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열두 시 삼십 분, 점심시간만 되면 바로 일어나 집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당시 회사와 집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이십 분, 뛰면 팔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가는 여러 무리들을 제치고 중학교 담장을 지나 첫 번째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꽃집이 나왔다. 숨이 모자라 그쯤에선 항상 멈춰 서야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 간혹 등 뒤로 야구부 학생들의 활기찬 함성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럼 꼭 나를 향한 한바탕 응원이 쏟아진 것처럼 다시 뛸 기운이 돌았다.
집으로 이어진 길목의 음식물 쓰레기통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이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걸음이 느려졌다. 조심조심 걷는데도 쓰레기통 옆 처마 밑에서 일광욕하던 검은고양이 세 마리는 단번에 나를 알아봤다. 나를 보고도 무심한 쑥이, 콩이와는 달리 밤이는 곧장 달리기 좋은 자세를 취하기 위해 엉덩이를 씰룩였다.
“어디 갔다 이제 오냥.”
밤이는 쪼르르 달려와 내 다리에 제 몸을 마구 문지르다가 땅바닥에 발라당 누워 세모난 입으로 냐냐냥 잔소리했다. 토실토실한 뱃살을 만지고 턱밑을 긁어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려면 서둘러야 했다.
“딴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밥 가지고 올게. 알았지?”
내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이는 내 왼다리와 오른다리를 분주하게 오가며 박치기를 했고 콩이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동그란 눈을 말똥거렸다. 쑥이는 당장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듯 “앍!” 하고 호통했다. 웃음이 터졌지만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 들어가 닭가슴살을 데우고 밥그릇에 사료를 부었다. 보온병에 미지근한 물도 담고 낚싯대도 들었다.
주차장이 드넓은 정글인양 용맹하게 뛰놀던 쑥이, 콩이, 밤이는 나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눈을 반짝였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셋은 고개를 박고 데운 닭가슴살을 허겁지겁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고기를 야무지게 씹어 삼키고 찰박찰박 물을 마시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어떤 불순물도 끼지 않은, 순도 높은 평화에 내 마음도 깨끗이 비워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면 나는 가져온 낚싯대를 흔들어줬다. 분홍색 코가 새빨개지도록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뛰어오르는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며 식기를 정리했다. 눈치 빠른 밤이가 내 앞에 철퍼덕 누워 나를 올려다봤다. 콩이도 그 곁에 앉은 채 나의 눈을 똑똑히 바라봤다. 이번에도 쑥이는 “깕옭!” 하고 강렬한 소리를 냈다.
“설마 지금 너만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려는 거야? 이렇게 추운 곳에 우리만 남겨두고?”
책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한 세 고양이의 메시지에 단단히 붙들려 옴짝달싹 못 했다. 나는 구부려 앉아 그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등허리에 작은 진동이 느껴져 고갤 돌려보니 콩이가 있었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때껏 나는 한 번도 콩이와 닿아본 적이 없었다. 콩이가 허락하는 범위는 확실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와는 늘 일정 거리를 둬야 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콩이가 화들짝 놀라 도망갈까 봐 숨죽였다.
콩이는 우리가 닿은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려는 듯 내 종아리와 발등에 제 체취를 꼼꼼히 묻혔다. 얼마간 뭉클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멍하니 있었다. 할 일을 끝낸 콩이가 나를 마주보는 곳에 자릴 잡고 앉았다. 그가 보내는 끈질긴 눈빛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나는 콩이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릉그릉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작별 선물이었던 걸까. 사계절을 지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눴던 아이들이 돌연 사라진 건 그 혹독한 겨울을 넘긴 다음해 봄이었다. 세상이 온통 파릇하게 피어나기 전 잠깐 움츠린 듯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열두 시 삼십 분, 나는 여느 때처럼 중학교와 꽃집을 지나 집 앞 골목까지 뛰어갔지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며칠간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한두 달 동안 평소 아이들이 자주 보이던 화단이나 근처 길고양이 급식소 같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찾았다. 시간이 갈수록 자꾸 나쁜 쪽으로만 생각이 쏠렸다. “냉정하게 말하면 죽었을 확률이 높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울면 아이들이 사라진 게 기정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이를 악물고 좋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노력했다. 서너 달이 흘러 어느새 쨍쨍한 여름으로 계절이 건너뛸 때까지도 희망을 완전히 놓진 않았다. 때때로 길고양이들은 먼 길을 떠났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나타나곤 하니까.
이제 나는 그런 기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친구들을 생각하지 않고 보내는 날도 많다. 다만 우리 쑥이, 콩이, 밤이가 무사히 안착한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 가능해진 미래의 언젠가를 꿈꿀 뿐이다. 그건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상상을 멈출 수 없다. 그곳은 바깥의 찬바람과 빗물이 미치지 않는 안전한 곳이겠지. 아이들은 매 끼니 맛있는 것들로 배를 채우고 뜨끈한 데서 몸을 지지며 아무 때나 상관없이 늘어지게 잘 것이다.
긴 여정이 될 수도 있으니 단단히 준비해야겠다. 먼저 캐리어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먹을거리와 장난감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그동안 어디서 뭐 하느라 이제 온 거냐고 냥냥거릴 것이 분명하므로,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 울먹이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지. 그럼 아이들은 금방 풀어져 그간의 재밌고 즐거웠던 일들을 다 들려줄 것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사냥의 기억은 내게 꼭 자랑해주면 좋겠다.
벌써 그날의 소란스러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빙하 작은 바닷마을에서 빵을 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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