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재
책에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대학입시 준비로 각박했던 나의 사춘기에 문학청년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다음,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기자가 되고 문화부에서 문학과 출판을 담당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독서를 하게 됐어요. 직업적인 독서였지만 책을 읽고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판타스틱한 일이었습니다.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직업적인 독서가 결국은 내 직업을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문학담당 기자로서 무수한 소설을 읽고 무수한 소설가를 만나는 동안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자를 하는 동안 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자신의 이야기, 기사보다는 좀 더 긴 글, 하루나 일주일이 지나도 남는 글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었는데 소설은 그 모든 것이었습니다.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관심사와 관계해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지난 6월에 장편소설 『세 여자』(1,2권)를 냈습니다. 2005년에 시작했지만 다른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작업이 자꾸 지연되어 12년 만에 책이 나왔어요. 너무 오래 끌었고 너무 공을 들였고 너무 진을 뺐기 때문에 당분간 책 쓰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요새는 내 소설 쓰느라 미뤄두었던 남의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어제와 오늘 읽고 있는 책은 신현림 시집 『반지하 앨리스』와 문학평론가 정홍수 산문집 『마음을 건다』와 부산에 사시는 이규정 선생의 역사소설 『번개와 천둥』입니다. 드는 생각은 신현림 씨가 힘겹지만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과 문학평론가의 에세이는 문학평론보다 훨씬 읽기 즐겁다는 겁니다.
저자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 여자』는 실존인물들인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의 인생을 통해 1920~1950년대 우리 현대사를 다룬 소설입니다. ‘작가의 말’ 일부를 옮길게요.
“세 여자가 살았던 때는 역사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 비유나 풍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헬조선, 조선이라는 이름의 지옥이었다. 하지만 세 여자의 인생도 그저 지옥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씩씩했고 운명에 도전했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우리는 지금 연봉이나 승진 문제를 따지다가 우울해 하지만 이 여자들은 현실의 것들을 그닥 개의치 않았고 목숨조차 가벼이 여겼으며 혼자 몸으로 역사를 상대했다. 새로운 사상이 애드벌룬처럼 떠오르던 20세기 초반에 그들의 인생은 지옥 속에서도 가끔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