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음미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많은 지식인이 인문 고전 독서를 추천한다. 인문 고전 관련 자료는 이제 교육, 정치, 철학 등 전 분야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오랜 기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인문 고전의 숨은 힘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고전적 사료를 살피며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마련하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초등 생활에 고전 독서가 꼭 필요한 이유, 다소 어려워 보이는 고전 읽기를 실천하고 습관화할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짚어준다. 실제로 초등 4학년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읽어 나간 『명심보감』 후기, 중학생 딸과 아빠가 『논어』를 읽으며 편지로 독서 감상을 나눈 일 등을 사례로 들어 이 분야의 독서가 절대 넘지 못할 벽이 아님을 강조한다. 어느 가정에서나 실천할 수 있는 가족 고전 읽기를 추천하는 한편, 함께 독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했다. 특별한 교구가 없어도, 그럴싸한 노하우가 없어도 아이와 즐겁게 놀이하듯 즐길 수 있는 하루 20분 초등 고전 읽기, 지금부터 만나보자.
작가님은 현직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계십니다. 아이들을 가까이 보면서 현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독서법을 고전이라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상당수의 학생들이 만화책이나 판타지 등 흥미 위주의 독서와 양적인 독서에 치중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 끝에서 고전읽기를 떠올렸습니다. 고전은 아무리 쉬운 문장이어도 깊은 뜻과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서,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문장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가기 때문에 천천히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깊이 읽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읽는 책 대부분이 만화책이거나 판타지라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대출 순위를 조사해봤더니 50위 안에 만화책이 대부분이었고요. 학습만화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엄마들이 그나마 만화책을 허용하는 이유는 만화 사이사이에 나오는 정보페이지 때문입니다. 물론 내용이 유익한 만화책도 많습니다. 역사, 철학, 국어, 과학, 수학 등의 기초지식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된 만화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만화라는 장르 특성상 흥미 위주의 구성에 치중하게 되어 전개가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겨를 없이 책을 읽어 내려가고 줄거리가 아닌 삽화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단문과 의성어 위주의 어휘로만 전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해력도 떨어지고 내용을 단편적으로 훑은 채 책을 덮습니다.
삼국지를 잃고 중국 역사를 줄줄 외는 아이를 볼 때 부모는 내심 만화책을 허용합니다. 노파심을 관대하게 무시하고 때로는 합리화하며 방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만화책은 반대, 학습 만화는 찬성이라는 애매한 입장의 부모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런 갈림길은 어쩌면 독서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의 목표를 지식 습득에 둔다면 학습 만화로 상식을 쌓는 아이들을 막지 않는 ‘학습 만화 예찬론자’의 입장이 됩니다. 반면 책을 통한 경험의 확장, 사고의 성장을 기대하는 부모에게는 지금부터 생각을 달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문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가 책을 읽기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책을 너무 안 읽어요” “다섯 줄만 넘어가도 읽기 힘들어해요” 자녀의 독서법에 관하여 고민하는 부모가 많아요. 책을 오랫동안 손에서 놓은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책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목이 터져라 아이가 원할 때까지 읽어주면서, 아이의 반응을 통해 아이의 독서취향을 파악해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분야의 책을 읽어주세요. 기다려주며 이 시간을 가지다 보면, 아이는 이야기가 가진 재미를 깨달아 조금씩 책에 관심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방문해서 같이 책을 골라보세요. 아이가 고른 책에 관심을 보여주고 칭찬해주며, 돌아오는 길에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한다면 도서관이나 서점 방문이 정기적인 가족의 행사로 자리 잡게 되고, 아이는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만화책을 보려고 할 때는 무조건 못보게 하기보다는 일주일에 하루를 만화책 데이로 정하고, 그날만큼은 도서관에서 마음껏 만화책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해주세요. 정해진 날 정해진 공간에서 충분히 만화를 읽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그 공간을 벗어나면 다시 리셋되도록 장치를 마련해주세요.
설명하신 것처럼 초등 자녀에게 고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섣불리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고전에 대한 부담감과 아이의 읽기 실력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요. 아이에게 고전을 어떻게 접근시켜야 하는지 알려주신다면요?
고전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아마 ‘어렵다’는 인식일 것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에 대해 “누구나 한번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책‘이라는 재치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한자를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원전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풀어쓴 고전이 아닌, 전문 한학자가 번역한 번역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가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같이 사전도 찾아보면서 내 바닥이 드러나는 걸 걱정하기보다는 그냥 내 한계를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많은 부모님들이나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이 드러날까, 혹은 실력이 부족할까 걱정하기보다 일단 먼저 시작하는 것에 열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반드시 자신만의 고전 책을 따로 소장하기를 권합니다. 가족이 함께 명심보감 읽기를 계획한다면 가족 수만큼 책을 사서, 각자 자신의 흔적을 책에 남기면서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가족 각자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을 때 자신의 책에 형광펜을 긋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단어의 뜻도 써보고 하면서 서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나눠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필사를 함께 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게 너무 부담이라면 가족이 한 권의 공동 필사노트를 만들어서 완성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고전이 아이에게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시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사서로 계실 때 고전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혔을 때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혔을 때 두드러지는 효과는 글밥이 많은 책이나 두꺼운 책, 어려운 책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느리게 책을 읽으며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는 태도를 익히게 됩니다. 당시 학교에서 교내 고전읽기백일장 대회를 개최하고, 수상자들은 전국고전읽기백일장대회에도 참여했었습니다. 본선대회에 참여했던 학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며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반드시 수상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수상의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면 자신감과 성취감은 배가 될 것입니다.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어떤 학부모님이 아침에 4학년 딸아이와 싸웠는데 딸아이 말이 “엄마가 소학을 읽어보셨으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거에요.” 하는 소리를 듣고 그날부터 소학을 함께 읽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또한 세 자녀를 두신 어머님이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아이와 함께 필사를 하셨는데, 너무 좋았다며 캐나다에서 만나게 될 새 이웃들에게 고전을 선물하고 싶다며 여러 권 구입해서 출국하신 것이 특별히 생각나네요.
고전을 초등 3,4학년에 시작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다면요?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단계에 고전독서를 시작하게 되면 웬만한 책읽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습니다. 다만 고전 독서의 절대적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독기에 접어들기 이전에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오히려 독서 습관에 더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처음에는 잘 히애되지 않던 부분이 두 번째 읽을 때 저절로 풀리면서 신기해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전 중의 고전으로 검증된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과정이 아이의 사고에 날개를 달아 주게 될 것입니다.
처음 고전을 접하는 초등학생 저학년들에게 추천할 만한 도서가 있으신가요? 또한 작가님이 읽으신 고전 중 가장 좋아하시는 책을 꼽아주신다면. 그 이유도 알려주세요.
처음 고전을 접하는 초등학생들이나 가족고전읽기로 제가 추천하는 고전은 명심보감과 논어 두 권입니다. 처음에는 명심보감으로 먼저 하고 그다음 두 번째 책으로 논어를 권해드립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학년이 초등고학년이나 중학생이라면 논어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집 큰딸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고전을 시작하면서 논어부터 시작했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함께 읽으시다가 부모님도 자녀도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 나올 때는, 엄마도(아빠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얘기하고 건너뛰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좋은 구절들이 많은데 막히는 구절 때문에 고전읽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잖아요. 막히는 부분은 일단은 건너뛰면서 인터넷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발견되기도 하더라고요. 또 처음에는 잘 이해 안 갔던 부분들이 두 번째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때도 있습니다. 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읽더라도 온 가족이 도전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아영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이후 초등학교와 중학교 도서관 사서를 거쳐 현재 강남구립못골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다. 인문 고전 독서 연구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책 읽기를 통해 놀랍게 변화하는 아이들을 10년 넘게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인문 고전 독서가 주는 잠재적 힘을 몸소 체험했다. 초등, 중등 시절 사서 엄마와 함께 일찍 고전을 접한 두 딸 역시 그 시절의 읽기가 꿈과 진로, 인생의 방향을 정할 때 유용했다고 말한다. 어엿하게 자란 두 딸은 논술 전형으로 나란히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더 많은 이들에게 고전 독서의 유익을 알리고 싶다는 저자는 《하루 20분 초등 고전 읽기》에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가족 고전 읽기 방식을 소개했다. 실제 초등 4학년 아이들과 동양 고전을 함께 읽고 있는 엄마들의 사례도 수록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전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더불어 초등 자녀를 둔 모든 가정에서 이 방식을 실천하고 경험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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