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들려주시면 책을 찾아드립니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의 작가 윤성근씨는 오랜 세월 동안 책과 삶이 얽힌 이야기를 수집해왔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독특하다. 손님이 시중에 절판된 책을 찾아달라고 하면 수수료를 돈으로 따로 받지 않고, 대신 왜 그 책을 찾으려 하는지 삶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것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수집한 이야기 가운데 29편을 선별해 수록했다. 책 덕후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데다가 다채롭다”는 평을 들으며, 관심을 모으고 있는 『헌책방 기담 수집가』의 윤성근 작가를 만났다.
책을 처음 보고 호기심이 확 일었어요.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대신, 그 책에 얽힌 손님의 사연을 받는다니… 무슨 영화 같은 설정인데요. 어떻게 처음 이런 신기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울에 있는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책방에 들른 한 노신사가 일본 작가 쿠라다 하쿠조의 책을 찾고 있다고 하기에 알아봐준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노력해서 그 책을 찾은 게 아니라 거의 우연이었죠. 어르신에게 책을 찾았으니 책방에 방문해달라고 연락했고 얼마 후 그분은 다시 제가 일하는 헌책방에 와서 책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르신은 부산에 살고 계셨습니다. 책값보다 교통비를 몇 배나 더 쓴 것이죠. 이상하게 여겨서 그 책에 얽힌 사연을 물어봤던 게 사연 수집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2007년에 제 가게를 만들고나서 본격적으로 손님들에게 책 찾는 사연을 듣고 기록했습니다.
책 안에 여러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코끝이 찡하기도 하고, 킥킥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어떻게 손님들에게서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내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손님이든지 처음부터 이야기를 술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사연이겠구나 싶어서 대화를 길게 하지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어떤 지점에서 뭔가 더 숨겨진 사건이 있을 것만 같은 직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질문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상대방은 뭐라고 반응하던가?”, “당시에 만났던 친구분 이야기도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같은 거죠.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가슴에 오래도록 남은 손님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책을 펴내고 나서 독자분들은 어떤 사연이 가장 재미있다고 여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에겐 모든 사연이 다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뒤라스의 소설 『앙데스마 씨의 오후』를 찾던 어르신에 관한 사연입니다. 책을 찾아드린 후 몇 년 있다가 그분이 돌아가셨고 제가 장례식장에도 찾아갔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만난 어르신의 자녀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르신이 남긴 책들을 짐처럼 취급하는 걸 보고 속상했습니다. 어르신은 몇 년 동안이나 발품을 팔며 찾았던 책인데 말이죠. 결국, 어르신께 찾아드렸던 그 책은 따로 처분하지 않고 아직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책장 위에 무심히 올려놨는데 가끔 그걸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르신 생각이 납니다.
어떤 글은 마치 미스터리 같기도 하고 모험활극 같기도 했는데요. 책에 등장하는 조력자인 시계 수리점 N씨와 책 보부상 H씨는 물론 실존 인물들이겠죠?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을 제안드리고 싶을 만큼 놀라운 능력자들이더라고요.
N씨와 H씨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책에서는 아무래도 제가 조금 재미있게 쓰려고 각색을 한 부분이 있지만 실제 성격을 살리려고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책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선 좀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사회부적응자 같은 느낌도 있는 분들이죠. 저와 동묘에서 50만 원의 상금을 두고 책 찾기 대결을 펼친 M씨도 비슷한 부류의 책 마니아입니다. 관계 맺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론 책에 관한 지식이 워낙 많으니 제가 책을 찾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책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그림 속의 공간은 현재 운영하시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인가요? 실제로 저렇게 책을 천장에 매달아놓으세요?
표지에 있는 그림은 제가 일하는 책방 모습 그대로입니다. 줄에 매달려 있는 책은 입구 쪽에 설치한 인테리어죠.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접니다. 일할 때면 늘 저런 옷에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똑같은 옷만 입다 보니 많이 헐었네요. 때때로 수선집에 가서 고쳐서 입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남서연 님이 멋진 표지그림을 작업했습니다.
헌책방 운영은 물론, 또 대단한 다독가이기도 하시잖아요. 그러면서도 매해 책을 내오셨습니다. 글쓰기를 위한 시간 확보를 어떻게 하시나요? 혹은 글쓰기 루틴이나 습관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만의 독서와 글쓰기 루틴이 있습니다. 책방 일 마치고 나면 샤워를 하고 주로 새벽에 읽고 씁니다. 아무래도 일과 중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 새벽시간을 이용합니다. 잠은 4-5시간 정도로 적게 자는 편이고 아침에 운동과 산책을 한 다음 점심을 먹고 새벽에 쓴 글을 검토하며 책방 일과를 준비합니다. 천천히 동네 산책을 하면서 글에 관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걸 즐깁니다.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이 추천사에서 “나는 벌써 속편을 기다린다”고 쓰셨습니다. 또 독자 댓글들에서도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작가님의 다음 책은 무엇인가요? 역시 속 편하게 속편인가요? (웃음)
기담 책을 읽고 책방에 오신 손님들께 속편 언제 나오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속편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책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라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기묘하잖아요? 여러 이유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요즘이지만, 가까운 이웃에게 조금 관심을 기울여보면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응원해주시고 있으니 속편 기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윤성근 수많은 서점의 오래된 단골이자 14년 차 책방지기.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보다 서점으로 먼저 향했다. 책이 좋았고 서가로 둘러싸인 서점이라는 공간이 좋았고, 그곳을 지키는 책방지기가 좋았다. 3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책방을 찾아다니는 모험을 시작해 전국, 아니 세계의 서점들을 순례하고 있으며 직접 고른 좋아하는 책들로만 가득한 헌책방을 열어 재미있게 운영하고 있다. 책이 있는 공간에서 매일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글을 쓴다. 서점 창업 11년째 되던 2018년에는 서울 지역 서점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우수 서점인 표창을 받았다. 서울책방학교에서 작은 책방을 꾸리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으며,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도서전이나 책방 문화 사업에 초대받아 작은 책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한다. 독서 모임부터 저자와의 만남, 북콘서트, 심야책방, 책 수선, 낭독 행사까지 책방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벤트를 손수 기획하고 진행하는 책방 행사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책방지기는 책과 사람 사이에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믿으며 오늘도 책방 문을 열고 책방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저서로는 『작은 책방 꾸리는 법』,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심야책방』, 『책이 좀 많습니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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