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휠>의 한 장면
놀이동산엔 웃음소리만 가득하다. 끝없이 관람차는 올라가고 회전목마는 돌아가며, 인형을 맞추려는 공기총은 규칙적인 소음으로 심장 박동수를 빠르게 늘린다. 해가 지기 전, 놀이동산은 낙원의 모습 그대로다.
1950년대 미국 뉴욕의 코니 아일랜드, 영화 <원더 휠> 의 놀이동산은 빛이 환상적이다. 온갖 화사하고 울긋불긋한 조명이 쏟아내는 불빛이 그곳의 사람들을 하나같이 무대의 배우들처럼 비춘다. 지루하고 우울한 삶이란 애초에 없는 듯 보인다.
놀이동산에 집과 직장이 있는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으로 생생해진 인물 지니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몇 걸음 건너 서커스 공연장을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다. 좀처럼 웃을 일 없는 지니는 이 낙원에서 추방당하길 욕망하는 사람이다. 사랑 없는 재혼 생활, 남편은 막무가내이고 어린 아들은 학교에서 불을 지르기 일쑤다. 아스피린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두통을 안고 견디는 삶. 해가 져도 놀이동산에서의 삶은 지속된다.
지니는 잠깐 ‘새로운 낙원의 입구’를 발견했다. 비 내리는 해질녘 해변가를 참담한 마음으로 걷다가 인명 구조요원 청년을 만났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지니에겐 희곡을 전공하고 있으며 곧 학교로 돌아갈 청년 믹키가 ‘이야기 통하는 삶의 구원자’로 손색이 없다.
지니와 믹키가 처음 만나 나눈 대화를 보자.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미키에게 지니는 묻는다. “누군가의 비극이 그 사람 탓이라고 생각해요?” “운명이 큰 역할을 하죠. 인생엔 통제 불능인 것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운명론자 몽상가 청년 믹키의 답. 지니는 그 답에 좌절한 표정으로 “자초한 문제들은 예외죠”라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곱씹는다. 사랑의 대상을 쉽게 옮겨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믹키와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자책하는 지니의 삶이 맞닿을 수 없는 예시 같은 첫 대화였다.
재혼한 남편의 친딸 캐롤라이나가 무작정 찾아들면서 지니에게 구원의 희망은 아웃. 믹키는 캐롤라이나에게 반하고 말았으니.
영화 <원더 휠>의 한 장면
<원더 휠> 은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믹키가 문득 관객을 향해 대사를 늘어놓는다. “지금이 얘기를 꺼낼 타이밍 같군요. 전 험티의 아내 지니와 내연 관계예요. 자세히 설명해드리죠.” 우디 앨런의 영화 방식 중 유명한 설정. 그래도 영상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이 방식은 꽤 성공적인 우디 앨런의 트레이드 마크 아닌가.
우디 앨런은 다작 감독.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종종 영화 속의 개성 있는 배우로 연기도 한다. 많은 대사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함축한 산문시처럼 음미하게 된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는 ‘인생에 관한 희비극’을 연출하기에 더 유리한 것인가 보다. 반복된 주제의 변주에도 낡지 않은 연출력이 놀라울 뿐.
지니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을 보자. 남편은 여전히 막무가내고 아들은 또 불을 지르곤 한다. 구원으로 삼았던 믹키와의 사랑은 끝났다.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지니는 무대 위에 선 것처럼, 오래전 꿈꾸었던 배우의 모습으로 넋이 빠진, 텅 빈 표정으로 서성인다. 파국을 맞은 여자의 모습이다.
내일이면 지니는 아스피린 한 알을 털어넣고 아마도 웨이트리스 일을 계속할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삶을 바꾸려 했으나 어두워지자 삶은 그대로 어둠으로 덮였다.
스토리는 어둡고 영상은 아름답고 대사는 탄력이 넘치며 배우는 뛰어나다. <원더 휠> 의 우디 앨런이 묘사하는 삶은 아스피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우우우, 이런 탄식 섞인 체념의 의성어가 영화관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간다. 사랑도 구원이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비극적 문제의 핵심이 되는 인생의 비유가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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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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