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하는 수 없이 – 최윤영
그러다 카페 테라스에 누워있는 그 애를 만났다. 까만 코, 갈색 눈, 아이스크림처럼 여러 색이 뒤섞인, 어디선가 흘러온 그 애.
글ㆍ사진 최윤영(나도, 에세이스트)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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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언스플래쉬

산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여섯 살. 같은 골목에 살던 친구가 대뜸 “산타할아버지가 줬어.” 하며 제 소지품을 자랑했다. 그게 장난감이었는지 인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요한 건 내가 산타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산타는 바라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친구가 말했고 “산타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편지 쓰면 돼!”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밥 먹을 때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자기 전에는 산타에게 빌었다. 그때 내 소원은 하나였다. 강아지를 키우게 해주세요. 엄마가 강아지 키워도 된다고 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산타는 나에게 과자 세트를 선물했고 크리스마스날 아침, 나는 골목이 떠나가라 울었다.

엄마는 대구 북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한우 농장을 하는 외가는 소를 지키라고 커다란 개를 몇 마리나 키웠고 끼니마다 밥을 주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외가에 가면 꼬리를 마구 흔드는 새끼강아지가 몇 마리나 있었고 나와 동생은 우릴 졸졸 따라오는 귀여운 생명체에 온 마음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줄곧 동물과 자라서인지 우리 셋을 키우느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무언가를 기르는 일이라면 질색을 했다. 산타에게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입력 오류’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데 십 년이 더 걸렸다. 

열여덟. 나는 동생이 한 명 더 생겼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아파트 건너에 카페가 생겼다. 그동안 집 앞에 생기는 가게는 편의점이나 ‘사장님이 미쳤어요 전부 5000’원 같은 것이 전부였는데 카페라니. 기분 좋은 낯설음에 공사를 하는 몇 주 동안 일부러 그 앞을 지나다녔다. 그러다 카페 테라스에 누워있는 그 애를 만났다. 까만 코, 갈색 눈, 아이스크림처럼 여러 색이 뒤섞인, 어디선가 흘러온 그 애. 

여섯 살, 산타는 과자를 선물해 나를 실망시켰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고 빌었다. 강아지를 기를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게 안 되면 포켓몬스터 운동화 받게 해주세요. 그리고 일곱 살, 산타는 나에게 노트 세트를 선물했다. 곧 학교에 가니까 이걸로 공부하면 되겠다며 박수를 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또 울었다. 산타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 뒤 산타에게 어떤 것도 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잊어버린다. 나는 더 그랬다. 동물을 대하는 건 산타에게 소원을 비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도 우리는 자주 만났다. 내가 테라스에 앉으면 그 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카페를 나오면 테라스로 나와 나를 구경했다. 테이블, 철제 난간, 투명 유리문 등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구경하는 사이 계절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날. 자리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는데 누가 발을 툭툭 쳐댔다. 고개를 내려보니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코로 내 발목을 툭툭 치다가, 발아래 누웠다. 나는 눈만 깜빡대다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안녕. 그 애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 안녕?

월요일에는 녹차라떼를 시키고, 수요일에는 라떼를 마셨다. 화요일에는 눈으로 그 애를 찾고 목요일에는 와플을 썰다가 가까이 다가온 그 애를 발견했다. 토요일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 애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물다섯. 가까이 다가온 그 애를 쓰다듬는데 털이 우수수 빠졌다. 나는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노견에겐 흔한 일이라고 했다. 숨을 헐떡이거나, 가끔 어디론가 뛰쳐나가려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했다. 어디까지가 흔한 일이지? 늘 궁금했다. 차가 그 애를 밟고 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그럴 수 있는 일에 속할까?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 애는 내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냥 ‘아’ 했다. 처음 그 애를 마주했던 날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아, 그렇군요.” 반복했다.

나는 무엇이든 잊어버린다. 좋아하던 캐릭터의 이름도, 어릴 때 하던 놀이 방법도 기억나지 않는다. 골목에 그 애 사진이 걸리고 그 애를 쓰다듬던 사람들은 꽃과 편지를 두고 가며 훌쩍였다. 그래도 그 애가 없다는 걸 잊어버렸다. 새벽에도 꽃 더미 앞을 지나고, 밤에도 꽃 더미 앞을 지났는데, 낮이 되면 또 그 애 앞에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일기에 적었다. 개는 안 키워야지. 개는 절대로 안 키워야지.



*최윤영 

아직은 대학원생, 오늘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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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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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봄

2021.06.30

뭔가 빌어도 얻어지는 않는 어린 절망감이 느껴져서 괜히 셋이나 키우느라 고생한 님의 어머님께 야속한 마음이 들어요 ㅎ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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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나도, 에세이스트)

아직은 대학원생, 오늘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