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혁명가 김산을 그래픽 노블로 만나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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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폭풍 같은 삶을 살다 간 조선 독립혁명가 김산을 역사 만화가 박건웅이 그린 그래픽 노블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박건웅의 손을 거쳐 탄생한 그래픽 노블 『아리랑』은 그동안 두꺼운 책 읽기에 부담을 느껴왔던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원작의 문학성을 그대로 살린 그래픽 노블 『아리랑』은 어린이, 청소년을 포함해 더 많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 김산의 치열했던 삶과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도 김산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은' 열정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안녕하세요. 박건웅 만화가님. 『아리랑』 그래픽 노블이 출간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출간 소감이 어떠신가요?

네 감사합니다. 그동안 한국현대사에 관한 여러 책을 출간했지만 이번엔 남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30년 전,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원작 『아리랑』은 불온도서여서 남몰래 보던 책이었어요. 그때 『아리랑』을 감동적으로 읽었고 깊은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화가가 된 이후에도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이 이야기를 만화로 꼭 그려야지 했는데 기회가 닿았어요. 30년이 지난 후 비로소 제가 만화로 그 작품을 시각적으로 재연한 거죠.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지고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 같은 것을 내려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책이 출간되고 두껍게만 느껴졌던 『아리랑』을 그래픽 노블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좋다는 평이 많습니다. 사실 아직 ‘김산’이라는 역사 속 인물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 분들도 많을 텐데요, 독립혁명가 ‘김산’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께 간단하게 이 책을 소개해주세요.

김산이란 이름은 가명이고 본명은 장지락입니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인데요. 일본, 만주,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에요. 중국혁명을 통해 조선독립을 꿈꾼 거죠. 상하이에서는 의열단 활동을 했고 조국의 해방을 위해 중국혁명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에 투옥, 고문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대장정을 마친 중국 홍군이 있던 옌안에서 마침 취재차 온 님 웨일즈라는 미국 여성 기자를 만났고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6개월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김산이 간첩 혐의로 억울하게 숙청된 후 2년 뒤 그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 『아리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그동안 가려졌던 한 조선인 혁명가의 치열한 삶과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은 김산의 『아리랑』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항일독립운동사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님 웨일즈, 김산의 『아리랑』을 그래픽 노블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년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성남문화재단에서 독립운동가 100분을 100편의 웹툰으로 제작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어요 그때 저에게 독립운동가 한 분에 대한 만화 제작을 의뢰했는데, 그 순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김산의 『아리랑』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김산을 그리겠다고 했죠.(웃음) ‘내가 이 작품의 깊이를 감히 다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담담하게 책을 두어 번 정독한 후, 방대한 이야기에 대한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어요.

작년 봄에는 김산이 중국에서 활동했던 상하이, 충칭, 광둥 지역 등으로 답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김산이 다녔던 중산대학, 황푸군관학교등을 돌아보면서 책으로만 느낄 수 있었던 당시의 시대 배경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더라고요. 『아리랑』에 보면 광둥 지역에서 200명의 의열단원들이 중국혁명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을 추모하는 추모탑 앞에서 함께 동행한 교수님께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김산의 흔적을 찾아가는 중국 답사를 통해 그래픽 노블 『아리랑』이 좀 더 풍성해졌죠.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리랑』 그래픽 노블을 보면서 굵은 선으로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이 생생하게 표현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공을 들였거나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공을 들였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김산과 류링이 재회해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김산은 한 ‘혁명가’이기 전에 한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흔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웅적 일화나 혁명 같은 것들이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상은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어느 부모의 자식이었으며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김산의 ‘나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며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혁명사업에만 종사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대에서나 아니면 1980년대 민주화 운동권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던 모습이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김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의 김산이 나약해 보이나요? 저는 오히려 결국 혁명가도 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김산의 모습이 인상 깊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김산의 내면을 잘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아리랑』을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역사 속 ‘김산’보다는 ‘김산’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책에서 말해주셨는데요, 만화가님께 ‘김산’은 한마디로 어떤 인물인가요?

김산 스스로 자신이 패배의 삶을 살아왔지만 오직 단 하나 ‘나 자신’에게는 승리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혁명가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모든 것 희망이 사라질 때에도 김산은 큰 구호보다 오직 한 사람의 진실된 속삭임을 믿었으며, 비록 작은 힘일지라도 그 힘들이 모여 거대하고 단단한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김산은 조선 독립의 길잡이로 냉철하고 단호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를 택했지만, 그의 본질적인 모습은 그것과 맞지 않은 인본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것은 김산은 ‘가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서도 어떤 한 사상의 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에서 변화했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김산인 것 같아요.

『아리랑』 그래픽 노블을 읽을 독자 분들께 특별히 전하실 메시지가 있을까요?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웃음) 앞에서도 언급했던 중국 답사 기간 중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어요. 바로 충칭에 있는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생가입니다. 어느 후미진 골목길을 지나 허물어진 건물 옆에 유일하게 남은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김원봉의 마지막 흔적인 것이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비운의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흔적 앞에서 저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어떤 슬픔 같은 걸 느꼈습니다. 김원봉, 김산 같은 사람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사람들이죠. 김산에게는 뒤늦게 건국훈장도 추서가 됐어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그 시절, 머나먼 이국에서 ‘물속의 소금처럼’ 사라져간 수많은 김산, 김원봉들이에요.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그분들을 꼭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라는 말이 있죠. 흔히 역사라는 것이 박물관에 박제된 과거의 유물처럼 전시되는 것이라고만 흔히들 생각하기 쉬운데요. 역사는 과거로부터 흘러 지금의 우리까지 흘러온 강물과도 같은 것이며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죠. 역사가 바로 우리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책이 그 일에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 

한국전쟁 당시에 일어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인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어요. ‘보도’라는 뜻은 ‘보호하고 도와준다’라는 뜻으로 해방이후 이승만 정부는 좌익 세력을 전향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보도연맹’이란 단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전국의 좌익 세력을 가입시키는데요, 주요 강령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에 충성한다는 내용으로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것은 이른바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쌀과 비료를 준다는 명목으로 또는 강제 할당되어 가입되는, 그러니까 좌익이 뭔지도 모르는 일반 농민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지고 그 와중에 대한민국 국군, 헌병, 반공 극우단체 등이 약 20만 명(추정)의 보도연맹원들을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학살을 하게 됩니다.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죠. 그 비극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만화 제작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이번에는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시켜 풀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한국현대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서 만화로 그려내 최종적으로는 잊힌 한국현대사의 큰 시리즈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 박건웅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을 거치며 한국 근현대사의 숨겨진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왔다. 빨치산 이야기를 다룬 『꽃』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노근리 이야기』, 제주 4·3항쟁을 그린 『홍이 이야기』, 비전향 장기수인 허영철 선생의 삶을 다룬 『어느 혁명가의 삶』,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남영동에서 견뎌 낸 22일을 기록한 『짐승의 시간』,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이야기를 그린 『그해 봄』,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제시 이야기』 『옌안송』 들을 만화로 그렸다. 작품마다 주제에 맞는 여러 가지 기법을 써서 어려운 소재들과 역사의식을 풀어내고 있다. 지금은 부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눈에 보이게 하는 만화 작업에 푹 빠져 있다. 2002년 대한민국만화대상 신인상, 2011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2014년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아리랑
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원저 | 박건웅 글그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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