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고독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어느 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못된 장난 혹은 재미없는 농담 같은 초대. 그런데 이에 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지영의 장편소설 『고독사 워크숍』의 인물들은 “분명하고 다행하게 예비된 고독사” 앞에 고독을 견디는 훈련을 시작한다. 이들과 함께 열두 차례의 워크숍을 지나고 나면, 실패한 농담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하다 결국 시시한 농담 앞에 웃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에 잘못 배달된 질문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좌절하지 않고 기꺼이 잘못된 길을 탐색해 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루의 끝에 진심으로, “나쁘지 않아” 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독사 워크숍』은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이후 9년 만에 출간된 소설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워크숍의 김자옥 씨처럼 도서관에서 기간제 사서 일을 하기도 하고, 전규석처럼 안경과 관련한 일을 하기도 했고요. 정우성처럼 시작만 하다 마는 이야기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1,200매가 넘는 장편을 세 편 썼는데 모두 발표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공개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조 부장이 과거에 한 일처럼 사라진 사람들의 땅 ‘적야’로 갔지만 그중 몇 명에게는 초대장을 보내어 고독사 워크숍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고독사 워크숍’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워크숍 초대장을 보내는 곳으로 왜 ‘심야 코인세탁소’를 선택하신 건지도요.
▶ '나만?'이 아닌 '야 너두?'
'고독사'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또, 세상에는 결말이 스포일러 된 삶을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결말에 차마 안락사나 존엄사란 말도 놓지 못하고 그저 자연사로서의 고독사가 최선임을 아는 사람들이 있고요.
어차피 예정된 끝이라고 생각하면, 결말을 아는 채로 쓰는 이야기는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지워 나가는 방식으로 오히려 자신만의 내밀한 고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이 '살아냄의 의지' 반대편에서 작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연결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고요. 어둠 속에 홀로 고독할 때 ‘나만?’에서 ‘야 너두?’ 정도의 전환을, 고립된 채로 연결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일어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그렇게 온오프 스위치를 누르는 게 아주 힘이 들 때가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 서로에게 없는 개처럼
애써 용기 내지 않고 비겁한 상태에서 각자의 채널 안에 고립된 채로도, 고독한 개인으로서도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그저 고독한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어둠 속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정도의 살아 있음의 소음을 내는 것만으로도, 먼 곳의 다른 어둠 속의 고독한 누군가가 계속 고독한 채 존재할 수 있게 돌봐 주는 힘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어둠 속의 없는 개가 되어 고독을 유지하며 ‘관여’할 수 있는 연결된 커뮤니티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고독사가 예비된 고독한 이들은 자신을 돌보기를 잊고, 일상에 소홀해지기 쉽기 때문에 고독사 서바이벌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좀 더 적극적으로 이상적인 고독사를 쟁취하고자 애씀으로서 오히려 고독사를 아주 천천히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요.
▶ 심야 코인 세탁소
밤 산책을 하다 보면 어둠 속에 환하게 불 밝힌 무인세탁소를 종종 보게 됩니다. 세탁소의 상징적인 이미지―일상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매일 반복되는 세탁을 통해 하루를 살아내면서 생겨난 하루 치의 더러움이 제거된 옷을 입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세탁의 공간―와 함께 주택가 골목 한 귀퉁이에서 24시간 불을 밝힌 무인 세탁소―현실에서 마주하는 친근한 실제의 공간―를 보며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더러워진 하루를 지우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의 한 방, 심야 코인 세탁소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무인 세탁소가 실제로 코인 세탁소이기도 하지만 ‘코인’을 이름에 넣음으로써 가상 화폐처럼 삶을 변화시키는 가치로서 가상의 고독에 투자하는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고독사 워크숍 참가자들은 “하루 세 번 시시한 일을 수행함으로써 매일 더 시시한 인간이 되는 명랑”을 누리게 되었는데요. 오늘 작가님의 고독사 워크숍은 어땠나요?
사실 요즘 저는 시시하다기보다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전 같으면 꼭 밖에 나가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야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집에서 쓸 수 있게 된 것만도 대단한 진전이라서요. 매일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제 자신을 기특해하는 방식으로 시시해지는 중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고독사 워크숍을 통해 해낸 것 혹은 도달한 것이 조금씩 다른데요. 예컨대 송영달은 참아내는 법을 연습하고, 김자옥은 오히려 풀어지는 법을 알아 가는 것 같아요. 알리스는 못하던 것을 해 보기로 다짐하고요. 소설 속에서 작가님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인물 혹은 필요로 하는 워크숍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공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글을 쓰고 지우는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까운 건 아이스크림 부활 버튼을 누르는 조문남 씨인 것 같습니다. 먹어 본 적도 없고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아이스크림, 그게 세상에 다시 나온다고 해서 특별히 삶이 달라질 것도 없는 아이스크림의 부활을 위해 매일,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어색하게 번역된 메일을 보내고 그 메일이 전달되었는지조차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저 매일 아이스크림 부활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제가 『고독사 워크숍』을 쓰면서 한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시기를 지내는 동안 고독한 건지 고립된 건지 모를 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SNS를 통해 바깥과 연결되어 있어도 결국 혼자라는 사실이 되레 분명해지기도 하고요. 명랑하고 고독하게 살기 위해서 ‘고독의 코어’를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요?
코어 운동, 코어 단련이라고 검색해 보면 많은 운동과 방법이 나오는데요, 저는 일차적으로 고독의 코어 역시 실질적인 코어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력이 형편없고 잠시만 책상에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픈 자의 처절한 외침입니다. 고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주어지는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고독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상냥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상냥함 역시 체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휴식을 하고 적당한 근로와 사회생활을 통해 '아아 빨리 집에 가서 혼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그 혼자의 시간에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하는 것,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고 좋아하는 것이 많은 자신과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독사 워크숍의 초대장이 전달되는 매체 중 하나는 도서관의 책이에요. 소설 전체에도 그림책부터 SF, 시집까지 다양한 책들이 등장해 작가님의 폭넓은 독서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준비하는 경장편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에 제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인간들은 맨날』이라는 최진영 작가님의 그림 에세이도 재미있었어요.
작품을 쓰면서 어떤 독자에게 이 이야기가 닿길 바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에게 『고독사 워크숍』의 이야기가 가장 필요할까요?
이 책에 필요라는 말을 쓸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제가 생각한 첫 번째 독자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좀 더 나이 든 후 요양원에 있는 저였어요. 저는 제가 고독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저와 끝까지 함께하는 건 제가 좋아하는 몇 권의 책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 책 속에 함께 고독사할 친구들을 많이 넣어 두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자주 마지막까지 함께 할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그건 제가 등단하던 해에 이사를 할 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삿짐을 나르는 걸 지켜보시던 주인 할머니께서, 낡은 집이라 책은 무거워서 구들장이 내려앉을 수도 있으니까 2층으로 들고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방이 2층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밤새 구들장이 내려앉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하다가 세 권의 책만을 골라 침대 곁에 놓아두었어요.
읽다 만 책과 읽으려고 했으나 계속 읽지 못한 책, 그리고 다 읽었으나 곁에 두고 싶은 책 한 권. 자다가 빗소리에 깨었는데 낯선 곳에서 한밤중에 잠이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지 않더군요. 스탠드를 켜고 침대 곁에 두었던 다 읽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어요. 방 안까지 들이칠 것처럼 빗소리가 거센데 책을 읽다 보니 점차 빗소리도 멀어지더군요. 그때 책의 문장을 비추던 불빛과 (아마 스탠드 불빛이 내는 온기였겠지만) 글을 읽으며 이상하게 따뜻해지고 평온해지던 게 생각나요. 그 후로 그것이 제가 제 책에 대해 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원대한 꿈이 되었습니다.
그런 비 오는 밤은 제게도 언젠가 또 올 테고, 다른 방,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그 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날에도 우리 곁엔 책이 있으니까, 그것이 꼭 제 책이 아니더라도, 그런 밤에 펼쳐 볼 수 있는 책들을 한 권씩은 가지고 있었으면 합니다. 제 책이 언젠가 그런 책들을 만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책이 된다면 좋겠어요.
*박지영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2013년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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