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엄마는 세상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엄마를 대신할 순 없다'고 했다. 아이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인 엄마들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의 하루를 꽉 채워주려다 지쳐간다. 엄마가 지치면 아이의 세상도 함께 무너진다.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육아는 없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엄마가 있다. 『최소한의 육아』에는 작가가 아이와 함께 여행하며 다양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 나다운 육아 궤도를 찾아가는 과정과 벅찬 행복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첫 육아로 아이와 고군분투 중이거나 워킹맘이어서 아이에게 늘 미안하다면, 매일 SNS 속 완벽한 엄마를 보며 자책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육아의 부담은 덜고 엄마의 행복을 찾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육아'라는 제목이 엄마들에게 굉장히 솔깃하고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며 글을 쓰기가 쉽지 않으셨을 듯한데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7년 동안 10번의 시험관을 통해 두 딸을 얻었습니다. 내 온몸을 갈아 넣어 키워내는 것이 조금은 천천히 우리 부부에게 걸어와 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없는 살림에도 매번 고깃국을 끓이고, 브랜드 옷을 사 입히고, 피곤해도 자기 전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지쳐갔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년 육아를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죠. 전적으로 아이 위주였던 육아 궤도를 조금 틀어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와 함께하며 최소한의 육아를 시작했어요. 아이를 쫓아다니며 밥 한술 더 먹이는 것보다 나를 위해 커피를 타고, 쌓인 집안일 대신 낮잠을 자거나 영어 공부를 하며 잠시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육아가 즐겁고 아이가 더 예뻐 보이더라고요.
인구 절벽의 시대, 먹고사니즘과 혼돈의 시대에서 결혼과 출산은 너무도 멀고 묵직한 주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육아가 가볍지만은 않지만 절대적으로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과정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잘 먹고 잘 자는 아이, 인사 잘하는 아이, 거기서 더 나아가 혼자 책을 읽고 외국어 한두 개쯤은 가볍게 구사하는 아이는 오롯이 엄마의 노력과 기량에서 만들어진다는 사회적 흐름에 오늘도 미안함과 죄책감에 자책하다 잠드는 엄마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한 끼 정도는 굶어도 괜찮다고, 아이 혼자 잠시 심심해도 괜찮다고, 성격 좋은 아이는 엄마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글을 통해 지친 엄마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육아의 과정과 고민을 솔직하게 얘기해주신 부분에 많이 공감하시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커가면서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흔들리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이럴 때 어떻게 중심을 잡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육아법들이 있습니다. 책 육아, 여행 육아 등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가지 육아 방법이 존재하겠지요. 똑똑하고 부지런한 엄마들이 저만치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늘 흔들립니다. 여전히 남들만큼 못하면 어쩌나. 나 때문에 아이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조급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육아법은 '아이와의 관계 향상'임을 상기합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종이접기를 하고, 인형 놀이를 하고, 주말마다 어딘가로 떠나려고 애쓰지만 사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만사 제쳐두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무엇을 하든 덜 해도 되니까, 마지막은 아이와 나 둘 다 웃으며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매년 겨울에 아이와 함께 긴 여행을 다니시는데, 아이와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계획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아이의 여행은 뼈에 기록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효율성에 근간하여 모든 것이 빨리빨리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육아는 효율성과 대척점에 있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니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욕심, SNS 과시용 사진을 건져야 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단양에서의 일상을 똑같이 일궈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장소만 달라졌지 일과에 큰 변화는 없어요. 현지 놀이터에서 아이 그네를 밀며 향단이 노릇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가끔 카페에서 한참 앉아있다 돌아오곤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와 좀 더 밀도 있는 대화도 하고요.
여행을 굉장히 단출하게 떠나신다고 쓰셨는데, 작가님만의 짐을 꾸리는 꿀팁이 있다면 살짝 소개해주세요.
20대 말미 인도의 작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어요. 이란에서 시작해 5개월째 여행 중이었는데, 한 번도 빨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옷들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젊음이 주는 미소가 어찌나 싱그럽던지 친구의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어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그 친구를 만나고 '위생'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요. 자신의 몸을 씻고 가꾸기 위해 자연을 훼손시키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라는 말에도 동의가 되더라고요. 캠핑, 여행 등을 계획하면 '여기에 또 언제 오겠어?',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에 일탈을 쉽게 허용합니다. 물건을 쉽게 사고 버리지요. 일상과 여행을 대하는 태도도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지에서도 최소한의 물건으로 여행하며 현지인들과 온도를 맞추는 것.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의미 있는 여행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전 세계에서 단양으로 오는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고 계신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행자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무래도 소규모 게스트하우스다 보니 시간은 많지만 돈이 넉넉지 않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행자들이 대부분인데요. 작년에 왔던 한 외국인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미국인 도예가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였어요. 5형제의 맏이였는데 가족들이 함께 만든 과일잼이나 아버지가 만든 도자기를 판매하며 홈스쿨링으로 모든 교육을 받았더라고요. 집에서 연습해 무예, 조각, 그림, 글씨 모든 것에 능했는데 조각을 특히 잘했어요. 아보카도를 먹고 나면 씨앗을 말려 조각을 하더라고요. 저에게도 실을 엮어 아보카도 씨앗 팬던트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해 줬답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그 기억이 특별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나네요.
"'너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이렇게 근사해졌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란 문장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엄마 고지혜'가 아닌 '인간 고지혜'로서 근사해지기 위해 요즘 하고 계시는 일이나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외국인 손님들 대부분 맛집이나 여행지 추천 정도의 간단한 정보를 요청하지만, 첫 아시아 여행으로 한국을 선택한 손님들은 정말 궁금한 게 많아요. 한국 사람으로서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주위 강대국들 속에서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지 등을 물어봐요. 저도 그들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하고 영어로 자유롭게 토론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영어와 몇 가지 언어를 더 배워서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외국의 유명하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진짜 현지인처럼 몇 년씩 살고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엄마표 영어를 하지 않지만 제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제 옆에 와서 영어 그림책을 보곤 해요.
마지막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초보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생명을 낳고 키우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이대로도 충분하니, 잠깐이라도 좀 쉬세요!
*고지혜 7년 동안 열 번의 시험관을 거쳐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출근하는 삶에 사표를 던졌다. 현재 단양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이 시대 마지막 히피들을 만나고 있다. 매일 소백산 자락을 보며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길을 함께 걷고, 객실을 청소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겨울에는 게스트하우스 문을 닫고 아이들과 긴 여행을 떠난다. 오늘도 청소로 꽉 찬 하루를 보내지만 늘 인도 방랑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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