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 “국제시장으로 세대 간 이해했으면”
영화 <국제시장>이 누적 관객 1,100만을 돌파했다.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상영관을 찾는 것도 방법이지만 소설 『국제시장』 은 어떨까? 영화 <명량>을 소설화한 김호경 작가가 쓴 작품이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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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후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묘사해 폭넓은 층으로부터 사랑받은 영화 <국제시장>. 이 작품이 소설화되었다. 영화를 소설로 완성한 작가는 김호경. 영화 <명량>을 성공적으로 소설로 변형시키며 필력을 인정받았다. 이전에도 이미 그는 1997년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중견 작가였다. 영화와 소설은 다른 장르. 둘 사이를 오가는 작업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재창조’에 해당하는데, 쉽지 않을 작업을 김호경 작가는 해냈다. 소설 『국제시장』 작가 김호경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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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가 전의 생활은 어땠나요?


먼저, 용어에 대해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다 아다시피(그러나 많은 사람이 혼동하듯이) 작가, 저자, 소설가는 다릅니다. 나는 나를 소설가라 생각하지 않으며 작가라 생각해요.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인데 나는 『낯선 천국』을 제외하고 아직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가라 생각하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쓴 다음에 소설가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인데.... 어쩌면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학생들의 시험지를 집으로 가지고와 채점을 하셨어요. 초등학교 3학년(10살, 1970년 초) 때 그 시험지를 무심히 보다가 윤동주의 詩 ‘참회록’을 읽고 쇼크를 먹었습니다. 집에 책이 많아서 숱하게 많은 책을 읽었고, 특히 고2 때 김승옥의 소설을 읽고 ‘아, 세상에는 이런 세계도 있구나’ 감탄이 들어 그때 ‘훗날 소설가가 되자’고 결심했어요.

 

그럼에도 1997년 등단하기 전까지 소심하고 평범한 학생-군인-직장인이었어요. 부언하자면 서점에 다녔는데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 빠듯해서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2 때의 꿈을 되살려 소설을 써보자 싶어 2년 동안 틈틈이 장편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낯선 천국』입니다. 그런데 돈은 많이 벌지 못했죠.

 

『낯선 천국』은 어떤 이야기였나요.

 

상당히 잘 쓴 소설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그때 심사위원 중의 1명이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예감한다”는 분에 넘치는 호평을 했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부끄럽습니다. 반면 이문열은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나에게 “언제라도 복수하라”고 했는데 아직 복수를 하지 못했어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복수할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낯선 천국』은 당시(1997년)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소설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金, 李, 朴이라는 평범한 3명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운명이 망가지는 과정을 마약을 매개로 묘사했어요.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운명에 굴복하는 존재임을 주장했죠.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임을 그렸는데 문장이 간결해서 독자들의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소설 『국제시장』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단순해요. 출판사 의뢰로 시작했습니다. 전작 『명량』에서 나름대로 평가를 인정받아 이 시나리오도 의뢰가 들어왔고, 소설화했어요.

 

『국제시장』은 영화를 소설로 옮긴 작품이다. 요즘 말로 스크린셀러, 혹은 미디어셀러라고 하는 이 작품들과 기존의 소설들과 작업할 때 차이점이 있나요.

 

내 맘대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보고 그대로 가야 합니다. 단, 몇 가지는 추가했는데 원작을 벗어나지는 않죠.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혹은 그 반대로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보는) 독자를 위해 쓴 소설이므로 원작에 충실했어요.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므로 허구적 재미를 추가하는 것이 내 임무였고요. 만약 주제가 뚜렷하지 않았고, 내가 자라온 세대와 달랐다면 집필하지 않았을 거예요.

 

영화는 시사회 때 봤어요. 나는 한국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량>을 소설화했지만 아직까지 보지 않았고요(1700만 명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국제시장>은 소설 완결 전에 한번 보고 집필에 참고하라 해서 봤어요.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시나리오에는 덕수와 영자가 독일 시절, 슈나이더라는 남자와 (약간의)3각관계가 있었는데 영화에서 그 부분이 빠졌어요. 그래서 소설에서도 뺐는데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고요. 덕수가 영자에게 준 반지는 빨간 보석인데 소설에서는 파란색이에요. 그것이 부산 바다와 이미지가 맞아서 파란색으로 바꾸었고요. 다른 부분은 전체적으로 비슷해요.

 

소설 『국제시장』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모든 세대는 주어진 사명이 있어요. 50년대 세대는 우리나라 산업화에 이바지했고, 60년대 세대는 민주화에 헌신했고, 70년대 세대는 문화를 대중화시켰어요. 80년대 이후의 세대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들의 몫이겠죠. 각자의 사명이 있는 만큼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세대차라는 단어는 노회한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해요. 각 세대가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좋겠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오늘날의 청춘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덕수가 서독 광산에서 일하는 대목과 그 애인 영자(간호사)의 고달픈 일상.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1973년) 얼굴이 예뻤던 여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따라 서독으로 간다고 해서 선생님의 지시로 반 아이들 모두 편지를 써서 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그 여학생이 우리 반 전체에게 답장을 보내왔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사슴을 치였다”는 내용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마가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 나간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이 아련하게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이산가족찾기는 가장 눈물이 나는 장면이지만 나와 관계가 없어서 몰입도가 약간 떨어졌습니다.

 

출판사에서도, 소설 집필에 협조한 영화 제작팀에서도, 작가를 섭외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국제시장>에서 다루는 시대에 대한 이해였다고 합니다. 한국 전쟁 전후, 파독광부 시절,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찾기 등 많은 사건이 있는데, 작가이 겪은 ‘덕수시대’는 어땠는지? 

 

저는 1960년대생인데, 한국전쟁은 직접적 연관은 없고, 그 그늘에서 자랐어요. 반공방첩, 이승복 어린이, 김신조 일당, 10월유신이 지배하던 시대였고, 어렸을 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를 부르며 놀았죠. 1984년 즈음에 해병대에 복무했는데 당시 주임상사 중에는 월남전에 갔다 온 사람도 있어서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있는데... 싫건 좋건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덕수시대와 비교해 60년대 생이 겪어온 시대는 ‘격동의 386 시대’입니다. 오늘날 386세대라는 단어는 약간 희화화 되는 분위기인데, 실은 우리나라 현대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세대죠. 그 격동의 80년대를 청춘시절에 온몸으로 겪은 것이 행운이라 생각해요. 내가 70년대 생이 아닌 것을 정말 감사하게 여깁니다. 7080이라는 단어는 50년대 후반~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주는 작은 훈장이며, 그 사연들을 모은 것이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인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잘못 지어서 판매가 저조했어요. 그래도 그런 책을 간행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1960년대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언젠가는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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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시장』은 일흔이 넘은 덕수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작가님도 못 이룬 꿈이 있나요. 가장에게 꿈이란?

 

못 이룬 꿈은 누구에게나 있죠. 말 어이없게도 제 꿈은 목수였어요. 손재주가 있어서 이것저것 투닥투닥 만드는 게 취미인데 돈을 많이 모으면 그 꿈을 실천해볼까 합니다. 내 손으로 아담한 <잡동사니 박물관>을 하나 지으면 멋지지 않을까요?


가장에게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허공속의 외침이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남자는 가슴속에 꿈 하나씩을 안고 살아가지만 가장이 되는 순간, 남자는 사라지고 아버지가 됩니다. 아버지가 꿈을 이루기는 극히 어렵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가 남자로 돌아가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작가님이 소설가로 데뷔한 지 햇수로 19년입니다. 시대를 관찰하고 그것을 글로 담아내는 직업인 소설가가 본 20년의 대한민국은?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이 더 많아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압니다. 아쉽게도 이것을 되찾을 수는 없어요.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었고, ‘신작로 닦아놓으니 개가 먼저 지나간다’는 꼴이 되었어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죽을 쑤는 방법이라도 알았고, 신작로를 만들면 언젠가는 우리가 지나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20년은 모순과 인내의 시간이었다고 봐요.

 

앞으로 쓸 책은?

 

진짜 소설을 써서 ‘소설가’라는 호칭을 당당하게 받기 위해 명작 1~2편 정도는 쓸 계획입니다. 아직은 준비 단계이고, 써야 할 소설의 리스트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요. 역사인물 소설, 사랑 소설, 가족 소설.... 무엇이 되었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주제로 다룰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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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김호경 저/박수진,윤제균 편 | 21세기북스
소설 《국제시장》은 주인공 덕수의 삶뿐 아니라, 아프고 힘든 시간을 지나온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전쟁, 피난, 죽음, 이별로 인한 수많은 아픔을 낳은 ‘1950년 한국전쟁과 흥남철수’, 이후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거리 ‘국제시장’을 무대로,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펼쳐졌던 ‘1960년대 서독 파견 간호사와 광부’와 ‘1970년대 베트남 파병’을 거쳐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몰아넣었던 기적의 순간 ‘1980년대 이산가족 상봉’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아버지의 삶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더 단단해진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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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김호경 #eBook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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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th8

2023.04.20

검색을 하다 우연히 김호경씨의 글을 봤습니다. 김호경씨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경희대 신문방송대학원 동기입니다. 당시 교보문고의 홍보담당 직원이었던 김호경씨는 출판전공이었고, 전 신문방송학 전공이었죠.

김호경씨가 1997년 민음사가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전 그해 일간스포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에서 이문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의 짧은 안목에 복수하라!"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인 이문열 선생께서는 그저 덕담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을텐데... 복수를 하라니...

이문열 선생님도 애정어린 체찍질이라 생각하고요. 좋은 작품으로 좋은 의미의 복수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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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uty

2015.02.12

글과 영상이 주는 감흥은 아무리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많은 차이가 있죠.
레미제라블을 읽고 영화(휴잭맨 주연의)를 본 후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화 혐오증이 생길 정도 였습니다. 다만 시나리오가 먼저인 소설과 소설이 먼저인 영화의 차이는 덜 하리라 생각됩니다. 화면을 통해 보여지지 않는 내면의 풍경들을 어떻게 펼쳐내셨을 지 궁금합니다. 모든 글은 독자에겐 작품이지만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 소설도 언젠가는 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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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5.01.26

저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영화가 먼저 상영이 되어 다행입니다. 명량에 이어 국제시장까지 쉽지 않을 작업을 해내신 힘이 대단하시네요. <잡동사니 박물관>도 꼭 지으시고, 소설가라는 호칭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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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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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응급의학 전문의로 현재 워싱턴 대학과 세인트 프랜시스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사춘기 시절 가정불화를 겪은 후 학교, 집, 사회 그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 반항아로 낙인찍힌다. 결국 고교 1학년 때 자퇴를 하고 1년 6개월을 골방에 숨어 살며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살다가, 1997년 미국 이민을 선택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영어실력도, 학력도, 경제력도 없는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홀로서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잡초 뽑기,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조교 업무 등으로 고된 노동을 병행하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한 결과 세리토스 지역전문대학교를 4.0만점으로 졸업하고 ‘올해의 학생상’을 수여받는 쾌거를 낳는다. 그 후 UCLA에 편입하여 분자 세포 및 발달 생물학 과정을 전공하며 예비 의대생의 길을 걷는다. 의대 병리학부 연구실 보조로 일하며 인간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논문 집필에도 참여하는 가운데 남는 시간은 모두 학업과 봉사활동에 매진하며 누구보다도 뜨거운 대학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예비 의대생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4.0만점에 가까운 최우등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그 후 워싱턴 대학에서 연구 의학자를 위한 MD/PhD 통합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전액 장학생으로서 앞날도 보장받게 되었지만 평소의 소신 대로 현장의사의 길을 선택하여 USC 의대에 입학한다. 분초를 쪼개가며 공부해야하는 의대생 시절에도 그는 자신처럼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폭력 중재 프로그램’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 차 때 인턴으로선 전례 없이 전미 의사 면허 국가고시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선배와 동료 의사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그 후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았으며, 전미 응급의학 임상 국가고시에서 3년 연속 존스홉킨스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여, 존스홉킨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사로 주목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