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보고서로 말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무원에게 보고서 작성, 즉 글쓰기 능력은 중요하다. 글을 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민원인을 상대하거나 행사를 이끄는 일이 많은 업무 특성상 효과적으로 말하는 능력은 공직자의 필수 역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자의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 승진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공직자와 말하기,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 잘하는 공무원은 문장부터 다릅니다』는 공직자를 위한 말하기, 글쓰기 지침서다. 다양한 업무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말하기, 글쓰기 팁을 유형별로 정리해 제공한다. 신문사를 거쳐 국방홍보원 원장으로 일하며 언론인에서 공직자가 된 박창식 저자는 원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쉽고 구체적으로 쓰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말과 글을 다루며 보낸 세월만 십수 년, 여전히 말과 글을 다룰 때 가장 즐겁다는 박창식 저자를 만나 공직자의 말하기, 글쓰기에 관해 물었다.
공직자는 글을 써야 한다. 지금은 정부기관이 권력이나 예산을 휘둘러 목적을 달성하는 시대가 아니다. 정책 관계인, 즉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와 공감을 모아나가야 한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며 합의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 요즘 시대의 공직자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147쪽)
공직자,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해야 승진한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책이다. 어떻게 쓰게 됐나?
신문기자로 일하다 언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강의했다. 생각보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고, 학생들의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는 걸 보면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나의 전문분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하던 중에 국방홍보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공직자가 됐고, 그 누구보다 공직자에게 말하기와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공직자를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 책을 쓰게 됐다.
원고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공직자를 위한 글쓰기로 주제를 바꾸면서 공직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내용을 수정했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내용이 달라졌나?
출판사와 계약한 건 3~4년 전이다. 신문사 다닐 때였는데 대통령의 말하기와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원고가 안 써져서 고민하던 차에 국방홍보원으로 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대통령에서 일반 공직자를 위한 글쓰기로 책의 방향을 바꿨다.
실제로 글쓰기, 말하기 실력이 공직자의 승진이나 보직 이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이 공직자의 승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가령 민간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잘 판매해서 실적을 올리면 승진할 수 있지만, 공직자는 다르다. 말과 글로 정책 서비스를 전달해야 하기에 말하기와 글쓰기를 못 하면 인정받기 어렵다.
공직자 글쓰기와 일반인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예를 들어 문학 글쓰기에서는 화려한 수사가 필요하다.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글쓰기도 비슷하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공직자의 글쓰기는 다르다. 정책 대상인 시민과 정확하게 소통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쉽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쓰라’는 조언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만큼 구체적이지 않은 글이 많다는 뜻일 텐데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과거에 학교에서 받은 글쓰기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찰과 묘사가 글쓰기의 기본인데 그보다 소감이나 감상처럼 추상적인 것들을 쓰게 할 때가 많았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와 같은 육하원칙을 따라 문장을 구성해야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나. 글을 쓸 때 내용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잘 쓸지’만 골몰하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전달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꾸밈만 많고 내용이 빈약한 글이 나온다.
공문서는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문서를 작성하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공공기관이 선호하는 특유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어렵게 써야 잘 쓴 글이라는 인식이랄까.
공문서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공직자가 선호하는 특유의 방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글이 더 정중하다고 생각하는 근거 없는 관습 때문에 일상에서 쓰지 않는 말을 문서에 쓰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생각한다’라고 해도 될 것을 ‘사료된다’라고 쓰는 식이다.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바꾸려고 노력한다.
공직자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개조식 글쓰기’를 꼽았다. 공문서의 상징과도 같은 방식이 개조식 아닌가.
물론 개조식 글쓰기의 장점도 있다. 단편적인 사실을 간략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어 용이하다. 그런데 개조식 문서만 쓰다 보니 서술형 보고서나 업무 백서처럼 개조식으로 쓰기 어려운 문서를 작성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앞서 말한 제도권 국어 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서술형 글쓰기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더 그렇다.
쉽고 명확한 글쓰기를 위해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공직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글쓰기 문화가 바뀔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현재 방식의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토론하면서 바꿔나가면 되니까. 쉽고 명확하게 쓰는 방향으로 바뀌면 시민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점은 금물, 말이 길면 효과가 없다
공직자의 말하기 실력은 주로 어떤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공직자라면 직급을 막론하고 대외적으로 말해야 할 때가 많다. 민원인을 만나서 특정 사업이나 정책 서비스를 소개할 때, 정책과 관련한 갈등 상황에 있을 때, 시기마다 열리는 각종 행사를 진행할 때 등 다양하다. 모두 공적 메시지를 전하는 상황이다 보니 말실수를 하거나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곤혹을 치른다. 모든 상황에서 말하기 능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축사 관련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고위직 인사가 아니고는 축사할 일보다 축사를 듣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가?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도 살다 보면 생각보다 축사할 일이 많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의 승진을 축하하면서 하기도 하고, 다과회를 하면서 동료의 생일이나 입사를 기념하며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체로 어떻게 축사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인터넷에 떠도는 회식용 건배사 같은 걸 찾아서 하지 않나.
축사할 때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축사 받는 대상을 충분히 ‘취재’해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행사 취재할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축사를 듣게 됐는데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고위직 인사가 마이크를 잡으면 대체로 지루하지 않은가. (웃음) 축사를 받는 대상을 취재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뻔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축사가 많아지면 듣는 사람도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다. 축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 배경이 있나?
중국에 있는 조선족 동포 사회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취재 대상이었던 분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축사했다. 축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점이 좋았는지, 오늘 이렇게 또 만났으니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 뻔한 말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축사가 아닌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축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인연을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축사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고, 그 내용을 책에 담았다.
여러 유형의 말하기를 소개했는데 가장 자신 있는 유형의 말하기가 있다면?
잘하는 유형을 꼽을 만큼 달변가는 아니다. 다만 마이크를 건네는 일은 잘한다. 서너 사람과 둘러앉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OO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 식이다. 말의 꼬리를 가져다 물어주고 이어주는 역할을 좋아한다. 사회자 같은 역할이랄까. (웃음)
말을 독점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꼭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신나게 말하다 보면 분위기에 취해 말이 길어질 때가 있지 않나. 특히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면 말이 많아진다. 그러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별한 행사나 기관장으로 말해야 할 때 내용을 최대한 간추리는 편이다. 표현 방식과 순서를 미리 메모해 발언이 최장 7~8분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말이 길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필을 주도하는 공직자가 되자
뇌리에 꽂히는 ‘스티커 메시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스티커 메시지’를 찾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기술적인 방법을 소개할 수 있다. 숫자를 활용하거나 스토리를 구성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 등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글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와 소재를 꼼꼼히 보는 게 아닐까 싶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其意自見)'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름길은 없다.
좋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사례로 미군의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군대의 일화가 나오는 게 의외였는데 한국군과 미군의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미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유명한 장군이 있다. 전쟁의 원리가 무엇인지, 해병대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등을 정리한 해병대 교범을 장교 한 사람과 토의하면서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교본을 집필할 수 있을 정도의 글쓰기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달리 미군의 고위 공직자들은 글쓰기 능력을 갖췄다는 뜻인가?
물론 미군이라고 모든 글을 직접 쓴다는 건 아니다. 다만 미군의 사례처럼 상급자가 집필을 주도하지 않고 글을 고치기만 하면 실무자가 쓴 글보다 더 좋은 글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용을 보완하고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에 그치기 때문이다. 상급자가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뺄셈이 아닌 덧셈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덧셈의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미국 해병대가 전쟁 시 사용할 수 있는 행동 교범을 만들다 중간에 내용을 바꿨다. ‘How to’에서 How to think로. 즉,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쟁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지 않나. 상대편은 절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How to’와 같은 매뉴얼이 의미 없는 이유다. 사령관이 직접 집필에 참여하지 않고, 글을 고치기만 했다면 일을 수 없는 일인데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집필을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글쓰기 책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많이 참조한 것 같은데 다른 글쓰기 책과 이 책의 차별점이 있다면?
다른 글쓰기 책을 비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을 쓰면서 세운 세 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싶다. 첫째,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 경험과 생각을 쓰자’ 둘째, ‘비판적으로 쓰자’, 셋째 ‘지식을 담자’ 이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독자들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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