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이가 시설에 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혜정이의 거취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에 대한 문제,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혜정이는 범죄 집단에 의해 시설로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현존하는 사회제도를 통하고 부모의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침묵 속에 ‘합법적’으로 격리된 것이었다. 그렇게 격리된 혜정이의 삶을 ‘그 또한 하나의 삶’이라고 수긍해버린다면 이 사회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법적으로’ 사회 밖으로 추방해버릴 수 있는 곳임을 자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보호’라는 자애로운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가장 끔찍한 부분이었다.
장혜영 저자의 책 『어른이 되면』 속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장혜영 감독 편>
김하나 : 동생 혜정 씨가 탈시설을 한 게 2017년 6월 2일이니까, 두 분이 함께 산지 1년 2개월 정도가 되었는데요. 혜정 씨가 열세 살일 때 헤어졌다고 하셨죠?
장혜영 : 그렇죠.
김하나 : 혜정 씨의 경우에는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발달 장애에 대해서 설명을 조금 부탁드려도 될까요?
장혜영 : 네. 발달 장애는 법적인 이름이자 의학적인 이름인데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둘 다 묶어서 이야기를 해요. 지적 장애는 말 그대로 지적인 수준에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발달하는 것이 평균적인 발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발달을 보일 때, 그런 문제가 있는 걸 이야기하고요. 자폐성 장애는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지적 장애만 갖고 계신 분도 계시고 자폐성 장애만 가진 분도 계신데, 제 동생은 둘 다 가지고 있는 케이스죠.
김하나 : 탈시설을 감행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책에서 그 말씀이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열세 살에 장혜정 씨가 여주의 산꼭대기에 있는 시설에 들어가고 난 뒤에 혜영씨는 밤마다 ‘혜정이는 잘 자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드셨잖아요. 그런 걱정이 항상 있었던 것이고, 그게 점점 물이 차올라갔을 텐데, 마지막 한 방울이 될 만한 계기는 뭐였을까요?
장혜영 : 현재 가족을 시설에 보낸 분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그래도 시설이 우리 가정이 제공하는 것보다 나은 종류의 보호를 혜정한테 제공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일부 생활재활교사 분들의 양심 선언을 통해서 혜정의 시설에서 있었던 인권 침해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하필이면 혜정이 주 피해자 중의 한 명이었고요. 시설 안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거주인들을 돌보는 분들을 생활재활교사라고 부르는데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보면서 첫 번째로 놀랐고, 두 번째로 놀랐던 건 문제를 공론화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시설과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보였던 태도였어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커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가 그 분들의 일관된 모습이었거든요. 당연히 시설은 문제가 커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죠. 그런데 부모님들, 대부분의 보호자가 거주인의 부모님이셨는데요. 그 분들이 우려하시는 건, 행여 이 시설이 없어지면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집에서는 더 이상 이 사람과 함께 할 여력이 없다는 거였어요. 다른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이미 이 사람 없이 삶의 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들이 돌아오는 건 굉장히 큰일인 거죠. 그래서 이들이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설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덮고 가야 돼’라고 명백하게 결론을 내리고 계신 부분들이 있었어요. 보호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던 공간이었는데 사실 보호라는 건 환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고, 사실은 그때부터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제목이 『어른이 되면』 인 이유가 있잖아요. 지금 혜정 씨 나이가 서른하나인데, 어른처럼 대하지 않는 거죠.
장혜영 : 그렇죠. 많은 시설에서 보여지는 모습인데요. 나이가 많은 분들인데도 돌보는 분들이 아이처럼 대해요. 반말을 하기도 하고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고. 사회에서 만난 그 나이의 비장애인에게라면 절대 대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와 행동으로 그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아마 매스컴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매스컴에서 발달 장애인에 대해서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3세 수준의’, ‘영원히 세 살인 누구는’ 같은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고 싶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면서 그 사람의 욕구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하세요’라고 말하는 거죠.
김하나 : 어른이 되어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대해주지도 않으면서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 하세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장혜영 : 네, 맞아요. 사실은 영원히 미성숙한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죠.
김하나 : 두 분이 아오모리에 여행 가셨던 영상을 봤어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이제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를 봐야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어 있죠?
장혜영 : 맞아요.
김하나 : 개봉 계획이...
장혜영 : 네, 잡혔어요. 드디어 말씀드릴 수 있는데(웃음), 12월 13일에 전국에 있는 독립영화관과 예술영화관 중심으로 개봉할 예정이에요.
김하나 : 진짜 궁금합니다.
장혜영 : 너무 감사합니다.
김하나 :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기여한 바가 많은 다큐멘터리죠? 책에 나오는 내용들도 많이 들어가 있고요.
장혜영 : 네, 맞아요. 사실 이 책도 그렇고 다큐멘터리도 그런데요. 껍데기는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인데 포장을 열어보면 우리가 새롭게 만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혜정 씨를 탈시설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리고 함께 살게 되면서, 혜영 감독님의 삶의 태도도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장혜영 : 네, 정말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물론 사명감도 크겠지만, 즐거우신가요?
장혜영 : 정말 즐겁죠.
김하나 : 아우, 이건 정말 감독님의 표정을 봐야 돼요(웃음). ‘혜정이는 잘 자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밤이 아니라, 혜정 씨가 내 눈 앞에서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클 것 같아요.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오는 즐거움도 그렇고요.
장혜영 : 그렇죠.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건지를 이제 좀 알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최선을 다하는 게 되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게 됐어요. 사람이 살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을 수 있잖아요. 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인데요. 혜정이 시설 안에 있을 때 늘 저를 괴롭혔던 게 있었어요.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나의 신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살아도, 사실 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고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인지부조화가 좀 있었어요. 내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면 혜정이 저렇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일을 깊이 들여다보고 뭘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 고민의 바닥까지 들어갔을 때 좋은 사람이지 않은 나를 발견하는 것도 너무 무섭고요.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그걸 회피하다 보니까 삶에 좋은 순간들이 찾아와도 사실 그렇게 기쁘지 않았어요.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뭔가를 직면하는 게 두렵지 않죠.
김하나 : 혜정 씨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셨을 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본인의 걱정도 있었겠지만 가족들도 우려를 했을 테고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고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장혜영 : 일단 친구들은 혼자서 활개 치며 살아가는 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겠어? 후회하지 않겠어?’라고 많이 걱정해줬어요. 그래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들이 걱정해봐야 제가 정하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요. 정말로 걱정을 하고 실제로 저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자 최선을 다하셨던 분은 아버지이셨어요.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걸 반대하셨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부모가 못나서 벌어진 일을 왜 형제인 네가 책임지려 하느냐, 이건 부모의 일이다,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거였고. 두 번째가 조금 더 본질적이었어요. 혜정이가 자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설로 보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쨌든 그곳에서 긴 시간을 살면서 나름대로 스스로 적응을 하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거기를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김하나 : 시설에 가기 전의 13년 보다 더 긴 18년을 그곳에서 보냈으니까요.
장혜영 : 맞아요. 혜정이는 나름대로 그곳에 적응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단지 네가 탈시설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데리고 나오는 건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건 정말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라고 느꼈어요. 첫 번째 문제제기에 대한 답은 이미 제 안에 있었죠. 부모님을 대신해서 불쌍한 내 동생 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이 일이 있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김하나 : 그리고 이게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기도 하고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죠.
장혜영 : 그렇죠. 다른 길이 있는지 정말 많은 시간 동안 테스트를 해봤지만 그렇지 않고, 이걸 정면돌파 하는 건 내 삶이지 아버지나 어머니의 뭔가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제가 아니라 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정이 ‘언니와 함께 나가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것에 대한 대답이 되는 것이죠.
김하나 : 그리고 혜정 씨도 시설 밖에 있는 삶이 자신한테 더 나을지를 모르는 상태잖아요.
장혜영 : 그렇죠.
김하나 : 그건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었으니까 제시해볼 수 있는 거죠.
장혜영 : 맞아요. 그래서 탈시설을 실제로 감행하기 전에 약 1년 정도를 최대한 많이 밖에 같이 나와서 시간을 보낸다는 방침을 세웠죠. 말하자면 구애의 과정에 가까운데요(웃음). ‘나랑 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네가 좋아하는 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롱~’ 하면서(웃음).
김하나 : (웃음) 그런데 저는 이 동력의 방향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을 거두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혜정이가 내 곁에 있는 게 필요해, 너와 내가 함께 잘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해’라고 인식한 거잖아요. 그 동력의 방향이 정말 믿음직스러워요.
장혜영 : 감사합니다. 많이들 오해하시는 게, 제가 이타심이 엄청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건 굉장한 이기심의 프로젝트이거든요(웃음).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2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