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한 에세이 『콜센터의 말』은 일본 여행사 콜센터에 입사한 저자가 이방인의 세심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들여다본 ‘콜센터의 말’들을 담고 있다. 코로나 시기 콜센터 상담원 일을 시작한 이예은 작가는 분노에 찬 고객의 널뛰는 목소리 앞에서도 ‘솔’ 음의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고,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어 고객에게 연신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고객이 건넨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고, 무리하지 말라는 직장 동료의 한 마디에 힘을 얻는다. 말에 얽힌 이야기들을 꺼내 놓은 작가의 바람은 하나다.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 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는 것.’
브런치북 대상 수상 이후 6개월 만에 『콜센터의 말』이 출간되었어요. 책 출간 과정은 어떠셨는지, 책이 나온 소감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콜센터의 말』의 원작인 브런치북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은 애초에 출간을 기대하지 않고 쓴 글이에요. 퇴사 후 2주 동안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쏟아냈을 뿐이고, 분량도 3만 자에 불과했거든요. 대상 수상 후 6개월 동안 제목과 목차를 새롭게 구성하고, 7만 자 이상을 추가해야 했어요. 편집 회의에서는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솔직히 막막했죠. 이직한 회사에서의 근무도 시작한 상태였으니까요. 초고를 완성할 때까지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필에만 매달렸어요.
다시 떠올리기 힘들어 브런치북에 담지 못한 에피소드를 포함해, 수면 아래에 있던 모든 기억을 건져 올려 한 권의 책을 완성했어요.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출간을 통해 독자님과 만나게 된 황홀함에 다 덮이는 것 같아요.
출간 전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콜센터의 말』이 한 차례 소개되었던 적이 있어요. 재일교포 할아버지의 ‘일기일회’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는 반응을 보인 독자들이 많았는데요. 브런치북 연재에서부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다면요?
‘일기일회’ 에피소드에 대한 독자님의 반응이 무척 놀라웠어요. 전화를 받을 때는 제 감정은 꾹꾹 눌러 둔 채 실적에만 집중해야 해서,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었거든요. 물론 나중에 그분의 말을 곱씹으며 뭉클해지긴 했지만, 제삼자가 볼 때 눈물이 날 만한 상황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당시 한창 초고를 쓰느라 고생하던 시기였는데 유튜브 댓글 중 ‘큰일 났다. 너무 읽고 싶은데 출간이 안 됐다니!’라는 반응을 보고 동력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따뜻한 말을 건네는 고객들이 있는 한편, 어떤 고객들은 콜센터 상담원, 특히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무례하고 차별적인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같은 시기 회사 바깥의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코로나 시기에 외국인으로서 지냈던 일상은 어땠나요?
일본이라는 섬 안에, 또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 고립된 기분이었어요. 처음 코로나19가 확산되며 감염자 한 명 한 명이 비난받던 시기에는 혹시라도 저 때문에 일본에 사는 모든 한인 분들께 피해가 갈까 봐 극도로 외출을 꺼렸어요.
대학 졸업 후 줄곧 여행업계에 종사했으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컸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답답함도 버거웠죠. 콜센터에 함께 근무한 한국인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어 큰 위안이 됐어요. 그렇지만 저는 수입이 끊기지 않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유학생, 취업 준비생, 자영업자분들을 생각하면 감히 위로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요.
책에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폐를 끼쳤습니다’ 하며 자신을 낮추는 상담원의 존경어와 겸양어가 많이 등장해요. 존댓말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종종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잘못된 존대어 사용을 보게 되기도 하는데요.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오류 혹은 실수를 보시는지 궁금해요.
일본어의 존경어와 겸양어는 일본인에게도 어려운 것 같아요. 콜센터 교육 기간 중에 원어민 동료도 곧잘 표현을 지적받곤 했거든요. 과도한 친절에서 나오는 비슷한 일본어 사례로 ‘이중 경어’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배견하다(はいけんする)’라는 단어가 이미 ‘보다(見る)’의 겸양어인데, 여기에 ‘하다(する)’라는 동사까지 겸양 표현인 ‘시킴을 받다(させていただく)’로 바꾸는 식이에요. 하지만 이미 널리 사용되는 이중 경어 표현도 많아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분위기예요.
가끔 말이 전부가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상처를 주는 것도,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도 말 한마디면 충분하니까요. 오직 말로만 소통하는 콜센터에서 일하시면서 말이 가진 힘을 실감하셨을 것 같은데요, 대화를 나눌 때 작가님이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 있을까요?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적 표현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가급적 삼가려고 노력해요.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야지’, ‘더 늦기 전에 결혼하고 아이 낳아야지’와 같은 정답을 정해 둔 조언이 큰 스트레스였거든요.
‘문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넓은 단위를 떠올리지만, 개인에게도 저마다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말이 함부로 나오지 않아요. 또, 타인을 비하하는 짓궂은 농담이나 대답하기 싫을 수 있는 질문도 지양하려고 해요.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실언하고 나서 혼자 자책하는 밤이 수두룩하지만요.
글을 쓰면서 콜센터에서의 힘든 시기를 견뎠다고 하셨어요. 작가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며칠 전 한 친구가 제게 ‘글로 스트레스를 푼다’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에요.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글의 소재라고 생각하면 왠지 이득을 본 기분이 들거든요. 또 글은 제 자존감과 삶의 의미를 채워 줘요. 매일 아홉 시간씩 거대한 조직의 부품으로 일하다가도 노트북을 여는 순간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어요. 제 고유한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저뿐이니까요. 제가 위로를 얻은 작품 중에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아요. 단 한 분의 독자님이라도 제 책을 사랑해 주신다면 성공한 게 아닐까요?
끝으로 요즘 작가님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 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도요.
요즘 ‘좋은 하루 보내세요’보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자주 듣고, 저도 즐겨 써요. 외부 상황이 불안정한 탓에 내면의 안온함이 더욱 간절한 시기라, 마냥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평안한 하루’라는 말을 볼 때마다, 오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내 감정이 휩쓸리게 놔두지 말자고 다짐하게 돼요.
저는 앞으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도 두 번째 여행 에세이를 집필 중이고, 출간 후에는 아이 없는 결혼 생활에 대한 진솔한 글을 쓰고 싶어요. 또, 해외에서 혼자 방황하며 성장했던 이야기를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로 담고 싶은 바람도 품고 있습니다.
*이예은 198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5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오래 해 왔다.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로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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