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잠을 자더라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자는 동안 몸과 뇌의 기능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지런히 일하는 중입니다. 자는 동안 손상된 세포들이 회복되고, 학습한 정보를 저장 및 정리하고, 또한 낮 동안 쌓인 뇌 속의 노폐물을 부지런히 청소합니다. 그러므로 수면의 양과 질이 낮을수록, 몸과 뇌의 컨디션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자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이 커지는 만큼, 수면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이 시장에서 소개됩니다. 하지만수면은 '오늘 하루' 잘 자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매일 밤 숙면을 취할 수 있느냐의 '지속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생체시계만 알면 누구나 푹 잘 수 있다』의 저자이자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헌정 교수는 수면의 문제로 내원하는 많은 이에게 수면의 기본부터 가르칩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해서 간과했던 것, 또는 잘 몰라서 무시해 왔던 내 몸의 생체리듬에 대해 이해한다면, 누구나 잘 잘 수 있다고 이 책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잠을 잘 잔다는 것’ 은 어떤 의미일까요? ‘적정 수면’ 의 기준이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언제든 잠을 잘 자면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낮이든 밤이든 피곤하면 잠을 자서 피로도를 낮추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많이 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잠은 밤에 자야 하고 7시간 정도가 적정한 수면 시간입니다.
적정 수면은 내 몸의 생체시계에 맞는 생활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그저 '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전체의 삶, 활동과 연관이 되는 문제인 것이죠. 따라서 지속 가능한 수면의 해결책이 되려면 '잠'만 볼 것이 아니라 낮 시간의 일상을 포함한 24시간 전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몸에 시계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평소에는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요?
인간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하루 주기의 생활리듬을 만드는 '일주기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낮과 밤이 생기는데, 낮과 밤의 변동에 맞춰 우리 몸의 생체시계도 수면, 호르몬, 심박수, 체온, 혈압 등 신체기능을 하루주기로 반복하는 패턴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를 느끼게 되는 아주 대표적인 예가 있죠. 바로 비행기로 해외여행을 가서 겪는 시차적응입니다. 특히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면 낮과 밤이 바뀌면서, 여행지에서는 밤인데도 잠이 오질 않고, 낮인데도 잠이 쏟아지고 몽롱하며 컨디션이 저하되는 경험을 합니다. 바로 내 몸의 시계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힘겨워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결국 시차도 적응하게 되듯이, 우리 몸은 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에 굳이 생체시계에 맞게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시차적응은 여행지의 낮-밤 주기에 대한 적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생체시계에 맞지 않게 생활하면 우리 몸은 적응해 내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큰 문제 없어 보이더라도 길게 보면 결국에는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낮잠의 주기에 맞지 않게 사는 생활이 이어질 때 발생하는 신체 문제로는 대사장애, 심혈관질환, 암 등이 있습니다. 생체리듬의 교란이 뇌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우울증, 조울증, 치매 등과 함께 불면증의 발생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는 꼭 잠을 자야 할까요?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잠의 신비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주요 기능만 보아도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수면은 '회복'의 기능을 합니다. 수면은 거의 모든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 내분비대사, 면역 기능, 감염병, 피부질환, 외상의 회복까지 잠과 관련이 없는 질환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신체의 회복뿐 아니라 마음건강의 회복도 가져옵니다. 낮에 힘겨웠던 걱정과 불안, 우울한 감정도 푹 잘 자고 나면 어느새 불안함이 가라앉고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듯이 말입니다.
책에서 “수면이 정신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특히 감정을 다스리는 데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에서도 수면의학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의사로 수련을 받기 시작한 전공의 시절, 다양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마음의 질환이 공통적으로 잠을 잘 자지 않으면 호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건강이 악화될수록 잠이 현저히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죠. 수면 부족이 정신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 여러 병리 과정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둘 사이에 서로 상당한 관련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마음건강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잘 자게 하려 애씁니다. 신기하게도 환상이나 망상에 시달려 극도로 흥분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여도, 푹 자고 나면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보입니다. 장기적인 수면 박탈로 해당 문제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죠.
저는 우울증과 조증이 일주기 생체리듬과 연관이 있음을 관찰하고 이를 연구해 왔습니다. 기분장애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상태가 일주기 생체리듬이 지나치게 뒤로 밀린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나의 생체리듬과 환경이 불일치할 때 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수면에 다양한 문제가 있을 때 수면제나 침구류와 같은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잠을 잘 자기 위해 애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양을 세는’ 것이 대표적인 잘못된 행동입니다. 잠은 청하면 오히려 도망갑니다. 잠을 자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은 잠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고, 이는 생체시계를 이해하고 생체리듬을 바로잡고 앞당기는 실천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불면증뿐 아니라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와 같은 다양한 수면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에 그에 대한 이해를 도울 설명을 담아 놓았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적절한 침구류가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늘 ‘생체시계’ 입니다. 수면제는 가능한 한 시도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안타깝게도 내성과 의존성이라는 부작용 없이 잠만 쏙 들고 깨는 수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 담은 다양한 수면 관련 정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숙면을 방해하는 다양한 잘못을 바로잡길 바랍니다.
잘 자고 싶은 이들을 위한 핵심포인트 하나만 전해주세요.
아침에 일어나 창가로 가 햇볕을 쬐세요. 가벼운 산책을 나간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낮이나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아침 햇빛을 받는 것은 밤에 잠을 자겠다고 내 몸에 예약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헌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국내 최고의 수면전문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수면센터장이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진료하고 있다. 수면이 정신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특히 감정을 다스리는 데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정신의학 중에서도 수면의학과 우울-조울증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수면의학과 조울증을 연구했다. 일주기 생체리듬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면부터 우울, 조울증 등의 문제를 가진 환자들을 매일 만나며 몸 안의 생체시계의 비밀을 알아야 수면제를 끊고 잠과 감정을 조절하는 근원적인 생체리듬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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