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글쓴이 소개 : 경제, 심리 면에서 무척 취약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 소개한 책들은 거의 모두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읽을 수 있었다. 이번 달에도 월급은 통장을 스치우고, 욕설을 섞어 투덜거리고, 셀 수 없이 교통 법규를 위반했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글ㆍ사진 이금주(서점 직원)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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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만 뽑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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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리처드 탈러 저/박세연 역 | 리더스북

 

<빅쇼트>는 2005년부터 2008년 월 스트리트의 실화를 다뤘다. 크리스천 베일, 브래드 피트 가 출연했다. 의사이며 사모펀드의 대표인 크리스천 베일, 마이클 버리는 관찰과 계산을 통해 미국의 모기지론, 주택 채권 시장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2005년 그가 운영하는 메트로 캐피털은 총 13억 달러를 부동산 채권의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 쏟아넣는다.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 계약을 맺었다고 하고, 그래서 영화 제목이 <빅 쇼트>이다.

 

 

영화 <빅쇼트>의 친절한 할아버지

 

오늘 우리의 저자, 리처드 탈러는 이 영화의 라스베가스 카지노 장면에서 등장한다. 친절한 소개 자막이 붙는다. ‘리처드 탈러 박사. 미국경제학회 회장. 시카고대학 행동과학 및 경제학 교수. “행동경제학”의 아버지’. 카지노에서 그가 설명하는 것은 ‘합성 CDO’라는, 새롭지만 결국 실체가 없다는 점에선 기존 것과 다를 바 없는 금융 상품이다.

 

이 영화는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다. 전세계 수천만 명을 파산으로 몰았던 경제 참사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가장 쉽게 설명했다. 영화는 나중에 꼭 보기로 하고 책 얘기로 돌아가면, 합성 CDO를 리처드 탈러가 소개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그는 학위와 수상경력과 직함이 있는 경제학자이다. 심지어 시카고대학이다. 아마 곧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다. 금융위기 뒤 저축 플랜을 다듬어 빚더미에 앉은 미국을 구한 경제학자로 평가 받는다. 무엇보다 그는 1970년 이후 절대 경제학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의 ‘바보’같은 행동을 연구했다. 2008년과 같은 어이 없는 사례야말로 그의 전공 분야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이콘(econ)은 리처드 탈러가 『넛지』에서 처음 쓴 단어이다. 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준말인 이콘들은 자신의 욕망에 모순되는 선택을 하지도 않고, 자기 절제 면에서 심각한 문제도 없다. 심지어 무척 복잡한 예측을 해낼 만큼 똑똑하기도 하다. (나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의 유택 교수를 떠올렸다.) 이런 이콘들은 똑똑한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벌면 얼마나 많이 저축할지를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소비함수이다. 한 달에 100만원을 벌 때 50만원을 쓴 사람이 200만원을 벌면 150만원을 저축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게 가장 원시적인 소비함수인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원시적인 소비함수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덧붙여서 정교화하기 시작했다. 케인즈가 시작한 작업은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배로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자녀와 손자들에게 상속할 재산까지 고려해서 지금의 지출을 조절하고 경제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에 이른다. 태어날 때부터 이상적인 인간이었던 이콘들은 실험실 안에서 더 똑똑해지기까지 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잠깐만 참으면 마쉬멜로를 더 주겠다고 제안해도 우선 눈 앞에 있는 걸 입에 넣고야 마는 건 ‘마쉬멜로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뿐이 아니다. 우린 늘 그렇게 하지 않는가. 리처드 탈러는 똑똑한 이콘들을 재료로 한 경제학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로버트 배로는 자신의 모형 속에서 행위자들이 자신만큼 똑똑하다고 가정하고, 나는 내 모형 속 행위자들이 나만큼 멍청하다고 가정한다.”

 

책 속에서 리처드 탈러는 ‘찌질경제학(wackonomics)’를 연구하는 ‘최초의 임상경제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미래의 경제학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경제학자만큼이나 많은 심리학자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실험과 사례가 등장한다.

 

 

행동경제학의 탄생과 성장

 

이 책은 리처드 탈러의 전작인 『넛지』나 그와 함께 시카고대학에서 근무하는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과 비슷한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면 사례 모음집보다는 리처드 탈러의 학술적 자서전에 가깝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관심사와 학문적인 경험들을 시기별로 정리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유쾌한 말투이긴 하지만 ‘기존 경제학’ 이론들에 대한 비판이 말투와 관계 없이 매섭기 그지 없다.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농담인 줄 알고 웃으면서 들었는데 돌아서서 생각하면 자꾸 호되게 한 방 먹은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

 

행동경제학의 시작은 이러했다고 한다. 강단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리처드 탈러는 미시경제학 수강자들을 세 그룹을 나누기 위해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포함해서 시험을 치게 했다.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백 점 만점에 70점 정도였다. 사실 성적은 A, B, C 상대 평가로 매겨지기 때문에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불만스러워했다. 『넛지』의 저자다운 해결책은 만점을 137점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100점 만점에 72점을 받은 학생보다 137점 만점에 96점을 받은 학생이 더 기뻐했다고 한다.

 

리처드 탈러는 이렇게 ‘합리적인 선택 모형에 벗어나는 인간의 행동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친구들 몇 명이 저녁을 먹으러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오븐에서 요리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요깃거리로 캐슈너트를 큰 그릇에 담아왔다. 우리는 5분만에 절반을 먹어 치웠고, 자칫 입맛을 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캐슈너트 그릇을 부엌으로 치워버렸다. 모든 이들이 흡족해했다.”

 

 

합리적인 선택 모형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행동 사례

 

1970년대에 시작한 작업이 40년을 넘었다. 경제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면서 실제 사람을 들여다본 행동경제학자는 우리가 이 모양인 것의 확실한 이유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자기통제 문제이다. 위 사례가 그렇다. 그냥 캐슈너트를 먹지 않으면 될 텐데 치워야 한다. 헬스클럽은 한 달 운동해보면 될 텐데 6개월 회원권을 사고야 만다.

 

그리고, 관성이 있다. 한 번 소유한 물건은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하고, 이미 내린 결정을 되돌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동 가입’이나 ‘자동 기간 연장’은 이런 경향을 이용한 것이다. 새롭게 가입하라고 권유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 ‘자동 연장’은 쉽게 동의한다. 퇴직 연금을 한 번 납입하기 시작한 사람은 퇴직 연금 비율이 조정됐을 때에도 오히려 납입 금액을 올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손실 회피 경향이다.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이 가져다 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주는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이다. 10,000원 짜리 물건에 세금이 10% 붙여서 판매하면, 세금 포함 11,000원 정가로 판매하는 것보다 덜 팔린다.

 

이 책의 백미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가 진행한 많은 실험과 관찰이다. 첫 장에서 저자는 “더 이상 재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 이 책을 덮으라”고 충고한다. 그동안 진행해온 자신의 연구가 너무 흥미로웠던 경제학자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어떤 장소에서든 마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장마다 한두 번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만히 되짚어봐야 할 것들과 만나게 된다.

 

 

더 읽는다면…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로랑 베그 저 | 부키

도덕은 선택의 문제로 여겨졌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한 상황에 한 사람을 놓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면 그가 도덕적 인간인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할 수 있다는 식이다. 심리학이 사람을 실험실로 끌어들인 이래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례가 무수히 보고됐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대단히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를 테면, 이름과 철자가 비슷한 동네로 이사하는 경향이 있다든지. 이런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까? 우선 이제까지 처방됐던 다양한 도덕적 인간 만들기 비법들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편향 많은 인간이 선해질 수 있는 심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리처드 스티븐스 저 | 한빛비즈

어떻게 생각해도 해로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목숨을 걸고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 레이서나 3천 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버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도 해로운 것들 알면서 끌릴 때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탈들, 술이나 담배에 중독되는 것, 위험을 감수하는 것, 욕 하는 것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렇다는 얘길 하고 싶을 뿐이다. 젠장, 그렇지 않은가?

 

 

루시퍼 이펙트
필립 짐바르도 저 | 웅진지식하우스

1971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된 모의 교도소 실험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가장 유명한 심리 실험이다.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는 이 실험을 기획, 진행했다. 현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 경찰관이 실험 대상자를 자택에서 '체포'하는 것으로 실험이 시작된다. 그들을 캐비넷과 몇 가지 기자재로 이뤄진 모의 교도소에 갇힌다. 그리고 무작위로 선택된 교도관들과 6일 간의 수감 생활을 시작했다. 심리 실험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결국 중단될 때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밑바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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