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의상, 환상적이면서 때로는 인간미가 묻어나는 이야기, 그리고 매혹적인 음악. 온갖 감각의 향연으로 뮤지컬은 대중의 눈과 귀를 채워 왔다. 기원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등장하고 몇백 년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오페라와 무대예술이라는 말은 거의 동급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1900년대 초, 조지 거쉰, 제롬 컨 등 미국 작곡가들이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과도기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제 브로드웨이가 ‘뉴 베네치아’다! 이즘에서는 이미 고전의 칭호를 얻은 <오페라의 유령>부터 2014년에 만들어진 <해밀턴>까지 중요한 넘버 스무 곡을 꼽았다. 다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잠시 미뤄두고, 오리지널 창작극을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노래로만 리스트를 구성했다.
1. The Music of the Night (오페라의 유령)
‘음악 천사’ 팬텀을 따라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내려오는 크리스틴. 그에게 바치는 황홀한 노래가 밤을 채우고, 내내 환청처럼 들렸던 천사의 음성은 마침내 달콤한 현실이 된다. 아주 오랫동안 가면 뒤 세계에 갇혀 있던 남자에게 이제 어둠은 사랑스럽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팬텀 역의 정수로는 초연 멤버였던 마이클 크로포드를 꼽으며, 라민 카림루 또한 크로포드의 섬세함에 강렬함을 더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The music of the night」은 극중 남자 주인공인 팬텀의 가장 유명한 넘버로, 우아한 밤의 찬가이자, 프리마 돈나 크리스틴을 향한 고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곡은 클래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페라 아리아의 성향이 짙다. 특히 날카로운 톤으로 속삭일 때 그에 맞춰 반음씩 움직이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케스트라가 환상적이다. (홍은솔)
2. Memory (캣츠)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로드(Lord) 로이드 웨버’ 그리고 ‘뮤지컬의 마법사’로 만든 것은 당연 음악이다. 뮤지컬 <캣츠>의 관객들은 과거의 화양연화를 지나 이제 늙수그레해진 창녀 ‘그리자벨라’의 인간적 넋두리에 동정과 연민을, 거기에다 극을 지배하는 강렬한 발라드 선율에 무한 흡수를 경험한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일 뿐 아니라 어쩌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 아니면 뮤지컬 전체 역사의 정점일지도 모른다.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때의 엘레인 페이지(Elaine Page) 버전이 1981년 싱글차트에 올라 6위에 오른 대중적 히트가 그 흡수력을 실증한다. 주요 시점의 <캣츠> 공연에 이 노래를 부른 여가수는 사라 브라이트먼을 비롯해 대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팝 버전으로는 배리 매닐로우가 빌보드 순위는 높지만 대중의 기억은 무결점 소프라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버전에 몰린다. 과장하면 별칭 그대로 로드, ‘신(神))의 멜로디’! (임진모)
3. Seasons of love (렌트)
예술과 가난은 오랜 숙명적 관계인걸까. 18세기에도 현실이라는 시궁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바로 푸치니가 만든 오페라 <라 보엠>이다. 파리의 라탱의 이야기를 뉴욕 이스트 빌리지로 옮기고 이야기를 현대화 시킨 뮤지컬이 <렌트>다. 음악 스타일도 아리아가 아닌 록과 R&B로 바뀌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은 2막을 여는 가스펠 합창곡 「Seasons of love」. 인생을 사랑으로 채우라는 노랫말이 뭉클하다. 게다가 작사, 작곡, 극본을 맡은 조나단 라슨의 극적인 죽음도 렌트의 성공에 한몫했다. 그는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인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서 <렌트>의 드레스 리허설을 마친 다음 36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했다. 그의 죽음은 젊은 예술가들의 비극을 담은 뮤지컬과 너무 닮아 더 안타깝게 기억된다. (김반야)
4. Defying gravity (위키드)
단지 피부색이 초록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엘파바. 게다가 자신이 깊이 동경하던 이가 실은 보잘것 없는데다가 비겁하기까지 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배신감으로 분노한다. 그러나 웨스트라이프의 「You raise me up」을 연상시키는 「Defying gravity」의 가슴 벅찬 멜로디가 이 멋진 약자에게 절망이 내리도록 마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비틀어 선악을 전복시킨 작품 <위키드>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메인으로 가져와 조명한다. 곡이 절정으로 흐르며 엘파바는 정말로 비상한다(몸이 하늘 위로 떠오르며 엄청난 부피의 로브 자락이 펼쳐진다.) 편견을 뚫고 날아오르는 청춘에게 이보다 솔직하고 당찬 희망가가 또 있을까. (홍은솔)
5. One night in bangkok (체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체스>는 1984년에 초연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흥행과 평가 모두 실패했지만 이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는 아바의 두 남성 멤버 배니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 그리고 유명한 뮤지컬 작사가 팀 라이스가 음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삽입된 「One night in Bangkok」은 베니와 비요른이 작곡하고 팀 라이스가 가사를 썼다.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 영국차트 12위를 차지했지만 유럽과 호주에서는 정상을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우리나라 라디오에서도 환영받았다. 당시 국내에서 사랑받은 유로 댄스의 선율과 리듬 속에 동양적인 요소를 이식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뮤지컬 배우 머레이 헤드의 랩 같지 않은 읊조림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을 선사하며 서구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갔다. 하지만 노래의 배경이 된 태국에서는 석가모니에 기대고, 술집은 사원처럼 되어 있고, 금으로 만들어진 사원에서 신을 만나고, 운이 좋으면 여장 남자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태국을 비하하고 부처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소승근)
6. I still believe (미스 사이공)
레아 살롱가를 뮤지컬 무대 위로 올린 최초의 곡. 최악의 상황에서도 비참한 심경을 억누른 채 주인공 킴은 단호한 어조로 ‘믿음’을 내뱉는다. 거기에는 짧았지만 소중했던 인연의 조각,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을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
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이슈로 시끄러운 요즘에 보기에 미스 사이공의 비극은 쓸쓸함이나 안타까움보다는 불편함과 분노로 다가오기 쉽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양 우월주의 사상에 기반해 패전국인 미국을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비판받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 킴 역할을 맡은 레아 살롱가는 미국에 50년 가까이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 출신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그리고 이 곡이 사랑받는 이유는 한 인간의 맹목적인 헌신에 담긴 숭고함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 (홍은솔)
7. Don’t cry for me Argentina (에비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역사적 콜라보는 대중적 명작으로 자동 연결되곤 하지만 그 가운데 아마도 발표시점의 시장과 차트 장악력에 관한 한 이 곡을 따를 수는 없다. 1976년 먼저 앨범이 나오고, 1978년 뮤지컬로 공개되면서 팝과 쇼 무대를 동시 평정하는 대 기염을 토했다. 아르헨티나 ‘민중의 여신’ 에바 페론(에비타)의 삶을 그린 웅대한 드라마(라이스)와 귀를 휘감는 화성과 멜로디(웨버)의 유니버설 파워일 것이다. 가끔 표절 혐의에 오르는 것도 튠스미스(tunesmith) 웨버가 이처럼 언제나 대중노선을 타기 때문이지 않을까.
영국 차트 1위에 오른 줄리 코빙턴(Julie Covington) 버전이 전파에선 우월했지만 엘레인 페이지, 카렌 카펜터, 올리비아 뉴튼 존, 시네드 오코너, <글리 시즌6>의 레아 미셀 등 여가수라면 한번 불러봐야 할 스탠더드 넘버로 남았다. 마돈나가 이를 영화로 만들어 스스로 에비타로 분해 노래한 1996년 버전은 새로운 세대에게 이 곡의 시공초월 보편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가히 20세기의 문화유산! (임진모)
8. Les temps des Cathedrales (노트르담 드 파리)
가장 단순하고도 강렬한 뮤지컬 인트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문을 여는 역할로, 극의 비극성과 웅대한 이미지를 한 곡으로 예비한다. ‘대성당’이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멜로디에 워드 페인팅 기법을 도입한 게 특징. 몇 개의 계단을 거치며 2옥타브 가량 높이 상승하는 선율과 무대 위 첨탑 같은 상징물이 압도적이다. 음유시인 그랑그와르의 독창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프랑스어의 둥글둥글한 발음과 엄숙하고도 폭발적인 가창이 합쳐져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접하는 듯 묘한 인상을 준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기반해 있으며, 1998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무대에 활발히 올라가는 스테디셀러이다. (홍은솔)
9. Do-Re-Mi (사운드 오브 뮤직)
언제 들어도 가슴 한켠이 밝아지는 힘을 지녔다. 독일과의 합병을 피해 자유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표곡이자 테마곡 「Do-Re-Mi」(도레미)는 1959년 첫 막을 올린 뮤지컬 무대에서 처음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보다 후에 제작된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유명해졌다. 경쾌하고 산뜻한 멜로디에 마리아 수녀와 일곱 남매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담고 있는 곡은 그 인기만큼 오랜 세월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 사람들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 (박지현)
10.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예수가 록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발칙한 상상이 무대 위에 구현된 뮤지컬이다. 신성화된 예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와 그런 그에게 푹 빠져버린 마리아 막달레나의 내면적 갈등을 노래한 이 곡은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헬렌 레디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잔잔한 반주에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 느끼는 당혹감을 읊조리다 클라이맥스에선 코러스와 웅장한 현악 사운드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 표현력은 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덕분에 노래는 빌보드 차트 13위까지 오르며 지지부진했던 헬렌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정연경)
11. Origin of love (헤드윅)
헤드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옛 연인의 곡을 베껴 록스타가 된 ‘토미 노시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해 자신의 몸에 앵그리 인치를 남기게 된 ‘헤드윅’,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의 남편이자 아내인 ‘이츠학’ 몸 혹은 마음 어딘가가 상처 투성이인 불완전한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과연 사랑은 있는가?’ 라는 어려운 질문을 이 곡 하나로 답한다. 신화로 풀어낸 가사도 좋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이미지를 설명하는 무대 장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의 극본과 연출, 주연을 맡은 존 캐머런 밋첼이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조승우, 조정석, 변요한 등 우리나라에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은 꼭 한 번 거치는 뮤지컬 관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헤드윅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김반야)
12. My strongest suit (아이다)
작품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비극적인 사랑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 암네리스의 입장에서 <아이다>를 살펴보자. 그는 파라오의 딸이자 한 나라의 공주. 막대한 부는 물론이고, 남부럽지 않은 권력까지 갖춘 그는 완벽한 남자 라다메스와 결혼을 약속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아이다가 등장하기 전까지. 난데없이 등장한 패전국의 포로가 수년간 짝사랑해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심지어 이 포로는 ‘나의 가장 완벽한 드레스’를 만들어 줄 하녀인데. 이 얼마나 비참한가.
디즈니가 제작한 뮤지컬 <아이다>엔 「My strongest suit」를 제외하고도 「Written in the stars」, 「Every story is a love story」, 「I know the truth」 등 멋진 넘버들이 등장한다. 엘튼 존이 음악을 맡고 팀 라이스(Tim Rice)가 작사를 한 <아이다>의 음악들은 토니 어워드(Tony Award)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음반상을 수상했다. 또한 스팅, 티나 터너, 자넷 잭슨, 제임스 테일러 등 유명가수들이 재해석한 음반도 발매되었다. 그러나 스파이스 걸스 버전의 「My strongest suit」은? 음. 글쎄. (이택용)
13. I dreamed a dream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의 감동은 극 초반 앤 해서웨이로부터 시작됐다.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미혼모 판틴의 삶은 등장인물 중 가장 슬프고 가엾다. 클로드 미셸 쇤베르는 이 곡을 작곡할 때 대본을 수없이 읽으며 인물의 비참하고 나약한 상황을 노래 속에 녹이고자 했다. 한 때 사랑받았을 여성이, 빛이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많은 관객의 가슴 깊이 박혔다.
화면은 한곳에 고정되어있고 오롯이 앤 해서웨이의 노래가 공간을 채운다. 가늘었던 목소리는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분노나 절망으로 바뀌어간다. 선율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완전히 몰두된 눈빛과 톤, 몸의 움직임이 처연한 감성을 일렁였다. 흐르는 눈물, 격정적인 표정은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되여 뮤지컬 무대가 잡아낼 수 없는 순간을 전달했다. 그렇게 레미제라블은 불행한 사람들의 ‘노래하는 얼굴’을 정면으로 담아내며 여운을 남겼다. (정유나)
14. Cell block tango (시카고)
극을 대표하는 또 다른 명곡 「All that Jazz」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면, 「Cell block tango」는 주요 등장인물 여섯 명을 차례로 조명한다. ‘펑’, ‘여섯’, ‘우지끈(squish)’, ‘어-어(Uh-uh)’, ‘시세로(Cicero)’, ‘립시츠(Lipschitz)’. 각자 다른 이유로 애인을 살해하고(혹은, 누명을 쓰고)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여섯 여인은 사건의 경위를 키워드로 설명한다. 노래에 맞춰 조명과 소품, 아찔한 의상이 연출하는 섹시한 긴장감은 무대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
시각 요소를 제외해도 듣는 재미는 상당하다. 리드미컬하게 쪼갠 멜로디와 대사로 전하는 사건 전말, 경쾌한 제창(unison) 후렴구까지, 6분 남짓한 구성에 빈틈이 없다. 각기 다른 개성의 보컬을 유연하게 묶는 탱고의 매력은 또 어떤가. 음악은 가사의 내러티브를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흡인력을 유지한다. 뮤지컬 넘버로써 관객의 눈과 귀를 동시에 움켜쥘 수 있는 곡만큼 탁월한 것이 있을까. 「Cell block tango」는 그런 측면에서 만점에 가깝다. (정민재)
15. Alexander Hamilton (해밀턴)
뮤지컬 역사를 통틀어
그중에서도 「Alexander Hamilton」은 극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곡은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 실제 역사 속에서 그의 정적(政敵)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 등 극 중 모든 캐스트가 무대에 올라 함께 부르는 프롤로그 성격을 띤다. 알렉산더의 출생과 성장, 뉴욕에 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랩과 노래에 압축해 관객들에 전하는 것. 오늘날의 래퍼 드레이크를 보는 듯 랩과 노래를 여유 있게 오가는 래핑, 매끈한 가사의 압운과 플로우, 잘 들리는 멜로디 파트를 고루 갖췄다. 뛰어난 음악 덕분에 특별한 연출 없이도, 그 스케일만으로 무대는 압도적이다. (정민재)
16. Electricity (빌리 엘리어트)
탄광촌 소년 빌리는 발레리노를 꿈꾼다. 아버지와 형의 거센 반대도 소용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왕립 발레 학교. 그토록 바랐던 오디션을 망친 빌리에게 한 심사위원이 물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 빌리? 너는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 소년은 말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마치 제 안에 전기(Electricity)가 통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유로워져요. 자유를 느낀다구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17. 42nd street (브로드웨이 42번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성지로 통하는 뉴욕의 브로드웨이(Broadway)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곡이다. 소설 원작으로 시작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원작 출시 이후 무려 반세기의 세월을 거쳐 1980년 뮤지컬로 초연돼,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웰메이드 작품이다.
극 중 히로인인 페기 소여(Peggy Sawyer)가 모든 역경을 딛고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찬미는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응시했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탭댄스와 화려한 의상, 소품 등은 공연의 맛을 더한다.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이기에 그 의미가 배가된다. (현민형)
18. This is the Moment (지킬 앤 하이드)
1990년 초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1막 후반부를 아련하게 닫는 곡. 국내에서는 조승우가 부른 버전이 인기를 모았다. 장엄하고 절실한 멜로디에 얹히는 ‘내게 확신만 있을 뿐’이라는 희망적인 가사가 대중에게 긍정적인 분위기로 다가왔지만, 정작 곡이 끝난 후에 지킬 박사는 실험 실패로 하이드로 변모한다. 세계 여기저기서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달려가는 이들을 응원하기에, 이만한 곡은 없다. (이기찬)
19. Rebecca (레베카)
핵심 인물 ‘레베카’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한평생 아가씨를 모셔온 ‘댄버스 부인’이 자리를 지키며 그 이름을 되부른다. 어두운 단조 멜로디, ‘레베카~ 나의 레베카’ 같은 집착 담긴 노랫말이 인물과 꼭 닮았다. 곡을 작곡한 실베스터 르베이는 전작 <모차르트>에서도 괴팍하고 모난 캐릭터에 음악으로 생을 불어넣었다. 댄버스 부인은 이 곡으로 검은 마녀처럼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며 극을 장악한다.
레베카에는 뮤지컬 <시카고> 같은 역동성, <캣츠>의 화려한 의상을 찾기 어렵다. 배경 또한 저택에 한정되어 있다. 대신 미스터리한 대저택 곳곳과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모두 레베카의 어둡고 검붉은 느낌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시각적 연출은 소설 레베카를 영화로 제작한 스릴러 거장 히치콕 감독의 흔적이다. 음악과 무대가 정성스레 빚어낸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는 레베카 대신, 그를 그리워하는 댄버스 부인에 투영되어 존재감을 몰아준다.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되던 캐릭터는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는다. (정유나)
20. Any dream will do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약관에 채 도달하지도 않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스무 살로부터 겨우 두 해를 더 넘긴 팀 라이스는 천부적인 재기를 가득 담아 뮤지컬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를 함께 만든다. 후일 그들이 써내릴 여러 대작들에 비하면 다소 엉성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연출과 성서 창세기 속 요셉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제작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Any dream will do」는 뮤지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이다. 몽환적인 사운드 톤과 아기자기한 리듬 위에서 요셉과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노래에 작품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주제와 내용, 구성과 색감이 녹아있다. 1991년 런던 팔라디움에서 상연될 당시 요셉 역을 맡았던 제이슨 도노반의 버전이 큰 인기를 끌었고 그외에도 대니 오스먼드, 리 미드, 코니 탤벗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버전도 널리 알려졌다. (이수호)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