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타인을 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정현종 시인의 유명한 시, 「방문객」을 인용하자면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기도 하니까. 『훌훌』은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기꺼이 다가가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생인 서유리는 엄마 서정희에게 입양되었고, 버림받았다. 자신을 낳은 엄마와 아빠가 누구인지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와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써 거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 한다. 그런 유리에게는 확고한 계획이 있다. 2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면 이 너절한 과거는 없던 일로 하고 새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 입양아로 자란 자신도, 자신을 버린 엄마도 모두 잊고 훌훌 떠나버리려고 하던 그때, 엄마의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그렇게 엄마가 낳고 혼자 남겨진 9살 아이, 연우와 함께 살게 된다. 유리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연우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런데 연우에게서 엄마 가정폭력 흔적이 발견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할아버지는 암 투병 중인 듯하다. 유리는 2년 후에 이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날 수 있을까?
유리는 입양되었다는 사실과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과거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그 태연함이 좋았다. 유리는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는 일에도, 타인의 상처를 직면하는 일에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연우를 옆에서 살뜰히 챙기고, 입양 사실이 알려진 세윤과 같은 아픔을 나누며, 투병 사실을 숨기는 할아버지의 상태를 관찰하고 곁을 지킨다. 소중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해와 선의를 유예하지 않는다. 그들을 알아갈수록, 비슷한 상처를 발견할수록 마음은 오히려 훌훌 가벼워진다.
타인을 마주한다는 건 그의 일생을 마주하는 일, 가늠도 되지 않는 그 부피와 무게를 상상해 본다. 올해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을 가만 더듬어볼 수 있는 바람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훌훌 날아 상처를 가벼이 쓰다듬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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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도서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