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너는 후회하게 될 거야. 머지않아 나를 생각하게 될 거야.”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의 입자가 약해졌고 하늘에는 창백한 낮달이 어슬렁거렸다. 딱따구리들은 그 낮달을 보면서 골짜기 위로 날아갔다.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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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의 입자가 약해졌고 하늘에는 창백한 낮달이 어슬렁거렸다. 딱따구리들은 그 낮달을 보면서 골짜기 위로 날아갔다. 날아갈 때도 뾰족한 부리를 앞세우고 있어서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구멍을 뚫어버릴지도 모른다. 잠시 뒤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나무 쪼는 울림이 골짜기를 흔들어댔다.
번개부리도 소나무 가지를 부리로 쪼아보았다. 타탁 타타타? 하는 울림이 힘에 부쳤다. 번개부리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웃으면서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댔으며, 나뭇가지에서 꾸불텅꾸불텅 몸을 말았다 폈다 하면서 길을 재촉하는 자벌레를 보았다.
번개부리는 그놈을 낚아채려다가 그 희한한 몸짓에 푹 빠져서 앞을 지나칠 때까지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자벌레는 잠시도 쉬지 않고 꾸불텅꾸불텅한 몸을 말았다 폈다 말았다 폈다 하면서 나무를 올라가더니 갑자기 몸을 나뭇가지에다 착 붙여버렸다. 순간 번개부리는 당황했다. 갑자기 자벌레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야말로 진짜 마법을 부리는군.”
번개부리는 더 이상 자벌레를 찾지 않았고, 먹이사냥을 나간 하늘눈이 사라진 골짜기를 바라다보다가 갈대숲 위로 새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하게 얼굴을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으나 망설이지 않고 오리바위 밑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으니까 틀림없는 하늘눈이었다. 번개부리는 오리바위 근처에 있는 생강나무 가지로 날아갔다.
“조금 더 쉬었다가 오지 왜 빨리 왔어? 여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날씨가 너무너무 좋구나.”
벌통 속에서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신 집에서 뭐 해, 어서 나와.”
여전히 하늘눈은 대답이 없었다.
번개부리는 벌통 위로 날아가서 예리하게 주위를 훑어보고 구멍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번개부리의 몸이 구멍을 막아버리자 빛의 공급이 끊긴 벌통 안은 캄캄했고, 하늘눈의 윤곽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번개부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에 알을 두 개 낳을 수는 없는데, 하늘눈이 저렇게 앉아 있는 걸 보니 무슨 장난을 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진짜 뭐 하는 거야. 알이 따뜻해지면 안 돼. 알이 곯아버릴 수도 있어. 어서 나와.”
하늘눈은 여전히 대답도 없었고 알품기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제 하나를 낳았을 뿐인데 알품기를 시작한다면, 나중에 낳은 알들은 깨어나는 날짜가 달라서 키우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훨씬 많은 품이 들어가고 위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한번 알을 품기 시작하면 계속 품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가 없으니까, 지금 하늘눈의 배 속에 슬어 있는 알들의 건강은 엉망이 되고야 말 것이다.
번개부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하늘눈을 불렀다. 하늘눈은 “따닥!” 하고 꽁지를 세차게 내리쳤을 뿐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번개부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알을 품고 있는 새는 하늘눈이 아니었다. 침입자였다. 침입자는 둥글둥글한 알을 보자마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품고 싶었다. 침입자는 그런 충동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침입자는 어제부터 이 집을 노리고 있었다. 침입자는 날개가 유독 튼실해 보이는 번개부리뿐만 아니라 이 벌통 속에 있는 집도 마음에 들었다. 집을 비운 하늘눈이 샘나도록 부러웠다. 침입자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하늘눈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벌통 속으로 들어왔다. 거의 일방적인 구애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애초에는 알을 다 깨뜨려버린 다음 번개부리한테 구애하려고 했으나 막상 알을 보자 품고 싶은 본능이 더 강했다. 침입자는 번개부리만 가만히 있어준다면 하늘눈하고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침입자는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심산이었다.
번개부리는 기분이 좀 이상해서 다시 벌통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침입자는 고개를 처박아버렸다. 빛이 차단되어 있기는 해도 너무 단정하게 앉아 있는 품새며, 고개를 웅크리고 있는 품새며,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어도 낯설었다.
번개부리는 “어디 아파?” 하고 물었다. 침입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침입자의 깃털을 부리로 문지르다가 낯선 냄새를 맡았다. 지금 알을 품고 있는 침입자의 체온이며 냄새가 낯설다는 걸 확인한 순간 “이런 도둑!” 하고 소리치면서 부리로 물어뜯었다. 침입자는 슬쩍 피하면서 번개부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네가 좋아. 나랑 살자.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지켜보았어.”
침입자는 이 집보다 더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번개부리는 잠시 당황했다. 자기도 모르게 잠깐 마음이 흔들렸으나 이내 냉정해졌다.
“나는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 나를 선택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거야.”
침입자는 호락호락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 몸을 낮추며 제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애걸하였다.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어서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몸에 있는 깃털을 다 뽑아버릴 것이다!”
번개부리는 꽁지를 내리치면서 다시 경고를 하였다. 침입자는 그런 경고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을 하였고, 부리로 침입자의 몸을 무섭게 물어뜯었다. 부리에 침입자의 깃털이 한 뭉텅이 물려 있었다.
“어서 나가, 어서, 어서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내가 물어다가 벼랑 아래다 패대기칠 것이다!”
침입자는 번개부리의 창끝 같은 부리의 공격을 참아내면서 더욱 굳게 움츠렸다. 아예 작정을 하고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정말 화났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번개부리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발과 부리가 동원된 무차별한 폭격이었다. 침입자도 맞서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침입자는 달아났다.
“너는 후회하게 될 거야. 머지않아 나를 생각하게 될 거야. 이 바보야, 저주나 받아라!”
침입자는 진달래들이 빨갛게 물든 골짜기로 달아났고, 번개부리는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 알이 걱정되었다. 새뽀얀 알은 무사했지만 집이 옆으로 제법 기울어져 있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 돌아오기 전에 집을 보수해야겠다고 서둘렀다.
번개부리는 근처에서 바위옷을 물어다가 집을 고쳤다.
하늘눈은 집으로 오자마자 집에 이상이 있음을 알았다. 낯선 깃털도 있었다. 하늘눈은 번개부리를 보자마자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었지?”
번개부리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침입자의 깃털을 부리로 물어서 밖으로 나갔다. 하늘눈이 따라나갔다. 번개부리는 침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늘눈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번개부리를 보았다.
“알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이 다쳤으면 나는 미쳐버렸을 거야.”
하늘눈은 배 속에서 길러낸 모든 알을 낳았다. 모두 여섯 개였다. 하늘눈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부리로 알을 골랐다. 홀가분했다. 하늘눈이 밖으로 나오자 번개부리가 다래덩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알을 품어야 해.”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이제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거야.”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깃털을 골라주었다. 연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들의 깃털을 어루만져주었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맛이 들어 있지만 해만 나면 따스한 맛이 더 강하게 배인 바람이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깃털을 고르다가 갑자기 날아올랐고, 그 바람에 아내가 놀라며 움츠렸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번개부리는 제비꽃들이 옹알이하면서 놀고 있는 숲에서 딱정벌레를 잡아다가 하늘눈에게 주었다. 하늘눈은 딱정벌레를 받아먹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갑자기 밀려오는 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늘눈은 알들이 굴러다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오는 알은 말도 하였고, 갑자기 알 속에서 아기가 나와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는 재주를 부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알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알은 까마귀가 와서 부리로 내리쳐도 끄떡하지 않았고, 구렁이가 와서 삼키려고 하자 갑자기 알이 부풀어올랐고 구렁이 입이 터져버렸다. 하늘눈은 그런 꿈을 꾸다가 “꿩! 꿩!” 요란한 장끼의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햇살가루가 하늘눈의 얼굴로 흐벅지게 쏟아졌다. 하늘눈은 좋았다. 마음도 편안했다. 알을 낳기 전까지의 설렘이라든가 불안감도 가라앉았고, 이제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땅속 깊은 곳에다 수십 수백 개의 뿌리를 박아놓고,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슬기롭게 이겨내는 나무와 같은 자신감이었다. 그 자신감이 하늘눈을 편안하게 하였다.
하늘눈은 꽃눈을 뿌리는 산벚나무 사이를 활기차게 날아다녔다. 꽃잎이 몸에 닿을 때마다 묘하게도 흥분이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알을 품을 때까지도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배에서 알들이 꼼지락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묘하게도 꽃눈이 벌통 안으로 휘날리면서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하늘눈은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금 자신의 무게를 알들에게 올려놓았다. 알들은 어미의 무게를 그 특유의 둥글둥글함으로 받아들였고 따스하게 자신의 몸을 데우기 시작했다. 어미의 따스함이 알 껍질을 뚫고 안으로 스며들었고, 껍질 속에 고여 있는 그 무한한 세상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태초의 생명이 움텄을 때도 이랬으리라. 무한한 바닷속으로 따스한 빛이 흘러들었고, 빛과 물이 버무려지면서 미세하게 꿈틀거림이 생겨났으리라.
해가 질 무렵 하늘눈은 그 꿈틀거림을 느꼈고, 이제는 그 꿈틀거림을 멈추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새김질했다. 땅거미가 밀려올 즈음 소쩍새들의 돌림노래가 울려퍼졌다. 번개부리는 소쩍새들의 노랫소리로 계절의 한 흐름을 알아냈다.
번개부리는 벌통 안으로 들어와서 소쩍새들이 왔으니까 이제 밤기운이 많이 춥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알을 품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늘눈은 애틋한 남편의 마음을 알았다.
“난 괜찮아. 편해. 너무 좋아.”
“다행이야. 다리가 굳어지면 안 되니까 조심해.”
하늘눈이 알았다고 대답하자 번개부리가 밖으로 날아갔다. 막상 번개부리가 나가버리자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어느새 하늘눈은 번개부리와 함께 밤을 지새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 밀폐된 공간 속에서 혼자 밤을 새우기란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어둠이 깊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하늘눈은 밖으로 나가서 번개부리를 불렀다.
“여보오, 어딨어!”
이내 번개부리가 어둠을 뚫고 왔다. 하늘눈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알을 품었지만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이 밤을 이곳에서 홀로 묵혀낼 자신이 없었다.
“불안해. 무서워. 같이 있어줘.”
“괜찮아. 우리의 알들이 잠자는 집을 믿어야 하고,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이 벌통을 믿어야 해. 우리 몸이다 하고 믿어야 해.”
“그래도 불안해. 무서워.”
“그 누가 와도, 이곳은 안전해. 이 숲에서 우리의 집을 넘볼 것은 없어. 이 벌통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우리 몸이야. 매의 부리나 족제비의 이빨도 뚫을 수 없어. 악마의 발톱에도 까딱하지 않아.”
번개부리는 소쩍새들의 노랫소리가 메아리쳐오자 “이제 밤의 사냥꾼들이 돌아왔군” 하고 거의 혼잣말에 가깝게 웅얼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하늘눈은 소쩍새들의 노랫소리가 크게 증폭되어 올수록 배에다 힘을 주었고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바깥에서 바람이 요란하게 나뭇가지를 흔들어대고 나뭇잎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속은 별세상이었다. 밤하늘에 마실 나온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을 뿐 바람 하나 새어들지 않는 완벽한 세상이었다. 하늘눈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졸았다가 눈을 떴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눈은 몸을 낮추고 긴장했다. 개 소리도 아니고 악마의 발톱 소리도 아니고 고슴도치 소리도 아니었다. 하늘눈은 살짝 벌통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겁을 먹고 들어갔다. 파란 눈, 족제비 교활한 목도리였다.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늘눈은 교활한 목도리를 숱하게 보았으나 그놈이 자신의 생을 위협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지, 큰일이네.’ 하늘눈은 번개부리한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교활한 목도리는 코가 안내하는 대로 발과 눈을 움직이고 있었다. 냄새가 났다. 좋은 냄새였다. 교활한 목도리는 발로 벌통을 긁어댔다. 안에 있던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날아갈 뻔했다. 당장 교활한 목도리가 벌통을 부수고 덮칠 것 같다. 교활한 목도리는 두 발을 벌통 위로 올리고 구멍에다 코를 박은 채 킁킁거렸다. 새 냄새가 났다.
새가 알을 품고 있음을 확신하였으나 그렇다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물어뜯을 수도 없었고 발로 내리쳐서 이 정체불명의 통을 으스러뜨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구멍이 작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교활한 목도리는 구멍 속으로 앞발을 넣고 마구 휘저었다. 그때 하늘눈은 힘껏 날갯짓을 하였고, 하늘눈의 부리가 교활한 목도리의 발을 물어뜯었다.
“아악, 아니 이놈이 감히 내 발을 공격하다니…….”
생전 처음으로 작은 새한테 공격을 받은 교활한 목도리는 흥분하였고, 벌통 위에서 오줌을 갈겼다. 펄쩍펄쩍 뛰면서 이 벌통을 부수고 싶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톱에 잡히기만 하면 그놈을 으득으득 씹어먹고 싶었다.
“아아, 인간 놈들이 만든 벌통이구나. 난 인간들이 싫어.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고…… 이놈을 어떻게 혼내준담, 혼내준담…….”
교활한 족제비는 다시 중얼거리다가 구멍을 송곳니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늘눈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집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꺼져, 교활한 목도리야!” 하고는 구멍 쪽으로 날아갔다. 부리의 조준은 정확했다. 구멍을 갉아대고 있는 족제비의 입을 하늘눈의 부리가 찔렀다. “으악!” 하고 교활한 목도리가 벌통 아래로 굴렀다.
너무너무 아팠다. 악마의 발톱하고 싸웠을 때도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하늘눈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교활한 목도리는 다시 벌통 위로 올라가서 오줌을 갈기고 송곳니로 나무를 물어뜯다가 제풀에 지쳐서 내려왔다. 인간이 만든 이 벌통이 너무나도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고, 계속 실랑이를 해봤자 아무런 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교활한 목도리는 “오늘은 이렇게 물러간다만, 다음에 또 오겠다” 하는 말을 남기고 진달래나무가 빨간 꽃송이로 수놓은 숲 속 길로 사라졌다.
꽃맞이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날이었다. 산등성이로 짙은 초록 물감이 흘러내리고, 매가 고물상의 친구들이랑 시비가 붙어서 골짜기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그 북새통을 틈타 스스로를 ‘지혜의 샘’이라고 이름 지은 까마귀 한 마리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물론 다른 새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저런 알도둑 놈, 저런 알귀신 놈!”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런 비아냥거림을 무시했다. 알을 훔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알 훔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그거야말로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란 말씀” 하고는 스스로를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원래 지혜의 샘은 이 산 너머너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모험심이 강했고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다. 작년 늦가을에 그는 친구들에게 “안녕 친구들아,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구경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참으로 많은 걸 보았다.
인간들이 사는 엄청나게 큰 도시에서도 살았고, 바다를 떠다니는 큰 배도 보았으며, 섬에서도 살았고, 인간들끼리 무서운 불덩이를 뿜으면서 싸우는 것도 보았고, 하루 종일 안개 낀 세상에도 가보았고, 온통 눈으로 덮인 세상도 보았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 생각이 간절해서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다.
지혜의 샘은 군부대 아래쪽에 우뚝 솟은 참나무 우듬지에서 골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미 새살로 덮인 초록빛 숲이 출렁출렁 파도쳤다. 참나무들은 가지에 새살이 돋아나서야 그 경직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골짜기에 알록달록한 섬이 생겨났다. 그 섬에서는 산벚나무와 개복숭아나무들이 꽃전을 벌여놓고 대목을 맞고 있었다.
이 골짜기는 새들이 살기에 좋다. 깊게 패인 골짜기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깊다. 지혜의 샘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다보니 거의 풍수장이 버금갈 정도로 땅의 위치를 잘 알았다. 산허리만 보고도 여기는 꿩이 살기 좋은 곳, 여기는 멧돼지들이 살기 좋은 곳, 여기는 작은 새들이 살기 좋은 곳, 이런 식으로 맥을 짚어낼 수 있다. 먼 남쪽지방에서 거슬러올라온 이 나그네는 배도 고프고 목이 탔다.
“우선 어디 가서 목부터 축여야겠어.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야지.”
지혜의 샘은 골짜기 아래로 날아갔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 바람의 맥을 타다보니 절벽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혜의 샘은 절벽 중턱에 튀어나온 바위너설에 사는 진달래나무에서 한숨을 돌렸다. 햇살 좋은 골짜기마다 진달래꽃물이 철철 넘쳐흐르지만, 이 진달래나무는 어느새 한물간 꽃잎을 떨구고 부지런히 새잎을 불러내고 있었다.
지혜의 샘은 진달래꽃이 떨어져서 무늬 놓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날개를 펼쳤다. 물가로 내려앉은 지혜의 샘은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물거울을 보면서 배가 차도록 물을 마셨고, 다시금 날아올랐다가 오리바위로 내려앉았다. 우연이었다. 어딘가 햇살 좋은 곳에 앉아서 쉬고 싶었고, 그런 지혜의 샘을 유혹하는 바위가 보였을 뿐이다.
지혜의 샘은 그 바위에서 하룻밤 묵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알귀신이다!” 하고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꾹 참았다. 또다시 “알귀신이 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의 뇌는 이미 딱새임을 알았으나 눈은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얼른 잡아내지 못했다. 이런 경우 지혜의 샘은 거의 대거리하지 않았다. 딱새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까짓 놈 날개로 한 번만 후려치거나 부리로 쪼아버리면 끝이다. 가끔씩 지혜의 샘은 다친 딱새를 잡아먹기도 했지만 오늘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지혜의 샘은 눈을 감아버렸다.
번개부리는 절벽 바위너설에 있는 진달래나무에서 지혜의 샘을 보고 있었다. 집 안에 있던 하늘눈도 뛰쳐나왔다. 겁먹은 하늘눈은 불안해서 계속 꼬리를 까불어댔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을 안심시키면서 모든 걸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했다. 번개부리가 지혜의 샘 머리 위로 곧장 날아갔다.
“알귀신 이놈아, 잘 들어라. 나는 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는 우리 땅이다. 어서 가라. 그러지 않으면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혜의 샘은 눈을 뜨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작은 놈이 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혜의 샘이 가만히 있자 절벽으로 날아간 번개부리가 빛처럼 빠르게 돌진해왔다. 어찌나 빠르던지 지혜의 샘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번개부리는 지혜의 샘 얼굴을 날개로 후려치고는 각도를 위로 꺾으면서 솟구쳐올랐다. 지혜의 샘은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저렇게 작은 새의 공격을 받고 뒷걸음질쳐보기란 처음이었고, 아마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동족들 역사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혜의 샘은 당황했고 놀랐다.
“허허허, 이놈이 비상한 재주를 가졌구나. 빛처럼 날아다니는 재주를 가졌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 몸은 매보다 강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 다음으로 지혜로운 님이시다. 까불지 말고 점잖게 있어라. 안 그러면 네놈을 으득으득 깨물어서 한입에 삼켜버릴 것이다!”
지혜의 신은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아니 그런 작은 새하고 옥신각신하는 것 자체가 자기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 말을 하면 상대의 기세가 꺾일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점점 빠르고 사나워졌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다.
그제야 지혜의 샘은 근처에 녀석들의 집이 있음을 알고는 두리번거리다가 그 벌통을 발견했다. 지혜의 샘은 순간적으로 새알을 떠올리고 벌통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번개부리의 부리가 지혜의 샘 왼쪽 얼굴을 찔렀다. 어찌나 빠르던지 피할 새도 없었고, 부리나 발로 되받아치기도 어려웠다. ‘저것이 살아 있는 새란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작년에 이와 버금가게 빠른 꾀꼬리하고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다. 그 꾀꼬리는 빠르기는 해도 저 녀석들보다 훨씬 커서 가끔씩 까마귀의 부리에 걸렸으나 이놈들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작은 빛 하나가 순간적으로 휘몰아쳐오다가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판이었다. 지혜의 샘은 똬리 틀듯이 몸을 웅크리고 날아오는 녀석을 정조준하였다.
“이런 건방진 놈, 어디 날아와봐라. 한입에 아그작아그작 씹어버릴 테다, 이놈!”
번개부리도 상대가 매보다 강한 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번개부리는 평소보다 더 빨랐다. 지혜의 샘은 번개부리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 부리를 휘둘렀으나 어느새 녀석이 자신의 이마를 발톱으로 할퀴고 달아난 뒤였다. 지혜의 샘은 다시 중심을 잃었다. 그건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온 수백 수천의 새들하고 빗댈 수 없는 속도였다.
어쨌든 지혜의 샘은 부아통이 터지도록 자존심이 상했고 화가 나서 나름대로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번개부리의 공격에 당했다. 지혜의 샘은 계속 중심을 잃었다. 점점 화가 났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귀찮았다. 저 작은 새는 분명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나 아주 특별한 새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번개부리는 비록 상대가 강하지만 그의 급소를 알고 있었고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지혜의 샘은 더 이상 그 작은 새랑 실랑이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혜롭다는 건 물러나야 할 때를 안다는 거야.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때에 따라서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지. 내가 지혜롭다는 건 그런 이치를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무조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쓰고 덤벼들어봤자 내 힘만 빠지고 망신만 당할 뿐이야. 다른 놈들이라면 그러겠지만, 나는 달라.’ 지혜의 샘은 냉정하게 자신을 달?다.
더구나 알은 벌통 속에 있었다. 만약 알이 있는 집이 노출되어 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때는 지혜의 샘도 보다 적극적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알을 훔쳤을 것이다. 지혜의 샘은 벌통 속에 있는 알을 끄집어낼 수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미련 없이 날개를 폈다.
“네 이놈,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이만 물러간다만 다음에는 네놈을 아작아작 씹어서 모래알로 만들어줄 테다!”
(계속)
▶이상권 「날다」연재 바로가기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의 입자가 약해졌고 하늘에는 창백한 낮달이 어슬렁거렸다. 딱따구리들은 그 낮달을 보면서 골짜기 위로 날아갔다. 날아갈 때도 뾰족한 부리를 앞세우고 있어서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구멍을 뚫어버릴지도 모른다. 잠시 뒤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나무 쪼는 울림이 골짜기를 흔들어댔다.
번개부리도 소나무 가지를 부리로 쪼아보았다. 타탁 타타타? 하는 울림이 힘에 부쳤다. 번개부리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웃으면서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댔으며, 나뭇가지에서 꾸불텅꾸불텅 몸을 말았다 폈다 하면서 길을 재촉하는 자벌레를 보았다.
번개부리는 그놈을 낚아채려다가 그 희한한 몸짓에 푹 빠져서 앞을 지나칠 때까지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자벌레는 잠시도 쉬지 않고 꾸불텅꾸불텅한 몸을 말았다 폈다 말았다 폈다 하면서 나무를 올라가더니 갑자기 몸을 나뭇가지에다 착 붙여버렸다. 순간 번개부리는 당황했다. 갑자기 자벌레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야말로 진짜 마법을 부리는군.”
번개부리는 더 이상 자벌레를 찾지 않았고, 먹이사냥을 나간 하늘눈이 사라진 골짜기를 바라다보다가 갈대숲 위로 새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하게 얼굴을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으나 망설이지 않고 오리바위 밑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으니까 틀림없는 하늘눈이었다. 번개부리는 오리바위 근처에 있는 생강나무 가지로 날아갔다.
“조금 더 쉬었다가 오지 왜 빨리 왔어? 여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날씨가 너무너무 좋구나.”
벌통 속에서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신 집에서 뭐 해, 어서 나와.”
여전히 하늘눈은 대답이 없었다.
번개부리는 벌통 위로 날아가서 예리하게 주위를 훑어보고 구멍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번개부리의 몸이 구멍을 막아버리자 빛의 공급이 끊긴 벌통 안은 캄캄했고, 하늘눈의 윤곽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번개부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에 알을 두 개 낳을 수는 없는데, 하늘눈이 저렇게 앉아 있는 걸 보니 무슨 장난을 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진짜 뭐 하는 거야. 알이 따뜻해지면 안 돼. 알이 곯아버릴 수도 있어. 어서 나와.”
하늘눈은 여전히 대답도 없었고 알품기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제 하나를 낳았을 뿐인데 알품기를 시작한다면, 나중에 낳은 알들은 깨어나는 날짜가 달라서 키우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훨씬 많은 품이 들어가고 위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한번 알을 품기 시작하면 계속 품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가 없으니까, 지금 하늘눈의 배 속에 슬어 있는 알들의 건강은 엉망이 되고야 말 것이다.
번개부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하늘눈을 불렀다. 하늘눈은 “따닥!” 하고 꽁지를 세차게 내리쳤을 뿐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번개부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알을 품고 있는 새는 하늘눈이 아니었다. 침입자였다. 침입자는 둥글둥글한 알을 보자마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품고 싶었다. 침입자는 그런 충동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침입자는 어제부터 이 집을 노리고 있었다. 침입자는 날개가 유독 튼실해 보이는 번개부리뿐만 아니라 이 벌통 속에 있는 집도 마음에 들었다. 집을 비운 하늘눈이 샘나도록 부러웠다. 침입자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하늘눈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벌통 속으로 들어왔다. 거의 일방적인 구애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애초에는 알을 다 깨뜨려버린 다음 번개부리한테 구애하려고 했으나 막상 알을 보자 품고 싶은 본능이 더 강했다. 침입자는 번개부리만 가만히 있어준다면 하늘눈하고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침입자는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심산이었다.
번개부리는 기분이 좀 이상해서 다시 벌통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침입자는 고개를 처박아버렸다. 빛이 차단되어 있기는 해도 너무 단정하게 앉아 있는 품새며, 고개를 웅크리고 있는 품새며,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어도 낯설었다.
번개부리는 “어디 아파?” 하고 물었다. 침입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침입자의 깃털을 부리로 문지르다가 낯선 냄새를 맡았다. 지금 알을 품고 있는 침입자의 체온이며 냄새가 낯설다는 걸 확인한 순간 “이런 도둑!” 하고 소리치면서 부리로 물어뜯었다. 침입자는 슬쩍 피하면서 번개부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네가 좋아. 나랑 살자.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지켜보았어.”
침입자는 이 집보다 더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번개부리는 잠시 당황했다. 자기도 모르게 잠깐 마음이 흔들렸으나 이내 냉정해졌다.
“나는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 나를 선택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거야.”
침입자는 호락호락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 몸을 낮추며 제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애걸하였다.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어서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몸에 있는 깃털을 다 뽑아버릴 것이다!”
번개부리는 꽁지를 내리치면서 다시 경고를 하였다. 침입자는 그런 경고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번개부리는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을 하였고, 부리로 침입자의 몸을 무섭게 물어뜯었다. 부리에 침입자의 깃털이 한 뭉텅이 물려 있었다.
“어서 나가, 어서, 어서 나가.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내가 물어다가 벼랑 아래다 패대기칠 것이다!”
침입자는 번개부리의 창끝 같은 부리의 공격을 참아내면서 더욱 굳게 움츠렸다. 아예 작정을 하고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정말 화났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번개부리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발과 부리가 동원된 무차별한 폭격이었다. 침입자도 맞서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침입자는 달아났다.
“너는 후회하게 될 거야. 머지않아 나를 생각하게 될 거야. 이 바보야, 저주나 받아라!”
침입자는 진달래들이 빨갛게 물든 골짜기로 달아났고, 번개부리는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 알이 걱정되었다. 새뽀얀 알은 무사했지만 집이 옆으로 제법 기울어져 있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이 돌아오기 전에 집을 보수해야겠다고 서둘렀다.
번개부리는 근처에서 바위옷을 물어다가 집을 고쳤다.
하늘눈은 집으로 오자마자 집에 이상이 있음을 알았다. 낯선 깃털도 있었다. 하늘눈은 번개부리를 보자마자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었지?”
번개부리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침입자의 깃털을 부리로 물어서 밖으로 나갔다. 하늘눈이 따라나갔다. 번개부리는 침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늘눈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번개부리를 보았다.
“알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이 다쳤으면 나는 미쳐버렸을 거야.”
하늘눈은 배 속에서 길러낸 모든 알을 낳았다. 모두 여섯 개였다. 하늘눈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부리로 알을 골랐다. 홀가분했다. 하늘눈이 밖으로 나오자 번개부리가 다래덩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알을 품어야 해.”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이제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거야.”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깃털을 골라주었다. 연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들의 깃털을 어루만져주었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맛이 들어 있지만 해만 나면 따스한 맛이 더 강하게 배인 바람이었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의 깃털을 고르다가 갑자기 날아올랐고, 그 바람에 아내가 놀라며 움츠렸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번개부리는 제비꽃들이 옹알이하면서 놀고 있는 숲에서 딱정벌레를 잡아다가 하늘눈에게 주었다. 하늘눈은 딱정벌레를 받아먹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갑자기 밀려오는 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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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눈은 알들이 굴러다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오는 알은 말도 하였고, 갑자기 알 속에서 아기가 나와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는 재주를 부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알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알은 까마귀가 와서 부리로 내리쳐도 끄떡하지 않았고, 구렁이가 와서 삼키려고 하자 갑자기 알이 부풀어올랐고 구렁이 입이 터져버렸다. 하늘눈은 그런 꿈을 꾸다가 “꿩! 꿩!” 요란한 장끼의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햇살가루가 하늘눈의 얼굴로 흐벅지게 쏟아졌다. 하늘눈은 좋았다. 마음도 편안했다. 알을 낳기 전까지의 설렘이라든가 불안감도 가라앉았고, 이제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땅속 깊은 곳에다 수십 수백 개의 뿌리를 박아놓고,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슬기롭게 이겨내는 나무와 같은 자신감이었다. 그 자신감이 하늘눈을 편안하게 하였다.
하늘눈은 꽃눈을 뿌리는 산벚나무 사이를 활기차게 날아다녔다. 꽃잎이 몸에 닿을 때마다 묘하게도 흥분이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알을 품을 때까지도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배에서 알들이 꼼지락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묘하게도 꽃눈이 벌통 안으로 휘날리면서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하늘눈은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금 자신의 무게를 알들에게 올려놓았다. 알들은 어미의 무게를 그 특유의 둥글둥글함으로 받아들였고 따스하게 자신의 몸을 데우기 시작했다. 어미의 따스함이 알 껍질을 뚫고 안으로 스며들었고, 껍질 속에 고여 있는 그 무한한 세상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태초의 생명이 움텄을 때도 이랬으리라. 무한한 바닷속으로 따스한 빛이 흘러들었고, 빛과 물이 버무려지면서 미세하게 꿈틀거림이 생겨났으리라.
해가 질 무렵 하늘눈은 그 꿈틀거림을 느꼈고, 이제는 그 꿈틀거림을 멈추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새김질했다. 땅거미가 밀려올 즈음 소쩍새들의 돌림노래가 울려퍼졌다. 번개부리는 소쩍새들의 노랫소리로 계절의 한 흐름을 알아냈다.
번개부리는 벌통 안으로 들어와서 소쩍새들이 왔으니까 이제 밤기운이 많이 춥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알을 품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늘눈은 애틋한 남편의 마음을 알았다.
“난 괜찮아. 편해. 너무 좋아.”
“다행이야. 다리가 굳어지면 안 되니까 조심해.”
하늘눈이 알았다고 대답하자 번개부리가 밖으로 날아갔다. 막상 번개부리가 나가버리자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어느새 하늘눈은 번개부리와 함께 밤을 지새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 밀폐된 공간 속에서 혼자 밤을 새우기란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어둠이 깊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하늘눈은 밖으로 나가서 번개부리를 불렀다.
“여보오, 어딨어!”
이내 번개부리가 어둠을 뚫고 왔다. 하늘눈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알을 품었지만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이 밤을 이곳에서 홀로 묵혀낼 자신이 없었다.
“불안해. 무서워. 같이 있어줘.”
“괜찮아. 우리의 알들이 잠자는 집을 믿어야 하고,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이 벌통을 믿어야 해. 우리 몸이다 하고 믿어야 해.”
“그래도 불안해. 무서워.”
“그 누가 와도, 이곳은 안전해. 이 숲에서 우리의 집을 넘볼 것은 없어. 이 벌통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우리 몸이야. 매의 부리나 족제비의 이빨도 뚫을 수 없어. 악마의 발톱에도 까딱하지 않아.”
번개부리는 소쩍새들의 노랫소리가 메아리쳐오자 “이제 밤의 사냥꾼들이 돌아왔군” 하고 거의 혼잣말에 가깝게 웅얼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하늘눈은 소쩍새들의 노랫소리가 크게 증폭되어 올수록 배에다 힘을 주었고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바깥에서 바람이 요란하게 나뭇가지를 흔들어대고 나뭇잎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속은 별세상이었다. 밤하늘에 마실 나온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을 뿐 바람 하나 새어들지 않는 완벽한 세상이었다. 하늘눈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졸았다가 눈을 떴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눈은 몸을 낮추고 긴장했다. 개 소리도 아니고 악마의 발톱 소리도 아니고 고슴도치 소리도 아니었다. 하늘눈은 살짝 벌통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겁을 먹고 들어갔다. 파란 눈, 족제비 교활한 목도리였다.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늘눈은 교활한 목도리를 숱하게 보았으나 그놈이 자신의 생을 위협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지, 큰일이네.’ 하늘눈은 번개부리한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교활한 목도리는 코가 안내하는 대로 발과 눈을 움직이고 있었다. 냄새가 났다. 좋은 냄새였다. 교활한 목도리는 발로 벌통을 긁어댔다. 안에 있던 하늘눈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날아갈 뻔했다. 당장 교활한 목도리가 벌통을 부수고 덮칠 것 같다. 교활한 목도리는 두 발을 벌통 위로 올리고 구멍에다 코를 박은 채 킁킁거렸다. 새 냄새가 났다.
새가 알을 품고 있음을 확신하였으나 그렇다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물어뜯을 수도 없었고 발로 내리쳐서 이 정체불명의 통을 으스러뜨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구멍이 작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교활한 목도리는 구멍 속으로 앞발을 넣고 마구 휘저었다. 그때 하늘눈은 힘껏 날갯짓을 하였고, 하늘눈의 부리가 교활한 목도리의 발을 물어뜯었다.
“아악, 아니 이놈이 감히 내 발을 공격하다니…….”
생전 처음으로 작은 새한테 공격을 받은 교활한 목도리는 흥분하였고, 벌통 위에서 오줌을 갈겼다. 펄쩍펄쩍 뛰면서 이 벌통을 부수고 싶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톱에 잡히기만 하면 그놈을 으득으득 씹어먹고 싶었다.
“아아, 인간 놈들이 만든 벌통이구나. 난 인간들이 싫어.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고…… 이놈을 어떻게 혼내준담, 혼내준담…….”
교활한 족제비는 다시 중얼거리다가 구멍을 송곳니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늘눈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집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꺼져, 교활한 목도리야!” 하고는 구멍 쪽으로 날아갔다. 부리의 조준은 정확했다. 구멍을 갉아대고 있는 족제비의 입을 하늘눈의 부리가 찔렀다. “으악!” 하고 교활한 목도리가 벌통 아래로 굴렀다.
너무너무 아팠다. 악마의 발톱하고 싸웠을 때도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하늘눈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교활한 목도리는 다시 벌통 위로 올라가서 오줌을 갈기고 송곳니로 나무를 물어뜯다가 제풀에 지쳐서 내려왔다. 인간이 만든 이 벌통이 너무나도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고, 계속 실랑이를 해봤자 아무런 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교활한 목도리는 “오늘은 이렇게 물러간다만, 다음에 또 오겠다” 하는 말을 남기고 진달래나무가 빨간 꽃송이로 수놓은 숲 속 길로 사라졌다.
꽃맞이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날이었다. 산등성이로 짙은 초록 물감이 흘러내리고, 매가 고물상의 친구들이랑 시비가 붙어서 골짜기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그 북새통을 틈타 스스로를 ‘지혜의 샘’이라고 이름 지은 까마귀 한 마리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물론 다른 새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저런 알도둑 놈, 저런 알귀신 놈!”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런 비아냥거림을 무시했다. 알을 훔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알 훔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그거야말로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란 말씀” 하고는 스스로를 지혜로운 동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원래 지혜의 샘은 이 산 너머너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모험심이 강했고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다. 작년 늦가을에 그는 친구들에게 “안녕 친구들아,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구경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참으로 많은 걸 보았다.
인간들이 사는 엄청나게 큰 도시에서도 살았고, 바다를 떠다니는 큰 배도 보았으며, 섬에서도 살았고, 인간들끼리 무서운 불덩이를 뿜으면서 싸우는 것도 보았고, 하루 종일 안개 낀 세상에도 가보았고, 온통 눈으로 덮인 세상도 보았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 생각이 간절해서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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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은 군부대 아래쪽에 우뚝 솟은 참나무 우듬지에서 골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미 새살로 덮인 초록빛 숲이 출렁출렁 파도쳤다. 참나무들은 가지에 새살이 돋아나서야 그 경직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골짜기에 알록달록한 섬이 생겨났다. 그 섬에서는 산벚나무와 개복숭아나무들이 꽃전을 벌여놓고 대목을 맞고 있었다.
이 골짜기는 새들이 살기에 좋다. 깊게 패인 골짜기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깊다. 지혜의 샘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다보니 거의 풍수장이 버금갈 정도로 땅의 위치를 잘 알았다. 산허리만 보고도 여기는 꿩이 살기 좋은 곳, 여기는 멧돼지들이 살기 좋은 곳, 여기는 작은 새들이 살기 좋은 곳, 이런 식으로 맥을 짚어낼 수 있다. 먼 남쪽지방에서 거슬러올라온 이 나그네는 배도 고프고 목이 탔다.
“우선 어디 가서 목부터 축여야겠어.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야지.”
지혜의 샘은 골짜기 아래로 날아갔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 바람의 맥을 타다보니 절벽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혜의 샘은 절벽 중턱에 튀어나온 바위너설에 사는 진달래나무에서 한숨을 돌렸다. 햇살 좋은 골짜기마다 진달래꽃물이 철철 넘쳐흐르지만, 이 진달래나무는 어느새 한물간 꽃잎을 떨구고 부지런히 새잎을 불러내고 있었다.
지혜의 샘은 진달래꽃이 떨어져서 무늬 놓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날개를 펼쳤다. 물가로 내려앉은 지혜의 샘은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물거울을 보면서 배가 차도록 물을 마셨고, 다시금 날아올랐다가 오리바위로 내려앉았다. 우연이었다. 어딘가 햇살 좋은 곳에 앉아서 쉬고 싶었고, 그런 지혜의 샘을 유혹하는 바위가 보였을 뿐이다.
지혜의 샘은 그 바위에서 하룻밤 묵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알귀신이다!” 하고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꾹 참았다. 또다시 “알귀신이 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의 뇌는 이미 딱새임을 알았으나 눈은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얼른 잡아내지 못했다. 이런 경우 지혜의 샘은 거의 대거리하지 않았다. 딱새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까짓 놈 날개로 한 번만 후려치거나 부리로 쪼아버리면 끝이다. 가끔씩 지혜의 샘은 다친 딱새를 잡아먹기도 했지만 오늘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지혜의 샘은 눈을 감아버렸다.
번개부리는 절벽 바위너설에 있는 진달래나무에서 지혜의 샘을 보고 있었다. 집 안에 있던 하늘눈도 뛰쳐나왔다. 겁먹은 하늘눈은 불안해서 계속 꼬리를 까불어댔다. 번개부리는 하늘눈을 안심시키면서 모든 걸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했다. 번개부리가 지혜의 샘 머리 위로 곧장 날아갔다.
“알귀신 이놈아, 잘 들어라. 나는 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는 우리 땅이다. 어서 가라. 그러지 않으면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혜의 샘은 눈을 뜨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작은 놈이 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혜의 샘이 가만히 있자 절벽으로 날아간 번개부리가 빛처럼 빠르게 돌진해왔다. 어찌나 빠르던지 지혜의 샘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번개부리는 지혜의 샘 얼굴을 날개로 후려치고는 각도를 위로 꺾으면서 솟구쳐올랐다. 지혜의 샘은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저렇게 작은 새의 공격을 받고 뒷걸음질쳐보기란 처음이었고, 아마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동족들 역사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혜의 샘은 당황했고 놀랐다.
“허허허, 이놈이 비상한 재주를 가졌구나. 빛처럼 날아다니는 재주를 가졌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 몸은 매보다 강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 다음으로 지혜로운 님이시다. 까불지 말고 점잖게 있어라. 안 그러면 네놈을 으득으득 깨물어서 한입에 삼켜버릴 것이다!”
지혜의 신은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아니 그런 작은 새하고 옥신각신하는 것 자체가 자기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 말을 하면 상대의 기세가 꺾일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점점 빠르고 사나워졌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다.
그제야 지혜의 샘은 근처에 녀석들의 집이 있음을 알고는 두리번거리다가 그 벌통을 발견했다. 지혜의 샘은 순간적으로 새알을 떠올리고 벌통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번개부리의 부리가 지혜의 샘 왼쪽 얼굴을 찔렀다. 어찌나 빠르던지 피할 새도 없었고, 부리나 발로 되받아치기도 어려웠다. ‘저것이 살아 있는 새란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작년에 이와 버금가게 빠른 꾀꼬리하고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다. 그 꾀꼬리는 빠르기는 해도 저 녀석들보다 훨씬 커서 가끔씩 까마귀의 부리에 걸렸으나 이놈들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작은 빛 하나가 순간적으로 휘몰아쳐오다가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판이었다. 지혜의 샘은 똬리 틀듯이 몸을 웅크리고 날아오는 녀석을 정조준하였다.
“이런 건방진 놈, 어디 날아와봐라. 한입에 아그작아그작 씹어버릴 테다, 이놈!”
번개부리도 상대가 매보다 강한 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번개부리는 평소보다 더 빨랐다. 지혜의 샘은 번개부리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 부리를 휘둘렀으나 어느새 녀석이 자신의 이마를 발톱으로 할퀴고 달아난 뒤였다. 지혜의 샘은 다시 중심을 잃었다. 그건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온 수백 수천의 새들하고 빗댈 수 없는 속도였다.
어쨌든 지혜의 샘은 부아통이 터지도록 자존심이 상했고 화가 나서 나름대로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번개부리의 공격에 당했다. 지혜의 샘은 계속 중심을 잃었다. 점점 화가 났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귀찮았다. 저 작은 새는 분명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나 아주 특별한 새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번개부리는 비록 상대가 강하지만 그의 급소를 알고 있었고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지혜의 샘은 더 이상 그 작은 새랑 실랑이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혜롭다는 건 물러나야 할 때를 안다는 거야.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때에 따라서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지. 내가 지혜롭다는 건 그런 이치를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무조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쓰고 덤벼들어봤자 내 힘만 빠지고 망신만 당할 뿐이야. 다른 놈들이라면 그러겠지만, 나는 달라.’ 지혜의 샘은 냉정하게 자신을 달?다.
더구나 알은 벌통 속에 있었다. 만약 알이 있는 집이 노출되어 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때는 지혜의 샘도 보다 적극적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알을 훔쳤을 것이다. 지혜의 샘은 벌통 속에 있는 알을 끄집어낼 수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미련 없이 날개를 폈다.
“네 이놈,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이만 물러간다만 다음에는 네놈을 아작아작 씹어서 모래알로 만들어줄 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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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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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이끼
201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