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간이 더해지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생각이 비슷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좋은 인연들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철저하게 거저 주어진 선물이고 행운이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의 저자는 열아홉 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여섯 해를 보낸 후 수도원을 떠나 그림을 만나고 예술을 경험하면서 새롭게 마주한 삶에 대하여 담백하고 잔잔하게 고백한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시절 그림을 만나면서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땅히 즐겨야 할 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아무도 이 즐거운 놀이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사람마다 가진 고유함이 예술을 통해 피어나길 바란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는 작가님의 첫 책입니다. 집필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2019년 9월 이탈리아에서 귀국했습니다. 책 속에 담긴 글은 이탈리아에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쓰게 되었죠. 준비 기간이 짧다면 짧았을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제 안에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를 하던 즈음 단지 이탈리아에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마음속 이야기와 시간을 정리하면서 글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준 예술 활동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되면 좋겠다는 자연스러운 바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켜 준 것이 바로 ‘예술’,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수도원 생활을 하셨다가 그림이 그리고 싶어 나오셨잖아요, 솔직히 저라면 지금까지 해온 게 있어 쉽게 나오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때 작가님의 마음은 어떠셨나요?
책에는 수도원을 떠난 이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죠?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수도원을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당시 제가 몸담고 있었던 수도 공동체의 지향과 제가 살고 싶었던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야기라 다소 어려우실 수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넉넉한 시간이 있는 자리에서 풀어내고 싶네요.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중학교 때부터 만남을 이어오면서 애정을 쏟고 사랑받았던 공동체였기에 떠나오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열아홉 살에 수도원에 입회한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릴 때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만큼 많은 분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떠나기로 결정하고 수도원 가족들과의 헤어짐이 섭섭하여 혼자 몇 달을 힘들어하기도 했지요. 그랬기 때문에 수도공동체를 떠나오던 때의 심정이라는 것이 정든 친정을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 제가 수도 생활을 잘 익히고 어느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선배, 후배, 동기 수녀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곳은 제 숨이 멈추는 날까지 또 하나의 고향이요, 집이라는 고백을 하고 싶네요.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셨는데요. 혼자 해외에서 생활하는 게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이탈리아에 가기 전까지 혼자 해외 생활을 해보지 않았던 저로서는 직접 살아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3월 26일 가방 한 개만을 들고 이탈리아 로마 공항에 내려서 언어 공부를 위한 학교를 찾아갔던 첫날부터 매일, 매 순간이 모험이었습니다.
단순히 정서적으로 외롭다는 것을 넘어서 지인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막 위를 걷는 여행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좋은 만남과 의미 있는 일들도 만날 수 있었고 나의 의지나 힘보다 어떤 손에 이끌려 걷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현실적인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다시 하라면 절대 할 수 없을 겁니다!(웃음)
예술 학교에서 많은 예술의 정의에 대해 배우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의 정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매우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쓰게 됩니다. ‘예술’보다는 ‘창의적 활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 ‘창의적 활동’은 ‘예술’에 비해 누구든지 편안하게 쓸 수 있고 써도 될 것 같아서요.
따라서 ‘창의적 활동’에 대한 제 개인적인 정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창의적 활동’은 모든 사람 안에 내재한 우리 인간 본능의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무언가 만들고 싶어 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이 욕구가 억눌러진다면 이는 현실에서 매우 왜곡되고 위험한 방법으로 표출될 수도 있지요. 현대 사회에 흔히 보게 되는 폭력성이나 잔인함, 강력범죄와 사건들이 이런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자유입니다. ‘창의적 활동’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온전히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타인의 다름과 다양성도 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런 다름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따라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할 활동이며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놀이에 동참하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엔 많은 별이 각자의 온도와 색깔로 비춰 보인다고 했는데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작가님은 어떤 온도와 색깔을 가지고 계신 것 같나요?
저는 강아지를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강아지를 보고 있자면 저와 성격이 매우 비슷하여 편안하고 정이 갑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가벼워 보이거나 헤프게 느껴지기도 하여 싫었지만 지금은 저의 그런 성격을 인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제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가다 보니 저는 밝은 오렌지색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직도 파란색의 매력적인 면을 갖고 싶긴 하지만 오렌지색의 밝음과 따뜻함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계절 내내 손과 발이 따뜻합니다. 부모님께 받은 좋은 신체 특성 중 하나겠지요. 신체 온도가 높다 보니 저 자신을 떠올렸을 때 온도 또한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가지 희망 사항은 너무 높아 아무도 곁에 오지 못하는 뜨거움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함께 있으면 따숩게 느껴지는 호빵 같은 온도면 좋겠습니다. 아, 여름에는 냉면으로요! (웃음)
화가로서의 인생계획, 그리고 작가로서의 인생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매일 매일 지금처럼 살고 싶습니다. 지금의 저는 참 단순한 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멍멍이들과 걷는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수업과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있습니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구분도 모호합니다. 제게는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거든요. 그리고 혼자 작업할 때는 멍뭉이들도 작업실에 오글오글 있다 보니 ‘천국이 있다면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저녁이면 집에서 식사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봅니다. 그러면 벌써 하루가 다 지나있지요. 거의 이런 생활에 반복입니다. 특별히 멀리 외출하거나 하는 경우는 1년에 몇 번 없죠. 다행히 친한 지인들도 근처에 살고 계셔서 저의 행복한 은둔 생활에 도움을 주십니다. 요즘은 틈틈이 내년쯤 있을 개인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간혹 독자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처럼 계속 글을 쓰려고 틈틈이 집필을 이어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면서 살고 싶습니다. 맑고 밝고 단순하게 사는 것, 인생계획이 있다면 이것이 전부입니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를 읽고 작가님의 바람처럼 예술을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을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선 첫 책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느낌과 감상 등을 보내주신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책을 통해 세상에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두렵고 떨리기도 했지만 제 글을 읽고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창작의 씨앗을 잘 가꾸고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보다 더 다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창의적 씨앗은 소중합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즐겁고 신나는 자신만의 창의적 활동을 이어가세요! 감사합니다.
* 박현주 열아홉 살에 수도원에 입회했다. 꼬박 여섯 해를 수도원에서 보낸 후 수도원을 떠나 세탁공장 일, 아파트 청소, 일당 잡부 등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무작정 1,000km나 되는 순례길을 걷기도 했다. 걷는 동안 깨달음을 얻어 가방 하나만 들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낯선 땅에서 예술학교에 다니며 저마다 가진 고유함이 예술로 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삶을 새롭게 배웠고 마주했다. 그 여정에서 끌어올린 생각들을 첫 책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에 담았다. 그가 직접 그린 드로잉도 본문에 수록했다. 저자는 바란다. 모든 사람이 자신답게 살아가기를, 자기 안에 숨겨진 창작의 씨앗을 발견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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