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도 계속 성장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어른이 되면, 몸도 마음도 굳어서 신체적인 성장과 마음의 성장 모두를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곽수혜 저자는 취미로 발레를 배우면서 꾸준히, 두 가지 모두를 성장시키고 있다. 어른이 되어 발레를 배우려니 안 되는 동작도 많고, 아름다운 것까지는 모르겠고 간신히 동작을 버텨낸다고 한다.
취미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어렸을 적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로 얼마나 많은 꿈을 미뤘는지. 막상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니, 꿈을 이룰 몸과 마음의 시간이 없고, 해결할 수 없어 버텨내야만 하는 일들도 있다. 이 사실을 저자는 발레를 하며 깨달았다고 말한다. ‘발레’라는 취미로 자기 삶의 예술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곽수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발레를 배운 지 4년 정도 되었습니다. 발레를 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 발레를 배울 때는 기본 스트레칭만 해도 탄식이 새어 나올 만큼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름 날씨에 2시간씩 이어지는 수업을 버틸 만큼 체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 할 수 있어요’하고 말하기에는 부끄럽네요. 발레를 시작하기 전과 비교하면 분명한 신체적 변화는 체감하고 있어요. 발레를 배우기 전에는 척추측만증에 골반도 비뚤어지고 소위 말하는 거북목인 상태였어요. 평소에 자세가 좋지 않은 데다, 만성적으로 어깨와 허리가 늘 아팠습니다.
발레 하나로 휘었던 척추가 완전히 펴지거나 다리가 눈에 띄게 길어지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겠죠. 하지만 발레 덕분에 거북목도 많이 교정되었고, 평소에도 좀 더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현재는 일상생활에서 어깨와 허리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근육이 하나도 없는 물렁물렁한 몸이었다면, 지금은 속 근육이 자리 잡아 제법 몸이 단단해졌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발레를 해보고 싶지만 선뜻 학원에 들어서기 망설이는 분들께 실질적인 팁을 주신다면요?
발레를 도전하기에 앞서 가장 큰 두려움은 자기 안의 목소리(어쩌면 내면화된 사회의 목소리)와 싸우는 일인 것 같아요. 발레를 배우기 위해 자격이 필요하거나 어떤 상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레가 대중화된 나라에서는 나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발레를 배우거든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발레를 배우기 망설여지는 건, 스스로 발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 또한 발레를 배우러 가기까지 많은 시간 고민했고 망설였어요. 망설임의 뿌리는 역시 외부적인 요건이나 환경보다는 제 내면에 있었습니다. 발레는 날씬하고 유연한 사람에게 적합한 것 같으니 나와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문턱을 넘기 어려웠어요. 막상 발레 학원에 들어가 보니 그간의 걱정이 모두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뿐, 누구나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 발전합니다. 발레를 배우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망설여진다면 1회 체험 클래스를 제공하는 학원들도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체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을 거예요.
책에 취미 발레인의 블로그를 찾아다니던 변태 이야기가 있는데, 그 후에도 그런 일을 겪으셨나요? 가장 최근에 마주한 발레의 선입견은 어떤 것이었나요? 발레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했는데, 현재 생각은 어떠신가요?
블로그를 통해 공개적으로 경고한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변태를 경험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발레 커뮤니티에서 종종 개인적으로 발레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하거나 중고 거래를 빙자해서 성희롱성 쪽지를 보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비슷한 사건이 요가나 폴댄스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난다고 하니 성적 대상화의 문제는 비단 발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성인 발레의 경우 발레를 배우는 클래스 안에서는 특별히 성차별적인 문제를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원에도 남자 수강생이 계신데, 성인 취미 발레는 발레 동작을 배울 때 성별의 차이가 없어요. 남녀 관계없이 같은 스트레칭, 근력 운동, 동작을 연습합니다.
대신 발레 공연을 관람할 때는 젠더 이슈에 대한 물음을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클래식 발레에서는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의 역할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고, 상당수의 레퍼토리에서 주인공들의 고정적인 성 역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전 문학을 읽는 현대 독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몸을 표현의 도구로 삼는 발레의 특성상, 각기 다른 남녀의 신체적 특성을 안무로 풀어내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도 있으므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따라 무용계 전반에 긍정적인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의 역할 경계를 허무는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고, 최근 국립발레단에서는 창작발레 <호이 랑>과 같이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고민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다 보면 발레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취미 권태기, 취미 발레계에서는 ‘발태기’라고 한다는데요. (웃음) 발태기가 오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지금까지 저도 여러 번의 발태기를 경험한 것 같은데요, 정말 특별한 방법 없이 그냥 습관처럼 수업을 들으러 갑니다. ‘그냥 출석만이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요. 예전에는 발태기가 오면 연습복이나 슈즈 같은 발레 용품 쇼핑으로 극복해 보려 하기도 했는데요. 발태기를 왜 겪는 걸까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다지 발전이 없어 보일 때 발레의 재미가 사라지더라고요. 하지만 발레에서는 빠른 성취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한 후부터는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결석하지 않는 것에 의의를 둡니다. 조금은 기계적이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출석을 채우다 보면, 다시 발레가 재밌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실력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늘고요.
작가님은 글에서 고전 발레 작품들을 많이 이야기하셨고, 오랜 시간 버텨온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그런 입장에서 발레핏, 발레 댄스 등 대중화된 발레를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그간 한국 사회에서 발레와 대중 사이의 간극이 꽤 깊었던 것 같습니다. 발레가 어렵거나 지루한 예술로 인식되기도 했고,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한 예술이라는 선입견도 존재했고요. 그래서 요즘과 같이 발레를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반가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를 직접 경험하고 나면 발레공연을 찾는 일이 더 쉬워지거든요. 진입 장벽을 낮추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발레의 장점과 즐거움이 공유될 수 있다면 발레 공연도 더 활성화될 테니, 발레 애호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요.
다만 이러한 대중화 노력에 상업적으로 편승하는 것이라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레핏, 발레 댄스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발레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명목으로 소비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발레 역시 쉽고 빠르게 배우기란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몸을 도구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 중요해요. 자칫 욕심을 부리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레에 관심 없는 분들, 관심은 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은 분들에게, 그래도 이것만큼은 꼭 봤으면 하는 발레 공연 작품이나 영상, 장면 등을 추천해주세요.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전설적인 무용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위해 만들어진 춤인데요, 발레의 아름다움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3분이 채 되지 않은 길지 않은 소품이라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상스의 음악 ‘백조’에 맞춰 죽음의 순간에도 생의 의지를 쉽게 굽히지 않는 백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점프나 턴과 같이 화려한 테크닉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시적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볼쇼이 발레단 출신의 마야 플리세츠카야(Maya Plisetskaya)가 춘 <빈사의 백조>를 좋아합니다. 전율이 일만큼 백조의 날갯짓을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표현하는데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백조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감동합니다.
이번 생에 발레리나는 아니지만, 취미 발레인으로서 ‘이것만큼은, 여기까지는 꼭 이뤄내고 싶다’ 하는 발레의 지점이 있을까요?
많은 취미 발레인들이 콩쿨이나 공연을 목표로 하기도 하고, 원하는 작품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하지만, 현재 전 발레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특정한 목표나 계획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발레의 기본을 곱씹으면서 오래 발레를 하는 게 목표입니다. 처음 발레를 배울 때는 발레리나처럼 아름다운 동작을 하루빨리 따라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컸어요. 하지만 발레를 배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발레를 하는 동안 느리더라도 정교하게 세공하듯이 몸을 빚어가고 싶습니다. 발레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싶어요. 발레 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거든요. 일과를 끝내고 발레 음악에 맞춰 땀을 흠뻑 흘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몸도 마음도 더 반듯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제 삶에서 이 시간만큼은 계속 유지해가고 싶어요.
발레 가방과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길에 나서는 직장인. 월급날만 바라보고 사는 일상이 갑갑해 취미 찾기에 몰두했다. 스물여덟 살이었던 2016년, 발레를 만나고 취미 유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 몸과 마음을 붙들고 지금도 수련하듯 발레를 배우고 있다. 발레를 하는 시간 동안 마음의 근육도, 삶의 근력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발레가 안겨 주는 즐거움과 위로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꿈은 인생을 무대로 춤추듯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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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곽수혜 저 | 팜파스
때론 쉬었고, 때론 좌절했고, 도대체 언제 클래스 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생에 발레리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발레를 통해 내 삶의 예술가는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당신을 발레 클래스로 이끌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