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하듯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골목길 - 계동길
현대 빌딩 근무자들이 쉬는 ‘놀토’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을 만큼, 현대 빌딩과 운명을 같이하는, 샐러리맨을 위한 밥집 촌이다.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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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길은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현대 빌딩을 오른쪽에 끼고 중앙고등학교에까지 이르는 일직선 길이다. 현대 빌딩 왼편으로는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니기도 힘든 좁은 골목이 얽혀 있는데, 지금은 사라진 종로 피맛골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다. 현대 빌딩 근무자들이 쉬는 ‘놀토’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을 만큼, 현대 빌딩과 운명을 같이하는, 샐러리맨을 위한 밥집 촌이다.
이 상업 지구를 지나면 북촌 주민을 위한 구멍가게들이 나타난다. 길가에 장작을 쌓아 놓은 40년 된 목욕탕인 ‘중앙탕’을 비롯해, 중앙중고등학교와 대동세무고등학교 학생들이 등하굣 길에 들르는 ‘이모네분식’과 ‘왕짱구식당’, 주로 참고서를 파는 ‘문화당서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대구참기름집’, 옛날 방앗간을 추억하게 하는 ‘계동떡방앗간’, 만물상에 다름 아닌 ‘경기철물건재’까지. 이 길에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은, 망가진 가전제품을 잔뜩 쌓아 놓고 수리해 파시는가 하면,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 자잘한 수리도 해 주시는, 재활용과 아이디어의 달인 할아버지가 계시는 ‘서울종합수리센터’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정릉까지 불려 간다며 자부심을 드러내신다. 이 가게 바로 옆에는 어떤 옷을 맡겨도 꼭 맞게 고쳐 주시는 리폼의 달인 할머니의 작업장이 있다. 열쇠 수리점, 담배 가게, 쌀가게가 함께 있는 농협계동직매장 한구석에서 할머니는 재봉틀을 한 대 놓고 작업을 하신다. 믹서기가 망가져도, 청바지가 작아져도 두 분이 정정하게 일하시는 한 나는 걱정이 없다.
계동길에는 3?1 운동을 논의한 역사적 장소가 많고, 사찰 두 곳에 시민 단체까지, 뜻밖의 공간이 많다. 현재는 한옥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에 이어 커피와 수공예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북촌이 좋아 들어오는 이들이라 믿지만, 그만큼 주민을 위한 공간이 사라져야 하니 아쉽다. 게스트하우스의 외국인들이 밤새 떠들며 노는 통에, 시끄러워 이사 갔다는 주민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북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바로 이 계동길이다. 계동길 옆으로 잎맥처럼 뻗어 나간 좁고 막다른 골목까지 일일이 들어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숨바꼭질하듯 이어지는 골목, 언덕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헌 집과 방금 리모델링을 끝낸 번듯한 한옥들을 구경하노라면, 이런 땅에 이렇게 집을 짓기도, 번지수를 일일이 매기기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촌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향운요가문화원(계동 146-1, 02-741-0079, www.yogamind.org)
정독도서관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두 총각 선생님이 스승이자 부친인 정강주 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과 함께 요가를 가르치는 본부 아쉬람이다. 50평 규모의 수련실 두 개와 탈의실, 휴게실이 있고 입문반, 일반 수련반, 중급반, 요가 교육사 과정, 어린이를 위한 웰빙 요가, 임산부를 위한 태교 요가 교실이 개설되어 있다. 남자 요가 선생님이 드물고 제대로 요가를 배운 선생님도 드문 현실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인터넷 사이트 cafe.daum.net/yogashram과 cafe.naver.com/yogaspace에서도 이곳과 관련된 요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한학수의 집(계동 146-1)
조선 후기의 무신인 한규설 대감의 손자 한학수가 살던 집이다. 1945년 8월 18일, 이 집 사랑방에서 우익 진영 최초의 정당인 고려민주당이 결성되었고, 8월 28일에는 조선민족당 발기인 총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현재 마당 넓은 한옥 안채는 ‘산내리 한정식’으로 바뀌어 상견례, 결혼식 피로연, 회갑 등 많은 손님을 치르는 대형 음식점으로 30년째 영업 중이다. 나는 여기서 삼계탕을 먹고 체해 무척 고생한 기억이 있지만, 일본 무용 수료 공연을 마친 후엔 즐거운 회식 자리를 갖기도 했다. 칸칸이 나뉜 외부 행랑채에는 문방구, 복덕방, 화원 등 10여 개 상점이 세 들어 있다. 이런 한옥 상점이 신기한지 창덕궁을 오가는 외국인들이 자주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창립 본부(계동 84-2)
여운형, 안재홍 선생 등이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를 위해, 좌우익 세력을 연합하여 출범시킨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로 썼던 집터이다. 1930년대에 땅 부자 임용상이 지어 소유하다가, 해방 뒤 여운형 선생에게 기증했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굳게 닫힌 대문과 높은 담 너머, 하얀 타일을 바른 멋진 2층 일본식 저택과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심은 넓은 뜰이 보여, 보통 집은 아니거니 했었다. 오가며 이 운치 있는 저택을 눈동냥 하며 자랑스러워했건만, 2003년 4월 철거되었다.
이후 400평 대지에 꽉 차게 지어진 짙은 회색의 보헌 빌딩엔 골프용품점과 사무실이 들어서 “아니 겨우 골프용품점 들이려고 그 멋지고 역사적인 저택을 헐었나?” 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나무를 심은 뜰을 중앙에 둔 ‘ㅁ’자형 빌딩은 2005년 한국건축대상 우수상을 탔다고 자랑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전에 있던 일본식 2층 저택보다 못한 답답한 건물이다.
북촌문화센터(계동 105, 02-3707-8388, bukchon.seoul.go.kr)
북촌을 둘러보려면 먼저 이곳에 들르는 게 좋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홍보하는 전시관, 한옥 수리 관련 정보 제공과 상담을 하는 상담실, 주북촌 골목 기행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팸플릿도 구비해 놓았고 국악, 다례와 다도, 매듭, 염색, 조각보, 서예, 민화, 칠보, 한지 공예 등을 배울 수도 있다. 국악 공연 등도 자주 열리는데 그때마다 떡 잔치가 열려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의 커뮤니티 카페(cafe.daum.net/pukchon)에서도 좋은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가 입주한 한옥은 조선 말기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세도가 민형기의 며느리 이규숙이, 서울로 시집온 후인 1921년에 지어 1935년까지 살았다 한다. ‘민 재무관 댁’ 혹은 ‘계동 마님 댁’으로 불리던 이 집은 대궐을 지은 목수가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떠 지어, 제대로 된 한옥 배치와 담의 구성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에 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한 부자가 이사를 왔다가 딸만 일곱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한옥 매입의 첫 사업으로 사들여 안채, 바깥채, 앞 행랑채, 뒤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집의 원형을 살려 수리했고, 2002년 10월 문화센터로 개관하였다.
엄마학교(계동 101-3, 02-766-1963, www.momschool.org)
이른 아침, 곱게 단장한 중년 여성들이 작은 한옥으로 줄지어 들어가기에 따라가 보았다. 두 아이를 기르며 ‘한살림공동체’에서 농업, 환경, 가정교육 등에 관한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강의를 해 온 서형숙씨가 2006년 9월에 문을 연 학교란다. 이름표를 달고 온돌의를 듣는 엄마들. 엄마가 되려면 이렇게 공부도 해야 한다는 것을,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히말라야 명상센터(계동 140-41 2층, 02-747-3351, www.sanskrit.or.kr)
1974년부터 인도 명상을 공부했고 『바가바드기타』 『요가란 무엇인가』 『우파니샤드』 『스트레스 풀기』 등의 책을 펴낸 박지명 원장으로부터 인도 요가와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밀양손만두(02-7441-3272)
직접 빚은 김치 만두, 고기만두 등을 파는 작고 허름한 동네 식당이다. 옥호와 달리 밀양식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분도 있던데, 밀양식 만두가 어떤 건지는 몰라도 가격 대비 충실하여 현대 빌딩 직원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Reminis Cake(계동 120-1, 02-3675-0406, www.reminiscake.com)
생일, 파티, 결혼을 위한 주문 케이크를 만들어 팔고 또 프랑스 제과 기법에 따른 홈베이킹과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잡지, 언론에 많이 소개된 앙증맞고 비싼 케이크를 만드는 곳이 이 허름한 골목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 매장에서 컵케이크, 슈가 케이크 등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수업과 제작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을 때가 많다.
이태리면사무소(02-3676-0233)
드디어 계동길에도 크림 스파게티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젊은이들이 이름을 잘 지었다 싶은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개업 준비 중이라 맛을 보지 못했다.
배렴 가옥(계동 72, 02-748-8530, www.bukchon72.com)
산수화와 화조화로 일가를 이룬 동양화가 제당(霽堂) 배렴(裵濂)이 살던 집이다. 등록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이 집은 현재 ‘북촌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으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여느 한옥과는 달리 운이 좋은 집이다. 아담한 전통 목조 기와집으로 세 동의 건물이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앙탕(계동 133-5, 02-763-1491)
1968년에 문을 연 북촌 최초의 목욕탕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스컴을 꽤 많이 타고 있는 곳이다. KBS 2TV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백일섭과 네 아들이 목욕을 하고 나오는 장면을 여기서 찍었고, KBS 1TV <다큐멘터리 3일> ‘북촌’편에도 소개되었으며, 일간지 등에서도 추억의 목욕탕으로 자주 소개하고 있다. 북촌을 찾는 젊은이들도 경쟁하듯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궁궐에 드나드는 고급 관리와 팔도에서 온 부자들이 살던 부촌, 독립과 개화사상을 깨우친 선각자들이 이웃해 살던 동네답게, 목욕탕과 이발관도 가장 먼저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인근 500미터 내에 목욕탕 여섯 곳이 더 있었다니, 북촌 전체가 사대문 바깥 동네의 동 하나 크기밖에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그때는 타 지역에서 북촌으로 목욕 원정을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북촌 주변 빌딩마다 수영장, 피트니스센터를 갖춘 사우나와 찜질방이 들어서, 일간지에 광고 전단을 끼워 북촌 주민을 유혹한다. 그러니 감고당길에 있던 ‘복수목욕탕’은 ‘아라리오 서울’로, 화개길에 있던 한 목욕탕은 ‘코리아다이어트단식원’으로 바뀐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가끔 장작을 때는 바람에 북촌 주민은 그 매캐한 냄새로 숨이 막혀 창문을 닫아야 하지만, 중앙탕의 옛 목욕탕 분위기가 좋아 이사 간 후에도 찾아온다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적지 않다. 400환으로 시작한 목욕비가 4천 원으로 올랐지만, 40여 년 단골 성원에 유지되고 있는 동네 목욕탕. 언젠가는 화개이발관과 마찬가지로 깨진 욕조 타일, 낡은 수도꼭지, 이 빠진 머리빗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 가지 않을까. 비 오는 날, 몸이 찌뿌드드할 때만이라도 부지런히 드나들려고 한다.
석정골 보름우물(계동 25-1)
유심사 터 바로 앞에 있는 이 우물은, 우물물이 15일 동안은 맑고 또 15일 동안은 흐려져 ‘보름우물’로 불렸단다. 물이 차고 맛이 좋아 궁에서도 길어 갔으며,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 신부인 주문모가 1794년 12월 17일에 압록강을 건너와, 계동의 신도인 역관 최인길 마티아 집과 여신도 회장이었던 순교자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숨어 살면서, 이 우물물로 영세를 주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김대건 신부 역시 이곳에서 도피 생활을 하며 이 우물물을 마셨다니, 천주교와의 인연이 각별한 우물이다.
북촌에는 보름우물 외에도 물맛과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우물이 많았다. 궁에서 군인을 보내 지키게 했다는 ‘복정우물’은 코리아다이어트단식원 입구에 있었고, 종친부 터 우물은 국군서울지구병원 서쪽 북촌길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보름우물은 1987년에 복원하여 표지석을 세웠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이도 많은 버려진 우물 신세고, 복정우물은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으며, 종친부 터 우물은 그나마 아무런 표지석조차 없다.
한국옻칠연구소 칠원(계동 25, 02-764-5775, www.ott.or.kr)
옻 관련 유물 300여 점, 국내 작가 공예 작품 200여 점, 옻칠화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옻칠 회화전 등이 열리는 아름다운 한옥 공간이다. 문패 만들기 등의 일일 공방 체험에서부터 옻칠화 고급 과정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옻칠 문화 답사도 갈 수 있다. 연필, 종이칼, 합죽선, 유골함 등 옻칠이 얼마나 많은 곳에 응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옻 공예품, 옻차, 옻한과도 살 수 있다.
보름우물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바로 나타난다. 여기서 더 올라가다 왼쪽으로 꺾어 막다른 골목집에는 ‘임화숙 한지공예관’ 간판이 걸려 있다. 대문 앞 꾸밈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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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업 지구를 지나면 북촌 주민을 위한 구멍가게들이 나타난다. 길가에 장작을 쌓아 놓은 40년 된 목욕탕인 ‘중앙탕’을 비롯해, 중앙중고등학교와 대동세무고등학교 학생들이 등하굣 길에 들르는 ‘이모네분식’과 ‘왕짱구식당’, 주로 참고서를 파는 ‘문화당서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대구참기름집’, 옛날 방앗간을 추억하게 하는 ‘계동떡방앗간’, 만물상에 다름 아닌 ‘경기철물건재’까지. 이 길에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은, 망가진 가전제품을 잔뜩 쌓아 놓고 수리해 파시는가 하면, 직접 가가호호 방문해 자잘한 수리도 해 주시는, 재활용과 아이디어의 달인 할아버지가 계시는 ‘서울종합수리센터’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정릉까지 불려 간다며 자부심을 드러내신다. 이 가게 바로 옆에는 어떤 옷을 맡겨도 꼭 맞게 고쳐 주시는 리폼의 달인 할머니의 작업장이 있다. 열쇠 수리점, 담배 가게, 쌀가게가 함께 있는 농협계동직매장 한구석에서 할머니는 재봉틀을 한 대 놓고 작업을 하신다. 믹서기가 망가져도, 청바지가 작아져도 두 분이 정정하게 일하시는 한 나는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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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북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바로 이 계동길이다. 계동길 옆으로 잎맥처럼 뻗어 나간 좁고 막다른 골목까지 일일이 들어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숨바꼭질하듯 이어지는 골목, 언덕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헌 집과 방금 리모델링을 끝낸 번듯한 한옥들을 구경하노라면, 이런 땅에 이렇게 집을 짓기도, 번지수를 일일이 매기기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촌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향운요가문화원(계동 146-1, 02-741-0079, www.yogamind.org)
정독도서관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두 총각 선생님이 스승이자 부친인 정강주 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과 함께 요가를 가르치는 본부 아쉬람이다. 50평 규모의 수련실 두 개와 탈의실, 휴게실이 있고 입문반, 일반 수련반, 중급반, 요가 교육사 과정, 어린이를 위한 웰빙 요가, 임산부를 위한 태교 요가 교실이 개설되어 있다. 남자 요가 선생님이 드물고 제대로 요가를 배운 선생님도 드문 현실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인터넷 사이트 cafe.daum.net/yogashram과 cafe.naver.com/yogaspace에서도 이곳과 관련된 요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한학수의 집(계동 146-1)
조선 후기의 무신인 한규설 대감의 손자 한학수가 살던 집이다. 1945년 8월 18일, 이 집 사랑방에서 우익 진영 최초의 정당인 고려민주당이 결성되었고, 8월 28일에는 조선민족당 발기인 총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현재 마당 넓은 한옥 안채는 ‘산내리 한정식’으로 바뀌어 상견례, 결혼식 피로연, 회갑 등 많은 손님을 치르는 대형 음식점으로 30년째 영업 중이다. 나는 여기서 삼계탕을 먹고 체해 무척 고생한 기억이 있지만, 일본 무용 수료 공연을 마친 후엔 즐거운 회식 자리를 갖기도 했다. 칸칸이 나뉜 외부 행랑채에는 문방구, 복덕방, 화원 등 10여 개 상점이 세 들어 있다. 이런 한옥 상점이 신기한지 창덕궁을 오가는 외국인들이 자주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창립 본부(계동 84-2)
여운형, 안재홍 선생 등이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를 위해, 좌우익 세력을 연합하여 출범시킨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로 썼던 집터이다. 1930년대에 땅 부자 임용상이 지어 소유하다가, 해방 뒤 여운형 선생에게 기증했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굳게 닫힌 대문과 높은 담 너머, 하얀 타일을 바른 멋진 2층 일본식 저택과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심은 넓은 뜰이 보여, 보통 집은 아니거니 했었다. 오가며 이 운치 있는 저택을 눈동냥 하며 자랑스러워했건만, 2003년 4월 철거되었다.
이후 400평 대지에 꽉 차게 지어진 짙은 회색의 보헌 빌딩엔 골프용품점과 사무실이 들어서 “아니 겨우 골프용품점 들이려고 그 멋지고 역사적인 저택을 헐었나?” 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나무를 심은 뜰을 중앙에 둔 ‘ㅁ’자형 빌딩은 2005년 한국건축대상 우수상을 탔다고 자랑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전에 있던 일본식 2층 저택보다 못한 답답한 건물이다.
북촌문화센터(계동 105, 02-3707-8388, bukchon.seoul.go.kr)
북촌을 둘러보려면 먼저 이곳에 들르는 게 좋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홍보하는 전시관, 한옥 수리 관련 정보 제공과 상담을 하는 상담실, 주북촌 골목 기행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팸플릿도 구비해 놓았고 국악, 다례와 다도, 매듭, 염색, 조각보, 서예, 민화, 칠보, 한지 공예 등을 배울 수도 있다. 국악 공연 등도 자주 열리는데 그때마다 떡 잔치가 열려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의 커뮤니티 카페(cafe.daum.net/pukchon)에서도 좋은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가 입주한 한옥은 조선 말기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세도가 민형기의 며느리 이규숙이, 서울로 시집온 후인 1921년에 지어 1935년까지 살았다 한다. ‘민 재무관 댁’ 혹은 ‘계동 마님 댁’으로 불리던 이 집은 대궐을 지은 목수가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떠 지어, 제대로 된 한옥 배치와 담의 구성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에 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한 부자가 이사를 왔다가 딸만 일곱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한옥 매입의 첫 사업으로 사들여 안채, 바깥채, 앞 행랑채, 뒤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집의 원형을 살려 수리했고, 2002년 10월 문화센터로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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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학교(계동 101-3, 02-766-1963, www.momschool.org)
이른 아침, 곱게 단장한 중년 여성들이 작은 한옥으로 줄지어 들어가기에 따라가 보았다. 두 아이를 기르며 ‘한살림공동체’에서 농업, 환경, 가정교육 등에 관한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강의를 해 온 서형숙씨가 2006년 9월에 문을 연 학교란다. 이름표를 달고 온돌의를 듣는 엄마들. 엄마가 되려면 이렇게 공부도 해야 한다는 것을,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히말라야 명상센터(계동 140-41 2층, 02-747-3351, www.sanskrit.or.kr)
1974년부터 인도 명상을 공부했고 『바가바드기타』 『요가란 무엇인가』 『우파니샤드』 『스트레스 풀기』 등의 책을 펴낸 박지명 원장으로부터 인도 요가와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밀양손만두(02-7441-3272)
직접 빚은 김치 만두, 고기만두 등을 파는 작고 허름한 동네 식당이다. 옥호와 달리 밀양식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분도 있던데, 밀양식 만두가 어떤 건지는 몰라도 가격 대비 충실하여 현대 빌딩 직원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Reminis Cake(계동 120-1, 02-3675-0406, www.reminiscake.com)
생일, 파티, 결혼을 위한 주문 케이크를 만들어 팔고 또 프랑스 제과 기법에 따른 홈베이킹과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잡지, 언론에 많이 소개된 앙증맞고 비싼 케이크를 만드는 곳이 이 허름한 골목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 매장에서 컵케이크, 슈가 케이크 등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수업과 제작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을 때가 많다.
이태리면사무소(02-3676-0233)
드디어 계동길에도 크림 스파게티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젊은이들이 이름을 잘 지었다 싶은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개업 준비 중이라 맛을 보지 못했다.
배렴 가옥(계동 72, 02-748-8530, www.bukchon72.com)
산수화와 화조화로 일가를 이룬 동양화가 제당(霽堂) 배렴(裵濂)이 살던 집이다. 등록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이 집은 현재 ‘북촌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으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여느 한옥과는 달리 운이 좋은 집이다. 아담한 전통 목조 기와집으로 세 동의 건물이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앙탕(계동 133-5, 02-763-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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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드나드는 고급 관리와 팔도에서 온 부자들이 살던 부촌, 독립과 개화사상을 깨우친 선각자들이 이웃해 살던 동네답게, 목욕탕과 이발관도 가장 먼저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인근 500미터 내에 목욕탕 여섯 곳이 더 있었다니, 북촌 전체가 사대문 바깥 동네의 동 하나 크기밖에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그때는 타 지역에서 북촌으로 목욕 원정을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북촌 주변 빌딩마다 수영장, 피트니스센터를 갖춘 사우나와 찜질방이 들어서, 일간지에 광고 전단을 끼워 북촌 주민을 유혹한다. 그러니 감고당길에 있던 ‘복수목욕탕’은 ‘아라리오 서울’로, 화개길에 있던 한 목욕탕은 ‘코리아다이어트단식원’으로 바뀐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가끔 장작을 때는 바람에 북촌 주민은 그 매캐한 냄새로 숨이 막혀 창문을 닫아야 하지만, 중앙탕의 옛 목욕탕 분위기가 좋아 이사 간 후에도 찾아온다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적지 않다. 400환으로 시작한 목욕비가 4천 원으로 올랐지만, 40여 년 단골 성원에 유지되고 있는 동네 목욕탕. 언젠가는 화개이발관과 마찬가지로 깨진 욕조 타일, 낡은 수도꼭지, 이 빠진 머리빗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 가지 않을까. 비 오는 날, 몸이 찌뿌드드할 때만이라도 부지런히 드나들려고 한다.
석정골 보름우물(계동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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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신부인 주문모가 1794년 12월 17일에 압록강을 건너와, 계동의 신도인 역관 최인길 마티아 집과 여신도 회장이었던 순교자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숨어 살면서, 이 우물물로 영세를 주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김대건 신부 역시 이곳에서 도피 생활을 하며 이 우물물을 마셨다니, 천주교와의 인연이 각별한 우물이다.
북촌에는 보름우물 외에도 물맛과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우물이 많았다. 궁에서 군인을 보내 지키게 했다는 ‘복정우물’은 코리아다이어트단식원 입구에 있었고, 종친부 터 우물은 국군서울지구병원 서쪽 북촌길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보름우물은 1987년에 복원하여 표지석을 세웠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이도 많은 버려진 우물 신세고, 복정우물은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으며, 종친부 터 우물은 그나마 아무런 표지석조차 없다.
한국옻칠연구소 칠원(계동 25, 02-764-5775, www.ott.or.kr)
옻 관련 유물 300여 점, 국내 작가 공예 작품 200여 점, 옻칠화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옻칠 회화전 등이 열리는 아름다운 한옥 공간이다. 문패 만들기 등의 일일 공방 체험에서부터 옻칠화 고급 과정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옻칠 문화 답사도 갈 수 있다. 연필, 종이칼, 합죽선, 유골함 등 옻칠이 얼마나 많은 곳에 응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옻 공예품, 옻차, 옻한과도 살 수 있다.
보름우물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바로 나타난다. 여기서 더 올라가다 왼쪽으로 꺾어 막다른 골목집에는 ‘임화숙 한지공예관’ 간판이 걸려 있다. 대문 앞 꾸밈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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