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의 시작에 연말이 자리한 건 신의 한 수다. 망했던 흥했던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기. 고작 숫자 몇 개가 바뀔 뿐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 찰나에 자신을 둘러싼 온갖 찝찝한 기억과 일 년 치 업보가 단번에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개운한 환호를 보낸다. 직접 모시진 않아도 마침 12월 말에 태어났다는 그 분 덕에 한층 화려해진 거리와 캐럴이 전하는 흥분은 덤이다. 이제는 인간 크리스마스 자체가 되어버린 머라이어 캐리가 '아아아~'를 구성지게 불러 젖히는 순간, 세상은 온통 희고 붉고 푸르러진다. 모두 단체로 웃음 가스를 마신 것처럼 이유 없이 즐거워지기도 하고, 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연락처 목록을 열어, 그리운 이름들을 눈으로 불러보기도 한다. 오직 연말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세상이 온통 반짝이는 사이, 잊힌 감정이 있다. 온통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는 원색의 소란 속에서 자그마하게 자리한 애틋함.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연말은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그래야만 하는 시기다.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새 출발을 위해선 지난날과의 이별이 필수다. 아쉬움의 크기와 상관없이, 지금과 안녕을 고해야만 새날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헤어짐의 연속 가운데, 매해 조금씩 애틋함이 쌓여간다. 미련이라는 한 단어로 퉁 쳐지는 이 감정의 자리는 누군가 굳이 파헤치지 않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깊은 마음 한구석이다. 불안하고 어두운, 누가 눈치라도 채면 약점이 되어버리고 마는 어른스럽지 못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뉴진스의 새 노래 'Ditto'는 바로 그 감정 주머니를 정확히 찾아내 자극하는 트랙이다. 1월 2일 발매될 싱글
뉴진스의 이러한 특징은 이들을 의심할 여지 없는 분명한 케이팝이면서도 케이팝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순간 가장 매력적인 색다른 아이콘으로 만든다. 노래 'Ditto'도 그렇다. 이 시즌이 되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겨울 시즌송이자 멤버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구성의 케이팝이지만, 건드리는 마음의 영역이 다르다. 'Ditto'를 들으며 지난 무수한 겨울을 떠올려 본다. 뼛속까지 시리던 영하의 추위와 거대한 트리, 왁자지껄했던 거리 풍경과 친구들의 웃음소리 사이 숨겨져 있던 작은 기억 조각들이 느릿느릿 떠오른다. 길을 가득 메운 인파 속 절대 놓지 않았던 손이 전하던 온기, 온몸이 쿵쿵대도록 울리던 맥박,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욱신대던 심장 같은, 그런 기억들. 축축한 기억에 허우적대다 눅눅해지기 전에 여지를 남기지 않고 뚝 끊기는 엔딩까지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다. 누군가 애써 찾아준,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소중히 안아본 애틋한 한 아름 눈 같은, 그런 겨울 노래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