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과잉된 미식의 트렌드에서 몸에 좋은 재료 중심의 먹거리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아가고 있는 지금, 맛의 본질에 천착하여 식재료에서 식당 운영까지 미니멀리즘의 철학을 기반으로 요리하는 한 셰프가 조용히 주목받고 있다. 바로 이수부 셰프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시작된 관심은 이제 대중에게까지 알려져 그의 미니멀리즘 요리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수부 셰프의 첫 에세이 『이수부 키친, 오늘 하루 마음을 내어드립니다』에는 그 요리 인생에서 추출한 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에게 요리사가 된 계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들을 물었다.
대학에서는 경제를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요리의 꿈을 키우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 당시 대학 갈 때는 아버님이 경영학과처럼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원하셨어요. 게다가 아버님이 기술직 공무원이셔서 자식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길 바라셨죠. 당시 제 마음 가는 대로 심리학과를 가고 싶다고 했다고 많이 혼나고 그렇게 부모님 의견을 반영해서 상경계열로 가게 된 거죠. 졸업 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계인 기술신용보즘기금(기보)에 들어갔었는데 숫자를 딱딱 원단위까지 맞추어야 하는 게 제겐 영 익숙하지 않았어요. 일은 취지도 좋고 참 좋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보증업체 사장님으로부터 조리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반대로 "내가 왜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당시 분위기로는 조리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책을 보면 1990년대에 뉴욕에 요리 유학을 가셔서 미니멀리즘의 아이디어를 얻으셨던데, 그 시절에 뉴욕의 식문화는 어땠나요? 셰프님이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듣고 싶어요.
그 당시 뉴욕은 프렌치가 대세였어요. 이제 막 프렌치에서 이탈리안으로 넘어가려는 초기였다고나 할까. 좋은 식당은 다 프렌치였고. 뉴욕이라는 도시의 상징성으로 봐도 세련되고 기량과 자기 해석이 꽃피는 그런 화원이었죠. 저도 그래서 음식 배우러 프렌치를 하는 몬트리올의 레스토랑에도 갔었는데 제 피가 그래서 그런지 경직된 틀에 맞추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짜여진 것보다 라이브 느낌이 나는 그런 생동감을 원했던 것 같아요. 어쩜 제가 음식을 늦게 배워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인내 자체를 괜히 힘들어 했는지도 모르죠.
귀국하셔서 큰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도 일하시고 교수로도 재직하셨는데, 지금의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의 운명은 신기해서 때로 남이 볼 때 근사한 것도 자기 발로 걷어차고 뭔지 모를 길을 가다 헤매고 고생하고 그러잖아요. 그땐 뭐든 해도 잘 되지 않겠어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시절 같아요. 그러다 좌충우돌하면서 다시 한계적 삶을 살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겸손해지고 한 바퀴 돌아서 결국 한끝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지금 돌아봐도 잘 했다 싶지만 그냥 제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선택하던 그 호기는 돌아보면 부럽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8년 동안 정말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고객과의 일화는 어떤 게 있으세요?
연로하신 아버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자식들과 함께 오셨던 손님이 기억나요. 자식들에게도 그 자리에서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를 하게끔 매너를 가르치고 당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도 잘 느껴져서 가끔 생각나더라구요. 할아버님이 그때 많이 불편하셨는데 제 아버님이 아프실 때 생각도 나고요. 나는 언제 그런 사람이었나. 자식한테 따스하고 부모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나? 입으로는 잘도 떠드는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가... 뭐 그런 돌아봄이 생겨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 할아버지 궁금해요. 세월의 무게가 있으니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양식을 전공하셨지만, 한식과 발효음식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요리를 좀더 만들어보고 싶으세요?
목으로 삼키고 싶은 음식. 그리고 다음 날이 편안한 음식. 그게 지향점 같아요. 사람을 살리는 음식을 하지만 사람이 살자고 자연을 헤치지 않는 그런 음식을 만들고자 합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전에 감정과 멘탈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 쓰신다는 부분이 와닿았습니다. 일상에서의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아침에 머리맡에 낙서장 두고 아침 눈 뜨기 전에 드는 생각을 정리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요. 메모 정리하면서 자기에게 숙제를 한 것 같은 성취를 스스로에게 주고 난 다음에 저녁의 에너지를 얻으러 시장에 가요. 놀러가는 걸 수도 있고. 가능하면 마음의 에너지를 제 감정에 소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일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눈앞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는 편이죠. 그래서 ‘큰일이네가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겼네…’ 이런 식으로 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 해요. 일 끝나면 따로 운동을안 하니 자기와 대화도 할 겸 집에 주로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코로나로 외식업이 힘든 시기이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음식을 서비스할 식당 운영을 목표로 하는 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간단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접시는 그 음식을 하는 사람의 캔버스이자 나를 드러내는 플랫폼이니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기 이전에 시장의 안목을 믿고 조리 경험도 늘리지만 나다움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만남을 가지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려움은 늘 있었고 있을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그것에 너무 반응하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그 어려움 속으로 뛰어드는 패기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멋진 꿈을 맘껏 꾸었으면 좋겠어요. 설령 꿈같은 얘기일지라도...
*이수부 대학 졸업 후 신라호텔 재무팀에서 일하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서른의 나이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신라호텔 조리팀에 재입사하여 근무하였고, 대학에서 조리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십대 후반 창업하여 지금까지 원테이블 식당 '미니멀리스트 키친 이수부'에서 밥 짓는 이로 일하고 있으며 재료의 맛이 드러나고 손이 덜 가는 음식 스타일을 추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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