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그림책』 은 그림책과 사람에 기대어 마음을 돌보고, 소중한 이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방도를 알려주는 ‘그림책 함께 읽기’의 마법을 전하는 가이드북이자 독서 에세이다. 황유진 그림책 테라피스트는 한때 IT 통신회사에 10년간 다니며 두 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복직과 퇴직의 기로에 섰던 워킹맘이었다.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던 그에게 서커스단 광대인 난쟁이 듀크와 재주 부리는 곰 오리건의 여행담 『오리건의 여행』 이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용기를 주었듯, 이제 그림책은 감정 치유와 위로를 넘어 어른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매체가 되었다.
황유진 작가가 진행하는 그림책 함께 읽기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3, 40대 주부 비중이 높지만 직장인, 워킹맘, 중년 남성, 여성 노인, 교사, 프리랜서, 심리상담사처럼 세대, 직업, 결혼 여부,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책 주인공들이 겪는 위기와 갈등은 대부분 누구나 겪는다. 함께 읽기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위기와 갈등을 재해석하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나누며 안도한다. 인생에서 휘청거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고 누구나 시련을 견디는 법이라고, 그림책은 물론이고 함께 읽는 이들이 말해주는 것이다.
『어른의 그림책』 작가 소개에 “나는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또 “내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라고도 쓰셨는데, 그림책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저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을 그림책 테라피스트, 그림책 활동가라고들 많이 하는데, 저는 “그림책으로 어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합니다.”라고 소개해요. 어른들이 그림책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필 수 있게 돕는 그림책 모임을 만들고 있고요, 그림책 읽기 모임을 정기적으로 주최하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기업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강의를 하러 가기도 합니다.
그림책 모임에서는 아이 키우는 엄마를 많이 만나게 돼요. 그분들 가운데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을 골라서 어떻게 읽히면 좋은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시간'이라는 학부모 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림책 하면 아이들 책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림책에 빠진 어른들이 많아요.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주는 위안, 혹은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미 많은 분들이 그림책을 사랑해오셨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림책 읽는 어른들의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아요. 국내 창작 그림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어른들이 그림책 읽는 문화를 확산시킨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은 짧은 글, 직관적인 그림을 통해 인생의 보편적인 가치인 가족, 사랑, 우정, 이별, 죽음 등 정말 많은 것들을 전하죠. 현대를 사는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위안이 되는 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인 듯해요. 어른들은 항상 절제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 속에서 잠시 무장해제되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림책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그림책과 만나게 되었나요?
2009년, 그러니까 10년 전에 세계 일러스트원화전에 우연히 갔어요. 그림책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던, 완전 무지한 상태였어요.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정말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전시회에서 원화 사이를 지나다니다가 붉은 털실과 대충 그린 듯한 드로잉이 인상적인 원화 몇 점 앞에 멈췄어요. 잘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이 너무 명료하게 잘 보인 그림이었어요. 그림을 꼭 잘 그리지 않아도 이렇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구나 싶어 재밌었어요.
그러고는 집에 와서 처음으로 돈을 주고 그림책을 샀어요, 그 책이 바로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그 그림의 『나는 기다립니다』 예요. 처음에는 세르주 블로크 작가가 너무 좋아서 그림책을 한두 권 사서 보게 되었어요. 서점에 가서 표지 예쁜 그림책 있으면 넘겨보는 등 결혼 전부터 그림책이 좋아서 모으기 시작했죠.
정말 그림책에 빠져들게 된 건 큰아이를 낳고 나서였어요. 큰아이 낳고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 있으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누군가와 어른의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것도 있지만 그림책을 앞에 두고 아이에게 막말을 걸었어요. 처음에는 아이가 반응하지 않았지만 점점 커갈수록 자잘하게 웃기도 하고 손뼉도 치고, 또 읽어달라고 가져오기도 했죠, 그러면서 아이랑 그림책을 읽는 게 이렇게 다정하고 근사한 경험이구나, 그때 알게 되었어요.
이 책에 많은 그림책이 등장합니다. 몇 권이나 소개하셨고, 어떤 기준으로 그림책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직접 다룬 책은 36권, 같이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한 책은 90권 내외예요. 전체 총 4부로 이뤄져 있는데, ‘나-너-세계-다시 나’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이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1부는 그림책으로 나라는 존재를 살피고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책, 2부는 가족, 친구, 지인 가까운 사람들과 나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림책, 3부는 나와 너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그림책, 4부 다시 나에게 돌아와 어떻게 일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해 답을 구해보는 그림책을 소개했습니다.
선별 기준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이었어요. 이 책이 함께 읽기 콘셉트라 그중에서도 최대한 많이 읽어드린 책을 골랐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지만 같이 읽은 적이 없어서 빠진 책도 있어요.
가장 처음 소개하신 그림책이 『오리건의 여행』 이죠? 처음 『오리건의 여행』 을 만났을 때 너무 많이 울었다고 쓰셨는데 이 책이 작가님의 마음을 흔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리건의 여행』 에서 서커스단 광대인 난쟁이 듀크가 서커스단의 재주 부리는 곰 오리건으로부터 숲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아요. 듀크가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오리건을 숲에 데려다주는 긴긴 여행을 해요. 둘 다 서커스단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두 발로 너른 세계를 걷고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해요. 마침내 오리건은 오리건이라는 숲으로 돌아가고, 듀크는 서커스단을 나오고 나서도 광대 분장을 벗지 못하고 걷다가 마침내 그걸 떼어내고 새롭게 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본문에 나오는 첫 책과 마지막 책은 저한테 의미 있는 책으로 배치했어요. 마지막 책은 저에게 처음 다가와 준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 예요. 『오리건의 여행』 은 한성옥 작가님의 낭독 강의에서 처음 만났는데, 어떤 한 장면을 듣는 순간부터 뒷 장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울었어요. 그 부분이 듀크와 오리건이 길을 떠나 스파이크라는 운전수의 차를 얻어 탔을 때였어요. 듀크가 서커스단을 나온 지 꽤 되었는데, 여전히 광대 분장을 못 벗고 있어요. 그때 스파이크가 물어요. 왜 아직도 광대 분장을 하고 있냐고, 이제 서커스 무대에 서지도 않는데…. 그러자 듀크가 하는 말이 "살에 붙어버려서요, 난쟁이로 사는 게 쉽지 않아요."라고 해요.
"쉽지 않아요"라는 말이 탁 걸렸어요. 2015~2016년 즈음이 제가 살면서 가장 질문을 많이 던진 시기였어요. 둘째를 낳고 회사 그만둬야 하나, 그만두면 괜찮을까, 안 괜찮을 것 같은데 뭐하고 살래 하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자신감이 없을 때였죠. 어디 가서 누가 물으면 휴직 중이에요, 복직할 거예요, 라는 쓸데없는 대답을 했어요. 10년 동안 회사원 정체성으로 살아왔으니 그걸 떼고는 어떻게 민낯으로 세상을 마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자꾸 저의 빨강코를 붙이는 모습이 듀크가 세상에 나와서도 광대라는 빨강코를 떼지 못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살에 붙어서요.”라는 말이 너무 아팠어요. 누구나 사회화가 되면서 가면을 쓰고 살잖아요. 가면 자체가 나쁜 건 아니거든요.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가면을 쓰고 집에 와서나 다른 상황에서는 가면을 벗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그 당시는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냥 회사원으로서의 빨강코를 붙이고 있었고,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이 책을 만났던 거죠.
2015~2016년에 제 길을 찾으면서 아, 빨강코를 떼고 걸어가야겠다 생각했던 것이, 『오리건의 여행』 마지막에 듀크가 빨강코를 떼고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과 겹쳐지면서 제 인생 책으로 등극했어요.
‘그림책 37도’라는 정기모임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그림책을 혼자 읽지 않고 함께 읽을 때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그림책을 통해 내 마음이 괜찮은지 점검해보는 자리가 그림책 읽기 모임이에요. 혼자 읽을 때도 가능해요. 근데 낭독과 소통이라는 두 가지 점 때문에 모임 할 때 효과가 더 커져요. ‘낭독’은 그림책을 선정해서 읽어드리는 거죠. 누군가 나를 위해 그림책을 선정해서 읽어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어른들이 혼자 그림책 읽으면 글과 그림을 번갈아 봐야 하는데, 누군가 읽어주면 귀로 이야기 듣고 눈으로 그림을 보니 이야기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어요.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죠.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통합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림책이 재밌는 걸 어른보다 잘 알아요.
또 하나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 얻는 위안이 커요. 물론 어떤 점에서는 비슷한 사람이 모이고 어떤 점에서는 다른 사람이 모이는데, 서로 다른 이들이 괜찮다고, 너만 겪는 일이 아니라고 서로 격려와 지지를 해주죠. 그런 안전지대가 별로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정답이 없어요. 다르게 읽어도 괜찮다는 해방감을 그림책 모임을 통해 얻게 돼요. 똑같은 그림책이라도 이렇게 저렇게 읽을 수 있는데 괜찮아, 그게 이상한 게 아니야, 라는 거죠. 그림책 속에 힌트가 있다면 오독이 아니라 그림책을 통해 충분히 그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거예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듯해요.
부록으로 ‘그림책 읽기 모임’ 하는 방법이 실려 있어요. 이대로 하면 누구든 모임을 꾸릴 수 있을 듯한데, 작가님이 어른들에게 그림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림책 모임을 진행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다들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요. 부록에는 제 방식을 소개했어요. 사실 처음이 막막해요. 거기에 조금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소개했어요. 이걸 읽고 자신만의 책, 주제, 흐름을 만들어야 모임을 진행하기가 수월하실 거예요.
그림책은 내 상태를 살펴보고 내 마음을 간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체예요. 내 마음이 지금 뜨거운지 차가운지 섬세하게 살펴보도록 도와주죠. 치료는 아니지만 그림책에 위로와 감동이 깃들어 있어 치유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테라피라는 말을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매개가 꼭 그림책일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에겐 시, 미술, 소설, 음악일 수도 있죠. 그런 매개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없다면 그림책을 한번 만나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이 그림책과 여러분이 다정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동반자 같은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10년간 IT 기업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의 세계와 멀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그림책을 통해 읽고 쓰고 느끼는 삶에 다시 가까워졌다. 예술심리교육센터 마인드플로우에서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후부터 ‘그림책 함께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전하는 그림책 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그림책으로 전하는 0.5도의 위로와 감성’이라는 모토로 ‘그림책 37도’를 운영하며 어른들이 그림책으로 마음을 살피도록 돕는 그림책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도서관, 기업, 육아 모임 등에 출강하고,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시간’이라는 그림책 읽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번역서로 『내 머릿속에는 음악이 살아요!』와 『키스 해링, 낙서를 사랑한 아이』가 있다.
-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저 | 메멘토
인생에서 휘청거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고 누구나 시련을 견디는 법이라고, 그림책은 물론이고 함께 읽는 이들이 말해주는 것이다. 소중한 이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방도를 알려주는 ‘그림책 함께 읽기’의 마법을 전하는 가이드북이자 독서 에세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