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d몬 “만화는 독자의 평가로 완성된다”
『에리타』의 경우는 사람의 존재를 주제로 하여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지만 만약 지구상에 현생 인류를 증명해 줄 그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사람의 존재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갔습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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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던 작품 『데이빗』을 시작으로 ‘사람 3부작’의 연재를 시작한 작가 ‘d몬’. 그의 두 번째 작품 『에리타』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번 작품은 멸망한 지구에 남겨진 존재들을 통해 사람과 비(非)사람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인류의 탐욕이 만들어낸 물질 ‘포루딘’에 의해 파괴된 지구, 그곳에 홀로 남은 인류 ‘에리타’가 있다. 인공지능 ‘가온’은 에리타를 지키며,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존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이 만난 또 다른 존재 ‘김가온’은 정신은 인간이지만 육신은 프로그래밍된 기계다.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독자들은 자문한다. ‘육체와 정신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인간인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기계가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데이빗』과 마찬가지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에리타』는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 기존의 스크롤 연출을 가로 연출에 맞게 전면 재구성했고, 번외 에피소드를 특별 추가했다. d몬 작가는 2020년 데뷔작 『데이빗』을 발표하며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에리타』 <브랜든>으로 이어지는 ‘사람 3부작’을 선보였다. 지난 7월 완결된 <브랜든>은 단행본 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자신 있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브랜든>의 연재가 종료됐습니다. 이로써 ‘사람 3부작’이 완결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먼저 ‘사람 3부작’을 연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네이버 웹툰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날로 커져가는 웹툰 시장에서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연재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국내 최대의 플랫폼이 있다는 건 웹툰 작가로서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람 3부작’은 아마추어 만화가로서 처음 선보이고자 했던 시리즈였습니다. 첫 작품인 『데이빗』을 선보인 후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랑을 받아 운 좋게 프로 만화가로서 남은 작품들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험을 동시에 해본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3부작의 첫 작품인 『데이빗』을 구상하게 된 건 어릴 적 돼지와 인간의 장기가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접한 이후입니다. ‘돼지와 인간의 다른 점이 비단 거죽 한 꺼풀인 외형뿐이고 그 안의 모든 게 인간과 같다면 그 돼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부터 『데이빗』과 ‘사람 3부작’의 기획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주제가 작가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 대우받고 그것을 당연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스스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기회가 박탈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데이빗』을 구상하게 되었던 시절부터 쭉 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람’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고 자유로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를 발전시켜 나갔고, 더욱이 삶의 경험들을 토대로 스스로를 돌이켜 보며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이며 과연 자신 있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를 곱씹은 적이 많습니다. ‘사람 3부작’으로 독자 분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답은 얻지 못해 조금 더 살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데이빗』에 이어 『에리타』가 단행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웹툰 연재 때와는 달리, 물성을 지닌 책으로 작품을 손에 쥐게 되셨는데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사람 3부작’ 출판을 맡아주신 푸른숲에서 질 좋은 책을 엮어주셔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또한 어릴 적 웹툰이란 콘텐츠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아 만화라고 하면 단행본이 당연하던 때에 나도 언젠가 나만의 만화책을 내고 싶어 했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라 더욱 기뻤습니다.

단행본 작업을 하시면서 원작(웹툰)을 수정, 추가하신 부분이 있죠? 

원래 3부작 첫 작품인 『데이빗』은 출판만화 형식을 기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출판만화 형식을 토대로 웹툰식 스크롤 연출을 접합시켜보고자 만들어진 게 카툰 연재 갤러리에 연재되었던 <데이빗>이었고, 이후 네이버 웹툰에 정식 연재를 시작하면서 보다 웹툰 형식에 맞게 전체적 수정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작품이자 사실상 첫 웹툰 형식 제작이었던 『에리타』는 출판만화 형식보단 웹툰식 스크롤 연출에 비중을 더 많이 두었고 이로 인해 단행본 작업에 있어 『데이빗』보다 더 많은 수정이 들어간, 『데이빗』과 완전히 정반대의 수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전반적인 수정점은 세로로 나열된 컷 배열을 단행본 형식에 맞추어 재조정하고 스크롤 형식을 이용한 연출들을 양면 페이지에 담아내었습니다.

작품을 웹으로 선보일 때와 종이(책)로 선보일 때, 각각의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출판 형식과 웹툰 형식 모두를 경험해 보았기에 두 매체의 확실한 장점과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출판 형식은 역사가 긴 매체다 보니 보다 대중적인 친숙함이 있고, 한 페이지에 여러 컷을 넣어 내용 전달에 용이하고, 특히 양면 페이지를 통한 연출의 임팩트는 오직 출판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웹툰 형식은 보다 간편하고 빠르게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한 페이지 안에 여러 컷의 정보를 제공하는 단행본과 달리 한 컷 한 컷 개별적인 정보 제공으로 보다 한 장면에 몰입감을 높일 수 있고, 다음 장면에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재미와 더불어 그에 맞춘 다양한 연출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과 차이들로 단행본이 잘 가꾸어진 정원을 천천히 감상하는 거라면 웹툰은 앞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수풀을 헤치며 탐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는 독자의 평가로 완성된다

『데이빗』의 첫 장에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이 물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라고 쓰셨어요. 『에리타』도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됐나요? 

『에리타』의 경우는 사람의 존재를 주제로 하여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지만 만약 지구상에 현생 인류를 증명해 줄 그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사람의 존재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갔습니다.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도 갖고 계셨는지, 그 답이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바뀌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네이버 웹툰에 정식 연재를 준비하던 단계에서 담당자님과 논의하여 보다 사람이란 주제에 걸맞은 주제들을 검토하였고, 그렇게 3부작의 주제들이 확실하게 정립된 후에 시작과 결말을 모두 구상하고 연재를 하였기에 작품에 따른 답은 준비가 되어있었고, 연재 중에 바뀌었던 적은 없습니다.

‘사람 3부작’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을 ‘무엇’으로 정하고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데이빗(『데이빗』의 주인공)’의 경우 돼지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심플한 이미지 그대로 디자인했습니다. 작중 데이빗은 시작부터 끝까지 의류를 걸치지 않는데 이는 데이빗의 육신이 돼지라는 것을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사람이 나체로 돌아다니면 제지를 받지만 데이빗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집단 내에서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활보하여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 받지 않는 아이러니함과 종극에 ‘캐서린’과의 육체적 한계를 암시합니다. 『에리타』에 등장하는 ‘가온’의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흉내 낸 듯하나, 플라즈마로 구현되는 부분을 제외한 본체는 아주 심플하고 기계적으로 디자인했는데, 작중 가온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효율적인 구조의 극치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자유롭게 변형되는 플라즈마 설정으로 본체의 차갑고 기계적인 디자인을 상황에 따라 ‘에리타’가 그토록 기다리던 천사의 형상으로도 보이게 하는 아이러니함을 의도했습니다.

 <브랜든>의 ‘올미어’와 ‘라키모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올미어’의 처음 디자인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초고도 문명을 상징하는 모습이었지만, 되려 ‘현대 인류의 문명 따윈 먼지처럼 보이는 고생물체들이라면 불필요한 복잡함 없이 필요성에 의한 심플함이 돋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현재의 디자인이 정립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면서, 완벽한 구체 형태의 정수와 그 아래로 또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곡선의 몸체까지 완전하면서, 그러기에 더욱 이질감이 드는 인상을 주길 바랐습니다. 그와 반대로 ‘라키모아’는 우리 인류와 비슷하면서 보다 포근하고 정감 가는 모습으로 디자인하였는데, 이는 네이버 웹툰 담당자님께서 올미어와 상반되게 친숙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이 어떻겠냐는 피드백을 주셨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시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신상 노출을 원하지 않는 주의이기도 하고 작품적으로 독자 분들께 온전히 작품 그 자체로만 다가갈 수 있게 작가 본인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 3부작’에 별도의 후기가 없는 것 역시 독자 분들께서 작품을 보고 개개인이 가졌을 생각과 감상을 작가의 개입으로 희석시킬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브랜든>의 작가 후기에 “저는 생각한 이야기를 독자 분들께 들려드리고 독자 분들께선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으로 작품을 함께 완성시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쓰셨어요. 독자 댓글을 많이 보시나요? 작품에 대한 독자들이 해석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만화라는 콘텐츠는 결국 독자 분들의 평가로 완성된다 생각합니다. 작가 스스로 작품에 아무리 의미를 담고 재미가 있다 생각하여도 독자 분들이 읽어주시고 본인만의 생각으로 평가해 주시지 않는다면 ‘만화’로서의 생명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독자 분들의 다양 각색 의견과 해석들을 보며, 제가 생각한 부분과 같은 해석엔 ‘이만큼 내 작품을 깊게 이해하고 있구나’ 감사함을 느끼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엔 ‘하나의 주제라도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비칠 수 있구나’ 감탄을 하게 됩니다.

준비하고 계신 다음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사람 3부작’처럼 긴 호흡으로 이어가실 계획인지, 언제쯤 연재가 시작될지 궁금합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확실히 이렇다 할 답변은 드리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시리즈물이 아닌 한 편의 작품으로 길게 연재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데이빗』 『에리타』에 이어 <브랜든>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인가요?  

‘사람 3부작’ 모두 푸른숲 출판사와 함께 출간 계획을 잡았기에 <브랜든> 역시 단행본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출간 예정입니다. 『데이빗』 『에리타』처럼 웹툰 형식을 단행본에 맞게 전체적인 수정과 부록 페이지 등 추가 작업들이 있어 웹툰으로 접하셨던 독자 분들도 단행본만의 새로움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d몬

2020년 네이버 웹툰 『데이빗』으로 데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창적으로 구축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있다. 『데이빗』 『에리타』에 이어 2021년 『브랜든』으로 ‘사람 3부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에리타 1
에리타 1
d몬 글그림
푸른숲
에리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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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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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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