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가끔 귀여운 그림책 『야호! 비다』를 꺼내 봅니다. 1분도 채 안 돼 후루룩 넘길 수 있는 분량인데 보고 있으면 미소를 짓게 됩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웃음입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다니 매우 경제적인 처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호! 비다』는 비가 내릴 때, 실제로 비가 내릴 때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비가 내릴 때,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책장을 열면 이런 글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첨벙첨벙
도시에 비가 내려요
비가 오네
할아버지가 불평하며 소리쳐요
비가 오네
한 꼬마가 신나서 외치지요
두 사람은 어떻게 똑같은 하루를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산을 들고 따라가 봐요.
그렇다면 따라 가봐야죠. 그렇게 책장을 넘깁니다. 그림책은 미국의 재능 있는 작가 '린다 애쉬먼'이 쓰고, 어린이책 분야의 양대 주요상인 '칼데콧'과 '뉴베리상'을 동시 수상한 '크리스티안 로빈슨'이 그린 작품입니다. 2013년에 출간돼 '애즈라 잭 키츠상'을 받았는데, 애즈라 잭 키츠를 좋아하는 저로선 그래서 이 작품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눈 오는 날』과 『피터의 의자』 등으로 유명한 애즈라 잭 키츠는 1962년 『눈 오는 날』을 통해 미국 그림책 역사에서 처음으로 흑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뉴욕 브룩클린의 유태계 폴란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고 힘든, 소외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관심, 사랑을 담아냅니다. 그런 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참 섬세하게 잘 읽어내는데 '애즈라 잭 키츠 상' 수상작들에서도 그런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비가 옵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비가 오는 것이 너무너무 싫고 귀찮은 할아버지, 오른쪽 페이지에는 비가 와서 신나는 우리의 주인공 소년이 등장합니다. 둘은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비가 오네!"
그런데 비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주 다릅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장화를 신고, '끔찍한' 비옷을 입고 나가서,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에 '이런 물 엉덩이'라며 짜증을 내고, '온통 나쁜 소식뿐'이라고 투덜댑니다. 하지만 아이는 '좋아하는' 개구리 모양의 우의를 입고 '개굴개굴'하고, '폴짝폴짝' 뛰어나갑니다. 할아버지가 있는 곳은 칙칙한 회녹색 건물, 아이가 있는 곳은 노란색 건물, 또 주변 사람들의 표정까지 명확하게 대비시킵니다.
그렇게 같은 시간, 같은 곳,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사람이 동네의 카페에 함께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커피, 설탕 빼고'를, 아이는 '달콤한 코코아와 쿠키'를 시킵니다. 이들의 주문에선 할아버지와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설탕을 뺀 쓴맛과 세상 달콤한 맛 말입니다.
수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느끼는 기본 맛을 단맛과 쓴맛이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인간의 기본 맛을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네 가지로 꼽았고, 최근엔 사람에 따라 열다섯 가지 이상의 맛을 느낀다지만, 저는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때론 달콤하지만 때론 쓴, 우리 인생의 비유 같아서요. 『야호 ! 비다』의 두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쓴맛을, 아이는 단맛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이 둘은 딱 부딪칩니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화를 냅니다. 하지만 아이는 떨어진 할아버지의 모자를 주면서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모자를 자신이 씁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꼬마 아이의 개구리 모자를 써봅니다. 할아버지도 아이를 따라 '개굴개굴'하며 웃습니다. 기쁨이 어떻게 전염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물론 세상은 그림책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아이처럼 마냥 즐겁게 지낼 수도 없습니다. 같은 세상도 다른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마음먹는 대로 된다고, 그러니까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라는 세상의 흔한 요구처럼 폭력적인 것도 없습니다. '긍정주의'에 대한 지나친 예찬이야말로 진심으로 마땅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에, 그것도 자기 인생에 심술궂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을 보려는 마음,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못 하겠어', '못 해먹겠어'가 아니라, 그래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마음먹는 게, 더 나은 선택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느 누구의 예외도 없이 때론 비가 내립니다. 그럴 때, 화를 내고, 짜증내고, 때론 스스로를 내팽개치며 속수무책으로 비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내버려두기보다는 그래도 나의 우산을, 활이 구부러지고 찢어진 우산이라도 꺼내 쓰고 걸어가는 것, 그게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때론 빗속에서도 우리 자신에게 다정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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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