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아침은 가능한가
‘평소와 조금 다른 나’는 일상에 쫓기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여유로운 아침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유로운 아침이라는 로망은 정말이지 어려운 것이다.
글ㆍ사진 박주연(도서 MD)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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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나의 로망은 여유로운 아침이다. 6시경 일어나 간단한 운동과 아침 식사를 하고 선크림을 챙겨 바르고 나올 수 있는 주중 아침. 모든 물건은 준비되어 있다. 알람 시계와 요가 매트, 인센스 스틱, 명상 음악, 모카포트, 커피원두, 빵, 잼, 버터, 선크림. 준비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다. 실행할 자가 준비되지 않아 이 로망은 자주 로망으로만 남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무리 좋게 봐야 이 주에 한 번 정도 이런 아침이 가능하다. 그런 날이면 신이 난다. 아침 출근길부터 이미 오늘 할 일의 대부분을 잘 끝낸, 넉넉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다시 말하겠다. 이 로망은 자주 로망으로만 남는다. 

대부분의 아침에 나는 20분 정도의 시간을 남긴 채 헐레벌떡 일어난다. 출근이 가능한 마지노선 시각까지 눈을 뜨기가 어렵다. 전날 과음을 하거나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건만 잠의 터널에서 매끈하게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알람을 두 번 정도 끄고 최종 알람에 맞추어 일어나 재빨리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일만 하고 집에서 나온다. 오늘도 로망은 로망으로만 남았다. 오전 업무 중 1층 카페에서 산 커피와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으며 로망을 잠시 떠올린다. 내가 생각하던 아침은 어디 갔을까?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 깨는 일이 잦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와서, 잠자리가 불편해서,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산책하는 마음으로 조식 뷔페 식당을 거닐고 걸은 만큼 많이 먹는다. 한중일양식을 모두 맛보고 커피를 두 잔쯤 마시면 행복하다는 마음이 든다. 배가 불러서 행복하고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일찍 일어났다는 게 행복하다. 때로 이 행복감의 출처로 단지 여행만을 꼽기도 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 이젠 안다. 나는 여행보다 여행지에서 평소와 조금 다른 내 모습을 좋아한다.

‘평소와 조금 다른 나’는 일상에 쫓기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 ‘나’에게는 돈을 쓰는 기쁨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도 있고 출퇴근이 없는 나날도 있지만 쫓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여유로운 아침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유로운 아침이라는 로망은 정말이지 어려운 것이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매일에도 여전히 일상에 대한 기대가 필요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한 다가오는 사건들에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와 남의 실수를 떠나보낼 수 있는 마음. 여유로운 아침은 너무 어려운 장래희망이다.

“인간이 자아를 구축하고자 지독하게 분투한 결과는 그 지독한 분투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성을 지닌 자아라는 것. 우리가 집을 향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여정을 밟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사실은 우리의 집이라는 것.”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중에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저 | 김명남 편역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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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도서 MD)

수신만 해도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