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작가는 일본 메지로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잡지사 기자, 방송국 구성작가와 PD, 번역가와 통역가로 일했다. 서른 중반에 로마 제1대학 라 사피엔자 동양학부에서 또 공부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로마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여 프랑스 루브시엔에 사는 중이다. 일본어, 이탈리아어에 이어 졸지에 프랑스어까지 공부하게 된 터라 걸어 다니는 비교언어학자이자 멀티링구얼 욕쟁이다. 지은 책으로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와 『한 달쯤, 로마』, 『한 달쯤, 파리』 등이 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제가 12살 때였어요. 펄 벅의 『대지』라는 책이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책을 학교에 가지고 갔어요. 왜 학교에 들고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펼쳐서 읽었고 곧바로 주인공 ‘오란’의 삶 속에 빠져들었죠. 어린 제게 그녀의 삶은 너무 흥미로웠어요. 한참 책에 빠져 있는데 제 옆에 앉아있던 짝꿍이 제 팔을 살짝 건드리는 느낌에 정신을 차렸어요. 놀랍게도 이미 2교시 수업이 끝난 후였어요.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는 것도, 1교시 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떠드는 것도 몰랐어요. 정말이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죠. 그 경험은 정말 신선했어요.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아마 그 순간부터 느꼈던 것 같아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사소하거나 나름대로 거창하다해도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될 수 없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독서를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잠시 나에게서 멀어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다른 세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해요. 내안에 갇혀 나와 관련된 생각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죠. 내게서 벗어나 나와 상관없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일은 기분전환에 그만이에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단순히 다양한 외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단어의 어원과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철학, 그리고 사람들이 그 단어들을 제각각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는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죠. 제가 사는 곳이 한국이 아니다보니,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유행어나 신조어를 접하는 것도 즐거워요.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탄생배경과 신조어의 전반적 흐름은 사회의 어떤 변화에서 오는 걸까?’ 이런 걸 생각하는 것도 즐겁죠.
또 제가 할 수 있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며 각 나라별 문화와 각 나라 사람들의 심리를 비교하는 것 또한 재미있고요. 얼마 전에 저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한 책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사회언어학자 ‘김하수’씨가 쓰신 『거리의 언어학』이라는 책인데, 꼭 읽어보고 싶어요.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얼핏 보면 국제결혼생활을 테마로 한 책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사실 ‘인문학’에 관한 책이에요.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 남편이자 프랑스 책벌레인 에두아르의 일상을 통해, 초보 독서가들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인문학을 어떻게 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 주려 노력했어요. 이미 책벌레등급에 오르신 독자분들에게는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요.
뭔가를 가르치려는 듯한 집필 방향이 ’자칫 독자분들께 건방지고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제 남편 에두아르는 엄청난 독서광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특출날 지는 모르지만, 아주 많이 덜렁대고 모자라며, 머리도 나쁜데다 성격조차 좋지 않거든요. 이런 사람의 인문학 이야기다보니, 읽으면서 오히려 에두아르와 그의 부인인 제가 불쌍하게 느껴지실지도 몰라요. 덤 앤 더머 같은 저희 부부의 인문학이야기를 유쾌하게 읽어주시길 바라요.
호메로스 저/천병희 역
현명하고 지혜로운 영웅 오뒷세이아의 모험담은 문학, 연극, 미술, 영화,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는 문화의 공식이자 문법같은 대서사시이다. ‘햐아~!’ 책을 덮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것은 웅장한 파도가 넘실대는 탁트인 바다를 바라볼 때 새 나오는 소리와 비슷하다. 스케일이 다른 감탄사를 흘렸던 책이다. 반드시 원전 완역판을 읽어보길 바란다.
성석제 저
성석제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빵빵터진다. 너무 웃겨 배꼽을 잡는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한국적 해학의 극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이 책은 절대 조용한 도서관이나 지하철에서는 읽지 마시라!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으므로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살 수 있다. 아직까지 이보다 더 웃긴 글은 읽어본 적이 없다.
요시다 아쓰히로 저/민경욱 역
이 소설은 묘하다. 어떠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복잡한 전개도 없다. 그런데 정말이지 재밌다. 읽는내내 편안하다. 주인공의 일상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생활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 모두가 지긋지긋해서 벗어던지고 싶은 일상일 것이다. 그 지긋지긋함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 대수롭지 않은 나날 속 대단한 편안함을 맛보며 힐링할 수 있는, 참으로 묘하게 괜찮은 책이다.
이탈로 칼비노 저/이현경 역
인간의 이중성과 불완전함이 낱낱이 드러나는 글은 불편할 때가 있다. 작가의 냉소적 시선에 정나미가 떨어지거나 인간이란 존재에 절망하고 말거나. 이 불편한 사실을 이탈로 칼비노가 그의 방식으로 다루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편의 환타지같은 동화로 태어난다. 책을 덮는 순간, 무릎을 탁치고 말았다. 대가의 명품소설이다.
프란치스카 비어만 저/김경연 역
이 책을 보는 순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쓰인 그림동화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독서법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어른들이 읽어도 홀라당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는 이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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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