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너무 많이 온다. 일단은 반갑다. 주욱 가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쏟아지니 병원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태생적으로 엄청난 방향치인 데다가 빗줄기로 시야까지 불투명하니 이 길이 저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다. 지금 휴대폰을 켜면 회사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할 것만 같고, 앞으로의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해 버릴 것만 같아 지도 앱을 볼 수도 없었다. 걷다 보면 닿겠지. 사람들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 두 번만 건너면 되는 횡단보도를 여섯 번 건너자 눈에 익은 라멘집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았다. 천천히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을 25분 만에 닿았다. 잘했어, 잘했다. 어찌 되었든 오긴 왔으니까 되었다.
병원 로비는 언제나 너무 춥거나 너무 덥다. 누구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온도 차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시답잖은 것에 호기심이 붙는다. 실내의 온도는 왜 항상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사람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 걸까? 적당히 덥고 적당히 추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푹 젖은 바지에 달라붙은 정강이가 한순간에 훅 식었다. 로비 안은 비 같은 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느냐는 듯 뽀송뽀송. 주광색 전구는 터질 듯 빛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천천히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아 넣고 후욱, 스틱스강을 건너듯 카운터로 향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 령 화 입니다.
네? 뭐라고요?
김. 령. 화. 예요.
가운데 령이 리을 령 자 입니다.
오늘 예약 안 하고 오신 거예요?
네… 좀 급해서.
오래 기다리셔야 될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네. 그럴게요.
저쪽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미안하다. 예약도 없이 온 사람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찌푸린 저 미간에 너무 미안하다. 처음부터 민폐.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게다가 어려운 이름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어이없어하며 어디에 앉을지 둘러본다. 가운데 앉기는 싫지만 딱딱한 의자는 더 싫다. 딱 하나 남은 소파 자리에 천천히 앉는다. 푸욱 하고 몸이 의자 속으로 들어간다.
예약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도 15분 후에 진료를 받고, 정시에 도착해도 15분 후에 진료를 받는다. 에어컨은 이렇게 빵빵하게 틀어놓고서는 이런 것을 불만 삼는 자는 없었던가. 그렇지만 오늘은 예약을 잡고 온 날이 아니라 언제 진료실로 들어갈지 모른다. 출근길에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크게 뛰고 이유도 없는 눈물이 흘렀다.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린 후에 결국 미팅을 미뤘다. 그러고는 원래 내려야 할 역을 네 개 지나쳐 빗속을 뚫고 병원으로 온 것이다. 의자에 앉으니 내가 왜 지금 여기 앉아 있는지 새삼 떠올랐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천천히 쉬자, 숨을 코로 쉬자, 숨을 길게 쉬자,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자...
결국 또 병원으로 왔구나, 병원이 나쁜 곳인가? 아니 병원은 잘못이 없고 내가 나쁘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의 정반대 짓들만 골라서 하다가 이만 몇백 원짜리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또 여기에 앉아 있다.
처음 정신과에 가던 순간이 기억난다. 가기 무서워하는 걸 친구들이 격려해 줬고, 몇백 번은 탄 마을버스를 타고도 오 초에 한 번 행선지를 확인했다. 평생 도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의 인지 능력은 죽는 그 순간에 멈춰 그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고 하는데, 평생 주황색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죽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내릴 정거장은 결국 오고 말았고 많은 사람들 틈에 밀려 버스에서 처참히 뱉어졌다.
누가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괜히 얼굴을 가리고 병원에 들어간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갑자기 웃음이 났다. 병원, 한의원, 오래된 카페 같은 곳에 가면 케이팝이나 오래된 가요, 혹은 어떤 음악이든 기계가 연주한 것처럼 피아노 솔로 편곡이 되어 잔잔히 흐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병원 역시 딱 그랬기 때문이다. 상큼한 걸 그룹의 노래 - 특히 같은 노트로 랩처럼 톡톡 쏘는 부분 - 가 맥없는 동동동 소리로 연주될 때마다 헛웃음이 났다. 잘 왔다 하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여기 왜 와 있지? 그 정도로 아픈가?’ 같은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소파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싫어하는 책들이 골고루 늘어져 있어서 제목을 훑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행복도 해야 하고, 부자도 되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고, 성공도 해야 한다. 책 한 권을 읽으면 해결되나요? 며칠 전 읽었던 이슬아 작가님의 글에서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나의 테두리가 조금씩 조금씩 넓어진다고 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그 책들이 우스웠다.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울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계속 울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오래 힘들게 울어도 죽지는 않는구나 싶을 정도로 울었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입원을 권유하셨지만 당장의 돈벌이들을 놓칠 수가 없어 거절했다. 그때 입원했으면 뭐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네모네모 로직을 풀면서 그때의 용기 없던 나를 탓했다. 어차피 또, 또, 또 이렇게 무너질 거였다면 그때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나았을까. 아직도 내 앞에 대기 손님은 하나도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예약을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 소용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도착지는 아주 추운 여름의 가죽 소파. 마스크가 푹 젖었다. 콧물이 엉겨 기분 나쁘게 차가웠다.
첫 병원에 다니면서는 감정의 기복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불안했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그렇듯 우울증의 증상들을 자기 자신의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변하는 것 같고, 내 자신이 아니게 된 것 같고, 나는 아파야 비로소 ‘나’로 완성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곤 한다. 우울한 나 대신 멍한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하품이 너무 많이 나와 턱이 얼얼한 내가 여기저기 변명을 하고 다녔다.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모두 바삐 살아가고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날에는 지나가는 사람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묻고 싶었다.
당신의 인생도 진짜인가요? 이렇게 괴롭고 무섭고 아프고 짜증 나는 몸뚱이를 가진 사람이 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로 정말인가요?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다들 어떻게요?
그 후로 서너 번 병원을 옮기고 약도 늘어났다.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스스로 약속한 것들을 어기며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만이 내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병원에서는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검사 같은 것도 없이 이전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들을 다시 주었다. 나는 그 체크 리스트가 필요했다. 모든 문항을 꼼꼼히 읽고 1점과 5점 사이의 간극을 가늠하고 싶었다. -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괴롭고 귀찮게 느껴졌다, 어느 누가 도와준다 하더라도 나의 울적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다. - 내가 쓴 것 같은 남의 일기를 읽고 싶었다. 그렇지만 진료를 받고 나와 시계를 확인했을 때 5분이 넘지 않은 날들이 지나가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는 사람이 죽은 듯 울었다.
나는 왜 이럴까요. 내가 왜 이럴까요.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 말을 제외하고 내게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솔직히 말하자. 이번에 저 진료실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으면 제발 좀 건강해지자.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혼자 남겨져 있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누군가 심장을 꽉 쥐고 놓지 않는 것 같다고. 너무 많이 잠든 것 같아 시간을 확인하면 이전에 확인했던 시간에서 30분이 지나가 있고, 땀이 너무 많이 난다고.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해 나를 사랑해 준다는 아무나 내 세상 속으로 들여놓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도망간다고. 결혼도 하지 않을 거면서 이혼한 사람들의 연애 서사를 그린 예능 프로그램에 중독됐다고. 술 마시는 것을 멈출 수가 없고, 사라지고 싶지만 잊히고 싶지는 않다고. 무엇보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너무너무 너무 싫다고.
령화 님,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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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뮤지션, 작가)
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
아꼬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