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윌리엄 트레버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 60대 중반 무렵이다. 그 이전에는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물론 줌파 라히리가 격찬했다는 두꺼운 『단편 모음집』은 갖고 있었으나, 그 두께에 질려서였을까, 아니면 푸짐한 잔칫상에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르지를 못해서였을까, 어쨌든 제대로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중반에 나온 단편집 『비 온 뒤』를 읽었을 때이다. 트레버는 물론 그 이후로도 계속 작품을 써오고 있는데, 사실 나는 그 뒤에도 장편 『루시 골트 이야기』를 읽고 있을 뿐, 소상하게 소식을 챙기고 있지는 못하다.
1990년대 중반의 트레버
따라서 내가 소개할 수 있는 트레버는 1990년대 중반의 트레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트레버의 사진은 대개 이 무렵에 찍은 것인 듯하니, 다행히도 내가 소개할 트레버와 독자들이 눈으로 보는 트레버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이 말로 독자들에게 트레버라는 작가 전체를 거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부실한 소개자라는 처지를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변명하려고 준비한 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비 온 뒤』에는 늙은 지혜의 시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 있는데, 이것은 트레버 만의 목소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아무래도 그의 작가 이력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트레버는 젊은 시절부터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을 것이기에, 『비 온 뒤』의 트레버만 가지고도 그의 세계 전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은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그 추측이 맞느냐 틀리냐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사실 『비 온 뒤』를 처음 읽으면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작가의 가혹함이었다. 아마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면서도 그 인물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트레버는 1928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작가이고, 젊은 시절에 아일랜드를 떠나 이후 영국에서 살았지만 아일랜드인, 그 가운데도 아일랜드 민중의 이야기를 많이 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은 『비 온 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하루’나 ‘우정’을 제외하면 중간계급 상층에 속하는 인물이 중심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마 이런 점, 즉 아일랜드 민중을 주로 다루는 작가라는 점 때문에 내게 어떤 선입관 같은 것이 있었던 듯하고, 그것이 깨지는 과정에서 트레버가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잔혹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다
예를 들어 이 단편집에 수록된 첫 작품 ‘조율사의 아내들’을 보자. 아일랜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것으로 짐작되는 눈멀고 가난한 조율사는 상처를 한 뒤, 젊은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보던 여자 벨과 재혼을 한다. 그러나 벨은 젊은 시절 자신을 젖히고 조율사를 차지했던 첫 번째 부인 바이얼릿의 그림자가 모든 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바이얼릿은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의 눈이었고, 따라서 남편의 세계는 바이얼릿의 묘사를 기초로 구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 이 상황에서 벨은 어떻게 하고, 또 조율사는 어떻게 행동할까? 조율사와 두 아내는 어떤 식으로 공존할까? 아마 나는 트레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답, 어떤 온정적 해법을 예상했는데, 트레버는 그 답을 냉정하게 깨버렸다. 트레버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당장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적당한 화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상황이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기초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어느새 트레버에게 설득 당하여, 그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다고 인정했다.
사실 아일랜드 민중이라고 해서 왜 냉정하게 생각을 못할 것이며, 왜 진정한 자기인식에 도달하지 못할까. 하층민이라고 왜 온정과 감상으로만 문제에 다가가려 하겠는가.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삶의 곡절을 겪으며 냉철하게 현실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별 볼 일 없는 좀도둑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볼일’에서 좀도둑 갤러거와 맨건은 교황 방문으로 텅 비어 버린 도시에서 빈집털이를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던 노인과 마주친다. 그들은 경찰에 찌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노인을 협박하고 나오지만 못내 찜찜하다. 장물을 팔고 우연히 만난 여자들과 놀아도 찜찜한 마음은 털어버릴 수 없다. 노인을 죽여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 후회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런 후회 자체가 허세라는 결론에 이른다. 애초에 살인을 할 만한 인물들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좀도둑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그들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자기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무심하고 지혜로운 시선
물론 이런 자기 인식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 예는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표제작인 ‘비 온 뒤’일 것이다. 이것은 여행, 풍경, 그림, 날씨, 시간, 기억, 대화 등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 한 개인의 작다면 작을 수 있는, 그러나 그 개인의 인생에서는 중대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한 편의 시처럼 그린 작품이다. 그 깨달음이란 연애에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으로, 실연의 상처를 이겨내는 계기라는 점에서는 작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중대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의 시선이 자리 잡은 곳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레이터가 풍경이나 날씨 같은 자연현상 옆에 자리 잡고 인물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작가의 시선이 자연을, 시간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시선은 가혹한 것이 아니라 늙은 자연이나 시간처럼 무심하여 지혜로운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함부로 손을 내밀거나 어설프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보다도 그렇게 함께 견디면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인물에 대한, 인간에 대한 최대의 존중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비 온 뒤』 전체에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위력적인 3인칭 시점, 인물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삼가서 지켜내는 거리, 인물이 자기 인식에 이를 때 겹쳐서 들리는 지성적인 목소리는 고통 뒤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어져야 하는 인간의 삶을 지켜내려는 작가의 무기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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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윌리엄 트레버 저/정영목 역 | 한겨레출판
영미권 단편문학의 거장으로, 아일랜드 출신 영국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베스트셀러 소설집 《비 온 뒤》가 정영목의 번역을 통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초기 단편을 모두 묶은 《단편 모음집》 이후 그의 나이 67세에 펴낸 소설집이며, 1996년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 ’에 선정되었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영목(번역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제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감성과 이성』, 『눈먼 자들의 도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로드』, 『서재 결혼시키기』, 『비 온 뒤』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