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주홍글씨>의 배우 임강희를 만나다!
연극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노래도 해야 하니까 힘든 거죠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는 노래 같지 않게, 좀 더 연기적으로 불러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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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가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난 2013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우수상, 이듬해 우수작품 제작지원작에 선정돼 2015년 초연됐고, 2017 올해의 레퍼토리 선정작으로 다시 공연되는데요. 종교적, 도덕적으로 엄격했던 17세기 미국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주홍글씨>는 무엇보다 탄탄한 배우진이 눈에 띕니다. 주홍글씨를 가슴에 단 채 사랑을 노래하는 헤스터 역에는 오진영, 임강희, 딤즈데일 목사 역에는 허규, 임병근, 칠링워스 역에는 최수형, 박은석 씨 등 확연히 다른 빛깔의 배우들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요즘 그 누구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헤스터 역의 임강희 씨를 공연이 끝난 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마이크 빼고, 가발 벗고, 옷 갈아입고, 분장지우고... 무대 뒤는 바빠요(웃음).”

 

인터뷰가 하필 임강희 씨의 <주홍글씨> 첫공 뒤에 잡힌 데다 커튼콜 때 유독 격한 감정이 느껴져 조금 걱정했는데, 그녀의 눈시울은 아직 젖어있지만 가발을 벗고 분장을 지우며 조금씩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첫공이라서 감정적으로 좀 많이 갔나 봐요, 울컥하더라고요. 감정적으로 무거운 작품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유지하려면 지구력이 필요한데, 지금 다른 공연도 하고 있어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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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인데 어땠나요? 사생아를 낳은 여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라서 일단 시대상을 이해하고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싶던데요.


“죽다(극단 죽도록달린다) 작품 자체가 워낙 탄탄하게 연습을 시켜서 연습했던 만큼은 한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주홍글씨>의 시대적인 이야기가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을 봤을 때는 마녀사냥,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받게 되는 어떤 불평등에 관한 내용이고 그런 모습은 여전히 있으니까 차츰 익숙해졌죠.”

 

현재 참 쉽지 않은 연극 <프론티어 트릴로지> 공연 중이고, 연말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도 잡혀 있잖아요. <주홍글씨>에 매력을 느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본을 보고 고른 작품은 아니에요. (서재형)연출님 스타일을 좋아하고, 무한 신뢰가 있거든요. 극단 ‘죽도록달린다’를 아는 분들은 제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작품에 연극적인 요소가 많아요. 깊은 감성의 연극 같은 뮤지컬이고, 연기하는 모든 배우들이, 앙상블까지도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볼거리가 많죠. 탄탄해요.”

 

넘버도 굉장히 인상적이던데요. 멜로디 라인 자체가 평이하지 않고, 특히 남자배우들 넘버는 무척 힘들 것 같아요.


“여자 넘버도 힘들어요, 작곡가 선생님도 인정하셨어요(웃음). 이 노래들을 그냥 넘버로 부르면 솔직히 어렵지는 않은데, 연출님은 연기로 접근하기를 원하세요. 연극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노래도 해야 하니까 힘든 거죠.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는 노래 같지 않게, 좀 더 연기적으로 불러요.”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공연 초반부터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게 느껴집니다.


“모두 즐겁고 재밌게 연습했지만, 방방 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극도 그렇고, 극단도 그렇고, 연출님도 그렇고 어느 정도 진중함을 원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평소에도 이 캐릭터에 녹아들려고 노력했어요.”

 

 

대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딤즈데일 목사 역의 허규, 임병근, 칠링워스 역의 최수형, 박은석 씨는 어떨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헤스터 캐릭터는 어땠나요? 대학로 저편에서 공연하고 있는 <프론티어 트릴로지>에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잖아요(웃음).


“그렇죠, 헤스터라는 캐릭터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요. 제가 워낙 비련의 인물을 많이 연기해 봐서(웃음). 그런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동하는데, 엄마로서는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래서 배우는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연극 무대를 통해 감정을 좀 아래로 내리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슬픔을 울음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참아내며 표현하는 어른스러움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트릴로지> 시리즈는 색다른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계기였을 것 같아요. 임강희 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맞아요, <카포네 트릴로지>, <프라이드> 등을 하면서 그런 갈증은 많이 풀렸어요. 저는 원래 웃음도 무척 많고 명랑한 편인데, 무대 위에서 맡은 역할 때문인지 참하고 어둡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연극을 하면서 기존 이미지 자체를 많이 깰 수 있었고, 그러면서 연기가 더 재밌어졌어요. 내가 모르는 내가 제 안에 있더라고요. 코미디도 할 수 있고, 센 역할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도전의식도 생겼어요.”

 

그런데 쉬지 않고 달리고 계시잖아요. 쉬운 작품들이 아니고 일정도 빡빡해서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텐데요.


“네, 지금 두 공연은 다 어렵다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영향을 받더라고요. 워낙 극적인 작품들이라서 공연이 끝난 뒤 현실이 좀 힘들 때가 있어요. 내가 없어진 것 같고, 공허한 느낌도 들고. 사실 여배우로서 애매한 나이인데, 그래서 연극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갈망도 있고, 언제까지 어리고 예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려면 탄탄한 실력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울 수 있는 작품은 욕심을 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힘든 작품을 많이 하느냐고 해요. 저는 힘든 게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연기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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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로서 애매한 나이지만 어쩌면 무대 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나이이기도 한 것 같아요. 혹 욕심내고 있는 작품이나 캐릭터 있을까요(웃음)?


“그렇죠, 예전에 선배들이 여배우는 버텨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릴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버티는 게 중요하고,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잘 버텨야 하더라고요. 평생 연기하고 싶거든요. 저는 감사하게도 나이에 맞는 역할들을 해오고 있는데, 언젠가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욕심이 나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려면 다시 노래를 가다듬고 좀 더 노력해야겠더라고요.”

 

나이에 맞는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무대에 서고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는 어떤 배우이길 바라나요?


“저는 여자로서도, 배우로서도 나이 든다는 게 좋아요. 물론 어린 친구들을 보면 예쁘고 발랄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의 제가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 제 모습이 좀 더 단단하고 진중한 것 같아서 좋거든요. 저는 사실 욕심이 많아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데, 여전히 쓸 데 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을 때가 있어요. 몇 년 뒤에는 쓸 데 있는 욕심을 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 잘 살아가는 사람,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공연이 끝나고, 그것도 첫공 끝나고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임강희 씨는 연신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제 뮤지컬 <광화문 연가> 연습도 들어간다고 하네요. 몸은 피곤하겠지만, 분위기도, 색깔도 전혀 다른 세 작품에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네요. 내년 초에는 웅장한 자연 속에서 멍하니 있고 싶다는 그 바람도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임강희 씨를 만날 수 있는 뮤지컬 <주홍글씨>는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11월 19일까지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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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주홍글씨 #임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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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