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슬픔을 선사하는 벚나무가 있는 곳 - 정독도서관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구파발이나 공기 맑은 평창동, 나라님 사는 청와대 근처를 뒤지고 다녔던 나는 정독도서관을 둘러본 후 북촌 이사를 결심했다. 결과적으로는 산, 맑은 공기를 모두 충족시키며 게다가 정독도서관까지 끼고 살게 되었으니, 주거지에 관한 한 과분한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정독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거나 빌리러 가는 곳이 아니다.
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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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어도 이사를 왔을까?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구파발이나 공기 맑은 평창동, 나라님 사는 청와대 근처를 뒤지고 다녔던 나는 정독도서관을 둘러본 후 북촌 이사를 결심했다. 결과적으로는 산, 맑은 공기를 모두 충족시키며 게다가 정독도서관까지 끼고 살게 되었으니, 주거지에 관한 한 과분한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정독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거나 빌리러 가는 곳이 아니다.
인파에 시달리는 여의도 벚꽃 구경이 어리석게 여겨질 만큼, 봄의 정독도서관은 벚꽃 대궐이다. 도서관 입구의 200년 된 회화나무가 정독도서관의 상징적 보호수라면, 문화 3교실 입구의 아름드리 벚나무는 정독도서관의 으뜸 비경이다. 이 고목에 붉은 기운이 도는가 싶으면 어느새 꽃망울이 터지고, 파라솔처럼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꽃비를 맞는 행복이라야 사나흘, 가는 봄비에도 낙화가 분분하다.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나목을 보는 시간이 길긴 하지만, 나는 봄의 한 주일 황홀한 슬픔을 선사하는 이 나무에게 안부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한편 정독도서관 입구에 있는 서울교육사료관의 벚나무는 가장 늦게 피고 져서, 벚꽃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달래 준다.
정독도서관에 장미꽃이 필 때면 이미 등나무 그늘이 짙어지고 분수가 물을 뿜는다. 이맘때면 분수가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작가 초대 강연, 시 낭송회 등이 연이어진다. 원두막과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에 수련과 연꽃이 다투어 피면, 공부에 지친 젊은 연인들이 주변 벤치에 누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거나,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는 정답고 부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인근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하얀 장갑과 모자로 무장한 아줌마들이 빠른 걸음으로 산책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장대비가 지나간 후의 정독도서관 뜰 공기만큼 신선한 게 있을까. 각종 시험, 모집 공고문이 붙어 있는 1동과 2동을 연결하는 낭하마저 낙엽이 휩쓸 때, 화장실 창가에서 이력서에 붙일 사진에 풀칠하는 취업 준비생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계절이다. 건물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애꿎은 개미를 짓이기며 불안한 미래를 달래는 청춘 또한 늦가을에 부쩍 눈에 든다. 담배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나는 도서관 뜰도 공공장소이므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하고 싶지만, 저 시절과 이 계절의 담배만큼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겸제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비 갠 후의 인왕산 그림이란 뜻으로, 화가로서의 절정기인 76세 때, 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서 본 것을 그렸다)를 새긴 석비(石碑)와 종친부(宗親府, 서울시유형문화재제9호. 조선 왕조 역대 제왕의 족보인 어보御譜와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고, 종실 제군의 봉작, 승습, 관혼상제 등의 사무를 집행하던 관청. 옛 기무사 터에 있던 것을 1981년 정독도서관 구내로 이전했다)의 경근당과 옥첩당 기와지붕, 식당 가는 길 화단에 놓인 석물 삼기에까지 흰 눈이 쌓일 때, 추위와 바람을 참으며 서 있노라면, 이곳에서 뛰놀았던 경기고등학교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조선 시대 유생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북촌의 모든 터가 그러하듯, 정독도서관 자리도 예사 자리가 아니어서 곳곳에 기념비가 서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사육신의 한 분이었던 성삼문이 화동 23-9번지에 살았고, 도서관 뒤편 언덕에는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 살아 ‘맹현’(孟峴)으로 불리었다.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의 집은 정독도서관 잔디밭이 되었고,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은 일곱 살 때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지금의 정독도서관 동쪽에서 살다가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갑신정변에 가담했다.
그런가 하면 화기도감(火器都監, 1613년 광해군 때 명나라 누르하치의 기마병을 통해 화포의 중요성을 깨닫고 총포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청)이 이곳에 있었다. 1927년부터 1938년에 걸쳐 냉난방 시설과 음수대를 갖춘 최신식 교사가 지어지면서, 근대 교육의 발상지인 경성제일고보, 현재의 경기고등학교가 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통신 부대가 접수했고, 수복 후에야 다시 경기고등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런 터인 것이다. 그러니 1976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떠난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정독도서관을 드나든다는 것은 역사 속 인물들의 넋과 만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잖은가.
안국역 근처에서 누군가와 만날 일이 있을 때, 나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재동 백송(白松)이 있는 헌법재판소 뒤뜰이나 정독도서관 연못가로 청한다. 이는 비싼 커피숍에 가기를 꺼리는 내 취향 탓만은 아니다. 정독도서관에 개근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런 정취를 지인들이 맛보았으면 해서다. 단지 건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청을 한껏 높여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매미 울음으로 가득한 너른 정원이 있고, 거기에 역사까지 켜켜이 쌓인 정독도서관 같은 곳이 서울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책장 넘기는 소리, 책 수레 끄는 소리, 에어컨이나 온풍기의 기계음, 의자 미는 소리, 소곤대는 말과 구두 발자국 소리들이 나직하게 떠도는 2동의 인문실. 한여름 무더위와 한겨울 추위를 피해, 혹은 마음이 소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인문실 창가에 자리 잡고 종일 책을 읽거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엷은 선글라스를 껴야 할 만큼 볕이 잘 드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노라면 세상사와 개인사로부터 훨훨 놓여난다. 피곤한 눈을 들면 벚나무 가지가 손을 내밀고, 이어폰을 꽂은 날씬한 다리의 여학생이 무언가 열심히 적는 모습,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졸고 계신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를 마친 정독도서관은 최근, 주차 요금 정산소 시설의 개선을 위해 도서관 입구에 있던 대나무를 뭉텅 베어 냈다. 비 오는 날 주차비를 내기 위해 차 문을 열고 나와야 하는 운전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란다. 차가 없는 나는 잠깐 비 맞으며 주차비 내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모르지만, 시원하게 맞아 주던 꼿꼿한 대나무를 잘라낸 게 무척 아쉽다. 또한 1동 출입문을 회전문으로 바꾸고 있는데, 이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외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적 조화와 눈의 즐거움을 위해 작은 불편 정도는 감수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북촌 관련 토론회에 나가보면, 정독도서관은 학교 건물로 지어졌기에 책 무게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도서관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뜰을 한국식 정원으로 바꾸고 지하에 주차장을 들이자는 의견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 현재 건물과 한국식 정원이 어울리지도 않고, 주차장은 더더구나 가당치 않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그대로의 정독도서관이었으면 한다.
정독도서관을 개인 서재처럼 이용하고 있는 나는 요가의 즐거움마저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문화 교실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수강료 대비 내용이 충실하다. 서예, 세필화, 태극권, 퀼트, 영어 등의 수업 중 요가반이 가장 인기가 있어 모집 공고가 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재빨리 돈을 내야만 20명 정원 안에 들 수 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눈 운동과 손가락 운동이 전부였던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의 몸이 이렇게 다양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유기체란 사실에 감탄했다. 요가 수업을 마치면 몸이 어찌나 개운하고 즐거운지, 학원 수강증을 끊으면 반도 못 다니고 포기하는 내가 한 친구를 끌어들이고 그 친구는 여의도 성당 친구들을, 그 성당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를, 그렇게 우리는 정독도서관 요가반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정독도서관에서는 작가 초대 낭독회, 일본어 수업, 과학 카페, 영화 상영, 한 책 읽기 모임, 구민 결혼식 등 무료거나 실비만 받는 행사가 수시로 열리고, 갤러리에선 아마추어의 그림 전시회가 끊이질 않는다. 봄, 가을 두 차례 책을 무료로 나눠 주기도 한다.
1995년에 개관한, 도서관 초입의 서울교육사료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삼국 시대부터의 교육 제도, 내용, 과정, 기관 등의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교복이나 교과서 전시회 등으로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엄마 손 꼭 잡고 오는 아기에서부터 교복 입은 여학생, 책 읽을 시간을 어찌 냈을까 싶은 가정주부, 머리 희끗한 어르신까지, 한 공간에서 지식을 탐구하던 이들이 마감 시간을 알리는 직원의 재촉에 부산하게 짐을 싼다. 무거운 책 보따리를 지고 나설 때 1동 아치 기둥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은 황혼이거나, 네온이 명멸하거나, 비가 내리거나, 해가 쨍하거나, 한겨울이거나 할 것 없이 늘 사진작가의 작품처럼 멋스럽다. 나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정말 사랑한다. 건물 계단 난간의 투조(透彫)장식들이며, 1동 3층에서 내려다보는 정원과 서울 도심 풍광 등도 나만의 북촌 풍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
<정독도서관>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길 19번지
-문의: 02-2011-5799
-홈페이지: www.jeongdoklib.go.kr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구파발이나 공기 맑은 평창동, 나라님 사는 청와대 근처를 뒤지고 다녔던 나는 정독도서관을 둘러본 후 북촌 이사를 결심했다. 결과적으로는 산, 맑은 공기를 모두 충족시키며 게다가 정독도서관까지 끼고 살게 되었으니, 주거지에 관한 한 과분한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정독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거나 빌리러 가는 곳이 아니다.
인파에 시달리는 여의도 벚꽃 구경이 어리석게 여겨질 만큼, 봄의 정독도서관은 벚꽃 대궐이다. 도서관 입구의 200년 된 회화나무가 정독도서관의 상징적 보호수라면, 문화 3교실 입구의 아름드리 벚나무는 정독도서관의 으뜸 비경이다. 이 고목에 붉은 기운이 도는가 싶으면 어느새 꽃망울이 터지고, 파라솔처럼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꽃비를 맞는 행복이라야 사나흘, 가는 봄비에도 낙화가 분분하다.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나목을 보는 시간이 길긴 하지만, 나는 봄의 한 주일 황홀한 슬픔을 선사하는 이 나무에게 안부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한편 정독도서관 입구에 있는 서울교육사료관의 벚나무는 가장 늦게 피고 져서, 벚꽃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달래 준다.
정독도서관에 장미꽃이 필 때면 이미 등나무 그늘이 짙어지고 분수가 물을 뿜는다. 이맘때면 분수가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작가 초대 강연, 시 낭송회 등이 연이어진다. 원두막과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에 수련과 연꽃이 다투어 피면, 공부에 지친 젊은 연인들이 주변 벤치에 누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거나,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는 정답고 부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인근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하얀 장갑과 모자로 무장한 아줌마들이 빠른 걸음으로 산책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장대비가 지나간 후의 정독도서관 뜰 공기만큼 신선한 게 있을까. 각종 시험, 모집 공고문이 붙어 있는 1동과 2동을 연결하는 낭하마저 낙엽이 휩쓸 때, 화장실 창가에서 이력서에 붙일 사진에 풀칠하는 취업 준비생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계절이다. 건물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애꿎은 개미를 짓이기며 불안한 미래를 달래는 청춘 또한 늦가을에 부쩍 눈에 든다. 담배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나는 도서관 뜰도 공공장소이므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하고 싶지만, 저 시절과 이 계절의 담배만큼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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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제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비 갠 후의 인왕산 그림이란 뜻으로, 화가로서의 절정기인 76세 때, 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서 본 것을 그렸다)를 새긴 석비(石碑)와 종친부(宗親府, 서울시유형문화재제9호. 조선 왕조 역대 제왕의 족보인 어보御譜와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고, 종실 제군의 봉작, 승습, 관혼상제 등의 사무를 집행하던 관청. 옛 기무사 터에 있던 것을 1981년 정독도서관 구내로 이전했다)의 경근당과 옥첩당 기와지붕, 식당 가는 길 화단에 놓인 석물 삼기에까지 흰 눈이 쌓일 때, 추위와 바람을 참으며 서 있노라면, 이곳에서 뛰놀았던 경기고등학교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조선 시대 유생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북촌의 모든 터가 그러하듯, 정독도서관 자리도 예사 자리가 아니어서 곳곳에 기념비가 서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사육신의 한 분이었던 성삼문이 화동 23-9번지에 살았고, 도서관 뒤편 언덕에는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 살아 ‘맹현’(孟峴)으로 불리었다.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의 집은 정독도서관 잔디밭이 되었고,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은 일곱 살 때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지금의 정독도서관 동쪽에서 살다가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갑신정변에 가담했다.
그런가 하면 화기도감(火器都監, 1613년 광해군 때 명나라 누르하치의 기마병을 통해 화포의 중요성을 깨닫고 총포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청)이 이곳에 있었다. 1927년부터 1938년에 걸쳐 냉난방 시설과 음수대를 갖춘 최신식 교사가 지어지면서, 근대 교육의 발상지인 경성제일고보, 현재의 경기고등학교가 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통신 부대가 접수했고, 수복 후에야 다시 경기고등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런 터인 것이다. 그러니 1976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떠난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정독도서관을 드나든다는 것은 역사 속 인물들의 넋과 만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잖은가.
안국역 근처에서 누군가와 만날 일이 있을 때, 나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재동 백송(白松)이 있는 헌법재판소 뒤뜰이나 정독도서관 연못가로 청한다. 이는 비싼 커피숍에 가기를 꺼리는 내 취향 탓만은 아니다. 정독도서관에 개근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런 정취를 지인들이 맛보았으면 해서다. 단지 건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청을 한껏 높여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매미 울음으로 가득한 너른 정원이 있고, 거기에 역사까지 켜켜이 쌓인 정독도서관 같은 곳이 서울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책장 넘기는 소리, 책 수레 끄는 소리, 에어컨이나 온풍기의 기계음, 의자 미는 소리, 소곤대는 말과 구두 발자국 소리들이 나직하게 떠도는 2동의 인문실. 한여름 무더위와 한겨울 추위를 피해, 혹은 마음이 소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인문실 창가에 자리 잡고 종일 책을 읽거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엷은 선글라스를 껴야 할 만큼 볕이 잘 드는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노라면 세상사와 개인사로부터 훨훨 놓여난다. 피곤한 눈을 들면 벚나무 가지가 손을 내밀고, 이어폰을 꽂은 날씬한 다리의 여학생이 무언가 열심히 적는 모습,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졸고 계신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를 마친 정독도서관은 최근, 주차 요금 정산소 시설의 개선을 위해 도서관 입구에 있던 대나무를 뭉텅 베어 냈다. 비 오는 날 주차비를 내기 위해 차 문을 열고 나와야 하는 운전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란다. 차가 없는 나는 잠깐 비 맞으며 주차비 내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모르지만, 시원하게 맞아 주던 꼿꼿한 대나무를 잘라낸 게 무척 아쉽다. 또한 1동 출입문을 회전문으로 바꾸고 있는데, 이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외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적 조화와 눈의 즐거움을 위해 작은 불편 정도는 감수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북촌 관련 토론회에 나가보면, 정독도서관은 학교 건물로 지어졌기에 책 무게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도서관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뜰을 한국식 정원으로 바꾸고 지하에 주차장을 들이자는 의견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 현재 건물과 한국식 정원이 어울리지도 않고, 주차장은 더더구나 가당치 않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그대로의 정독도서관이었으면 한다.
정독도서관을 개인 서재처럼 이용하고 있는 나는 요가의 즐거움마저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문화 교실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수강료 대비 내용이 충실하다. 서예, 세필화, 태극권, 퀼트, 영어 등의 수업 중 요가반이 가장 인기가 있어 모집 공고가 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재빨리 돈을 내야만 20명 정원 안에 들 수 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눈 운동과 손가락 운동이 전부였던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의 몸이 이렇게 다양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유기체란 사실에 감탄했다. 요가 수업을 마치면 몸이 어찌나 개운하고 즐거운지, 학원 수강증을 끊으면 반도 못 다니고 포기하는 내가 한 친구를 끌어들이고 그 친구는 여의도 성당 친구들을, 그 성당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를, 그렇게 우리는 정독도서관 요가반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정독도서관에서는 작가 초대 낭독회, 일본어 수업, 과학 카페, 영화 상영, 한 책 읽기 모임, 구민 결혼식 등 무료거나 실비만 받는 행사가 수시로 열리고, 갤러리에선 아마추어의 그림 전시회가 끊이질 않는다. 봄, 가을 두 차례 책을 무료로 나눠 주기도 한다.
1995년에 개관한, 도서관 초입의 서울교육사료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삼국 시대부터의 교육 제도, 내용, 과정, 기관 등의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교복이나 교과서 전시회 등으로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엄마 손 꼭 잡고 오는 아기에서부터 교복 입은 여학생, 책 읽을 시간을 어찌 냈을까 싶은 가정주부, 머리 희끗한 어르신까지, 한 공간에서 지식을 탐구하던 이들이 마감 시간을 알리는 직원의 재촉에 부산하게 짐을 싼다. 무거운 책 보따리를 지고 나설 때 1동 아치 기둥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은 황혼이거나, 네온이 명멸하거나, 비가 내리거나, 해가 쨍하거나, 한겨울이거나 할 것 없이 늘 사진작가의 작품처럼 멋스럽다. 나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정말 사랑한다. 건물 계단 난간의 투조(透彫)장식들이며, 1동 3층에서 내려다보는 정원과 서울 도심 풍광 등도 나만의 북촌 풍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
<정독도서관>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길 19번지
-문의: 02-2011-5799
-홈페이지: www.jeongdokli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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