을 하기 전에도 짧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거나 종종 친구들을 만나곤 했지만요, 마음 놓은 채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든 책 작업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6월이 되었더라고요. 더 더워지기 전에 열심히 놀자하며 이곳저곳을 뽈뽈 돌아다녔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제가 한창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음이 너무 쳐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던 때가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힘내라는 의미로 저를 위해 <스플래툰3>라는 닌텐도 게임을 구매했습니다. 게임은 무척 재밌는데 생각보다 컨트롤이 어려워서 다행히 작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빠져들진 않았어요. 대신 책 작업을 하다 쉬는 시간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 영상을 재밌게 지켜봤던 것 같습니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재밌다는 사실은 어릴 적과 다를 것 없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낭만이라는 단어와 함께라면 쉽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런 순간 앞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단 다짐을 해. 사는 것이 녹록하지 않아 절망스러운 날도 있겠지. 그렇지만 선명하게 행복을 노래할 때면 살아있다는 기분에 벅차오르기도 해. 살아간다는 지치는 일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이고 좋은 하루였다고 위로하고 싶다.” (「낭만적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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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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