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의 입술 : 파국이라도 걸어 들어갈 절실함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지금, 사람들은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파국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앞날을 향해 성큼 걸어가는 염정아의 굳게 맞물린 입술을.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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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을 비롯한 배우 염정아의 주요 출연작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책감에 공부할 의욕을 잃고 제 방 안에 웅크린 예서(김혜윤)를 달래다가, 서진(염정아)은 그간 예서가 받아온 상장들을 펼쳐 놓고 말한다. “너랑 엄마랑 우리 둘이, 우리 둘이 함께 이뤄온 거. 예서야, 너 이거 포기할 수 있어? 우리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왔는데.” 제 딸의 앞날을 위해 혜나(김보라)가 죽었고, 우주(찬희)는 살인 누명을 쓰고 구속됐다. 모두의 인생이 망가져 가는 순간에도, 서진은 어떻게든 예서를 다시 쳇바퀴 위에 올리고 싶다. 진심으로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동시에, 그 동안 자신이 헌신해 온 세월이 억울하기도 한 것이다. 염정아의 연기 속에서 두 감정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걱정과 억울함 사이를 밀리초(ms) 단위로 오가는 목소리는 조금만 더 발성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그 상황을, 염정아는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눌러 간신히 닫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사람들이 염정아의 얼굴을 볼 때 제일 먼저 주목하는 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눈매지만, 인물의 절실함을 넘치지 않게 타이트하게 재단해 내는 건 그의 입술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양 옆으로 섬세하게 빠지는 입꼬리는, 굳은 결심을 표현할 때면 입술 한 가운데를 향해 점처럼 단단히 수렴한다. 경악이나 분노를 표현할 때 그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미처 닫히는 것을 잊고 새끼손톱만큼 유격을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배우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조건반사처럼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려 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입술의 사소한 경련과 잔주름까지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배우들은 많지 않다. 염정아의 입술 위에서, 우리는 그가 분한 인물의 동물적인 절박함을 읽는다.
 
염정아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오늘날 세상이 염정아에게 보내는 환호가 다소 새삼스럽다고 느꼈으리라. 그는 언제나 이론의 여지 없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고, 그를 향한 세상의 열광 또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JTBC 이 염정아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면, 그건 한서진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껏 그가 분해왔던 주요 캐릭터들의 총집본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부유하고 뒤틀린 이들의 이너서클 안에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해지는 모습은 MBC <로열 패밀리>(2011)의 인숙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뭐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은 <간첩>(2012)의 강 대리를, 이루고 싶은 절박한 소망을 위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세계로 두려운 발걸음을 떼는 모습은 <카트>(2014)의 선희를 연상시킨다. 제 몫의 절실함을 쫓아 달리는 인물, 그 절실함이 때로는 정도를 넘어서 잘못 친 건반처럼 불안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낯설어지는 인물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절실함이, 한서진에게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를 이해할 수는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지금, 사람들은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파국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앞날을 향해 성큼 걸어가는 염정아의 굳게 맞물린 입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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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 #염정아 #로열 패밀리 #간첩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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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02.11

필자는 배우의 표정, 입술, 입꼬리에서 연기의 내공을 읽어주는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보면서도 짚어내지 못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에게 큰 모델이 될 만한 글감과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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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

2019.01.22

그냥 연기 잘한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주에는 서진의 입만 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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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