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서 여름 방학을 맞아,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세 차례에 걸친 특강을 진행했다. 이 특강은 『번아웃 키즈』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행사로,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정신분석가 이승욱의 강연이 지난 7월 14일에 열렸다. 이승욱은 대한민국 부모』, 『천 일의 눈맞춤』, 『애완의 시대』의 저자로 현재는 서촌에서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며 사회적 약자와의 소통을 나누고 있다. 그는 뉴질랜드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 및 심리치료실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했고,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승욱 저자는 ‘과도한 성과주의가 아이를 어떻게 내모는가’를 주제로 오늘날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무기력 현상인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는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이승욱 저자는 23년째 정신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만났던 사람만 52개 인종에 달한다. 강연에 앞서 그는 “다양한 경험과 사례를 통해 얻은 노하우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라며 “정언 명령이 아닌 일종의 레퍼런스 형식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아이들을 향한 ‘관심’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성장할까요. 우선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겠죠. 인간을 행위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본능은 자기보존 본능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보존감을 느끼죠. 여기서 밥을 먹는 것처럼 에너지가 내부적으로 생산되는 것도 있지만 외부에 의해서 계속 자극받는 것도 있습니다.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관심입니다.”
이승욱 저자는 부모의 관심을 비롯한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은 우리를 계속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설령 직장 상사라 할지라도 부하 직원으로부터 관심이 필요한 법. 하지만 작가는 관심이 우리에게 중요 에너지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들의 모습을 지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아주 어릴 적, 4~5살 이후로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관심 있게 응시했는지. 혹시 나를 가장 많이 야단치고 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끊임없이, 확신에 차서 내놓았던 부모님이 기억나지는 않으신지요. 아마 부모님의 응시가 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줬다고 느꼈다면 정말 행복한 유소년 시절을 보내신 분입니다.”
부모들의 유년 시절에 이어 현재 부모가 된 그들의 모습에 대해 묻기도 했다.
”이제 부모로서 여러분을 생각해보세요. 대부분 자녀가 있을 겁니다. 아이들을 얼마나 응시하고 계신가요?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행동은 관찰이지 응시가 아닙니다. 응시는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어내기 위한 것이죠. 부모는 관찰의 눈길을 보내지 응시하진 않아요. 이것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우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흔히 하는 말이 있죠. ‘아빠,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왜 그런지 잘 생각해 볼 때입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두 가지 조건
이어서 그는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잘 키워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수백 편의 논문과 자료를 살펴본 끝에 도출해낸 두 가지의 조건을 밝혔다.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의 조건은 민감도(sensitivity)와 반응성(responsivity)입니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해요. 민감하게 불편한 점을 알아냈지만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하면 헛일이죠. 결국, 올바른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는 민감하면서도 적절한 반응을 하는 사람이에요. 역설적이지만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행하려면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죠. ‘자녀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지’라는 생각으로 오셨다면 오늘 강연이 유익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아이가 어떻게 더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오셨다면 그런 점들 잠시 털어내시고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승욱 저자는 본인이 듣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효과적인 예시로 들어 강연을 펼쳤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지만 마냥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 부모의 단적인 면을 보여줬기 때문에 객석에서는 종종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음은 부모가 아이에게 올바른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의 경우다.
“엽기적인 케이스가 많습니다. 자녀를 결국 3수 시켜서 의사를 만든 부모가 있었죠. 어느 날 자식이 의사 자격증을 따고 전화를 하더랍니다. ‘당신의 아들로서 살았던 세월은 정말 지옥 같았다. 다시는 나를 찾지 마라.’ 이렇게 통보하고 아들은 사라져버렸어요. 이 어머니는 아들이 자는 동안 3년 내내 밤마다 방에서 천배를 한 엄마였죠. 당시 아이는 자고는 있지만 엄마가 그러는 걸 알고 있어요. 엄청난 고문인 거죠. 더 슬픈 것은 아들이 사라지고 나서 찾으려 보니, 아이의 친구관계서부터 아이를 찾을 만한 단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죠. 아이가 공부를 잘하더라도 부모의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하기 힘들어집니다.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다 잘할 순 없는 법이에요. 욕심을 줄이고 생각해보세요. 자녀에게 올바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죠.”
꿈을 강요하는 부모들을 꼬집다
이승욱 저자에 따르면 상담센터의 주 고객은 청소년 층이다. 강남 상담센터의 얘기를 들어보면 절반 이상이 청소년이란다. 방문 이유의 대부분은 무기력 때문. 그가 서촌에서 운영하는 센터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아이를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 소진 상태에 이르게 한다.
“무기력한 아이에게 부모가 접근하는 방식은 ‘넌 꿈도 없니?’와 같이 꿈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거예요. 그런 부모에겐 아이 말고 당신을 먼저 챙겨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한민국 부모들의 대부분은 기-승-전-공부예요. 뭐 하나 좋다고 하면 그것을 공부로 몰아가죠. 한 아이는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 했더니 곤충도감을 영어로 된 것을 사다 주더랍니다. 무기력의 뿌리가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선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든 것은 부모죠.”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장래희망을 진작에 정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승욱 저자는 “장래희망을 정하는 것은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동기부여를 만들려는 교활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본 무기력은 강력한 무언가로 한번에 오지 않는다. 무기력 증상은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서서히 아이를 잠식시킨다.
“삶에 전체에 대해서 무기력을 느끼진 않아요. 생활이 됐든, 가족이 됐든 분명 무기력하게 하는 어떤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무기력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언가에 착취당하고 있을 때죠. 직장생활을 가정해봅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인사고가를 잘 받는 사람은 부장 옆에 붙어서 골프가방을 닦아주고 짐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이 승진을 더 잘해요. 그러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선 의욕이 꺾이겠죠. 인간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잘 안 줘요. 주면 열심히 안 할 것 같거든요.”
이어서 이승욱 작가는 아이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부모들의 모습에 대해 촌철살인을 가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걸 좀처럼 주지 않죠. 수학 점수를 평소에 60-70점 받다가 90점을 받아오면 2개 틀린 것을 지적해요. 더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을 맞아오면 ‘이번 시험 쉬웠나 보다’라고 하죠. 그래서 반에서 1등을 해오면 반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말하고, 전교 1등이 되어 나타나면 강남가면 상대도 안 된다고 말하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안 줘요. 잘한 만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면 교만해져서 공부를 안 할 까봐 불안해하죠. 정말 좋지 않은 태도예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면, 본인의 삶이 아닌 부모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소진되고 무기력해집니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자발성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길로 빠져들게 될까. 이승욱 저자에 따르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영아기 때부터 자발성의 싹이 굉장히 많이 깎여나간다. 또한, 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자발성이 사라지고 본인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했을 때 번아웃 증후군이 나타난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전조작기’라는 시기가 있어요. 2세에서 7세의 아동에게 해당되는 시기죠. 이때의 아이들은 비논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똑같은 컵에 똑같은 물을 담아 넓이가 좁고 긴 컵과 넓고 짧은 컵, 두 개의 컵에 따랐을 때 양은 당연히 똑같습니다. 하나, 유치원 아이들은 과정을 다 보고 있더라도 긴 컵에 물이 많이 담겼다고 인식합니다. 시각적인 논리성이 아직 구성되지 않은 시기예요. 때문에 아이들의 정보 습득의 80% 이상은 입으로 이뤄져요. 입으로 사물의 형태나 질감, 혹은 감도를 판단하죠. 그런데 아이들이 무언가를 입으로 가져갈 때 부모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반응의 상당수가 ‘하지마’, ‘안돼’와 같은 금지어예요. 탐색을 격려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자율성이 손상되는 거죠. 이 시기부터 시작해서 자발성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무언가를 하려는데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의 간섭이 커질수록 더 심해지죠. 자가구동의 구조가 꺼져 버려요. 한국사회는 특히 그러기에 좋은 생활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자발성이 떨어진 삶, 수동적인 삶은 결국 번아웃 증후군으로 나타나죠. ”
번아웃 증후군, 무기력을 해소할 방법은?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이승욱 저자는 두 가지 해법을 말했다. 하나는 무기력함이 다할 때까지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엄마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오락할 틈도 없이 바로 픽업해서 학원으로 이동시키고. 아이들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요. 엄마의 애완견이 되거나 완전히 무기력해지거나 둘 중 하나죠. 무기력 증상은 보호본능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에너지입니다. 무기력이 하나의 에너지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시겠지만, 분명 무기력도 하나의 에너지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의 발현인 셈이에요. 때문에 무기력할 때 괜히 힐링의 차원에서 멘토의 강연을 듣고, 자기개발서 읽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시간을 두고 계속 무기력해져서 고갈시켜버려야 해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마지막으로,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칭찬과 관심을 말했다.
“칭찬해주세요. 결과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을 봐주세요. 몇 개를 맞추는지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집중을 잘하기만을 바라더라도 아이는 괜찮을 겁니다. 관심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올게요. 궁극적으로 기울여야 할 관심은 ‘내 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아니라 ‘잘 성장하고 있는가’예요. 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관심 가지는 것이 중요하죠. 지난 1주일간 아이에게 요새 기분은 어떤지 물어보신 분 있으신가요. 보통 숙제는 다했는지, 공부는 열심히 했는지를 물어보시진 않나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정서와 기분을 가지고 있을까요. 일주일, 아니 한 달에 한번이라도 물어보세요.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세요. 그러다 보면 아이는 자라서 되물을 거예요. 엄마 요즘 기분은 어때.”
이승욱 작가에게 묻다
아이가 문제를 풀고 나서 오답을 체크하고 다시 풀어보는 과정을 싫어하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제가 초등학생에게 공부를 시킨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이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생각해보세요. 이 강연을 듣고 시험을 쳐서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겠다. 그러면 여기에 강연 들으러 몇 분이나 오시겠어요.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평가 받는 거예요. 평가는 선생님이 하는 것이죠. 모자(母子)의 관계는 친밀과 애정으로 맺어진 사이에요. 엄마가 평가자가 되면 그 사이가 오염이 돼요.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를 오염시키고 싶지 않은 것일 뿐이니 억지로 강요하지 마세요.
무기력이나 폭력이 한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 같아요. 중간 지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1-2-4 사회가 올 겁니다. 1명의 아이가 2명의 부모와 4명의 조부모를 부양해야 될 시대가 되어가고 있죠. 아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어린 시절부터 번아웃 증후군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사회제도와 구조와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모가 전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 것인지 전망을 가져야 해요. 우리가 전망을 갖지 못하니까 아이에게 욕망을 투영하는 거예요. 부모들만의 전망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아이들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덜 불안해질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할까요?
자율성은 합의하는 것이지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합의하더라도 아이는 부모의 한계치를 계속 두드려 볼 거예요. 그렇다고 그때마다 포기하고 양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부모가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아이는 한편으로, 부모를 신뢰할 수 있어요. 부모도 살아남아야 해요. 자녀보다는 덜 좌절해야죠. 그때그때 조율은 필요하겠지만 참으세요. 어느 순간이 되면 적절한 합의의 순간에 이를 수 있을 거예요.
자발성을 잃은 아이들은 결국 대학생이 돼요. 그리고 현재의 젊은 층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정장애에 대한 설명과 극복 방안을 말씀해주신다면요?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한다는 거죠. 손해 보지 않으려 해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상황을 깨뜨리려 하지 않아요. 작년에 일어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대학생들이 MT를 갈 때 수박을 가지고 갔는데 칼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는 거예요. A엔 B를 해야 한다. 결정에 대해 정해진 답을 고집해요. 틀에 박혀 있죠. 다른 C, D, F, E 등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거죠. 20대의 발달 단계가 5~6년은 밀린 듯해요. 지금의 질풍노도 시기는 20대죠. 대학에 오면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생기고 본격적인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예요.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방황, 좋은 말로 탐색입니다. 그냥 뭐든지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정해진 길이 아닌, 안 가본 길을 가봤으면 좋겠어요.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은 부처의 말에서 가져왔어요.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안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하라. 이 말을 드리고 싶네요.
김상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성심성의껏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민재씨
2016.07.26
동글
2016.07.22
maum2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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