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의 바로잡는 의학상식] 임상 시험은 참여하는 것이 좋은가?
인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임상 시험이 필수 불가결하다. 아무리 명약이라도 임상 시험이 수행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글ㆍ사진 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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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화요일,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가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의학 상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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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약품은 크게 전문 의약품(prescription medicine)과 일반 의약품(over-the-counter drug, OTC)으로 구별된다. 이 둘 외에 영양제도 있고, 체제가 다르게 유통되는 한방 의약품도 있다. 의료 소비자인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이들 약물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시스템에 의해 구분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이 약물들은 실상 거의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한 마디로 약효를 검증하는 절차와 수준이다.

약효 검증의 절차와 수준이 도대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일까? 이는 과학적 임상 시험의 수행 여부를 말한다. 전문 의약품은 '반드시'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 약물을 개발한 제약 회사가 전임상(비임상) 시험(preclinical study) 및 임상 시험(clinical study)을 수행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각국의 규제 기관에 제출하여 심사를 받는다. 규제 기관에서는 해당 적응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적절한지 그 결과를 검토한 후 승인 혹은 거절하게 된다.

반면, 일반 의약품은 전문의의 처방 없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구입하는 약물을 통칭한다. 처방 의사가 개입하지 않는 이유는, 

1) 이미 과거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온 약물 성분이라 약효 검증을 위한 새로운 임상 시험이 필요 없으면서, 

2) 치료 효과나 부작용이 일반인이 감당할 정도로 약한 수준인 경우이다. 

임상 시험 없이 과거부터 사용되어 온 약물이라고 해도 효과나 부작용 측면이 중요하면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게 된다. 일반 의약품 중 요즘 큰 관심을 받는 건강 기능 식품, 일명 '건기식'은 대부분 영양제들이다. 영양제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로, 특히 비타민과 무기질, 오메가 지방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영양제는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물에 충분할 만큼 함유되어 있어, 영양 부족 상태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굳이 찾아서 먹을 필요는 없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과거부터 영양제 및 보약에 관한 오래된 맹신이 있다 보니,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많은 임상 시험이 수행되었으나 그 효과가 제대로 증명된 적은 거의 없다. 영양제에 관한 필자의 의견은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럼 임상 시험은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될까? 제약 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면 세포 실험, 동물 실험을 통해 약효를 검증하는 효능 시험을 수행한다. 이후 전임상 시험에서는 소동물, 대동물에서 독성, 약리 작용을 평가하고, 그 다음 임상 시험에서는 사람에서의 약리 효과를 검증하게 된다. 임상 시험은 1상부터 4상까지 크게 4단계로 구별된다. 1상 임상 시험은 소수의 자발적 참여자인 정상인(1a) 혹은 환자(1b)에게 약물을 사용하면서 효과보다는 부작용, 독성, 약리 기전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2상 임상 시험은 신약의 목표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 용량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평가하면서 치료 약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3상 임상 시험은 치료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는 임상 시험으로서, 최종 허가를 위해 가장 많은 환자가 참여한다. 수십 개국에서, 수천 및 수만 명의 환자들에게, 수년 간 수행되는 경우다 다반사다. 규모가 큰 만큼 최소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까지 임상 비용이 소요되게 된다. 임상 시험은 모두 의학적, 과학적 검증을 목표로 한 것이므로 개발한 회사의 입김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4상 임상 시험은 치료제가 허가되어 시판된 후,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그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하는 임상 시험이다.

1, 2, 3상 임상 시험에서는 다양한 오류를 배제하기 위해 개발사, 처방 의사, 환자에게 모두 어떤 약이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조치하는 무작위 배정과 맹검법이 기본 방법이다. 대조군에게 주는 약은 플라시보(placebo)로서 가짜 약이지만 치료제와 동일한 제형으로 만들어져 겉으로 도저히 감별을 할 수 없도록 제작된다. 최종 결과 역시 임상 시험을 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분석되며, 예상된 효과를 얻지 못해 최종적으로 실패하더라도 인류의 학문 발전을 위해 논문으로 그 결과가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셀 수 없는 수의 임상 시험이 수행되며,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전문 의약품은 이렇게 어렵고, 지난하고, 값비싼 경과를 거쳐 출시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연구 윤리 및 과학적 분석 방법의 발달로 임상 시험은 점점 더 정확하고 정교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의사를 하면서 수많은 임상 시험에 연구자, 치료자 및 분석 위원으로 참여해왔다. 그 과정에서 임상 시험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인류 의학 발전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느낌과는 별개로 일반인들이 가지는 임상 시험의 이미지는 꼭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독성이 많은 약물의 임상 시험을 일부러 후진국에서 수행한다는 둥, 임상 시험용 약물은 독성이 높아 피해야 한다 둥, 언론과 소셜 미디어가 부풀려 놓은 실체 없는 공포가 만연해 보인다. 이에 대해 간단히 필자의 의견을 주고자 한다.

위험한 임상 시험을 후진국에서만 시행한다고? 완전히 잘못된 의견이다. 미국의 FDA, 유럽의 EMA, 우리나라의 식약처 등 각국의 규제 기관에서 약물 시판 허가를 위해 제시한 조건이 하나 있다. 임상 시험은 그 나라 국민들 혹은 그 나라의 인종과 민족을 대표하는 집단에서 연구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인 국가인 서구에서 약물이 시판되기 위해서는 백인 집단이 많이 포함된 임상 시험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임상 시험하고 미국에서 약물이 허가되는 상황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에서 시판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 국민이 절대 다수로 이루어진 임상 시험이 수행되어야만 한다. 물론 1상 시험은 이런 지역적, 인종적 규제가 없어서 후진국에서 많이 시행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1-2상 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다. 이들 나라는 정책적으로 초기 임상 시험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이들이 후진국인가?

임상 시험용 약물은 독성이 많다? 애초에 독성이 심한 약물은 전임상 시험인 세포 및 동물 실험에서 대부분 걸러지는 시스템이다. 예기치 못한 극소수의 독성도 1상 임상 시험에서 단 한 명이라도 심각한 독성이 발견되면 그 즉시 임상 시험을 중단하도록 규제를 받는다. 지금도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기형아 출산 독성을 가진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최근의 이런 과학적인 임상 시험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에 시판된 약물이다. 지금은 이런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환자로서 병원에 다니다가 임상 시험을 제의 받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임상 시험의 참여는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참여 여부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거절한다고 해서 의사 및 병원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환자에게 훨씬 이익이다. 3상 임상 시험이라면, 이미 전임상, 1-2상 시험을 모두 거친 약물로서 부작용은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또한, 임상 시험 약물은 기존 치료제의 약효를 훨씬 뛰어 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질환을 가진 환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시판될 경우에 너무 비싼 가격으로 접근조차 못할 그런 약물을 임상 시험 기간 동안엔 약 뿐 아니라 필요한 검사도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임상시험 환자로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점을 포함해 그 외 다양한 장점들이 있다. 당연하게도 본인이 대조군에 배정된다면(물론 이를 알 방법은 없다) 플라시보를 투약하므로 치료제의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대조군도 시험용 약제를 제외하고는 최선의 치료를 유지하도록 윤리 위원회에서 강제하고 있기에, 대조군이라서 볼 손해는 거의 없다. 물론, 1상 임상 시험은 부작용을 관찰하기 위해 소규모의 자발적 참여 정상인에게 수행되는 것이므로, 굳이 찾아가면서까지 참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2-4상 임상 시험은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3상 임상 시험이 굴지의 기업에 의해 수행되는 다국적 임상이라면 더욱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또한 4상 임상 시험은 이미 효과가 검증되어 시판 중인 약물이므로 참여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인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임상 시험이 필수 불가결하다. 아무리 명약이라도 임상 시험이 수행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연구 윤리의 발전으로 인해 수많은 보호 장치도 준비되어 있으니, 후세 인류에게 좋은 약물을 선물한다는 책임감으로 기분 좋게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마음을 가져보도록 하자.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승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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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자.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