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제 “아픈 청춘입니다만, 살아 있습니다”
낫지 않는 아픈 사람들, 아마 평생 아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상상력’을 사용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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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사진. 책상에 앉아서 왼손으로 책을 펼치고 있는 안희제. 오른쪽 팔꿈치가 책상에 닿은 채로 흰색 펜을 든 오른손은 오른쪽 귀 근처에 올라가 있다. 무늬가 없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안경을 썼다. 검고 짧은 머리의 고개는 책상에 놓인 책을 향해 조금 숙이고 있다. 초점에서 벗어난 배경에는 벽돌과 시멘트, 창문으로 된 건물의 일부와 화분들이 있다.

『난치의 상상력』은 크론병으로 투병 중인 20대 청년이 써 내려간 ‘청춘 고발기’이자 아픈 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안희제 저자의 몸은 청춘과 나이 듦, 질병과 장애,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다.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자를 의심하며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대했다. 겉으론 건강한 20대 청춘이지만 정작 저자의 몸은 늙고 나이 든 노인의 몸을 닮았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이 책은 사회가 정의한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는 바로 그 몸에서 비롯했다.



안녕하세요. 안희제 작가님. 첫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인쇄된 것을 받아 보면 실감이 날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책 두께를 보면서, ‘열심히 쓰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보내주시는 축하와 응원을 받을 때, 사람들이 책을 바로 사서 읽고 감상을 알려줄 때마다 조금씩은 더 실감이 납니다.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스물여섯이 될 줄은 몰랐어요. 아직 공부도, 고민도 부족하지만, 책이 나온 건 기쁩니다. 나중에 읽었을 때 책이 부족하다면, 고쳐서 다시 내거나 새로 쓰면 된다고, 고생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두자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블로그처럼 수정할 수 없도록 인쇄가 되어 버리니까 더 부담스러운 건 있네요. 

아직 읽기 전인 독자들을 위하여 『난치의 상상력』은 어떤 이야기인지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난치의 상상력』은 제가 크론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후, 그 질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 고민한 것을 담은 책입니다. 저처럼 아픈 사람들, 혹은 어떤 면에서든 애매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치료만을 상상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제 질병 서사로 시작해서,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비평, 아픈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의 몸을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으로 나아가는 흐름으로 구성했어요. 모든 개인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제 이야기 또한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책에서의 초점은 나에서 사회로, 그다음에는 ‘당신’에게로 조금씩 나아가도록 썼습니다. 대학교 1학년 글쓰기 수업이 ‘자기소개’에서 사회를 거쳐 ‘타인의 죽음과 고통’으로 나아가는 흐름이었는데, 그 영향이 컸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당신에게 닿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 같아요. 

제목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청춘’이나 ‘청년’을 내세우는 것을 일부러 지양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목을 『난치의 상상력』으로 결정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셨고,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문에도 썼듯이, 저는 “이런 청년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생각이 없었어요. ‘청춘’이나 ‘청년’의 의미를 넓히는 데에도 나름의 의의가 있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그 젊음의 이름들 자체가 되게 어색했거든요.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똑같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청년’이나 ‘청춘’ 대신에, 제 상태와 책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단어인 ‘난치’를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낫지 않는 아픈 사람들, 아마 평생 아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도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상상력’을 사용했고요. 

젊고 건강했던 몸에서 약하고 아픈 몸으로 변했을 때, 그 괴리에서 오는 혼란이 굉장히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거치셨던 고뇌와 ‘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계기 등이 궁금합니다.

예전엔 아마추어이긴 했어도 서울시 대표로 전국 고등학생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할 만큼 건강하고, 운동도 잘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면서 우선 운동을 놓았고, 수험생활 중에 수술을 받고 요양하고 난치질환 진단을 받았어요. 너무 빠르게 여러 상실이 연달아 닥쳐온 거죠. 그때는 통증이고 진단이고 다 부정하고 싶었어요. 공부에 방해가 되니 부정했고, 그 이후에는 대학 신입생이 되었으니 또 부정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정하고 싶어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왔죠. 술을 마실 수 없는 게 분위기를 깨거나 ‘빼는 것’으로 여겨질 때 저는 빼도 박도 못하는 ‘아픈 몸’이었어요. 대학 신입생 때 헬스도 해보고, 스쿼시도 쳐보고 그랬지만, 그 자리에 편하게 속하는 느낌을 점점 어디서도 못 받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희귀 난치질환으로 장애를 겪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조금씩 갖게 된 것 같아요. 

책에서 “일상이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의 문제점들을 목격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문장을 보고 작가님의 일상이 투쟁이기에 날카로운 시선은 물론 사회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도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읽어주면 좋겠는지, 전할 말씀이 있으실까요? 

처음에는 친구들, 활동가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어떤 일에서도 당사자가 아니고, 연대하는 위치에 있다고 믿던, 실제로 어느 정도 그랬던 날들이었어요. 저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된 건 제가 제 일상 속에도 투쟁이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였죠. 아픈 독자분들이든, 건강한 독자분들이든, 일상 속에 어떤 투쟁이 분명 존재해요. 사람들과 거리에 나가서 싸우는 것도 투쟁이지만, 그보다 일상적이고 작은 순간들에도 투쟁은 있어요. 저는 조별 과제를 하는 순간에도, 환절기에 사람들을 만날 때도, 질병 결석을 인정받을 때도 작은 투쟁을 해야만 해요. 저와는 다르지만 닮은 수많은 일상과 작은 투쟁이 있을 거예요. 이 책이 독자분들께 자신의 일상과 몸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어 나가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초고에서 ‘상상해본다’라는 말을 많이 쓰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목에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도 의미심장하고요. 책에서도 ‘감각 통역사’ 라는 것을 언급하시기도 했는데, 그렇게 미래 혹은 상상에 애착을 보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 ‘미래’를 그리던 건 장애인권 활동 때문이었어요. 한동안 저는 SF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세상에는 계단 가득한 세상, 자막과 속기 없는 세상, 사진에 설명이 부족한 세상에서 자유를 편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그런 장벽이 모두 사라진 세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접근가능한 미래’라는 폴더를 만들어 자료를 모았죠. 악기의 접근성, 카페의 접근성, 전기차의 접근성, 새로운 휠체어와 대화 도구... 그렇게 차곡차곡 장벽이 사라진 미래를 그려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미래만을 바란 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투쟁,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기도 했어요. 대부분의 시도가 좌절되었고, 저는 아무 변화도 못 만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모든 걸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미래’는 회피이기도 했죠. 반면 ‘상상’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였어요. 지금 당장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어떻게든 파헤쳐서 조합하고, 변형하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일. 미래를 바라보는 데에서 다른 현실을 상상하는 것으로 초점을 바꾸면서, 제 안의 좌절감은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한 막연한 회피가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된 상상으로 바뀌자, 잃어버렸던 삶의 동력이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지치곤 하지만, 지금의 저를 지탱하는 건 상상이에요. 당신과 제가 함께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작은 상상들이요.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반응이 뜨겁습니다.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로서, 활동가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실까요?

예, 제가 들은 학점이 부족해서 아직 졸업이 멀었는데…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휴학도 많이 해서 어쩌나 싶어요. 학생과 작가가 공존할 수 있는 직업일까 고민도 돼요. 제가 체력이 좋지 않고, 휴식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데, 글을 쓰다 보면 정신이 쉴 틈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학기도 휴학해 버렸는데… 다섯 번째 휴학이니 이걸로 글을 써볼까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글이 적성에 맞는 건 확실한 것 같네요. 

얼마 전에 제가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에서 배우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 이야기도 책으로 나올 예정이에요. 작은 에세이도 준비하고 있고,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 칼럼도 꾸준히 쓸 생각이에요. 학부를 졸업하면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서, 현장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모으고 언어를 만드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제 몸이 허락하는 한에서, 때로는 몸에게 저항도 해보면서, 일상이 투쟁인 사람들과 아픈 사람으로서 함께하고 싶어요. 다른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는 일도 하고 싶고요. 아직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싶은 일만 잔뜩 많고 막연한데,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제가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찾으며 살아가려고 해요.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요. 



* 안희제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2014년 7월 만성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건강했던 과거와 아픈 현재 사이에서 방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질병과 장애에 관한 수업을 듣고 학내 장애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애와 질병의 경계, 그 경계를 구성하고 공고히 하는 권력을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은 경제학과로 입학했지만, 관련 공부를 이어나가고자 문화인류학을 이중 전공하고, 문화인류학과 학부-대학원 연계과정 중에 있다. 학내외에서 여러 활동에 조금씩 참여했지만,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의 24대 회장과 장애인권위원회 5, 6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장애인권 활동에 가장 열심히 참여했다. 

2019년 2월부터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다. 오로민경 작가의 전시 ‘영인과 나비’에 글과 물품들로 함께했고, 전시 연계 프로그램 ‘공감각 운동회’의 패널로 참여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로 아픈 몸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의 〈아픈 몸, 무대에 서다〉 연재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여러 매체에 조금씩 글을 실었다. 아픈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건강이 아닌 난치가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난치의 상상력
난치의 상상력
안희제 저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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