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갈등의 원인을 “먹고사느라 바빠서”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에 꽤나 공감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내 몸과 마음을 모두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부부라는 단위로 묶이고 거기에 가족이 더 늘어나고 보니 커지는 건 오직 책임감뿐이다. 사랑 같은 감정 따위는 어느새 저 멀리 던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중략) 먹고사느라 바빠서 내가 누구랑 먹고살고 싶었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많이 어려운 문제다. 나도 여전히 어렵다. 모든 부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최유나 변호사의 에세이 『우리 이만 헤어져요』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최유나 변호사 편>
오늘 모신 분은 ‘소송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또 배운다’고 말하는 이혼 전문 변호사입니다. 화제의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17만 가까운 팔로워들에게 ‘최변’으로 익숙한 이 분. 쌉싸름한 이별 이야기로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이 분. 최유나 변호사님입니다.
김하나 : 변호사님은 원래 중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의 연애 상담도 들어주고 이런저런 중재 상담을 원래부터 하고 계셨다고 책에 나와 있던데요. 지금도 적성에 잘 맞으시는 것 같으세요?
최유나 : 네. 저는 진짜 지금까지도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속 깊은 이야기를 하시고 제가 그걸 합법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고, 이 직업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싶을 만큼 정말 많은 가르침이 있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우리 이만 헤어져요』 라는 책이 나왔죠. 이미 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 책이 나온지가 어느 정도 됐죠?
최유나 : 두 달 정도 됐습니다.
김하나 :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6만 9천 명 정도 있으시죠?
최유나 : 네.
김하나 : 인스타툰을 시작하신지는 1년 남짓이고요.
최유나 : 네, 1년 정도 됐네요.
김하나 : 정말 굉장한 거 아닌가요?
최유나 : 저도 그렇게 많이 보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시작한 거라서... 수백 명 정도 보시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뢰인 분들 통해서 듣는 삶의 지혜라든지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건데, 17만 명 가까이 보고 계셔서 요즘에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김하나 : 인스타그램에서는 해시태그 ‘메리지 레드’라고 검색하면 찾을 수 있잖아요. ‘메리지 블루’라는 말이 결혼하기 전의 우울감 같은 걸 뜻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레드’라고 하니까 결혼의 위기상황 같기도 하고 이 말이 참 재밌다 싶었는데, 변호사님이 이 단어를 생각해내셨더라고요.
최유나 : 네. 의뢰인 분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저는 그걸 ‘돌변 시점’이라고 표현하는데, 결혼하고 나서 배우자가 돌변했다고 표현하는 시점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다가 경고등 같은 게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사실은 사람이 변했다기보다 상황,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레드’라는 표현이 떠올라서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김하나 : 제1장의 제목이 “그렇게, 이혼 변호사가 되었습니다”잖아요. ‘왜 이혼 변호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정말 이 질문 많이 받아보셨을 것 같아요.
최유나 : 네.
김하나 : 일단, 왜 이혼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는지는 아까의 이야기가 답이 될까요? 원래 상담, 중재 같은 것을 좋아했다는.
최유나 : 그런 것도 있고요. 처음 변호사가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거든요. 회사에 소속이 되면 민사, 형사, 이혼 다 한 번씩 진행을 해보는데요. 아무래도 이혼 사건은 양쪽 당사자를 중재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변호사가 개입할 부분이 많고 역할이 커서 재밌더라고요. 민사나 형사는 결국 어떤 승패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이혼 사건은 중재의 개념이 훨씬 더 커서 제 성향에 더 맞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런 선입견은 없었어요? 이혼 자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쉬쉬하고 터부시하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하면 결혼한 사람들을 갈라서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만 같고, 그런 선입견에 대한 부담 같은 건 없으셨나요?
최유나 : 막상 시작할 때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해봤고, 되고 나서 느낀 거예요. 정말 현실이 보이더라고요(웃음). 처음에 ‘이혼 전문 변호사입니다’라고 하면 약간 째려보시는 분들이 계세요(웃음). 그리고 저희 엄마도 되게 창피해하셨어요(웃음). ‘그 많은 전문 분야 중에서 좋은 거 많은데, 공익 변호사도 있고 형사 변호사도 있는데 하필 이혼 변호사를 해야겠냐’고 말씀을 하셨었고. 실제로 재판을 하다 보면 상대방 측에서 저한테 ‘우리 ~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이혼 변호사가 부추겨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거다, 한 가정을 파탄 낸 것에 대해서 책임져라’ 이런 분들이 정말 많으셔서...
그 부분에 대해서 처음에는 ‘이게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 분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거예요. 본인 자녀나 형제들이 왜 이혼을 하고 싶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안 하고, 그런 상태에서는 ‘변호사가 부추겨서 이혼하게 되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시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요.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그 정도 가지고 이혼을 해? 조금 더 참고 살아’라고 말하든, 내 편이 돼 줄 사람이 꼭 필요하거든요. 제가 점점 그 부분을 수용하는 게 좋아지더라고요.
김하나 : 의뢰인들이 되게 변호사님 좋아할 것 같아요. 저도 지금 ‘내가 이혼을 하게 되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웃음). 뭔가 마음 편하게 내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께도 이런 느낌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최유나 : 네. 그런데 저는 조금 안타까운 게, 사회적인 시선이 있잖아요.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오세요. ‘이 정도로는 이혼하면 안 되는 거죠?’, ‘남들이 봤을 때 이 정도로 이혼하면 제가 이상한 거죠?’ 이런 것들이 있어요. 또는 이혼을 안 하고 싶으신데 옆에서 ‘너 이혼해, 요즘에 그런 걸 참고 어떻게 살아?’라고 하는데 자신은 참아지는 거죠.
그런데 옆에서 그렇게 말하면 ‘제가 이걸 참으면 바보인가요?’라고 물어보시는데요. 그럴 때 ‘내 결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런 것들을 많이 겪으면서 살아왔지만, 그래서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나만큼은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의 편이 돼야지, 그렇게 생각이 돼요. 지금도 그렇고요.
김하나 :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이혼 전문 변호사의 결혼 생활은 어떨까’ 라는 부분이겠죠.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8년의 경험이 결혼 생활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유나 : 네, 저는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희생을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저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어떤 때는 ‘이러다가 몸이 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 희생이 어느 정도는 양쪽 다 따라줘야 결혼 생활이 유지가 되는 거고 그 희생의 양이 한쪽으로 쏠릴 때는 이혼으로 치닫게 되는 건데, 저도 결혼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 남편한테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을 안 해봤다면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되겠지, 결혼 생활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결국은 너무나 견디고 참는 것들이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많이 보다 보니까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표현의 방법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이 배우게 돼요. 의뢰인 분들 중에서 본인의 배우자가 이렇게 말했을 때 자신이 상처를 받았고 그걸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다, 거기에서 미래가 끝났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나는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저렇게 말하지 못하게 해야겠다, 표현을 조금 더 간접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표현 방식이 제일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게, 대부분 이혼을 결심하는 게 결국 말 한 마디 때문인 거예요.
김하나 : 이혼 문제가 불거지는 게 성격이나 성별보다 상황이나 입장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그걸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80년대생의 흔한 이혼」인 것 같아요.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최유나 : 네.
김하나 : 80년대생들이 맞벌이를 하고, 여자가 혼자 독박육아를 하고 있고 점점 우울해지고 나도 일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아이만 봐야 되고 경력은 끊긴 것 같고,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고 이혼을 하고 싶어진 사례가 나오잖아요. 그러다가 남편이 보기에 살림하는 게 더 편한 것 같으니까 ‘그럼 내가 살림할 테니까 돈 벌어와’라고 해서 여자가 나가서 일을 하게 됐는데 여자가 일을 잘해서 임원이 됐고, 그랬더니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 거죠.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가 이혼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남편이 아이를 보면서 인스턴트나 먹이고 매일 외롭다고 징징댄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예전에 남편이 독박육아 하고 있던 여성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는 거죠.
최유나 : 그런 사건들이 너무 많고 흔하게 일어나다 보니까 그 에피소드를 썼는데요. 요새 30대 이후에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80년대생들의 자녀들이 지금 어린 경우가 많은데, 그때까지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잖아요. 또 맞벌이도 맞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여성분들이 집에서 2~3년 정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항상 밖에 나가서 일하고 본인의 성취를 이루면서 나 자신으로 살았던 분들이 집에서 아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잠도 못 자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약간의 우울증은 다 가지고 계시거든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할 데가 없다 보니까 남편한테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런데 남편들 입장에서는 밖에서 정말 힘들게 본인의 배우자와 아이를 위해서 심한 소리 다 들어가면서 돈을 벌고 집에 왔는데, 집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하니까 듣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지치는 거예요.
대부분의 부부들이 아이들 어릴 때 이 싸움은 한 번씩은 다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건 중에서 그렇게 반대되는 케이스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남자 분들이 주부를 하기로 하고 여자 분들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정말로 역할을 바꾸는 거죠. 그런데 법원에 가서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말 우울하다, 답답하다, 징징댄다, 이런 이야기들을. 그런 것들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어떤 분들은 이걸 여자의 성격 문제, 남자의 성격문제라고 말씀하시거든요.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힘든 마음을 잘 안 들어준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본인이 힘든 걸 극대화해서 이야기한다, 너무 지나치다고 이야기하시는데요. 정말로 입장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똑같아지는 걸 여러 번 봤어요. 그래서 이 만화를 시작할 때 입장과 상황에 대해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어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08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