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를 비롯해 경주의 몇몇 주요 유적은 늦은 밤 조명을 밝혀 야간 투어를 즐길 수 있다. ⓒ CHO JI-YOUNG
am 10 : 00 동남산 가는 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경주 남산. 동남산 가는 길은 이 산의 동쪽 둘레를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코스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까지 불교미술의 걸작을 만날 수 있는 답사 길이다. 월정교에서 시작해 미륵골의 유적을 거쳐 화랑교육원, 통일전을 지나 남리 절터까지 약 8킬로미터. 신라 초기 불상으로 꼽히는 부처골 감실여래좌상, 바위 4면에 부처의 세상을 조각한 탑골 부처바위 마애불상군, 누렇게 물든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남산 최고의 불상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서출지, 서로 다른 양식을 보여주는 남산리 삼층석탑 등을 볼 수 있다. 가을이 내려앉은 산은 초록과 알록달록 단풍이 어우러지고, 맞은편으로 가을 들판이 펼쳐지며,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이 길은 최근 경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주산림환경연구원과 통일전 앞 은행나무길을 지난다. 경주 시내 에서 11번, 돌아올 때는 10번 버스를 이용한다. 화랑교, 경주산림환경연구원, 통일전 등에서 하차하거나 탑승해 일부 코스만 걸을 수도 있다. 부처골 감실여래좌상부터 통일전까지 걸어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약 2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동남산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남산리쌍탑.
pm 12 : 30 성동시장
경주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성동시장은 경주를 대표하는 상설 시장이다. 약 300여 개 상점이 들어서 있을 만큼 규모도 제법 큰 편. 제수용품과 이바지 음식으로 유명한 시장이라, 경주 사람들이 큰일을 앞두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문어 숙회도 이곳의 독특한 볼거리 중 하나. 여행자에겐 무엇보다 남4문에서 시작하는 먹자골목이 인기다. 분식으로 대표되는 이곳의 먹거리는 저렴하고 다양하며 푸짐한 것이 매력. 특히 보리밥 정식으로 유명한 성동분식과 시장 안쪽에 자리한 한식 뷔페 식당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손색없는 곳. 가격 대비 최고의 만족을 보장한다. 경주 시내버스 대부분이 성동시장을 경유하므로 이동 중에 한 번쯤 들러보자.
*경주역 앞에 있는 해오름 한정식은 연잎 한정식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된장찌개와 반찬으로 구성된 상차림의 첫인상은 평범한 편. 반찬 개수가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다. 고기 반찬도 없다. 하지만 젓가락질을 거듭할수록 이 집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순수하고 깔끔하면서 맛깔난다. 양념이 과하지 않은데도 감칠맛이 일품. 해오름 연잎 한정식(1만1,000원) 외에 해오름 정식(7,000원부터)도 있다.
가격 대비 최고의 만족을 자랑하는 성동시장 안 한식 뷔페.
SIDE TRIP 양동마을
경주의 역사와 문화는 신라 시대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하회마을과 더불어 대표적 반촌으로 꼽히는 양동마을이 그 증거다. 경주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550여 년간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종가를 중심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왔다. 산을 배경으로 골짜기가 ‘물(勿)’자 형태로 나 있으며, 그 사이사이 집이 들어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조선 시대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기와집 54호와 이를 고즈넉이 에워싼 초가 110호가 남아 있다. 미리 신청하면 마을에서 다양한 민속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pm 2 : 00 황룡사지와 분황사
황룡사지는 엄밀히 말하면 허허벌판이다.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 주춧돌을 비롯한 옛 흔적만 남아 있다. 황룡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웅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사찰이었고, 진흥왕 14년(553년)에 짓기 시작해 선덕여왕 13년(645년)에 완성했다. 짓는 동안 왕이 4차례나 바뀌었다. 당시 황룡사의 총 면적은 약 380제곱미터로, 신라 3대 보물 중 2개의 보물이 이 절에 속했다. 하나는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가 건조한 구층목탑이고, 다른 하나는 높이가 일장육척(약 4미터)이나 되는 금동장륙상. 이들 보물은 고려 시대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초석과 금당 터, 목탑 터, 강당 터, 중문 터 등이 전부다. 하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이 벌판이야말로 경주에서 가장 역동적 공간이 된다. 특히 이 무렵이면 주위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도 좋다. 황룡사지 바로 맞은편에 있는 분황사는 작지만 고즈넉하면서도 역사의 깊이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라시대 최초의 석탑으로 꼽히는 모전석이 이곳에 있으며, 단풍이 내리는 가을이면 경내는 더욱 운치 있다. 분황사에서 황룡사지, 월성을 거쳐 국립경주박물관까지 이어지는 1킬로미터 길이의 황룡사 마루길을 걸어봐도 좋겠다. 자전거 전용 도로도 조성돼 있다.
*경주역과 버스터미널 주변에 자전거 대여점이 많다. 시내와 주변은 대부분 평지인데다, 자전거 도로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자전거를 이용하면 더욱 역동적으로 경주를 누빌 수 있다.
가을에 황룡사지를 방문하면 만발한 코스모스가 반긴다.
pm 4 : 00 진평왕릉
신라 26대 왕인 진평왕은 우리에게 선덕여왕의 아버지로 알려진 인물이다. 왕권 강화를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 부서를 설치하고,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등 선덕여왕과 이후 왕들이 안정적으로 통치를 해나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진평왕릉은 사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명소는 아니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왕릉이 자리하고, 그 주변을 활엽수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기운과 아름다움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곳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왕릉의 봉분은 단단하고 안정적 느낌을 주며 주변 환경과 매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가을이면 사방이 누렇게 물든 들판 가운데에 자리한 왕릉이 마치 홀로 오롯이 떠 있는 섬 같다. 수학여행객과 주말 나들이 인파가 몰리는 때에도 이곳만큼은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저자가 ‘경주를 말해주는 세 가지 유물’ 중 하나로 소개하기도 한 곳. 경주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진평왕릉을 찾아가는 길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수수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진평왕릉.
pm 5 : 30 노동리 고분군
하늘에서 찍은 경주 시내 사진을 보면 현대적인 집과 건물 사이에 집채보다 큰 고분이 군데군데 모여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고분이 하나의 군락을 형성하는 곳이 대릉원과 노동리 고분군이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대릉원은 가면서 노동동과 노서동의 고분군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입장료가 있는 대릉원과 달리 이들 고분군은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데 말이다. 노동리 고분군의 미덕은 오래된 무덤이 경주 시내 한복판에서 오늘날의 사람, 건물과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관광 명소라기보다 시민이 즐겨 찾는 산책 장소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인 셈이다. 그중 봉황대는 봉분 위로 느티나무 몇 그루가 머리 장식마냥 멋스럽게 늘어서 있는 가장 큰 고분이다. 이곳에서 시작해 대릉원을 지나고 첨성대와 월성, 계림,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까지 걸어서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햇살이 고분의 능선을 따라 부드럽게 퍼지는 아침이나 낮 시간에 방문해도 좋지만, 고분의 멋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해가 막 넘어간 저녁 무렵. 가로등과 조명등이 하나둘 켜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은 하늘을 배경으로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날 때면 일상에 찌든 마음 한구석이 말랑말랑해질 것이다.
노동리 고분군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보자.
SIDE TRIP 문화의 거리
경주에서 가장 특색 있는 거리를 꼽으라면 봉황대와 노서리 고분군 사이에서 경주 법원 맞은편까지 뻗은 문화의 거리일 것이다. ‘금관총 가는 길’로도 불린다. 청기와 다방 사거리에 위치한 홍살문에서 시작해 갤러리와 카페, 화방, 골동품점, 전통 찻집, 도기 공예와 천연 염색 전문점, 기념품점 등이 하나둘씩 늘어서 있다. 갤러리 카페 청와, 한지 소품을 볼 수 있는 자담한지, 영화 <경주>의 촬영지인 아리솔 등이 이 거리에 자리한다. 이색적인 자수 작품을 볼 수 있는 혼자수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김남경은 여행 기자 출신으로, 여행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스토리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차없이 떠나는 주말여행 코스북』(길벗, 1만8,5000원)의 저자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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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