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민 대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하여튼 너라는 애는 여행을 가서 냉장고라도 사올 애야.”
지금 막 여행을 다녀온 내게 우리 엄마가 한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행색은 방금 막 유럽을 다녀온 여행객보단 이주민에 가까웠다. 그리스, 터키, 아프리카 그리고 덴마크를 다녀온 내게, 한 손으로는 끌리지도 않는 내 몸만 한 트렁크는 기본이었고, 허리를 할아버지처럼 구부러지게 하는 등 뒤의 배낭은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의 것 같은 밀도로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발 밑에는 택시 아저씨가 욕을 한바가지 하며 내려 준 (냉장고만큼은 아니지만) 거대한 필름 확대기가 놓여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여행객이라면 그 어떤 독특한 나라를 다녀왔다고 해도 쉽게 가지고 올 수 있는 기념품은 아니었다.
냉장고라도 가져왔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살짝 억울함을 느꼈지만, ‘만약에 그 냉장고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물건을 차갑게 해주는 것뿐 아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냉장고였다면, 혹시 모르지, 가져왔을지도’라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보니 엄마 말이 틀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물욕이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만 알아보는 희귀한 가치에 대해서는 소유욕이 굉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왜 사고 싶어 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 물건들에 대해서, 그럴수록 더 물불 안 가리고 그것을 소유하고 말아야겠다는 욕망이 나의 이성을 사로잡았다.
덴마크 시골의 어느 플리마켓에서 이 거대한 필름 확대기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걸 판매하려고 내놓은 사람은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 귀함을 바로 알아봤다. 이 물건이 얼마나 귀하냐면, 나 또한 내 눈앞에서 이것을 봤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도 완벽한 물건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확대기는 카메라 중 명기라고 불리는 ‘라이카’의 렌즈를 삽입한 라이카 확대기였다. 여태까지 내가 떠돌이처럼 이 암실 저 암실에 돌아다니며 필름을 현상할 때 종종 써봤던 덜컹거리고 어딘가 모르게 허술한 그런 확대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급스러운 밑판, 견고한 기둥,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다이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라이카 M3카메라와 똑같은 ‘라이카’ 로고… 보자마자 이성을 잃었다. 이 물건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나타날 수 없는 귀한 매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확대기를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 이걸 팔려고 내놓은 사람은 이 가치를 모르기에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로 아주 싸게 값을 깎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 이 확대기를 작업실에 두면 얼마나 멋질까. 어두운 암실 속에서도 아마 내 눈에는 이 확대기가 빛이 날 것이다. 내가 용기 내서 길에서 찍어 온 장면들을 이 확대기로 인화를 하게 되면 얼마나 황홀할까! 나의 머릿속은 이미 이 라이카 확대기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포토그래퍼가 되어 잡지 인터뷰를 하고 전시를 여는 상상을 재생하느라 바빴다. 이곳이 덴마크이고, 내 집은 무려 8,100km나 떨어진 대한민국이라는 사실, 이미 짐이 많아서 하루아침 사이에 팔이 하나 더 자라지 않는 이상 깃털 하나도 더 들고 갈 여력이 안 된다는 사실은 0.1초 만에 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이고 지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확대기를 들고 오기 위해 나를 재워 주고 먹여 준 친구에게 코펜하겐 공항까지 확대기 옮기는 것을 부탁했다. 부탁을 했다기 보다, 참 어리석게도 당연히 ‘그 정도는 도와 주겠지’라고 기대했다. 아니, 그것보다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이렇게 특별함에 대한 소유욕은 이성 외에도 나에게서 염치라는 것에 대한 감각마저도 마비시켰던 것이다…
20대 때 나의 이성을 장악했던 이런 ‘특별함에 대한 소유욕’은 다행히도 차차 사그라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소유욕의 대상은 특별한 물건뿐 아닌 특별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특별한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수많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다. 그 어떤 특별한 물건도 사람보다 빛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라이카 확대기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잘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한동안은 확대기를 내 25만 원짜리 월세방에 작은 암실을 만들어 모셔 두고는 매일 밤 밖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저녁이 되면 빨간 암실 등을 켜고 신나게 인화를 했다. 명품 브랜드의 확대기답게 나처럼 기술이 없는 사람이어도 조작이 쉬웠고, 인화된 사진은 입자가 곱고 고르게,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밤이 되기를 기다렸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희석되는 내 마음을 눈치했으면서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어렵게 가지고 왔는데 벌써 재미없어지면 안 되는데… 콜럼버스가 새로운 대륙에서 발견한 보물들을 실어 날랐을 때의 마음으로 귀중한 라이카 확대기를 옮겼던 나는 몇 주 지나지 않아 너무나도 슬픈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진을 인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길거리를 쏘다니며 모르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담는 일은 나의 숙명처럼 매일 사그라들 줄 모르는 열정이 나의 몸과 정신에 기름을 부어 길을 나서게 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밤마다 라이카 확대기를 켜고 외로이 어두운 방에서 쫄쫄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를 들으며 인화를 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프고 애간장이 탔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스스로 되뇌이는 질문이 어둠보다도 더 무겁게 나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나의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난 보물같은 라이카 확대기는 한순간에 처치곤란한 무겁고 자리를 차지하는 고물덩어리처럼 내 마음과 작은 월세방에 짐이 되었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변한단 말인가. 스스로의 변심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더이상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확대기를 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웠다.
그 후로도 이런 상황은 몇 차례 반복되었다. 어떤 물건 혹은 어떤 사람과의 인연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갔지만 결국 그 물건도 그 사람도 나의 일부를 채워 줄 수 없다는 허무함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내 소유욕의 실체를 들여다보니 그 감정은 내가 만들어 낸 이상과 희망을 대상에 입히고 있었다. 나는 실제와 다른 나만의 상상을 쫓다가 그것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마치 신기루처럼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고 상처받았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모든 것을 비우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비우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다급한 충동을 느낀다. 나처럼 물건도 사람도 좋아하고 수집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런 도피적인 생각이 계절처럼 마음에 찾아온다. 어떻게 해도 마음 속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을 무시할 수 없고, 다시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가진 채로 시작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셈이었다. 관계들도 얽히고 섥혀 버렸고, 비좁은 25만 원 월세방은 나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빛을 잃은 물건들이 차고 넘쳐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 방의 주인은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물건도 관계도 놓아 버리고 싶었다. 다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떠나 버리고 싶었다. 그래 처음으로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이 되어 보자. 언제든 훌훌 날아 가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삶을 가볍게 게워 내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태평양을 항해하는 요트에 승선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항해라는 것을 떠나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모두가 한 번쯤은 꿈꾸는 <머리 깎고 절이나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하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는 편이다. 바로 방을 내놓았고, 이사 들어올 사람에게 내 물건들을 헐값에 팔아 넘겼다. 어렵게 모은 보물들이지만, 비워낼 때는 뒤돌아보지 않고 보낸다. 가격을 흥정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더 큰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나는 모든 것을 비워 냈다. 아무런 미련 없이 물건과 사람을 비우고 빈털털이임에 동시에 외톨이가 되어 두 손 가볍게 떠났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임수민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태평양을 건너는 요트를 타고 6개월간 항해를 하며 『무심한 바다가 좋아서』를 출간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세일러인 남편과 함께 연고도 없는 통영으로 내려오는 대범한 선택을 했는데, 낭만 가득한 신혼집을 직접 만드는 과정을 SNS로 공유하며 많은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인생을 끝없는 도전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맥시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