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위로』는 오랫동안 인문학 작가로 활동한 이강룡 저자가 마흔 무렵 스스로 과학 공부를 하며 느낀 과학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또, 과학의 물리 법칙을 우리 일상에 적용해보는 철학적 시선도 제공한다. 어렵기만 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다룬 칸트의 철학 체계와 비교되는 순간,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축성 있는 고무줄'이라는 원리가 바로 이해되는가 하면, '유전자-DNA-염색체-게놈'을 카세트테이프에 비유하는 글에서는 과거의 추억이 생각나는 동시에 생명학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새로운 공부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은 어떻게 과학 공부를 지금까지 쭉 이어오셨나요?
재능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재능.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재능이 하나고, 꾸준히 오랫동안 뭔가를 열심히 지속하는 능력이 또 한 종류의 재능이죠. 저는 천재가 아니라서 둘째 종류의 재능을 개발하기로 결심했어요. 처음에는 3일간 지속하는 연습을 했고, 그다음에는 5일을 지속하는 훈련을 했어요. 1년쯤 그런 걸 연습하다 보니까, 1개월 정도 지속하는 힘이 길러지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것은 10년 넘게, 또 어떤 건 20년을 지속하고 있더라고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셨고, 또 오랫동안 글쓰기 교양서와 역사, 철학 등 인문학 교양서를 써오셨잖아요. 어른이 되어 다시 과학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기준은 더 섬세해졌지만 판단은 더 유연해진 것 같아요. 지식 분야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이른바 '문과적 사고'만 했던 예전의 저는 용어와 어원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아요. 단어의 뜻, 글자의 뜻, 어원 등을 낱낱이 규명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질 않았어요.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죠. 명칭은 명칭일 뿐이에요. '그런가 보다' 하고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가볍게 넘어가는 게 필요할 때가 무척 많아요. 그러면 어렴풋한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문득 이해가 되거든요. 그럴 때 되게 즐거워요. 드라마나 SF 영화를 즐기려면 '말도 안 되는 초기 설정'을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단 받아들이면 인생이 즐거워지죠.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변하지 않는 전체가 진리'라고 말하고, '만물유전'으로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 원리 자체가 진리'라고 말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진리라고 하고 변하는 것도 진리라고 하니까 둘 중 하나는 틀린 것 같잖아요. 그렇지만 달리 보면 둘 다 맞는 거죠. 빛이 입자인 것도 맞고 파동인 것도 맞는 것처럼요. 에너지와 질량(물질)은 서로 모습을 바꾸지만 전체 총량으로 보면 일정해요. 그러니까 형태가 변화하면서도 전체는 변하지 않는 거죠. 근대 과학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질량 보존 법칙'으로 표현되던 것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는 통합되죠.
예전에는 철학자 탈레스, 철학자 셸링, 철학자 데카르트, 철학자 라이프니츠, 철학자 러셀만 공부했다면, 과학을 조금 알고 난 다음에는 자연학자 탈레스, 자연학자 셸링, 수학자 데카르트, 수학자 라이프니츠, 수학자 러셀의 측면도 아울러 알게 되니까, 선구자들의 사상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사의 기념비적인 저술이지만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턴의 과학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라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아인슈타인 이론처럼 더 풍부한 이론 체계를 알고 있는 우리는 『순수이성비판』의 세부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 철학사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공부하는 것으로 충분하죠.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의 파동성을 보여준 과학자 토머스 영은 고고학자이자 언어학자로서 이집트 로제타석 해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식 분야를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지식은 이어져 있고 이음매가 없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그 재미에 빠져 깊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더 깊게 공부할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지 어떻게 타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타협을 하거나 멈춘 적은 없습니다. 빠지면 무조건 더 깊이 가고자 합니다. 한번 빠지면 다른 것들은 모두 제쳐두고 물릴 때까지 끝까지 파고듭니다. 사랑에 빠져본 적 있나요? 도중에 타협하고 멈출 수 있던가요? 어떤 것에 깊이 푹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삶의 축복입니다. 아무에게나, 아무때나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뭔가에 빠져 있다고요? 인생을 만끽하세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깊이 매혹되어 한 달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자나 깨나 그것만 생각한 때가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주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만하면 됐다' 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싶죠. 만일 멈추었다면 제가 유튜브에 '불완전성 정리 증명 해설 강의' 영상을 올리는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상대성 이론의 개념을 대강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서 혼자 오만 가지 상상과 사고 실험만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던 적도 있습니다. 뭔가에 빠지는 건 축복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것에 매혹당할 기회가 줄어들어요. 약간 시큰둥해지고 무덤덤해지기 쉽죠. 호기심을 품고 어떤 것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인생을 젊게 살아간다는 말이거든요. 20~30대에는 사고 싶은 옷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옷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요. 돈이 있어도 마음을 확 끄는 옷이 안 보이고 사고 싶은 옷도 없어요.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요. 그래서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옷이나 물건이 딱 보이면 아무리 비싸도 그냥 질러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나타나는 기회가 예전에 비해 줄어들다 보니까 마음에 쏙 드는 것이 보이면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노력합니다.
개봉관에 못 가고 놓친 최신작 영화가 온라인에서 18,000원에 판매 중이라면 3천 원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마운 마음으로 그날 당장 구매하여 즐겁게 봅니다. 그러면 18,000원으로 값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빠졌다면 절대 나오지 마세요. 해변에서 옷 안 적시려고 조심조심 놀지 마시고, 그냥 처음부터 첨벙 물속에 뛰어들면 세상살이가 행복해집니다.
과학과 수학을 왜 알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세요.
"자전거나 수영을 굳이 배워야 하나요?" 하는 것과 비슷한 질문 같아요. 과학 지식은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일부러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지식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습득되는 언어 지식과는 종류가 좀 다르죠.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가 말하기를 "훌륭한 감독의 좋은 영화를 많이 찾아보고 공부를 조금씩 해나갈수록 영화 보는 재미가 엄청나게 커진다"고 합니다. 영화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영화를 볼 때 줄거리, 장면, 대사 등 두세 가지 기준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데, 영화 공부를 좀 하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준이 10개 정도로 늘어나고 영화가 두세 배는 재미있어진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기준이 100개 이상으로 늘어난 사람들이라 보통 사람들이 못 보는 영화의 숨겨진 묘미들까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해요. 심지어는 아무리 재미없는 망작을 볼 때도 '아, 이러저러해서 망했구나' 하는 걸 깨닫고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과학과 수학을 알아두면 우리 인생에 무엇이 좋은가요?
삶과 세계는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주어집니다. 똑같이 주어진 삶의 시간과 우리 앞에 펼쳐진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고 향유할지는 오롯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과 지식에 달린 것입니다. 과학 지식은 운전 같은 거예요.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지만, 배우고 터득하면 삶이 더 윤택해집니다.
『과학의 위로』에는 정말 많은 문학, 고전, 영화, 음악 등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쓰시면서 특별히 위로받은 소설, 영화, 혹은 음악이 있을까요?
'S.E.N.S.'라는 그룹의 연주곡을 좋아합니다. 고단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그래, 수고 많았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기특해' 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도 많이 들었습니다. 들으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과학 개념을 모티프로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인연에 관해 표현한 작품이잖아요. 저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스텔라장의 '사랑이고 바게트겠지, 파리'를 들으면 세상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파리에 가본 적은 없는데 아름다운 센강과 루브르, 오르셰, 몽마르뜨를 거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음악은 참 신비로워요. 조르주 무스타키의 샹송에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다"라는 노랫말이 나와요. 참 멋진 말이에요. 제 창작의 몇 가지 모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작업이지만 가장 덜 외로운 작업이기도 해요. 서로 만난 적도 없는 독자가 내 글에 공감하고 더 나은 삶과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꾼다는 건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이에요.
『과학의 위로』를 읽고 있는, 혹은 읽을 예정인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과학 공부보다 중요하고, 인문학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와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더 아껴주고 자존감을 더 높여주어야 해요.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더 멋있어지겠는걸?' 하는 동기 부여가 생기거든요. 저는 동기 부여를 했고, 실천을 했고, 지금은 전에 비해 조금 더 과학 교양이 풍부해진 인문학 강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강룡 한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재학 중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1999년에서 2003년까지 인터넷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했고, 2004년부터 전업 웹칼럼니스트,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며 교양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글을 써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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